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야산은 30년 전에 가본 기억이 있다. 11월 가을철 산불조심기간이 되면 국립공원을 주로 찾는다. 산불방지를 위하여 대부분의 등산로가 통제되기 때문에 이제는 등산로는 국립공원의 주 등산로만 찾게 된다. 가야산은 산보다 사찰이 유명하다. 해인사 팔만대장경이 있는 사찰이다. 고려시대 강화에서 대장경을 제작하여 강화도 선원사에서 보관하다 조선 태조 때 이곳까지 운송한 것이 경이롭다.
예전에는 해인사 인근에서 시작하여 가야산 정상을 올랐다가 다시 해인사로 온 기억이 있다. 다른 기억은 없다. 30년 전의 일을 어떻게 기억할 수 있겠나 그것은 기적에 가깝다. 오른 기억만 있을 뿐이다. 오늘은 합천이 아닌 경북 성주의 백운동에서 출발하여 만불상 능선 서성재 칠불봉 상왕봉을 오른 후 해인사로 하산하는 코스를 선택하고 그렇게 가기로 하였다.
서울에서 버스는 고속도로를 열심히 달리고 산행 가이드도 그렇게 안내를 했다. 버스는 4시간을 달려서 백운동 가야산 백운동 탐방지원센터 인근인 가야산 역사관 주차장에 우리를 내려주었다. 버스를 타고 오지 않는 사람 대부분이 이곳에 주차를 시키고 산으로 가는 것 같다. 이웃한 가야 호텔도 있다. 이곳은 가야로 먹고살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사실 성주 하면 참외로 더 유명하다.
산으로 방향을 잡고 탐방지원센터를 지나면서 아무 일 없는 듯이 걸어가고 있는데 갈림길이다. 만물상 능선과 용기골을 선택하라고 한다. 만물산 능선은 매우 어렵고 용기골길은 보통이라고 한다.
그래도 서울에서 왔는데 만물상이 있는 길로 가야지 하고 들어서려는데 공단 직원들이 "예약하셨어요"
"안내 산악회 이름을 이야기한다"
"그 팀은 예약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나 다른 산악회의 등산객들은 만물상 능선으로 가는데 우리들은 산악대장에게 전화하니 현지 예약하려고 그냥 왔다고 한다. 이런 곡할 일이 현지 예약도 2시간 전에 마감되었다고 한다. 분통을 터틀릴일이지만 어쩌란 말인가
공단 직원들이 "용기골로 올라가서 이리로 내려오시면 됩니다. 내려오는 것은 예약 안 하셔도 됩니다"하니 우리 일행들은 "우리는 해인사로 갈 것인데 이리로 내려오란 말이냐" 하면서 용기골로 방향을 잡는다.
세상일이란 사전에 많이 확인하고 절차를 제대로 숙지하어야 하는데 나는 산악회를 믿고 확인하지 못하였으며 산악회도 준비를 소홀히 한 것이다. 사실 내 변명은 어제 늦은 시간에 예약을 하였고 그 시간에 공단 홈페이지에 들어가도 예약은 불가능하였다는 것이다. 늦은 시간에 홈페이지에 들어가면 마감되고 현지 예약밖에 할 수 없다.
혹, 가야산 만물상 능선을 오르고 싶으면 사전에 국립공원 홈페이지에 사전 예약하여야 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하루에 예약 가능한 인원이 140명에 불과하여 조기에 종료될 가능성이 높다.
나는 용기골로 올라가서 서성재에서 30분 정도 만물상 능선을 타고 갔다가 다시 올라오리라는 생각을 갖고 서성재까지 쉬지도 않고 오른다. 주변에 단풍은 없고 계곡에 물도 그렇게 많지 않아 감흥이 없어 그냥 걸을 뿐이다. 계곡을 거슬러 올라가는 만큼 왼쪽의 만물상 능선이 아른거린다. 하지만, 보이는 것은 있데 나뭇가지 사이로 잠깐 보여줄 뿐이다. 아쉬움이란 어쩔 수 없다.
