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출산, 월출을 보지 않고 일출을 보다.

전남의 소금강을 왜 그렇게 부르는지 알았다.

by 김기만

하춘화 씨가 노래해서 유명한 노래가 있다. 백암이 작사하고 고봉산이 작곡한 대중가요인 영암 아리랑은 가수 하춘화(河春花)가 열일곱 살 때 불러 대중의 사랑을 받는 불후의 명곡이 되었다.


"달이 뜬다 달이 뜬다 둥근 둥근 달이 뜬다

월출산 천왕봉에 보름달이 뜬다

아리랑 동동 쓰리랑 동동

에헤야 데헤야 어사와 데

달을 보는 아리랑 님 보는 아리랑


풍년이 온다 풍년이 온다 지화자자 좋구나

서호강 몽햇들에 풍년이 온다

아리랑 동동 쓰리랑 동동

에헤야 데헤야 어사와 데야

달을 보는 아리랑 님 보는 아리랑


흥타령 부르네 흥타령 부르네

목화짐 지고 흥타령 부르네

용칠도령 목화짐은 장가 밑천이라네

아리랑 동동 쓰리랑 동동

에헤야 데헤야 어사와 데야

달을 보는 아리랑 님 보는 아리랑"


영암 하면 월출산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전남의 유명한 산을 손가락으로 헤아리라면 월출산을 그 다섯 안에 들어갈 것이다.

월출산은 전남 영암군과 강진군의 경계를 이루는 명산(名山)으로 영암(靈巖)의 진산(鎭山)인 월출산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영암군의 남쪽에 위치하며, 신라 때 월나악(月奈岳), 고려 초에는 월생산(月生山), 조선 시대에는 월출산(月出山)이라 불렸다.”는 기록이 있다. 월출산은 우뚝 솟은 바위산과 그 위로 떠오르는 달이 어우러져 삼국시대부터 ‘달이 나는 산’이라 불리면서 특별한 경외심의 대상이 되었으며 달과 밀접한 관계가 있었다.

월출산은 달이 뜨는 것을 보러 가야 하는데 요즈음에는 월출산이 일출산이 되어 가고 있다. 서울에서 당일로 월출산을 산행하기에는 아쉬움이 있어 산객 모집에 어려움을 겪는 산악회들이 월출산 일출과 종주로 산객을 모집하고 산을 좋아하는 사람들은 밤늦은 시간에 출발하여 새벽에 오르고 종주 후 저녁을 즐길 수 있는 무박 2일 산행에 호응해서 일주일에 관광버스 서너 대는 서울에서 일출산행을 위하여 영암으로 간다. 나도 이 대열에 부하 뇌동하여 참여를 해본다. 저녁을 먹고 10시가 넘은 시간 집을 나선다. 남들은 이제 잠자리에 들어갈 시간 나는 산을 가기 위하여 집을 나선 것이다. 금년에는 친구가 같이 등산을 못 한다는 아쉬움이 있다. 같이 월출산을 가기로 하였는데 나 혼자만의 산행이 계속되어야 한다.


아침마다 산객들의 파시가 열리는 사당역은 수원 등으로 가는 사람들이 광역버스를 타기 위하여 광역버스 번호표 앞에 길게 줄을 서 있다. 서울에 근무하면서 아니 넓게는 과천 안양에 근무하면서 사당역 근처에서 불금을 즐기다가 이제 집으로 가는 사람들이 11시가 넘어도 줄어들 줄 모른다. 버스는 11시 30분 출발하고 잠을 청한다. 무박 산행을 위하여서는 버스에서 무조건 자야 한다. 내 친구가 야간 산행을 하면서 조용필의 킬리만자로의 표범을 읊조린 것처럼 나도 읊조려 본다.


