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산의 대표 태백산

by 김기만

환웅이 하늘에서 내려와 태백산 신당수 아래에 신시를 차렸다고 한다. 하지만 고조선과 관련된 이 얘기의 태백산은 강원도의 태백산은 아니다. 태백산에는 지금도 하늘에 제사를 지내는 천제단이 있지만 고조선보다는 신라시대부터 라고 전해지고 있다.


천제단은 하늘에 제사를 올리기 위해 돌을 쌓아 만든 제단이다. 천제단은 태백산 정상에 있는 천왕단을 중심으로 한 줄로 놓여있다. 천왕단의 북쪽에 장군단이 있고, 천왕단의 남쪽에 하단이 있다. 1937년 천제 지낼 공간을 태백산 정상에 조성한 후 그다음 해인 1938년에 천제를 지낸 전통이 현재까지 이어지면서 태백산에서의 제의를 획일적으로 ‘天祭’로 규정하고, 여기에 단군이 강림한 곳이라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태백산은 일찍이 신라 삼산 오악(三山五岳) 중 북악(北岳)으로 이를 진산으로 여겨 나라에서 제사한 기록이 『삼국사기』 제사조에 전하며, 『고려사』에도 무녀(巫女)가 참여하여 제의를 행한 기록이 전하고 있다.


태백산을 비롯하여 동쪽의 토함산, 서쪽의 계룡산, 남쪽의 지리산, 중앙의 팔공산이 오악(五岳)에 해당한다. 『척주지』에는 "풍속에 귀신을 믿어 태백산 정상에 천왕사(天王祠)를 지어 놓고 봄과 가을로 큰제사를 지냈다. 여기서 기도드리는 모든 사람들은 재계하고 소를 끌고 가 천왕사 아래에 매어 놓고는 뒤돌아 보지도 않고 달아났다. 이는 돌아보면 재앙이 뒤따른다고 생각하였기 때문이다. 이에 관에서 감고(監考)를 정하여 그 소들을 관에서 거두어들였는데 이를 퇴우라고 하였다.


지금은 매년 개천절에 나라의 번영을 기원하는 제사를 천제단에서 지내고 있다


태백산은 유명한 겨울 산행지이다. 바람이 있고, 눈이 있어서다. 그런데 최근 몇 년 동안 아쉽게도 바람은 있지만 눈이 없다. 그래도 희망을 갖고 눈을 보러 가는 사람들이 많다. 나도 그 한 명이 되어 보았다. 그리고 눈이 없어서 예전에 이곳에 눈을 보러 왔을 때 찍은 사진으로 추억을 회상하였다. 그때는 유일사주차장에서 출발하여 당골로 내려갔었다. 오늘은 화방재에서 시작하여 천제단을 거쳐 문수봉까지 간 후 당골로 내려간다.


태백산의 등산로는 많지만 서울에서 접근할 경우에는 화방재 또는 유일사에서 올라간다

화방재는 (太白市) 혈동(穴洞)에 있는 고개로, 국도 제31호선 이 지나가고 고개 정상에서는 414번 지방도가 분기한다. 태백산 북서쪽, 함백산 남서쪽에 있고 백두대간이 통과한다. 고개 정상에는 태백산으로 올라가는 등산로가 있다. 정상에 있는 주유소 인근에 산악회 버스가 정차하면 산객들은 순식간에 내려 백두대간 등산로를 따라 태백산으로 올라간다. 유일사주차장에서도 동일하다. 유일사주차장에 관광버스가 정차하면 너도나도 아이젠을 착용하고 눈이 많은지 여부에 관계없이 스패츠를 착용한다. 겨울등산을 할 때에는 기본적으로 아이젠은 필수이다. 선택은 스패츠다.


유일사주차장에 올라갈 때는 언덕을 바로 올라가지만 화방재는 고개에서 시작하기 때문에 능선길이다. 예전에 유일사주차창에서 올라갈 때 처음 만나는 나무가 너무 멋있어서 담아 보았다

화방재에서 길을 잡거나 유일사주차창에서 길을 잡거나 유일사 삼거리에서 만난다. 화방재에서 올라가면 능선이고 산신각이 있다. 사길령 산신각이다. 이곳은 예전 보부상들이 사길령을 넘나들 때 이곳에 제를 지내면서 안전을 기원했다고 한다. 사길령은 강원도에서 경상도 춘양 지역으로 가는 고개로 흔히 사길령[鳥道嶺, 四吉嶺, 新路峙, 四吉峙, 瑞吉嶺]으로 부르는 고갯마루에 산령각이 있다. 이 산령각은 사길령을 오가며 장사를 하였던 보부상들이 嶺路의 안전과 장사의 번성을 위해 세웠으며, 매년 음력 4월 15일 제사를 지냈고, 이후 보부상이 해체되고 이들에 의한 상품 교류가 축소되었어도 태백시 혈리에 사는 주민들이 산령각계라는 이름으로 보부상들이 남긴 재산을 관리하여 이에 의한 수익금과 신입회원들의 입회비로 산령각제를 매년 지냄으로써 마을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고 있다고 한다.

유일사 쉼터까지 가는 길은 편안하다고 할 수 있다. 유일사 쪽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그 사람들에게 엮이지 않으려고 바로 아래에 있는 유일사로 내려간다. 친구들은 1 산 1사다. 1개의 산에서 1개의 사찰은 반드시 찾아간다.