서성재를 오르다가 보는 약간의 이벤트도 뒤로하고 서성재에 1시간 만에 올라왔다. 오른쪽으로 정상을 향해 가야 하지만 왼쪽 만물상 능선으로 발길을 돌린다. 만물상 능선을 마지막 봉우리를 오르고 내려다본 경치는 일품이다. 그리고 올라야 정상도 일품이다. 이런 곳을 두고 그냥 간다는 것은 나도 용납하지 못하지만 친구가 같이하였으면 더하였을 것이다. 시간이 충분하지 않지만 뒤로 돌아갔다가 돌아오리다.
상아덤을 보면서 아래를 내려다보고 있는데 나보다 먼저 온 사람이 있다. 이분도 아쉬움이 있는 것 같은데 주저하고 있다. 내가 30분 내려갔다가 온다고 하니 같이 가자고 한다. 또 다른 일행이 온다. 우리가 간다고 하니 이분들도 우리와 일행이 된다. 이렇게 4명이 일행이 되어 하루 종일 같이 산행을 한다. 무슨일을 할 때 용기가 없을 때 다른사람이 하는 것을 보고 용기를 내는 것과 같은 이치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렇게 좋은 구간을 예약을 하지 못하고 왔다는 것에 아쉬움을 30분을 갔다가 돌아오는 것으로 달래보려고 한다.
상아덤은 달에 사는 미인 상아 바위를 지칭하는 덤이 합쳐진 단어로 가야산 여신 정견모주와 하늘의 신 이비가재가 같이 거닐었다는 전설이 있다. 그 전설은 다음과 같다.
"가야산의 여신 정견모주는 하늘의 신 이비기지와 이곳 상아덤에서 부부의 인연을 맺었다. 이후 어여뿐 옥동자를 낳게 되는데, 첫째는 아버지를 닮아 얼굴이 해와 같이 둥글고 불어 뇌질주일이라 이름하였다. 둘째는 정견모주를 닮아 얼굴이 달과 같이 가름하고 흰편으로 뇌질청예라 이름하였다. 이 두 형제는 자라서 형 뇌질주일을 대가야(현재 고령)의 첫임금인 이진아사왕이 되고, 동생 뇌질청예는 금관가야(현재 김해)의 수로왕이 되었다"
상아덤은 괴암 괴석의 봉우리로 가야산에서 가장 아름다운 만물상 능선과 이어져 최고의 전망을 감상할 수 있다.
만물상을 내려가다가 30분 정도 가면 만물상 능선을 올라오면서 가장 힘든 능선을 벗어나는 지점까지 갈 수 있다, 이곳에서 바라볼 수 있는 경치는 다양하다, 만물상 능선을 그낭 즐기면서 다시 서성재로 돌아올 뿐이다.
다양한 모양의 바위가 나 보라고 전람회를 열고 있다. 올라오면서 왜 내려갔을까 하는 후회를 하기도 하는데 아니다 이곳은 한번 볼 가치가 있다. 올라오는 사람들이 힘들게 올라오면서 우리가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것을 보고 혀를 끌끌 차도 우리는 그저 즐거울 뿐이다. 다시 상아덤을 지나고 서성재로 간다.
서성재에서 망설이는 사람들에게 볼 가치가 있다고 전하고 이제 정상으로 발길을 돌린다.
서성재는 성주와 합천을 이어주는 고갯길로 과거 가야산성의 서문이 위치해 있었던 곳에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가야산성은 용기골 계곡을 중심으로 상아덤 동성봉 능성을 이용하여 축조된 포곡식 산성으로 산성으로 대가야의 수도인 고령과 불과 14km 거리로 전쟁 시 수도 방어의 요충지였다고 한다. 성안에 물이 풍부하고 외부에 노출이 되지 않아 천연의 요새였다고 본다.
정상까지는 1.4km에 불과하지만 1시간을 생각하고 오른다. 유유자적하면서 조금 전까지의 감흥을 그대로 간직하면서 칠불봉을 오른다. 가파른 바위길이 앞을 막고 올라온 길을 내려다보니 감흥이 새롭다. 역광으로 사진은 그렇다. 과학기술이 일반인이 사용하는 카메라의 렌즈가 사람의 눈처럼 작동하기를 바라는 것은 아직이다. 오늘은 날씨가 그렇게 안 좋은가 보다. 시계가 그렇게 안 좋은 것도 멀리 볼 수 없다는 아쉬움이 있다.