"먹이를 찾아 산기슭을 어슬렁거리는 하이에나를 본일이 있는가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다니는 산기슭의 하이에나 나는 하이에나가 아니라 표범이고 싶다
산정높이 올라가 굶어서 얼어죽는 눈덮인 킬리만자로의 그 표범이고 싶다

자고나면 위대해지고 자고나면 초라해지는 나는 지금
지구의 어두운 모퉁이에서 잠시 쉬고 있다
야망에 찬 도시의 그 불빛 어디에도 나는 없다
이 큰 도시의 복판에 이렇듯 철저히 혼자 버련진들 무슨 상관이랴"


버스는 양재역으로 가고 있는데 하세월이다. 눈을 감고 잠을 청하는데 10분 이상이 지났는데도 양재역이 아니다. 산악대장이 슬픈 소식을 전한다. 버스가 문제가 발생하여 교체하여야 한다고 양재역에서 모두 내려 새로운 버스가 오기만을 기다린다. 그렇게 불만도 없이 기다린다. 추위도 아랑곳하지 않고 기다린다. 무덤덤하다. 지금 이 시간에 집으로 갈 수도 없고 산행대장이 어떻게 할 수도 없는 것을 반영한 현실이다. 30분 늦게 출발한다. 그래도 우리는 나은 편이다. 죽전이나 신갈에서 탑승하여야 하는 사람들은 그냥 잘못되었다고 알려주고 버스 교체 후 출발이니 더욱 답답할 것이다. 고속도로 정류장에서 차들은 씽씽 지나가고 바람은 불고 차는 언제 올지 모르는 현실이 안타까울 것이다.


버스는 밤을 친구 삼아 달리고 달려 휴게소에 정차한다. 잠을 청하지 못한 사람들이 필요에 의하여 내렸다가 타고 그런데 내기 눈을 뜨고 슬쩍 보니 2/3은 꿈의 세계다. 산행대장이 산행에 대하여 설명을 한다. 비몽사몽으로 듣고 있다. 그래도 산을 올라가서 보니 대부분이 그대로 듣고 있었다.


월출산 산행코스에 대하여 설명한다. 천황봉을 어떻게 오를 것인지 그다음은 어떻게 오늘의 일정이다. 산성대 코스 천황사 코스를 설명한다. 일출이 되기 전 싶게 오르는 코스가 최고인데 아무것도 보이지 않지만 무엇인가 얻어걸리기를 바라는 심정으로 천황사 코스를 대부분 선택한다. 나도 여기에 끼인다. 천황사 코스 중에도 2코스를 설명하면서 구름다리 코스와 폭포 코스가 있는데 폭포 코스가 길이가 100m 짧고 가파르다고 설명한다. 일출시간이 7시 18분이라고 안내한다.


천황봉에서 일출을 보고 도갑사로 가면서 구정봉, 삼층석탑과 마애여래좌상은 갔다가 오는 코스이지만 의미가 있으니 갔다 오라고 안내한다. 해외여행 등을 가보면 한국사람들은 일본인들보다 단체생활과 행동을 자제하면서 자유분방하게 행동을 하면서도 가이드의 말을 잘 듣는다. 산행을 할 때도 산행대장의 말을 잘 듣는다. 오늘도 말 많은 산행대장이지만 말을 잘 듣는다. 산행시간을 너무 많이 주어서 불만이다. 서울에서 30분 이상 지체하였다고 한 시간을 더 준 것이다. 하지만 일출시간은 정해져 있고 빨리 왔다고 해서 천황봉에서 일출시간까지 기다려야 했는데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나는 그저 천황봉 이후 여유를 가지고 산행을 할 뿐이다.


월출산 구정봉은 해발 743m로 봉우리 서북쪽 암벽에 국보 월출산 마애불좌상이 새겨져 있다. 상 높이 8.6m에 달하는 이 거대한 마애여래좌상은 구정봉의 해발 높이까지 더해져 하늘과 가장 가까운 부처님이 되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국보중 해발이 가장 높은 곳에 자리 잡고 있다고 한다. 저 밑에서 올라온다면 힘들겠지만 우리는 천황봉을 올라간 만큼 그렇게 힘들이지 않고 갔다 올 것이다.


버스는 영암에 들어와서 체육공원에 산성대 코스를 가는 산객들을 내려주고 5분 정도 더 움직여 천황사 주차장에 모든 산객들을 하차시킨다. 월출산 위에는 하현달이 빛을 발하고 있다. 대부분 사람들은 달빛을 무시하고 헤드랜턴을 머리에 쓰고 움직이기 시작한다. 나는 랜턴을 배낭에 고정시키고 움직이다. 랜턴에 머리에 있으며 돌아설 수가 없다. 다른 사람들의 시야를 순간적으로 마비시키기 때문이다. 배낭에 고정시키면 그래도 눈높이보다 낮아 자유롭다. 이러한 것으로 판매가 많이 되었으면 한다.