100m 정도를 가파르게 내려왔다가 사찰을 탐방하고 돌아와야 한다.


유일사는 태백산 백단사에서 이소선이 백일기도를 하던 중 사찰을 창건하라는 부처님의 현몽을 받아 창건하게 되었다고 한다. 태백시장이 설명하는 자료를 보면 1959년까지는 터만 남아 있었다고 한다. 그 이후 불사를 조성 하였다고 하니 힘든 여정을 거쳤다고 보면 될 것이다. 하지만, 태백지역의 유일한 비구니 사찰이며 시설물로는 법당, 인법당, 칠성각, 독성각, 산신각, 요사채가 있다.


장군봉을 가기 전 유일사를 갔다 와서 시간적 여유도 가질 수 있고 새떼처럼 걷는 단체산 행객들을 먼저 보냈다. 새떼처럼 등산객들이 가면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가 가는데 단체 산객들은 이를 무시하고 걷는다.


장군봉을 가기 전에 주목 군락이 있다. 자료에 따르면 이곳의 주목 군락 규모가 어느 지역보다 크다고 한다. 겨울에 이곳에 눈이 바람과 함께 주목에 상고대를 만들었을 때 장관을 보기 위하여 오는데 요즈음은 그렇게 눈이 오이 않아서 상고대 모습을 보기가 어렵다. 이곳의 바람이 센 것은 익히 알려져 있어 이곳을 지날 때 옷깃을 스스로 여미어야 하고 방풍을 장비를 갖추어야 한다는 것은 익히 알려져 있는 사실이다.


장군봉에 도착하여 멀리 산을 쳐다본다. 겨울산이 눈이 있어야 하나 부족하다.

그래도 담아본다 눈이 가득하였을 때 주목 군락을 회상해본다.

이렇게 눈이 왔을 때 태백산은 더 운치가 있는데 부족하다. 겨울에 눈이 부족한 겨울이 지속되고 있다

이제 천제단이다. 태백산 정상석을 향하여 너도나도 인증샷을 남기고 있다. 하늘을 향해 제사를 지내는 곳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인증샷을 남긴다. 태백산은 하늘에 제사를 지낸 천제단이 있어 민족의 영산으로 불려 왔다. 일출 명소로도 알려져 있어 매년 새해 첫 일출을 보려는 사람들이 천제단 주변을 가득 메운다. 태백산의 대표 봉우리는 주봉은 장군봉(1567m)과 문수봉(1517m)이지만 장군봉보다 천제단 주변에 대부분 산객은 몰려 있다.


오늘의 태백산 정상은 국립공원공단의 홈페이지에서 캡쳐해 본다. 아직 눈이 거의 없다. 이렇게 눈이 겨울이 몇 해가 된 것 같다. 겨울이라면 눈이 와야 되는데 그렇게 되지 못하니 봄까지 이어지는 가뭄이 이어지고 산불에 그대로 노출된다. 강원도에 겨울에 눈이 오지 않을 경우 봄에는 산불 위험도가 높아진다.

이곳에서 문수봉으로 가거나 당골로 직접 하산할 수 있다. 당골로 하산하는 길은 거리가 짧아서 1시간에서 1시간 30분이면 충분히 가능하다. 당골에서 특별히 할 일이 없다면 문수봉을 거쳐서 하산하는 것을 권장한다. 시간이 부족하지 않았다.

우리의 등산은 화방재 사길령 유일사 장군봉 천제단 문수봉 소문수봉 당골광장이다. 부쇠봉 아래에 있는 주목이 이채롭다. 이곳에서 3km를 걸으면 되는데 문수봉 직전까지는 그렇게 험난하지 않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쉽게 간다. 문수봉은 너덜바위 지대다.


산 이름의 유래가 될 정도로 바위와 돌로 형성된 특이한 봉우리에는 정성을 다해 쌓아 올린 돌탑들이 세워져 있다. 옛날 이 산봉우리의 바위로 문수 불상을 다듬었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지난번 망경사에서 이곳 문수봉을 바라보면서 언제 가볼까 했는데, 6년이 지난 오늘 반대편에서 바라보게 된다. 망경사는 652년(진덕여왕 6년) 자장율사가 이곳에 문수보살의 석상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찾아와, 절을 짓고 석상을 봉안했다고 전해져 온다.

당골광장에는 동양 최대의 태백 석탄박물관이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검은 진주라 불리는 석탄이 발견된 시점을 기준으로 석탄의 변천사와 역할 등 역사적 사실을 한 곳에 모아 탄광의 변천사를 한눈에 볼 수 있는 교육적 가치가 높은 명소이다.


석탄은 우리나라의 유일한 부존 에너지 자원으로서 국민생활 연료 공급과 국가 기간산업의 중추적인 역할로 국가 경제발전에 크게 기여하여 왔으나, 물질문명의 발달로 그 수요가 급격히 줄어들고 있어, 그간의 석탄산업 변천사를 한 곳에 모아 귀중한 역사적 사료가 되도록 하고, 후세들에게 석탄산업 전반에 대하여 이해할 수 있는 학습장으로 활용하여 석탄에 대한 기억을 되새기고자 석탄박물관을 건립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