사람들은 사랑을 예찬하곤 한다. 사랑을 위해 살고, 사랑 때문에 죽고, 연애는 꼭 해봐야하지 않겠냐고 말하고, '가슴 떨리는 사랑'을 이야기하곤 한다. 특히나 대학생 때 연애 안하면 하자있는 사람이라 생각하고, 연애를 꼭 해야한다는 가치관 때문에 '연애 정상 이데올로기'라는 말까지 존재한다.
나 또한 이런 사회적 분위기에 힘입어 '사랑을 찾고 싶다!'는 생각에 성인이 된 이후 내 짝을 찾기 위한 거대한 여정에 나섰다. 소개팅 어플로 수십 명의 사람들을 만나 커피를 마시기도 했고, 이 중 운 좋게도 좋은 사람을 만나 진한 연애를 해보기도 했다. 내가 무척 좋아하는 사람도 만나보고, 나를 무척 좋아해 준 사람도 만나보았다.
하지만 지금은 나 자신의 삶도 바쁘고, 더 이상 상처받고 싶지 않다는 생각에 더 이상 사랑을 갈구하지 않게 되었다. 당분간의 마음일지, 쭉 이어질 일인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감정에 지쳐 더 이상 감정이라는 것을 느끼고 싶지 않다. 내 안의 감정, 인간성이라는 것을 뜯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종종 들곤 한다.
특히 내가 자연스레 내 주변의 사람을 좋아하게 될 때, 정말 감정을 뜯어버리고 싶다는 생각이 간절해지곤 했다. 내 자신에게 너무 스트레스 받았다.
군대 복무 시절, 나는 나도 모르는 사이 한 후임에게 감정을 갖게 되었던 적이 있다. 솔직히 후임이 처음에 자대에 왔을 때 나는 얘가 찐따 같은 느낌이 살짝 있었어서 거부감이 들었었다. 그래도 잘해주고, 같이 복무 재밌게 하면서 지냈다. 후임은 자신의 삶을 충실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착한 사람이었다. 나와 같이 운동도 열심히 하고 자기 계발도 열심히 하던 성실한 사람이었다.
그런데, 나도 모르게 어느 순간부터 후임에게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너무나 당황스러웠다. 이 후임은 이성애자로 정체화 한 친구이고, 나는 그림의 떡 같은 존재인 이성애자에게 이렇게 깊은 호감을 느껴본 적이 없었다. 그리고 나는 내가 키가 큰 편이라 키 175cm 미만인 사람에게 호감을 느끼지 않는다. 그런데 후임이 175cm 미만임에도 나는 호감을 느끼고 있었다. 내 근기수 사람이 후임에게 장난이라도 치면, 비록 장난이어도 보는 내가 힘들었다.
나는 나 자신에게 너무 당황스러웠다. 감정을 가라앉히기 위해 나는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야만 했다. 하지만 근기수여서 생활관도 같이 쓰는 후임이었기에, 거리를 멀리 떨어뜨리고 싶어도 떨어질 수가 없었다. 그래도 나는 괴로워서 쉬는 시간마다 생활관에서 나와 사무실에 가서 책을 읽기 시작했다. 또한 후임에게 다소 업무적으로 대했다. 최대한 멀리 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노력이었다.
하지만 아무리 멀리 해도, 꿈에도 나오고, 가끔씩 생각나고, 미칠 지경이었다. 내가 왜 동성을 좋아하는 성소수자로 태어났는지 하늘이 미웠다. 세상을 만든 게 하느님이든 하나님이든 알라이든 빅뱅이든 태극이든, 성별 이분법적 이데올로기가 지배적인 세상을 만들 거면 그냥 이성애자들만 만들 것이지 왜 성소수자를 만들어서 이렇게 고통스럽게 만든 것인지 화가 났다.
하루는 너무 힘들어서 전화로 레즈비언 친구에게 SOS를 쳤다. 레즈 친구는 당시 3년 넘게 언니랑 알콩달콩 연애 무척 잘하고 있는 친구였다. 레즈 친구 근황도 묻고, 레즈 친구 연애 얘기도 쭉 들으며 나 또한 행복해지며 수다를 떨었다. 그러다가 내 이야기와 고민을 말하니 친구도 격공했다. 자신도 주변 친구에게 나도 모르게 감정 가질 때 힘들었던 적 있다고, 자신은 일부러 멀리 했다 말해주었다. 비록 힘들더라도 최대한 멀리하라고 나에게 조언해주었다. 나는 내가 성소수자인게 짜증난다고 말하니, 친구는 웃으며, "너가 좋아하는 사람을 만나면 그런 생각 안 날걸? ㅎㅎㅎ"라고 연애 고단수다운 말을 해주었다.이성애자 사람들도 주변사람들과 잘 안되는 경우도 많으니 성적지향성으로 비관하지 말라는 말도 함께.