월출산 입구 야영지는 고요하다. 새벽을 깨우는 산객들이 있지만 야영지에서 전날 불금을 만끽한 사람들이 늦은 시간 아니 오늘 새벽에 잠이 들었을 것이다. 등산로 입구가 열리지 않았다. 설악산처럼 문을 잠그는 형태의 등산로 입구가 아니라서 그런지 산객들이 지나간다. 나도 등산로 개방시간 5분을 남겨두고 지나간다. 저만큼 앞서가는 사람이 있지만 7시 18분에 뜨는 일출만 보면 되기에 2시간 이내에 천황봉에 도착할 수 있도록 여유를 가져본다. 하지만,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어둠을 친구 삼아 걷는 길은 그저 빠를 뿐이다. 앞사람, 뒷사람의 산을 오르면서 내뱉는 거친 숨소리와 산을 휘감고 지나가는 바람소리만 새벽을 깨울 뿐이다. 폭포와 구름다리 갈림길에서 폭포로 가는 사람과 구름다리로 가는 사람들이 갈라서니 등산로가 이제는 한산하다. 머리 위에 구름다리가 월출산 위에 뜬 하현 달빛에 모습을 드러내지만 스마트폰 카메라는 이를 완벽하게 담지 못하여 아쉬울 뿐이다.


2시간이 지난 후 산행을 하였으면 하늘을 향해 카메라를 들이 되었을 것인데 한차례 시도해보고 포기하고 눈에만 넣어둔다. 그래도 구름다리에 도착하여 그 모습을 랜턴으로 비추고 이를 담는다. 맞은편 능선의 기암괴석은 달빛을 받아 서서히 보여주지만 이것도 눈에만 담아야 한다.

계단의 연속이다. 철계단 나무데크 사자봉 옆을 지났는데 2시간 후 조망을 상상만 하고 지난다. 뒤에 오는 사람이 "산행을 하는 것이 아니라 계단 오르기를 하러 온 것 같다"한다. 어둠에서 보이지 않고 건물 속에 있는 계단처럼 계속해서 오르는 것이다. 멀리 폭포 쪽으로 오르는 사람들의 불빛이 산을 오르고 있다.


영암의 불빛이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른다. 이제 아침이 되어 가고 있어 너도나도 일어나 새로운 날을 준비하는 것이다. 사자봉 옆을 지나 내려간다. 언제쯤 끝이 날 것인지 궁금해하는데 아내가 같이 산행을 할 때 "또 얼마나 올라가려고 이렇게 내려가는 것이야"하는 목소리가 내 마음속에 들린다. 그만큼 올라온 것이 힘들었다는 것이다. 갑자기 이곳저곳에서 천황봉을 오르는 사람들이 많아진다. 갈림길에서 합쳐진 것이다. 등산로마다 천황봉에서 일출을 보기 위하여 너도나도 참여하였기에 천황봉에 접근하면 할수록 등산객은 늘어만 나는 것이다. 바람소리가 요란하다. 재킷을 여미고 가방 속에서 장갑을 꺼내어 찬바람을 이겨본다. 통천문을 바로 앞에 두고 바람이 불지 않는 곳에 삼삼오오 모여 있다. 일출시간은 아직 한 참이고 사람들은 바람이 불지 않는 쉼터에 서서 담소를 나누고 있다. 멀리 붉은 기운이 보이기 시작한다. 통천문으로 서서히 사람들이 움직인다. 통천문에서 사람들이 사진을 담는다. 주변 경치를 처음 담는 것이다. 어둠을 헤치고 올라와서 주변을 담은 것은 랜턴을 이용하여 구름다리를 담은 것이 유일하였으나 이제부터 주변이 보이기 시작하니 사람들이 통천문에 서서 인증샷을 남긴다.

통천문을 지나 천황봉을 올라간다. 일출이 되기를 기다리면서 아직 다른 사람들이 오지 않은 것에 감사를 하면서 천황봉 정상석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남기고 우리가 갈 방향도 담아보고 우리가 올라온 길도 내려다본다. 구름다리가 아래에 걸쳐 있는 모습이 보인다. 구름다리 주변을 비롯하여 기암괴석이 보인다. 어둠 속에서 지나쳐 온 저 암릉지대가 그저 설악의 용아장성 같고 공룡능선과도 같다.


