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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를 좋아한다는 것이 과연 좋은 일일까 : 이별

맺고 끊음이 쉬워져버린 사회

by 배즐

몇 달 전, 대학동기 친구(여자사람)를 학교 주변에서 우연히 만났다. 오랜만이라 너무 반가워서 같이 내 최애 할매떡볶이 집으로 끌고갔다. 같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동기는 취업도 잘 하고, 미래를 위한 공부도 잘하고 있었다.


그러다 연애 이야기를 했다. 나는 헤어진지 좀 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주고, 동기는 남성을 만났던 이런저런 이야기를 해주었다. 만남과 이별을 반복하고 있던 것 같았다. 그러면서 문득 동기는, "연애는 기간제 베프를 사귀는 것 같아"라는 무게감 있는 문장을 말했다.


"연애는 기간제 베프를 사귀는 것"... 정말 너무나 공감했다. 연애라는 것은, 나와 누군가가 '사귈까?'라는 제안에 '연애'라는 계약을 체결하여 서로 '애인'이라는 칭호를 붙여 '사랑'을 나눈다. 계약기간이 짧은지 긴지는 모르는 법이지만, 해를 거듭할 수록 가벼운 사랑의 계약 관계 이야기가 들려온다. 몇 달 사귀고 헤어지고, 또 만났다가 헤어지고 등등... 비록 길게 사귀었던 사람이 있어도, 10년 이내로 깨지는 모습들을 보며 '진정한 연인이란 것이 존재할까', '결혼한 부부들은 정으로 버티는 것인가. 아니면 다들 일탈하고 살아가는가' 싶은 생각까지 들었다. 동기 말대로 "기간제 베프" 같다는 느낌이 요즘 시류에 너무 강해지고 있었다. 가벼운 만남과 가벼운 헤어짐의 소식들이 들려오는 가운데 오래 사귀는 친구들을 보며 정말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은 왜 사랑을 갈구할까> (https://brunch.co.kr/@naljh5872/1) 글에도 언급했지만, 에바 일루즈는 <사랑은 왜 아픈가>를 통해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보수적인 가치관으로부터 해방되고 자유를 부여받아 관계에 있어 맺고 끊음이 쉬워졌다. 또한 사랑은 자신이 사랑받고, 인정받고, 자존감을 높이는 관계가 되었고, 따라서 존재의 확실성을 잃어버린 시대에 사랑은 아프다"라는 요지의 이야기를 한 바 있다.


이 에바 일루즈의 말이 바로 "연애는 기간제 베프"라는 말의 배경인 것 아닐까 생각들었다. 현대 사회, 우리는 여러 의무 등 전근대적 가치관에서 해방되어 자유를 부여받았다. 그 가운데 관계는 선택이 되었다. 관계라는 것은 마음만 먹으면 바로 끊어버릴 수 있는 것이 되었다. 개인의 차원에서 보면 의무로부터 벗어나 자유가 증진되었다는 점에서 좋은 일이지만, 동시에 관계들이 너무나 가볍게 간주될 수 있다는 악영향이 존재한다.




나 또한 성인 이후 한번도 겪어보지 못한 사랑이라는 감정을 느끼고 싶어 게이 소개팅 어플리케이션을 통해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 같이 커피를 마시며 대화를 나눈 경험이 있다. 나는 어플리케이션에서 사진만 보면 상대를 전혀 알 수 없다고 생각해, 일단 만나서 이야기 나누는 것을 선호했다. 그래서 사람들을 만나 커피를 마시며 이야기를 나누고, 말하는 것, 행동하는 것, 평소 취미 관심사 등을 알아가고 상호 호감 정도를 생각해보며, 나와 맞는지 여부를 확인하고 필터링 작업을 전개해나갔다.


나는 그렇게 정말 운좋게 감사하게도 좋은 사람들을 만나 지금까지 세번의 연애를 하였다. 내가 정말 좋아하는 스타일의 사람도 만나보고, 나를 정말 좋아해주는 사람도 만나보았다.


하지만 화나게도, 두 명은 나에게 잠수이별을 시전했고, 한 명은 나에게 전화이별을 시전했다. 어쩌면 내가 관계에 있어 너무나 부담스러웠던 사람이었는지 모른다. 하지만 서로 좋아하고 함께 감정을 나누던 관계에서, 갑작스럽게 나의 마음 부분에서 반쪽이 통째로 사라지는 경험을 했다. 신혼 생활을 하다가 배우자를 사별로 잃은 사람의 기분이 이런가 싶었다. 이런 모습들도 "기간제 베프"였던 것이 아닐까 싶었다. 이 경우, 상대방은 일방적으로 연애 계약을 파기했다. 나는 정말 화나면서도 아팠다.


소심하고 상처를 잘 받는 사람으로서, 이런 경험들은 내가 더 이상 관계에 있어 잘 할 자신을 없게 만들어주었다. '이 사람도 어쩌피 언젠가 헤어질 것 아닌가'하는 두려움에 싸인다. '비록 누구든 언젠가 죽게 될 운명이지만, 나는 또 상처받고 이별당할 것 아닌가' 생각이든다. 상대방이 나를 정말 좋아해서 나 없으면 죽을 것 같아 하면 모를까, 호감있는 상대가 있어도 더 이상 자신감이 없게 되었다.


비록 내가 현재 가난한 대학생이지만, 좋아하는 사람을 위해서 해주던 내 나름의 뜻깊은 것들이 있었다. 내가 좋아하는 종로구 부암동 한식집에서 10만원 상당의 한끼를 사주는 것, 우리학교 자연과학관 옥상정원에서 서울 동쪽 밤하늘을 바라보며 스킨십을 즐기는 것 등.


하지만 좋은 사람이 나타나도 더 이상 해주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게 되었다. 학교 자연과학관 옥상정원이나 부암동 한식집에 가면, 저주처럼 이 상대방과도 헤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 것 같다. 혹은 부암동 한식집에서 돈을 쓰는 게 아깝지 않다가도, 후일에 헤어지고 나서는 '내가 무슨 돈이 있다고 그랬던 것일까' 생각하며 후회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게 나는 상처받은 영혼이 되어 연애 비즈니스(?)를 접게 되었다. 난 더 이상 상대방에게 줄 것이 남아있지 않은 파산 상태가 되었다. 더 이상 계약서를 체결하지 못하게 되었다. 자선구호 단체가 나를 찾지 않는 이상 나는 당분간 혼자 살 것 같다.


이성애자든, 동성애자든, 다른 정체성의 성소수자이든, 나같이 경험하는 사람들이 꽤나 많은 것 같았다. 나는 상처받은 영혼이지만, 다른 분들께서는 나와 비슷하면서도 동시에 '관계에 지쳐서' 연애 비즈니스를 접었다. 대신에 클럽과 원나잇을 추구하며 성비즈니스(?)를 여는 것 같았다.


다른 한편,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너지가 넘쳐 연애 비즈니스가 절대 파산하지 않고 끊임없이 사랑과 연애를 추구하는 친구들도 존재한다. 이런 친구들도 참 대단해보였다.




관계가 쉬워진 시대. 유교/기독교 가치관이 더 이상 지배적이지 않아 존재의 확실성을 잃어버린 시대. 연애는 기간제 베프를 사귀는 것인 시대. 나 또한 좋은 사람 만나 쭉 나아갔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한 켠에 있지만, 난 더 이상 자신이 없다. 로봇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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