나는 군대에서 이래저래 지내다가 결국 여차저차 마음 잘 접고, 잘 전역하여 사회에 나와 지금은 그 후임을 좋아하지 않는다.
몇 달 전부터, 내가 자주 가는 마트에 내 또래의 새로운 남성 직원 분이 들어오셨다. 내 또래 같지만 나보다 어린 20대 초-중반으로 보였다. 그런데 생긴 것도 목소리도 나의 이상형과 일치했다. 사회가 말하는 잘생김과는 멀지만, 내 호감상으로 훈훈하게 생기셨고, 성실한 성격 같아 보이시고, 키도 나와 비슷하고, 계산해주실 때 목소리도 너무 청량하고 좋게 들렸다.
나도 모르게 무의식적인 끌림에 의해 마트 들어갈 때나 계산할 때 직원 분을 힐끔 쳐다보고 지나가곤 했다. 식재료 사러 마트를 자주 가는 편이라 꽤나 자주 마주치곤 한다. 이제 그분께서도 단골인 나를 의식하고 아시는 것 같았다. 마트에 갈 때면 '그 훈남 분 계시나?' 생각하며 방문하곤 한다.
오늘도 마트 갈 때 '그 훈남 분 계시나?' 생각하며 마트 문을 열며 계산대를 힐끔 보았다. 그 훈남 직원 분과 처음으로 두 눈을 마주쳤다. 이전까진 내가 항상 힐끔만 거리고 눈 깔고 지나가서 마주친 적이 없었다. 나는 좋아하는 사람 눈 마주치면 설레고 당황하는 스타일이기에 내 가슴은 철렁 놀라면서 설렜다. 직원 분은 "어서오세요~"를 말씀하셨다. 나는 내 표정에서 게이인 거 티 나는 것 같아 바로 바닥으로 눈을 깔며 들어갔다(이 또한 티 난 거 같긴 하다). 사야겠다고 생각했던 식재료 리스트를 잊어버렸다. 1분 정도 생각하고 식재료들을 골라서 계산대에 가져갔다. 눈 깔고 계산했다. 직원은 청량한 목소리로 영수증 필요하냐 물어보았다. 나는 눈 깔고 영수증 필요 없고 봉투도 필요 없다 말하고 도망쳤다.
방으로 돌아오는 길, 눈을 하늘 높이 들었다. 가슴이 설렜다. 하지만 씁쓸했다. 나는 왜 동성을 좋아하는 성소수자로 태어나, 확률이 낮은 소수자의 인생을 사는 것일까.(뭐 물론 이성애자들도 다들 많이 실패하지만..)
종종 나는 내가 이성애자이고 마음에 드는 이성이 있다면 용기내서 번호를 땄을 것 같다는 생각을 한다.(아무래도 좋은 사람이 있으면 놓치고 싶지 않으니까..)
하지만 마트 남성 직원 분의 번호를 딸 수는 없는 노릇이다. 이 사람이 이성애자인지 동성애자인지 트랜스젠더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고, 성다수자인 이성애자일 확률이 높다. 성소수자는 10~20명 중 한 명이라고 한다. 마트 직원 분이 이성애자일 확률은 95% 내외, 아마도 게이일 확률은 5% 내외일 것이다.이 분도 나에게 시선을 주실 때가 몇 번 있었지만, 어디까지나 나를 손님, 단골로서 쳐다보신 것이지, 나를 호감 있어서 본 것 같지는 않았다. 5% 내외에 속할 확률은 낮아 보였다.
그래도 정말 혹시나 모르니, 주변 게이 친구에게 마트 직원이 성소수자일 확률에 대해 물어보았다. 친구는 아래 이모티콘을 보내왔다.
친구의 이모티콘이 너무 맞는 얘기라 할 말이 없었다.
지금도 가슴은 설레는 감정이 남아있지만, 뇌와 눈은 살짝 슬픈 감정을 느낀다. 오늘도 그냥 눈 깔며 들어갈 걸, 후회했다. 왜 눈을 마주쳐서 슬픈 감정을 느껴버리게 된 것일까.
눈 마주친 것을 한탄하는 것을 넘어, 왜 나는 감정을 느끼는 사람, 인간이라는 존재로 태어난 것일까. 감정을 뜯어버리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