올라올 때 아무것도 보지 못한 아쉬움을 달랜다. 바람을 피해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통천문 근처에서 주저하고 있으며 몇몇이 정상석과 정상 주변을 전세 내듯이 이곳저곳을 활용하고 있다. 나도 이를 활용한 것이다. 바람이 더 부는 곳에 사전에 자리 잡고 일출이 되기를 기다려 본다. 설악산에서 일출을 볼 때 지리산에서 일출을 볼 때 정동진에서 일출을 볼 때에도 일출이 되기 전 가장 춥다. 움직이지 않고 자리를 잡고 기다리기 때문이다.

일출이다. 천황봉 정상에서 일출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도 한라산이나 지리산이나 설악산이나 마찬가지로 보기 어렵다고 하는데 오늘은 일품이다. 그 일품을 사진에 담는다. 평야와 바다 그리고 월출산 남쪽의 낮은 산들이 어우러져 일출이 멋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동해안의 일출은 바다에서 올라오는 일출이어서 일품, 지리산의 일출은 산과 산 그리고 산봉우리와 태양이 조화를 이루어서 일품인 것과 일맥상통한다.

주변의 에피소드가 발생하였다. 산 위에서 돈거래가 발생하고 있다. 누군가가 일출을 찍기 위하여 둔 카메라 삼각대를 모르고 부수어버렸다. 잘못 발을 놓아서 가만히 있던 삼각대가 그냥 박살이 난 것이다. 서로가 잘못인데 우선은 발을 잘못 디딘 사람이 어느 정도 보상을 한다. 조심조심하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한 것에 책임을 졌다고 본다.


천황봉에서 도갑사로 간다. 도갑산을 가면서 자람재를 지나고 구정봉으로 우선 간다. 재미있는 바위들이 우리들을 기다린다. 구정봉 전체를 바라다볼 수 있는 곳과 천황봉을 바라다볼 수 있는 곳에서 기암괴석을 바라다본다.

천황봉이 태양과 햇빛을 받아서 아름다움을 뽐내고 있고 아침햇살을 받은 구정봉이 붉은빛을 띠우고 있다. 멀리서 온 사람들이 있다. 경상도 북부 지방 사람들이 단체로 왔다. 그분들도 우리들처럼 밤을 친구 삼아 왔다고 한다. 1시까지 도갑사로 간다고 하는데 일행을 삼아도 될 것 같은데 우리처럼 산객을 모집하여 운행하는 산악회가 아니고 동네 산악회라서 그런지 곁을 주지 않는다. 그들끼리 서로 주고니 받으면서 걷고 있다. 그래도 사람들의 기억이 계속된다. 산을 4-5시간 걸으면서 계속 만나고 헤어진다.

길을 가면서 다시 오기 어려운 산 월출산을 여기도 담고 저기도 담는다. 사실 이렇게 담는 사진을 얼마나 다시 볼 것인지는 모르겠다. 나는 이렇게 글을 쓴다고 다시 보고, 1년에 한 번 다시 열어서 이것저것 다시 보면서 산행 달력을 만든다고 보겠지만 그냥 스마트폰의 한자리에 추억으로 남아 있다.


바람재에서 구정봉으로 간다. 구정봉에 가려면 갈림길에서 오른쪽으로 가고 데크를 이용한다.

구정봉을 바라보면 큰 바위 얼굴이 있어 쳐다본다.

중후한 남성의 얼굴이라고 하는데 어디일까 고심을 하기에 어려움이 없도록 안내판이 잘 설치되어 있다. 얼굴이 어느 것이냐 하는 사람들에게 가운데를 보라고 이야기를 한다. 바위 자체가 얼굴이라고 이야기하여야 할 것이다. 얼굴의 크기로 비례하여 사람의 형상으로 비교할 경우 700m가 넘을 것이라고 한다.


