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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남북전쟁 후 처리를 우리는 배워야 한다고 본다.

by 김기만

미국은 극심한 내분에 따라 남북전쟁을 겪었고 그 결과는 참혹했다. 근 5년 동안 남과 북이 싸웠다. 지금도 앙금이 있다고 할 수 있지만, 하나의 USA를 이루고 있다. 우리는 전쟁을 겪지 않았으면서도 아직도 지역갈등이 남아 있고 서로를 잡아먹지 못하여 으르렁 거리고 있다. 서로가 출신지역을 떠나 그 지역에 가서 살면서 서로를 불신하고 있다.


제1차 세계대전 이후 종전협상에서 승전국이 보여 준 태도로 독일이 제2차 세계대전의 전범국이 되었다고 많은 사람들이 이야기 한 사례들이 있는 것에 비추어 미국의 남북전쟁 후 종전협상에 따른 처리과정이 미국의 화합을 만들고 새로운 전쟁을 만들지 않았다고 나는 생각한다.


미국의 18대 대통령인 그랜트는 남북전쟁에서 북군의 총사령관이 되어 북부를 승리로 이끈 명장이다. 덕분에 남부의 총사령관이었던 리 장군과 자주 비교된다. 지금도 미국 50달러 지폐 모델로 기념되고 있다. 그랜트가 남북전쟁 후 리 장군과 남북전쟁 후 협상에서 어떻게 했는지를 협상 관련 서적에서 많이 인용된다.

이것이 우리에게도 적용되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그 일화다.


북군 사령관인 그랜트 장군과 남군 사령관인 리 장군은 미 육군사관학교 동기생이지만, 리 장군은 학교 때부터 특출 났고 그랜트 장군은 그저 그랬다고 한다. 리 장군은 남군의 사령관이 되기까지 승승장구하였지만 그랜트 장군은 북군의 사령관까지 우여곡절을 겪었다고 한다. 중간에 예편하여 잡화상을 열기도 하였다고 한다. 남북전쟁 이후 그랜트 장군은 해당 주의 지휘관으로서 명성을 쌓으면서 승진하여 북군의 장군이 되었고 남북전쟁 종료 후 전후 처리를 위한 회담에서 대표로서 회담장에 나가 북군은 남군에 대하여 승자의 여유를 갖고서 이렇게 처리하였다고 한다.


전쟁에 따른 패장병들에 대하여 어떠한 처벌도 하지 않고 그냥 고향으로 돌아가라고 하였다. 전쟁포로에 대한 이야기도 없었고 굶주린 남군 패잔병에게 식량까지 제공해 주어 그들이 북군에 대한 적개심을 없앴다고 한다. 북군들도 승리자로서가 아니라 같은 미국인으로 남게 되었다고 한다. 이것이 승자의 여유이면서 결과는 하나의 USA를 만들었다고 한다. 우리는 승자의 여유가 없다. 다만, 패자만 있을 뿐이다 M&A를 한 후 점령군이 된 회사 직원이 있으면 M&A가 실패한다고 한다. 상대방을 존중하는 협상이 필요하다고 본다.


제1차 세계 대전 후 전후 패전처리도 역사의 교훈이라고 본다

연합국은 패전국인 독일로부터 베르사유 조약을 통해 막대한 전쟁배상금을 받아냈다. 그 결과는 제2차 세 계대 전이다. 당시 독일 국민들은 자신들이 바이마르 공화국을 거치면서 피폐한 이유를 연합국에 대한 막대한 전쟁배상금이라고 생각하였다. 이러한 교훈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 연합국은 패전국인 독일에 대하여 막대한 배상금 대신에 마셜플랜을 집행하였다. 피폐한 독일보다는 복구된 독일이 필요하였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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