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자가 죽어야 산다고 했는데 그러면 누가 살아야 하는가
상명대학교 중어중문과 교수인 김경일 선생이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고 했다. 그러면 이분은 누가 살아야 한다고 이야기한 것일까? 이책의 서평이 들어있는 yes24의 요지를 옮기면 "한국사회 문제의 핵심에는 공자로 대표되는 유교 이데올로기가 있다는 것이다.
실용적 학문과 경제적 활동을 천시하다가 근대화에 뒤쳐진 것은 말할 것도 없이 학사적 젠체와 엘리트주의, 그리고 그 기득권층의 보수대결집 배후에는 유교의 사농공상적 신분질서 관념이 있으며, 논리보다는 힘을 우선하는 토론 부재의 사회분위기는 유교의 가부장 의식과 군사독재의 권위주의가 짬뽕된 결과이다.
공자의 도덕은 '사람'을 위한 도덕이 아닌 '정치'를 위한 도덕,남성을 위한 도덕, '어른'을 위한 도덕, 기득권자'를 위한 도덕,심지어 '주검'을 위한 도덕이었다. 때문에 공자의 도덕을 받아들인 유교문화는 정치적 기만과 위선,남성 우월 의식과 여성 착취, 젊음과 창의성의 말살 그리고 주검 숭배가 낳은 우울함이 가득할 수밖에 없다. 이것들은 사람이 살아 숨쉬는 삶의 공간에 꼭 필요한 투명성과 평등, 창의력, 생명력과는 너무도 동떨어진 가치이다." 정리되어 있다.
우리가 익히 아는 공자는 춘추전국시대에 자기를 요직에 등용할 것을 요청하면서 유세를 펼쳤으나 그 뜻을 이루지 못하고 노나라로 돌아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공자의 사상을 한나라를 세운 한고조 유방이 차용하였기에 치세의 학문이 된 것이다. 한나라는 진시황이 버렸던 유가 사상을 통치 이념으로 채택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한나라 이후 동아시아의 정신세계는 공자의 유가 사상으로 통일된다. 유가 사상은 정치적 필요에 의해 재탄생되었던 것이다. 그 재탄생을 가능케 한 사람은 황제의 마음을 잘 읽은 동중서라는 정치적 인물이었고 유가 사상은 정치적 문화적 과정 속에서 다듬어지면서 자연스럽게 주류의 사상으로 남게 되었다.그리고 삼국시대에 우리에게 전파되어 1,500년 이상을 한국사회의 주류 지배 학문으로 유지되었다.
조선시대에는 송나라의 주자의 주자학이 우리나라에 들어와 중국보다도 더 유교의 정치철학에 심혈을 기울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조선중기까지 이어지던 이러한 지배계층의 문화가 하층까지 연결되어 조선후기에는 우리사회 대부분을 장악하여 제사문화, 공자의 향교 등이
나도 이 논리에 찬성을 한다. 유교의 이데올로기는 농업사회에서는 적합한 학문이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3차 산업까지는 문제 적용될 수 있지만 4차산업이 대세를 이루고 있고 우리의 생각이 그대로 산업으로 탈바꿈이 되는 현실을 감안하는 이 시국에는 사서삼경 등으로 대변되는 공자의 생각을 달달외우는 학문은 벗어나야 한다고 본다. 서양의 학문이 득세를 하고 있는 시점에 fast follower가 될 때에는 공자의 사상이 우리에게 적용될 때에는 문제가 없이 적용이 되었다.
하지만, 최근에 우리가 세계를 선도하면서 퍼스트무버(first mover, 선도자), 트렌드세터(trend setter, 시대의 유행 등을 선동하는 자)인 기업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놓아야 한다. 삼성이 메모리 반도체분야에서 First move가 되어 있지만 비메모리 분야에서는 아직 한계가 있다. 이러한 부분을 이끌 수 잇는 것은 공자의 생각이 아닌 장자의 생각이 필요하다고 본다.
장자를 읽어보아야 한다고 나는 생각한다.
장자에 의하면, "모든 차별이나 변화는 결국 인간의 유한한 지식으로부터 유래한다고 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스스로 지식의 한계를 깨닫고 쓸데없는 시비(是非)를 버려야 한다. 이러한 사상은 유명한 <나비와 장주(莊周)>의 예화를 통해 극적으로 표현되어 있다. 어느 날, 장자가 꿈을 꾸었다. 그런데 스스로 나비가 되어 이 꽃 저 꽃을 다니며 노닐다가, 자신이 장자라는 사실도 잊고 말았다. 꿈에서 깨어난 장자는 묘한 생각이 들었다.
“과연 장자가 꿈속에서, 자신이 나비로 변한 것을 보았는가? 아니면 나비가 꿈을 꾸면서, 스스로 장자로 변한 것을 보았는가?”
이 말은 자신이 인간으로서 꿈을 꾸다가 나비로 둔갑했는지, 아니면 원래 나비였던 자신이 인간 장자로 변한 것이었는지 도무지 알 수 없다는 뜻이다." (출처 : 속세를 초탈하고자 한 철학자, 장자 (청소년을 위한 동양철학사, 2009. 1. 30., 강성률, 반석) )
장자에 나오는 어부를 기억하자. 농부는 일한만큼 거두는 직업이지만, 어부는 고기가 그만큼 있는 곳에서 일을 하지만 일하는 만큼 얻는것이. 요즈음에도 성실하면 그만큼 얻을 수 있지만, 예전에도 그렇고 요즈음에도 그렇다. 무턱대고 성실하다고 많은 것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어부는 수렴사회의 사냥꾼과 같다. 낚시하는 어부는 대어가 와야만 대어를 낚을 수 있다. 고기는 저장도 어렵다. 오늘 고기를 많이 잡았다고 해서 내일이 풍요하다고 할 수 없다.
사마귀가 매미를 노리고 있고 그 사마귀 뒤에서 까치가 노리고 있으며 까치 뒤에는 매가 노리고 매를 노리고 있는 사냥꾼 얘기가 있다. 나에게만 집중하고 주변을 돌아보지 않는다면 내가 죽는 줄도 모른다고 세상에 알리고 있다. 유가에서는 이러한 부분에 자기에게 집중할 것을 이야기하고 있다. 이해가 얽히고 설킨 위험한 현실세계를 묘사하였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현실세계를 우리는 어떻게 대처하여야 할 것인지를 질문하고 있다. 우리가 어떤일을 함에 있어 당장의 이익에 눈이 멀어 새로운 기회비용을 놓치기 때문이다.
양승권은 "니체와 장자가 부정한 것은 가치 자체가 아닌 가치를 강요하는 행위, 2020년"란 책자에서 절대적 가치가 사라진 시대다. 그 사라진 틈새를 관습과 종교와 정치, 더 가까이는 나이와 직책이 파고들며 당신은 잘못되어 있다고, 당신이 갈 길은 저곳이라고 속삭인다. 그리고 당신은 이곳에 있었기 때문에 불행해졌다고, 누군가 당신이 갈 길을 속이고 있거나 혹은 당신 자신이 잘못된 길을 주장하는 사람이라도 뒤흔들어댄다. 세상이 혼란하고 주변이 나를 따돌려 때로 나 자신조차 나를 믿을 수 없을 때도 있다고 언급하였다.(출처 : 대학지성)
나는 우리시대에 있어서 공자가 죽어야 한다고 볼 수는 없지만, 새로운 가치체계를 확립할 수 있도록 공자의 사상에 얽매여 있을 필요는 없다고 본다. 공자에게만 얽매여 있을 때에는 우리에게 미래가 없다고 본다.
김기만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