베틀굴은 지나 구정봉으로 간다. 베틀굴은 10m 남짓인데 이곳에서 임란 시절 여성들이 베틀을 설치하고 베를 짰다는 전설이 있다고 한다. 베틀굴은 그렇게 깊지도 않다. 사진은 생략한다. 이곳을 지나 구정봉, 마애여래좌상, 도갑사 갈림길을 만난다. 구정봉은 50m, 마애여래좌상과 삼층석탑은 500m를 갔다가 와야 한다. 구정봉을 지나치는 사람들은 없고 마애여래좌상은 내려갔다가 올라와야 하므로 지나치는 사람이 많다. 구정봉은 바위에 구멍이 9개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구정봉을 가는 길에는 한 명만 지나갈 수 있는 구멍이 있다. 속리산의 묘봉 코스에 있는 토끼봉을 올라갈 때보다 편하게 지나갈 수 있다. 토끼봉은 한 사람이 배낭 없이 맨몸의 줄을 잡고 앞으로 갔다가 다시 줄을 잡고 구멍을 빠져나와야 하지만 구정봉은 그냥 배낭을 메고 걸어 지나갈 수 있다.

왼쪽이 토끼굴의 구멍 오른쪽이 구정봉의 구멍이다.

구정봉에서 지금까지 온 천황봉을 바라보고 갈길을 바라다본다. 구정봉 위에 바위 웅덩이가 있고 그 웅덩이에 며칠 전 내린 비로 물이 가득하며 밤을 지새우며 살얼음이 얼어 있다. 구정봉에 무엇이 있는 것이 아니고 단지 시야가 좋아서 올라간다고 하여야 할 것이다.

마애불을 보기 위하여 500m를 내려간다. 해발을 500m 내려간다면 못 가겠지만 거리가 500m이니 간다. 해발이 600m가 넘는 지역을 오르내리면서 해발은 100m 정도 내려가는 길을 마다하지 않는다. 종교를 떠나 우리의 문화재를 보려 간다.

내려가면서 삼층석탑을 미리 본다. 저 바위틈의 공간에 삼층석탑을 설치하고 거기에서 바로 보이는 곳에 마애석불이 있다고 한다. 삼층석탑이 있는 위치로 갔다가 마애석불로 갈 수도 있고 마애여래좌상으로 갔다가 삼층석탑으로 갈 수도 있다. 마애여래좌상과 삼층석탑은 거의 해발이 같아서 사찰이 있을 때는 같은 곳에 있었고 사찰의 스님들이 이곳과 저곳을 같이 관리하였을 것이다. 이곳을 올라온 불교신자들은 삼층석탑을 탑돌이 하면서 마애여래좌상에 참배를 하였을 것이다. 위에서 이곳을 내려오기보다는 아래에서 대부분 올라왔을 것이다. 삼층석탑은 꼭 부도 같다. 부도의 바위 위에 석탑을 조성한 것 같다. 하지만, 자연석이다. 이 또한 보물이라고 한다. 복윈 되었으며 그 기록이 백과사전에 있어 옮겨본다.

"1996년 복원한 높이는 4.7m이다. 석탑의 거대함과 세부적인 양식, 월출산 마애여래좌상(국보 144)과의 연계성을 고려해볼 때 고려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1996년 붕괴된 석탑을 조립하였을 때 하대석 중앙 부분에서 백자 사리호 1점, 금동보살좌상 1점, 청자 대접 1점, 사리 32과, 철편 11점 등이 발견되었다. 지대석은 자연 암반이며 4매의 기단 하대석 둘레에는 ㄱ형과 ㅡ자형 별석 8매로 구성된 탑구(塔區)를 조성하였다. 하대석 쪽으로는 4분원의 몰딩을 각출하여 하대석을 감싸고 있다. 2단 괴임 위에는 8매의 면석을 두었는데 좌우에 양 우주와 중앙에 탱주 1주씩을 조각하였고 넓직한 4매의 갑석에는 부연을 조각하였다. 갑석 상면에는 높직한 괴임 2단을 4매의 별석(別石)으로 조성하였는데 이중 1매가 사라져 1996년 복원공사 때 보충 설치하였다."

마애여래좌상으로 간다. 이곳이 해발이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국보다. 마애여래좌상에 대하여 잘 알지도 못하여 문화재청 등에서 설명한 그 자료를 그대로 옮겨본다.

"전라남도 영암군 월출산 구정봉의 서북쪽 암벽을 깊게 파서 불상이 들어앉을 자리를 만들고, 그 안에 높이 8.6m의 거대한 불상을 만들었다. 불상의 오른쪽 무릎 옆에는 부처님을 향하여 예배하는 모습을 한 높이 86㎝의 동자상을 조각하였다.

