레닌그라드를 가다
러시아 신식 고속 열차 삽산 (Сапсан) 타고 상트 페테르부르크를 가다.
기차여행은 언제나 즐겁다. 출장이 되든 여행이 되든 기차를 타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일이다.
기차를 타고 가면서 펼쳐지는 창밖의 파노라마...봄 여름 가을 겨울 러시아 사계의 다양한 모습을 보는 것도 재미다. 눈이 쌓여 온통 하얗던 벌판이 어느새 눈이 녹아 초록색을 드러내는 가 하면, 고등학교 수업시간에 배운, 끝없이 늘어서 있는 침엽수림. 나무로 지어진 러시아의 전통 가옥. 지금은 폐허가 되어 버려졌지만 스탈린 시대에는 전성기를 구가한 공장...등등 도시에서 보기 힘든 러시아의 정경이 모두 지나간다.
무엇보다 바쁜 일상 속에서 정신없이 살다가도 기차를 타고 자리에 앉으면 차분해지는 그 느낌이 좋다. 혼자만의 공간에 들어온 것 같고 혼자만의 사색을 할 수 있는 특별한 시간이 주어진 것처럼. 앞으로 처리해야 하는 업무도 정리해보고, 이런저런 잡다한 생각들도 정리해보고.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도 고민해보고... 진정한 ME Time 자기만의 시간이 된다.
다리 한번 꼬기 힘들정도로 좁은 비행기 이코노미 좌석에 오밀조밀 앉아서 창밖의 자연파노라마 대신 10인치 스크린에 눈을 고정하고 가는 것보다 훨씬 더 풍성한 경험이다.
러시아에서 근무하면서 St.petersburg는 거의 50번 이상 다녀온 것 같다. 물론 업무를 보기 위해 다니는 것이었지만, 모스크바의 바쁜 일상 속에서의 탈출이고, 이런저런 핑계로 펼쳐보지 못한 책도 읽고, St.petersburg라는 아름다운 도시로 마치 여행을 떠나는 설레임 등등 여러모로 추억이 된다.
50번 이상 왔다갔다 했으니, 기본적으로 기차에서 읽은 책만 50권이상이 되는 것 같다. 왕복으로 따지면, 거의 8시간이 주어지고, 한번 출장갈 때다 한 권의 책을 독파하는데는 전혀 무리가 없다. 출장 전날 짐을 싸면서, 항상 이번에 읽을 책은 무엇으로 할 지 책을 선정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고, 그 때 그 때 기분에 따라 가벼운 책 무거운 책 등 주제도 다양하게 소화했던 것 같다. 그만큼 자기 계발을 위한 의미 있는 움직임이었다.
상트 페테르부르크 출장 초반에는 비행기로 왕복을 해보고, 기차로도 왕복을 해봤지만, 결론은 고민없이 무조건 '기차'로 굳어졌다. 무조건.
시간적으로 볼때, 비행기를 타기 위해서는 모스크바의 교통 체증도 감안하고, 공항에서 대기시간도 있고, 사무실에서 공항까지의 이동시간, 상트페테르부르크 공항에서 내려 다시 사무실까지의 이동시간까지 하면, 단순 비행시간은 1시간에 불과하지만, 총 소요시간은 4-5시간이 걸린다. 그리고, 이 놈의 비행기는 무슨 연착이 되는 경우도 빈번하다.
반면에, 기차로 가는 것은 기차 타는 시간만 총 4시간이 걸려도, 내려서 이동시간까지 해도 거의 비행기 타는 시간과 비슷하다. 특히, 기차역은 공항처럼 시내 외곽에 위치한 것도 아니고, 시내 중심에 위치해 시간적인 측면에서는 거의 비행기나 기차 총 소요시간은 비슷하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볼 때도 기차 요금과 비행기 요금이 거의 대동소이 하다. 그렇다면, 결론은 기차를 이용하는 것이 답이다. 앞으로 상트페테르부르크 - 모스크바 구간을 이동해야 하는 분이라면 무조건 기차를 타는 것을 권해드리고 싶다.
모스크바에는 모스크바 역이 없다. 모스크바역을 찾으려면 상트페테르부르크로 가야된다.
한가지 재미있는 것은 모스크바에는 모스크바 역이 없다.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을 찾아볼 수가 없다. 아이러니 하다. 서울에 가면 서울역이 있고, 부산에 가면 부산역이 있어야 하는 데, 이게 무슨 말도 안되는 소리를 하느냐 할 수 있다. 하지만, 러시아는 종착역 또는 도착지를 기준으로 역이름을 정한다.
