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석평전을 지나 촛대봉부터는 이제는 해발이 1700m가 넘는 고봉 준령지역이다. 천왕보이 1990m이니 근처의 봉들이 1700m를 넘는 것은 당연지사라고 할 수 있다. 촛대봉 1703m, 심신봉, 화장봉, 연하봉 1723m, 제석봉 1808m이다. 우선은 촛대봉에서 연하봉을 거쳐 장터목 대피소까지 이어지는 능선은 그렇게 힘들지 않지만 고원지대이고 물이 부족할 수 있는 구간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구간에 대하여 "세석평전과 장터목 사이의 연하봉은 기암과석과 층암절벽 사이로 고사목과 어우러진 운무가 홀연히 흘러가곤 하여 이곳에 앉아 있으면 마치 신선이 된 듯한 기분을 느끼게 하며, 천왕봉을 향해 힘차게 뻗은 지리산의 크고 작은 산줄기 사이사이에는 온갖 이름 모를 기화요초가 철따라 피어 지나는 이의 마음을 향기롭게 하고, 이끼 낀 기암괴석 사이에 피어 있는 갖가지 꽃과 이름모를 풀들은 한 폭의 그림처럼 지리산과 어우러져 마치 신선의 세계에 온 것 같은 느낌을 주고 고산준령 연하봉의 선경은 산중인을 무아의 경지로 몰고 간다"고 묘사하고 있다. 이름하여 연하선경이다.
연하봉을 올라가는 저 능선이 아릅답게 보이면서 이제 끝이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다. 연하봉을 지나면 이제는 장터목 대피소가 있다.
1박을 할때에는 연하봉을 지나면서 일몰을 볼 수 있는데 그 모습도 장관이다. 사실 1박을 하면서 여유있게 종주를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장터목대피소는 예전에 백무동과 중산리사람들의 장터가 있던 곳에 대피소를 세운 곳이라고 한다. 이곳에서 1박하고 새벽에 일어나 천왕봉을 올라가면 일출을 볼 수 있기에 인기가 있는 대피소다. 이곳을 기점으로 1시간이내에 제석봉을 지나 천왕봉에 도착할 수 있기에 배낭을 이곳에 두고 천왕봉을 갔다와서 이곳에서 아침식사를 해결하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대피소에서 취사장이 있으니 가능하다고 본다. 또한, 이곳에서 식수도 있고 필요한 물건도 판매가 되니 인기가 높을 수 밖에 없다고 본다.
예전에 함안이나 산청사람들이 이곳까지 올라와서 물물교환을 하였지만 이제는 대피소에서 물건을 산다. 함안이나 산청사람들은 생존을 위하여 이곳으로 왔지만 지금은 생존보다는 즐기는 것이다.
장터목대피소에서 백무동이나 중산리로 내려갈 수 있는 갈림길이 있다. 3시간 정도면 백무동이나 중산리로 갈 수 있으니 이곳으로 올라오는 사람도 많다. 그렇게 가파르지 않고 천왕봉을 갈 수 있으며 백무동에서는 서울이나 기타지역에서 오는 버스종점이 있어서 많은 사람들이 이를 애용한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장터목 대피소를 지나면 제석봉이다. 제석봉에는 고사목들이 있다. 이를 지리산의 상징처럼 여기는 데 국립공원 공단 홈페이지 들어가면 그 사연이 있다. "흔히들 지리산의 표상을 이야기 하라면 제석봉 고사목을 이야기하곤 한다. 물론 제석봉 고사목의 처연함, 그리고 노을이 질 때의 낭만은 지리산의 상징처럼 여겨져 온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러한 제석봉 고사목의 사연을 알고 나면 역사의식의 변환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제석봉 고사목은 늙어죽은 고사목이 아니라 비명횡사한 횡사목의 잔해이다. 6.25후까지만 하더라도 아름드리 전나무, 잣나무, 구상나무들이 울창하였던 제석봉은 자유당 말기 당시 농림부 장관의 삼촌되는 자가 권력을 등에 업고서 제석단에 제재소를 차려놓고 거목들을 베어내면서부터 수난을 당한다. 그러다가 후에(이 도벌사건이) 여론 화되고 말썽이 나자 증거를 인멸할 양으로 제석봉에 불을 질러 나머지 나무들마저 지금과 같이 횡사시켜 버렸다.