머리 위에는 크고 높은 상투 모양의 머리(육계)가 있고, 신체에 비하여 비교적 큰 얼굴은 근엄하고 박력 있는 느낌을 준다. 오른쪽 어깨를 드러내고 있는 옷은 얇게 표현하여 신체의 굴곡을 잘 나타내고 있다. 옷 주름은 가는 선으로 새겼는데 불상이 앉아 있는 대좌(臺座) 아래까지 흘러내리고 있다. 전체적으로 섬세한 옷 주름과 양감 있는 신체의 표현에서 탄력성과 박진감이 잘 나타나고 있다.

당당한 신체에 비하여 팔은 가늘게 표현하고 있으며, 손 모양은 오른손을 무릎 위에 올려 손끝이 아래를 향하게 하고, 왼손은 손바닥을 위로하여 무릎 위에 올린 항마촉지인(降魔觸地印)을 하고 있다. 광배(光背)는 머리광배와 몸광배를 따로 조각하였으며, 그 안에 연꽃무늬와 덩굴무늬를 새겨 넣고 가장자리에는 불꽃무늬를 새기고 있다.

전반적으로 안정감과 장중한 인상을 주며, 섬세하고 정교한 조각기법과 더불어 박진감이 잘 나타나고 있다. 반면 신체에 비하여 비교적 커진 얼굴과 너무 작게 표현된 팔 등에서 불균형한 비례와 경직된 표현이 엿보여 통일신라 후기에서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짐작된다."(출처 : 문화재청)

문화재청의 자료를 참고로 찾아보면 왼쪽 아래에 조그마한 상이 또 있다. 그리고 정교하게 조각되어 있다고 해야 될 것이다. 내가 마애여래좌상은 산을 다니면서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정교한 것은 처음 보았다. 국보의 가치를 그대로 본 것이다. 가사도 흘러내리듯이 조각되어 있다. 1000년의 세월을 풍화를 견디면서 그대로 있다는 것이 신기롭다. 양각과 음각이 조화를 이루어서 그런 것 같다.


마애여래좌상과 삼층석탑을 보고 다시 구정봉을 오른다. 얼마 되지 않은 길을 그냥 지나치는 사람들에게 볼거리가 있다는 것을 알려주어 지나치지 않도록 해야 되겠다. 내려올 때의 궁금증을 해소하고 오르면서 양쪽 능선의 암릉은 다시 한번 돌아본다. 내가 가야 할 길은 그저 아름답고 가보자는 마음이 있고 지금은 그냥 지나쳐야 하는 곳은 미답의 공간으로 남겨둔다.

구정봉을 다시 가고픈 생각이 들어가는데 다시 한번 둘러보고 도갑사로 간다. 도갑사로 가면서 억새밭을 거쳐 내려가면 되어서 그렇게 의미 없을 것 같아서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될까 고민에 싸였다. 걸어가면서 기암괴석을 보고 무엇을 닮았나 찾아보리라 생각을 하니 보인다. 여유를 갖고 걸을 뿐이다. 처음 접한 바위는 보는 모양에 따르다는 느낀다. 나는 하트 바위라고 지나가는데 보니 바위가 2개 있는데 방향에 따라 하트 모양을 이루고 있는 것이었다. 바위는 비와 바람이 조각을 한 것이다. 그리고 나무와 풀들이 옆에서 자라면서 바위가 서 있는 위치도 옮기기도 한다. 세월이 빛은 그 바위를 보는 것이다. 우리 선조들은 저 바위를 보고 무엇이라 했는지 알 수 없다. 다만, 후손들은 산으로 달려가는 선조들이 적어 놓은 기록을 보고 저것을 저렇게 불렀다고 알 것이다.

바위가 있다 능선을 지나 도갑사로 간다. 멀리 있는 능선 위의 바위를 보니 발가락 같기도 하고 왕관의 장식품 같기도 하다.

바위가 능선의 중간중간에 뚝 튀어나와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겨울이라 나무들이 낙엽을 만들고 떨구어 이제 새로운 풍경을 만들어 낸다. 그 풍경을 보면서 걷는다. 녹색의 향연이 있을 때에는 하얀 바위가 그 모습이 더 이채로울 수 있으나 이제는 하얀 나뭇가지 사이에 하얀 바위는 그렇게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다. 다만, 그 모양을 더 확실하게 볼 수 있다는 것에 감사를 할 뿐이다.