다시 말하면, 모스크바에서 출발하여 상트페테르부르크에 가기 위해서는 모스크바에 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역으로 가야 된다. 물론, 상트페테르부르크의 옛 이름인 레닌그라드 (Leningrad)역으로 가야한다. 그리고, 모스크바에서 '벨라루스 (Belarus)'로 가려면 모스크바에 있는 '벨라루스' 역으로 찾아가야 한다. 어떻게 보면, 자기가 가고자 하는 도시의 이름이 붙은 기차역만 잘 찾아가면 되니 매우 편하다.
추측컨데, 이는 러시아의 땅덩어리가 너무 커서, 하나의 모스크바 역에서 러시아내 모든 도시가 다 이어지는 중앙역 시스템이었다면, 아마도 모스크바 역은 인파 및 교통 체증으로 미어터졌을지도 모른다. 이 때문에 철도 시스템을 중앙 집중식이 아닌 분산식으로 설계한 것이 아닐까 한다. 즉, 도착지 기준으로 여러 역을 만들어 적당히 승객을 분산 시키는 기능을 한 것이 아닐까.
러시아 기차 하면 왠지 시베리아 횡단열차, 닥터지바고에서 보던 퀘퀘한 냄새 날 것 같은 열차만 떠올랐는데....러시아도 드디어 고속열차인 삽산을 도입했다. 그렇다고, 실제로 한국의 KTX처럼 고속열차는 아니다. 즉, 속도는 일반 열차와 동일하다. 그러고보니, 고속열차라고 불러서는 안될것 같다. 그냥 러시아 신식열차라고 해야 맞을 것 같다. 그 이름은 바로 삽산. 2009년에 정식으로 운행을 시작한 것으로 알고 있고 Sapsan이라는 이름은 러시아어로 송골매라는 뜻이다. 매를 형상화한 기차..머 그런 것 같습니다. 좌석도 편하고 각종 부대서비스도 갖추어, 일반 열차와 비교하면 쾌적함은 훨씬 좋다. 물론, 시베리아 횡단열차와 같은 일반열차의 낭만이나 로망스는 기대하기 힘들지만. 그냥 깔끔한 유럽형 기차를 도입한 것이다.
생긴건 이름처럼 날렵하게 생겼다.
좌석도 Economy Class 와 Business Class를 구분하여 요금 체계 및 서비스를 달리하고 있다. 차이점을 말하자면, 이코노미는 우선 기내식이 제공되지 않는다. 반면에 비지니스는 비행기 기내식 처럼 full course로 음식이 제공되고 주류 서비스가 제공된다. 좌석의 틀은 동일하지만, 좌석을 감싸고 있는 것이 이코노미는 천으로 되어 있고, 비지니스는 고급 가죽으로 되어 있다. 거기에 비행기 비지니스 클라스를 타면 제공되는 실내용 슬리퍼도 제공이 된다. 물론 마지막으로 가격차이는 거의 2배에 가깝다. 비지니스 출장이 아니라면, 굳이 비지니스 클라스에 탈 needs는 전혀 없다.
운 좋겠도, 50번 이상 왔다갔다하니 Business Class를 탈 기회가 생겼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면, 우선 흰색 도포를 깔아주고, Refreshing towel을 가져다 준다.
식전 음료가 서빙되는데, 맥주, 위스키, 러시아 보드카, 와인 머든지 선택가능하다. 왠지 위스키가 댕긴다. Grants라는 스코트랜드 싱글몰트 위스키로. 욕심내어 2병을 시킨다. 우선 1병은 위스키 본연의 맛을 음미하기 위해 스트레이트로 마시고, 나머지 한병은 칵테일로 먹기 위해 콜라도 추가. 여담이지만, 위스키 콜라의 최고 궁합은 짐-콕인 것 같다. 괜히 짐-콕이 생긴게 아닌 것 같다. 여러가지 위스키 - 콜라의 조합을 Try해 봤지만, 맛은 짐-콕의 조합이 가장 훌륭한 듯. Grants+Cola는 아님. 스카치 위스키에 대한 모욕(?).
비행기 기내식 서빙 순서와 동일하게 식전 음료 후는 애피타이저가 나오고, 바로 Main menu를 가져다 줄 것으로 기대했지만, 식전 음료와 곁들일 수 있는 전채요리가 우선 나온다. 빵은 기본이고, 모듬치즈를 주문했다. 와인을 선택할 걸 하는 후회를 잠깐 해본다.
전채요리를 마치면, 드디어 main 요리가 나오는데, 메인 요리는 3가지 종류가 있고 택일이다.
역시 Full Course의 마무리는 디저트 및 커피/차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