칠불봉을 오르는 계단이 험악하여도 그렇게 힘들지 않다. 우선, 만물상을 보았다는 즐거움이 있고 또 앞에 있는 칠불봉이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가야산 정상은 칠불봉인가 상왕봉(우두봉) 인가 지도에 물어보면 칠불봉을 가리키고 있는데 일반인들은 상왕봉을 정상으로 인식하고 있다. 이는 해인사 쪽에서 올라오는 사람들이 많아서 그럴 수도 있다고 한다. 칠불봉은 1432m, 상왕봉은 1430m다. 칠불봉은 성주 쪽에 자리 잡고 있고 상왕봉(우두봉)은 합천 쪽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합천 해인사 그리고 가야산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것이 인식의 차이라고 본다. 예전에 GPS가 없을 때에는 상왕봉(우두봉)이 정상이었으나 GPS 등을 이용하여 측량하니 칠불봉이 더 높게 나와 이제는 정상 자리를 칠불봉이 차지하고 있다. 내가 30년 전에 왔을 때는 상왕봉(우두봉)이 정상인 것은 맞다.
칠불봉에서 상왕봉(우두봉)까지는 얼마 되지 않은데 그것이 그것이라고 보아야 할 것인데 그렇지 않다.
칠불봉이나 상왕봉(우두봉)이나 불교와 관련된 봉 이름이고 상왕봉에서 바라본 칠불봉쪽 경치가 더 멋있다. 우뚝 솟은 봉인 것 매 한 가지다. 가야산의 최고봉 칠불봉은 정견모주의 손자들과 얽힌 전설이 전해오고 있다. 정견모주의 둘째 아들인 금관가야 시조 김수로왕은 인도 아유타국 공주 허왕옥과 혼인해 왕자 열 명을 뒀다. 큰아들 거등은 왕위를 계승하고 둘째와 셋째는 어머니 성을 따라 허씨의 시조가 됐다. 나머지 일곱 명의 왕자는 외삼촌 장유화상을 따라 칠불봉에서 3년간 도를 닦아 생불이 됐다고 하며 그 밑에 그들이 수도한 칠불암터가 있다는 전설이 있다.
일곱 왕자를 그리워하던 허황후는 가야산을 찾았으나 칠불봉까지 올라갈 수 없어 아들들의 그림자라도 볼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그 정성이 부처님 마음을 움직여 해인사 일주문 옆 연못에 정진 중인 왕자들의 모습이 비쳤는데 그 연못을 영지라고 했다. 그것이 상왕봉 즉 우두봉의 우비정이라고 한다.
불교에서 상왕은 부처를 가장 큰 코끼리에 비유하는 말이다. 그 봉이란 뜻이다.
이제 하산할 것이다. 해인사를 둘러볼 것이다. 내려가는 길은 어렵지 않다. 다만, 거리가 4km 정도 된다.
내려가는 길에서 올라오면서 쉬지 않고 올라왔기에 우선 휴식을 취하고 내려 갈길을 쳐다보면서 끼니를 해결한다. 산객들이 갖고 온 음식을 나누면서 정을 나누고 바위를 뒷배경으로 앉아서 휴식을 취할 뿐이다. 여기서 백운동 탐방지원센터로 가는 것이나 해인사 탐방지원센터로 거리는 비슷하다. 우리는 해인사를 거쳐야 하기에 또 우리가 1시간 정도를 뒤로 갔다 왔기에 서두른다.
내려가면서 뒤를 돌아보니 경치가 멋있다. 바로 아래의 데크도 바위와 조화를 잘 이루고 있다.
데크 끝의 바위들이 모습이 사람의 형상을 하고 있다. 이제는 돌 위에 있는 낙엽을 조심하면서 해인사로 간다. 우리가 제일 후미였으나 이제 한 그룹을 따라잡고 해인사로 간다. 시간적인 여유도 있고 해인사 경내를 이곳저곳 둘러볼 수 있을 것 같다.