도갑사로 내려가면서 억새밭을 가기 전 계곡을 가로질러가면서 손을 펼친 바위도 능선 위에 있는 모습도 보고 바위가 성을 이루고 있는데 그 중간에 수문장을 하는 바위도 본다. 저 수문장 바위는 서울의 경희궁 앞에 있는 빌딩의 일하는 사람의 모습과 너무 흡사하다. 이것을 이용하여 스토리텔링을 만들어도 될 것 같다. 상상의 나래를 펼쳐보기도 한다. 성을 이룬 거인들이 손을 들어 이제는 안전하다고 손짓을 한다. 그 안전지대를 우리는 지난다. 계곡을 지나고 뒷산을 보는데 내가 본모습 그대로 나타나지 않아 아쉬울 뿐이다.

한 무리의 젊은 친구들이 지나간다. 젊음이 좋다. 산을 좋아하는 친구들과 함께 지나간다.


억새밭에 도착하여 에게해 본다. 얼마 되지 않은 공간에 억새가 군집을 이루고 있다. 억새밭을 이룬 배경을 설명한 안내판을 보니 이곳에 어느 해인가 산불이 났었는데 그 이후 나무들이 자라지 않고 억새만 자라 억새밭이 되었으며 이제는 유명세를 탄다고 한다. 아이러니하다. 미왕재라는 재 이름은 사라지고 이제는 억새밭으로 명성을 자리 잡고 미왕재는 이제는 어디에도 찾아볼 수 없다.


도갑사로 가는 길은 이제 500m 정도를 가파르게 내려가면 된다. 500m를 올라오는 사람들이 땀이 흥건하다. "힘드시지요" 하니, "힘든 것도 내가 알면서 자처한 것인데요" 하면서 지나간다. 동백이 지천을 이루고 있다.


동백숲을 지나 도갑사 습지구역이라는 곳을 지나야 하는데 공사구간이다. 우회를 하라고 표시가 되어 있다. 자연관찰로 이다. 우회를 하라고 안내되어 있지 않아도 가보아야 하는 자연관찰로 이다. 나는 태어나서 아직 대나무 숲을 본 기억이 없다. 산을 다니면서도 산에 있는 조릿대만 보았지 큰 대나무들이 이렇게 자라서 숲을 이루고 있는 모습을 본 기억이 없다. 내가 태어난 곳은 추운 곳이고 그런 곳은 조릿대만 자라서 그런 것이다. 자연관찰로를 따라 올라가면 이렇게 대나무 숲에 오솔길을 만들어서 관찰하게 만들어 놓았다. 봄이면 죽순이 올라오겠지만, 지금은 초겨울이다. 대나무 밭에서 불어오는 소리에 의하여 음악이 울려야 하나 사람 소리만 요란하다. 나는 하산을 하지만 그들은 등산을 시작한다. 도갑사를 1km도 남겨두지 않아서 11시가 조금 넘은 시간에 이제 그들은 도착하여 산행을 시작하는 것이다. 원기 왕성하게 오르면서 떠들썩하게 지나간다.

내가 서울에서 아침에 출발했으면 이쯤에 등산을 시작하였을 것이다. 그들도 멀리에서 왔을 것이다. 오늘 중 산행을 마무리 잘하기를 인사한다.

도갑사를 들어가기 전 개울에서 그래도 세수하고 머리를 감는다. 월출산을 거닐면서 흘린 땀을 씻어내고 사찰에 들어간다. 지난주까지는 발을 담그고 개울에서 놀았는데 이제는 세수하고 머리를 감는데 너무 차다. 도갑사와 관계되는 도선국사와 수미선사비 (靈巖 道岬寺 道詵國師·守眉禪師碑)가 먼저 나를 찾는다.