불법적 도발과 이를 은폐하기 위한 인위적인 방화로 지금의 제석봉이 되었다는 얘기인데 멀리서 제석봉을 바라 보노라면 마치 천왕봉 턱밑에 흉측한 마른 버짐자국이 생긴 것처럼 볼상사납기 그지없다.
자연 스스로의 노쇠과정 속에서 운치나 있을 고사목이 아니라 횡사목이라는 데서 그 어떤 미적 세계도 발견할 수 없는 지리산 임상 수난사의 처연한 기념물인 셈이다. 그나마 몇 그루씩 남아 있던 횡사목들마저 점차 쓰러져가고 있어 결국 얼마 안 가 제석봉 일대는 황무지로 변할 듯하다. 또 비만 오면 물을 머금지 못하고 그대로 흙탕물을 토해내는데 이점 때문인지 장터목 샘과 제석단 샘도 갈수기에는 종종 물이 고갈되는 현상이 나타난다"고 설명이 되어 있다.
안건의 탐욕이 만들어 내결과인 것이다. 그리고 권력자가 문제가 아니라 권력자의 옆에 있는 인간들이 항상 문제를 일으킨다. 권력자는 그것을 어떻게 할 수도 없다. 조선시대의 권력자들도 그들이 부패한 것이라고 역사적으로 배웠으나 조선의 권력자들이 부패할 시간이 없다. 그들의 주변이 부패하여서 권력자들은 어떻게 할 수가 없을 정도로 정리를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다. 권력자들이 현직에 있을 때는 거의 새벽에 출근하고 밤이 늦어야 퇴근할 수 있었다. 현재와 같이 주 4일, 주 5일, 주6일 근무도 아니고 사시사철 출근하여야 했다. 태양력이 들어오고 1주일이 7일이라는 개념이 조선말에 들어 온 이후 우리의 근무형태가 정착이 된 것이다.
제석봉에 운해가 있을 때 운치는 대단하다 하지만 그 슬품을 아니까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다.
이러한 제석봉을 그냥 아름답다고 볼 수도 없고 그저 담담하게 지나갈 뿐이다. 제석봉을 지나면서 이제는 천왕보이 눈앞에 나타나는 것처럼 보인다.
이제 통천문을 지나 지리산 정상인 천왕봉에 오른다. 오르면서 구상나무들을 담는다. 1915m근처에서 저 나무들이 우람차게 자라고 있다. 한라산의 1950m지점에도 구상나무가 자라고 지리산에도 자란다. 구상나무가 아니면 주목들이 군락을 이루지 않으면 산 정상은 너덜 바위지대가 되거나 나무는 없고 풀밭이 되어 버린다. 소백산이 그렇고 가리왕산이 그렇다. 오대산은 풀밭이며, 설악산은 바위지대, 소백산은 풀밭, 계방산은 풀밭이다. 바람이 많이 부는 정상인근에 구상나무가 자라는 것이 산을 지키는 것이 될 수 있다. 지리산 정상에서 50m인근까지 나무가 자라고 있으며 나머지는 바위지대다.
이제 천황봉이다. 븍한을 제외하고 한반도 남단에서 육지에 가장 높은 봉인 천왕봉이다. 한라산은 섬에 있다. 지리산 천왕봉을 오기 위하여 성삼재에서 10시간 이상을 걸어와야 하며, 백무동에서 출발하거나 중산리에서 출발할 경우에는 4시간 정도 걸린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중산리에서 올라올때에는 힘들지만 3시간이내에 도착할 수 있다. 등산을 하는 사람들은 설악의 대청봉을 올랐거나 지리산의 천왕봉을 올랐으면 뿌듯함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천왕봉 정상석을 배경으로 너도나도 인증샷을 남기기에 이것을 잠시 소유하는 것은 잠깐이다. 이 촬나의 순간을 이용하여 정상석을 담는다. 그리고는 자유롭게 지리산 주변의 경치를 즐긴다. 그리고 하산을 한다.
