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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월 대 보름 어릴 적 추억이 있는 산을 올라 본다.

by 김기만

음력 1월 15일이 되면 오곡밥을 먹고 부럼을 깬 기억이 있을 것이다. 살면서 이것도 해보고 저것도 해본 기억이 있다. 나 어릴 적 기억이 새록새록 나는 정월 대보름 뒷산에 올라본다. 공업화가 되기 전 농업사회였던 나 어릴 적 농사가 시작되기 전 정월 대보름은 중요한 행사였다고 할 수 있다. 산과 들에 이제 아지랑이가 피기 시작하고 동네의 많은 사람들이 이제 농한기를 벗어나 동네 사랑방이 아닌 논과 밭으로 나가기 시작하는 시점이 되었다고 보면 될 것이다. 농촌이라기 보다는 산촌에 가까운 나 어릴적 고향이 그리울때는 이러한 시기라고 해야 할 것이다.


당시 동네마다 이상하게 마을 사랑방이 있어 그곳에 온동네 남정네들이 다 모여 있었다. 낮에는 산에 가서 화목을 하고 밤에는 당시 노름도 하고 술도 먹고하여 동네 아낙네들의 걱정거리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설이 지나고 12 지신의 날이 연속되다가 보름이 되면 종료가 된다. 오늘의 소띠가 무엇인가 하고 다음날은 호랑이띠가 무엇인가 한다. 무슨 의미인지도 모르고 그냥 그렇게 어른들이 하는 데로 따랐을 뿐이다.


정월대보름 새벽 동제를 지내기 위하여 모인 어르신들의 바구니에서 동제에 사용하였던 종이를 얻기 위하여 꿈이 있는 아이들이 기웃거린다. 종이가 귀하던 시절 그 종이로 공부를 하면 좋다는 얘기다. 사실 그 열정이 우수한 학업성적으로 나왔을 것인데, 부모님들도 그 종이를 나누어 가진다. 자식들이 잘 되기를 바라는 심정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동제가 개최하기전 이를 준비하는 어르신들은 경건하였고 그 준비물을 구매하기 위하여 큰 시장도 간다. 우리 부친도 그렇게 하는 것을 보았다. 한지를 그렇게 사용하였다고 보면 될것이다.


오곡밥은 허기진 배를 채우는 좋은 수단이었지만 지금은 최고의 영양식이 되어 있다. 잡곡밥을 그렇게 먹기 싫은 시절에 살은 나이 든 사람들은 요즈음의 젊은이들이 건강을 위하여 잡곡밥을 찾는 것과 그것을 먹으라고 권유하는 것이 못마땅할 수 있다. 매일 쌀이 한두톨 들어 있는 밥을 먹다가 찰진 오곡밥은 꿀맛이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세월이 흘러 지금은 쥐불놀이를 금하고 있지만 겨우내 동면하고 있던 벌레들을 제거하여야 한다는 목적으로 논둑과 밭둑에 불을 놓았다. 사실 이것이 지금에는 그렇게 의미가 없다고 하였는데 그때는 열심히 뚝방을 태웠다.

산에는 동네 형들이 우리 동네 '달집'이 다른 동네 '달집'보다 커야 한다는 소명하에 어르신들의 묵인하에 동네 뒷산에 소나무를 쌓아 올린다.


어릴 적 통조림을 먹은 깡통은 우리에게 있어서 중요한 보물이었다. 정월대보름에 쥐불놀이를 할 수 있는 도구인 것이다. 마른 가지를 깡통에 넣고 불을 조금 담고 돌리면 불이 활활이다. 그것이 없는 친구는 구경만 할 뿐이었다. 보름이 다가오면 깡통에 못으로 구멍을 여러 개 만들어 준비를 하고 정월대보름에 사용하는 것이다. 지금은 산림이 울창하여 어디에 이런 짓을 하면 산불이 나겠지만 나 어릴 적에는 산은 민둥산이었다. 동네 근처 산은 큰 나무 몇 그루 외에 잡목은 겨우내 땔감으로 아궁이에 들어간 지 벌써 한참이 되었다. 봄이면 자라고 겨울이면 땔감이 된 것이다.


동네 뒷산의 달집을 때울 때 이산도 불타고 저산도 불타고 있다. 아니 , 이 마을 뒷산 저 마을 뒷산의 달집이 탄다. 사실 멀리 있는 달집이 타봐야 우리 동네 달집이 제일 클 수밖에 없는데 모두들 그렇게 열심히 했다.


이제는 옛 추억일 뿐이다. 남은 것은 먹는 것 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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