도갑사 도선·수미비는 귀부(龜趺), 비신(碑身), 이수(이首)를 구비한 석비로 도갑사의 부도전(浮屠田) 부근에 건립된 보호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승려인 도선국사와 조선시대 수미왕사의 행적을 기록한 높이 517㎝ 규모의 석비라고 안내되어 있으며

1653년(조선 효종 4)에 건립된 것으로 우선 규모 면에서 다른 비석과 차별성을 지니고 있다. 아울러 각부의 양식에서 귀부는 다른 예와는 달리 귀갑문 대신 평행 사선문으로 이를 표현하고 있고, 비신 역시 조성 재료가 대리석이라는 점 외에도 양 측면에 조각된 운룡문은 매우 힘찬 기상과 율동감을 지니고 있어 당대 최고 수준의 작풍을 보이고 있다 설명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석비의 건립기간이 18년임을 알려주고 있어 이 방면 기술사 연구에 좋은 자료를 제공해 주고 있다고 안내되어 있다. 나아가 대부분의 석비가 1명을 대상으로 하고 있음에 비해 도선과 수미선사를 표방하고 있어 이 역시 독특한 예라 생각된다.

폭포가 있다. 폭포는 지금은 갈수기라 그렇게 물이 많지 않아 물줄기가 가늘다. 용수폭포라고 명명되어 있으며, 이웃한 정자에 코로나로 사람이 찾지 않아서 그런지 먼지만 가득하다. 도갑사는 오래된 고찰이지만 이웃한 도시가 그렇게 크지 않아서 그런지 신도들의 왕래가 거의 없다. 다만, 너른 절 마당에 국화가 시들지 않고 그 자체를 뽐내고 있다. 남쪽이란 것을 실감하게 아직도 단풍나무에 단풍이 물들어 있다는 것이다.


도갑사는 신라 말 국사 도선(道詵)이 창건하였다고 한다. 원래 이곳에는 문수사(文殊寺)라는 절이 있었으며 도선이 어린 시절을 보냈던 곳인데, 도선의 어머니 최씨(崔氏)가 빨래를 하다가 물 위에 떠내려 오는 참외를 먹고 도선을 잉태하여 낳았으나 숲 속에 버렸는데, 비둘기들이 날아들어 그를 날개로 감싸고 먹이를 물어다 먹여 길렀으므로 최 씨가 문수사 주지에게 맡겨 기르도록 하였으며, 장성한 그가 중국을 다녀와서 문수사 터에 이 절을 창건하였다고 한다. 1970년 화재로 해탈문과 명부전을 제외하고 소실되었다가 최근에 복원되었다고 한다. 모습이 해탈문을 제외하고는 최근에 건축한 모습이 그대로 보여준다. 어느 분의 삼우제를 지내는지 조용한 절에 갑자기 독경소리와 함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스님의 뒤를 쫓고 있다.


이제 해탈문이다. 해탈문을 들어가면서 속세의 고뇌를 벗어버린다고 하였다. 이곳의 해탈문은 그저 소박하다. 다른 곳의 해탈문과 차이가 있다. 이것도 국보다. 국보라면 무엇인가 특색이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저 소박한 건축물에 불과하다. 다른 곳에서는 이 정도 유물이 있으면 문화재 관람료를 받는데 이곳은 없다. 문화재 관람이 필요한 곳이기도 하다.

법보신문에 실린 해탈문에 대한 기사를 보면 "도갑사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문화재가 해탈문(解脫門)으로, 1962년 국보 50호로 지정된 것만 봐도 그 건축적 가치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1960년 해체 복원할 때 나온 상량문에 1473년에 건립된 것으로 나와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산문(山門)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보다 100년쯤 지나 16세기에 지은 춘천 청평사 회전문(보물 164호)이 그 뒤를 잇는다. 사찰의 문 중에 중요한 작품이 여럿 있지만, 도갑사 해탈문처럼 연대가 확실한 조선시대 중기 산문은 유일하기에 우리 건축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작품으로 여겨진다."(출처 : 법보신문)

도갑사 해탈문을 더욱 특이한 것은 뒤쪽 좌우 칸에 사자와 코끼리를 타고 있는 두 목조 동자상(童子像)이 있다는 것이다. 곧 문수동자와 보현동자 조각상이다. 보물로 지정되어 있는 목조 동자상은 성보박물관에 있고 모형이 있지만 특이하였다.


버스를 기다리면서 월출산을 지나면서 본 다양한 바위들과 추억을 다시 정리해본다.

구정봉의 지나갈 수 있는 구멍, 하늘을 향해 모이를 먹으려고 하는 새 모양 바위, 돼지머리 바위와 남근석, 베틀굴 그리고 일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