우리민족은 예로부터 백두산과 지리산을 성산(聖山)으로 숭배하였다. 또한 지리산은 신라 5악 중 남악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머물면 지혜로운 사람이 된다’하여 지리산(智異山)이라 불렀고, ‘멀리 백두대간에서 뻗어왔다’하여 두류산(頭流山)이라고도 하며, 옛 삼신산의 하나로 방장산(方丈山)이라고도 하였다.
장터목대피소에서 1박을 하고 일출을 보기 위하여 오는 사람들은 일출 2시간 전에 주섬주섬 옷을 입고 배낭은 그대로 두거나 아니면 배낭을 메고 랜턴불빛에 의존하여 제석봉을 오르고 통천문을 지난 후 여명이 나타날 시점에 천왕봉에 위치하면서 해가 뜨기를 기다린다. 엄밀히 말하면 지구다 더 돌아서 태양빛이 천왕봉에 보이기를 기다리는 것이다. 해가 뜨는 모습이 경이롭다.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와서 이 모습을 보았는지는 해가뜨고 아래를 내려다보면 알수 있다. 지리산의 저 모습을 보기 위하여 아침일찍 장더목대피소에서 이렇게 열심히 온 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제는 하산이다. 하산은 여러방향으로 하산할 수 있다. 나는 종주를 하면서 3방향으로 하산해보았다. 첫번째는 중산리 방향이다. 중산리는 해발이 600m정도다. 해발 1915m의 천왕봉에서 2시간에서 3시간 정도의 시간에 도착하니 어느정도 짐작이 가겠지만 가파르게 내려간다. 무릎을 보호해야할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권고하고 싶지 않은 구간이다. 하지만, 산악회버스를 타면 이곳으로 하산할 수 밖에 없다. 시간이 촉박하기 때문이다. 시간안에 하산하여야 하기 때문에 이길로 내려갈 수 밖에 없다. 이길은 하산길이 아니라 등산길이다. 두번째는 똑같이 중산리로 가지만 장터목대피소까지 돌아간 후 중산리방향으로 하산하는 것이다. 시간상 1시간 정도 더 소요되지만 무릎은 보호가 된다. 칼바위 근처에서 천왕봉에서 직접 내려오는 등산로와 만난다.
세번째는 백무동으로 하산하는 것이다. 이것도 장터목대피소까지 돌아간 후 백무동으로 하산하는 것이다. 하산길이 그렇게 힘들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대부분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산객들은 이길을 이용하여 하산한다. 백무동에서 함양으로 나가는 버스가 있거나 직접 서울로 가는 버스도 있기 때문이다.
중산리로 하산하면서 처음 내려서면 천왕샘이 있다. 남강 발원지인 천왕샘이다. 천왕봉(1915m) 바로 아래 자리한 천왕샘은 '지리산 물'의 시작점이라고 할 수 있다.
내려가다보면 로다리대피소와 법계사가 있다. 법계사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절로 신라 진흥왕 5년(544) 연기조사가 창건하였고, 고려 우왕 6년(1380) 이성계에게 패한 왜군에 의해 불탔고, 1405년 선사 정심(正心)이 중창했으며, 1908년 일본군에 의해 불탔고, 한국전쟁을 거치면서 또다시 불탄 채 방치되었다가 1981년 법당과 산신각, 칠성각 등이 재건되면서 겨우 절다운 모습을 갖추었다고 한다.
로타리대피소에서 직접 내려가는 방법도 있지만 우회하여 경남환경교육원으로 가면 힘든 부분이 약하다고 할 수 있다. 직접 내려가면 칼바위가 있지만 상당히 가파르다고 할 수 있다. 칼바위를 지나면서부터는 하산길도 어렵지 않게 된다. 즉, 좋은 하산로가 나타나는 것이다.
마을입구가 나타나며 음식점이 있다. 관광버스는 이곳까지 올라오지만 대중교통은 좀더 내려가야 한다.
13시간에서 14시간을 종주할 수 있는 것이 성삼재, 중산리 구간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지 않고 걸을 때 이야기다. 주변을 둘러보면서 산행을 하려면 1박을 대피소에서 보내고 지리산 일출도 보는 것이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