해인사에 도착했다. 그래도 세수는 하고 갈 수 있도록 화장실이 있고 바로 옆으로 해인사를 들어갈 수 있는 샛길이 있다. 샛길이라고 하면 그렇고 정문까지 내려갔다가 올라오는 것이 아닌 중간으로 들어갈 수 있는 길이다. 해인사 경내는 인파로 붐비고 있다. 주말이고 일상으로 복귀 첫 주말이기 때문이다. 해인사는 함께 한국의 3보 사찰로 꼽힌다. 3보란 불교에서 불(佛), 법(法), 승(僧)을 뜻하는데, 해인사는 법보(팔만대장경), 통도사는 불보(진신사리), 송광사는 승보(수계사찰) 사찰이기 때문이다. 해인사는 신라 때 창건되었으니 1000년 이상 된 사찰이다.
해인사는 매표소가 멀다고 한다. 그리고 산행을 시작하기 전 일인당 3000원을 거두어서 버스기사에게 주었고 버스기사가 주차비와 같이 처리하는 것 같다.
절마당에 해인도를 설명하고 있고 국화를 해인도에 맞게 정렬하고 있어서 몇몇이 돌고 있다. 불교신자면 나도 해보겠지만 그냥 보고 갈 뿐이다. 이를 지나 대웅전이 있고 그다음이 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장경판전이다.
대웅전 왼쪽으로 난 길을 이용하여 우리의 역사이고 문화재가 보관되어 있는 장경판전으로 간다. 다른 사찰 건물에 비하여 떨어져 있어서 그런지 해인사가 몇 차례 소실되었으나 대장경이 보관되어 있는 장경판전은 그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한다. 고려시대 강화도에서 제작되어 조선 태조 때 이곳으로 옮겨졌으니 저 건물들은 5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지고 있고 대장경은 10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지고 있다고 할 수 있다.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인류가 간직하여야 하는 유산이다. 대장경은 고려시대는 그렇다고 해도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 그대로 보전된 것이 우리의 의병 때문이라고 전해지고 있다. 7년 전쟁 와중에도 그리고 경상도 남쪽은 일본군이 장악하고 있었음에도 보전된 것은 우리의 의병들이 굳건하게 지킨 결과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50년 한국전쟁 당시에도 빨치산이 잠시 머무르며 싸울 거처로 삼는다는 이유로 폭격 대상으로 지정되었으나, 김영환 장군(1921-1954)을 비롯한 파일럿들이 명령을 거부하고 상부를 설득하여 가까스로 폭격을 피했다고 한다. 그들의 노력이 없었다면 해인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질 뻔했다. 따라서 2002년 이후로 해인사에서는 김영환 장군을 기리는 추모제를 매년 연다고 한다.
예전에 장경판전이 개방되었으나 이제는 영상으로만 개방되고 장경판전은 창살 사이로만 대장경을 볼 수 있도록 만들어 놓았다. 해인사를 오는 사람 절반 이상은 대장경 때문일 것이다.
장경판전을 나와서 해인사를 나오는데 일주문이 자리 잡고 있으며 오늘 산행 중 낙엽만 보았는데 단풍이 최고다. 단풍을 보려 오는 것인지 해인사를 보러 오는 것인지 인파들이 단풍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기 바쁘다. 우리도 여기에 동참할 뿐이다. 아름다운 단풍을 배경으로 본인의 모습을 한자리 차지할 뿐이다.
해인사 입구까지 단풍터널이다. 단풍터널을 가기 전에 부도가 몰려있다. 해인사가 오래된 사찰이라는 증거가 그대로 보여준다. 성철스님의 사리탑도 있다. 사리가 오래된 스님들의 몸에서만 나온다고 한다. 단풍이 이렇게 이곳에 자리를 잡으면서 사람들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일 것이다. 4주 전쯤 갑자기 몰려온 한파에 의하여 서리가 내렸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은가 보다. 서리에 의하여 단풍나무는 순식간에 낙엽으로 바뀌었는데 햇빛이 있는 이곳은 그래도 피해를 보지 않아서 사람들 마음을 사로잡고 있다.
해인사를 나와서 이제 버스를 타러 가야 하는데 주차장이 오른쪽인데 모르고 왼쪽으로 가니 주유소도 있다. 이곳은 매표소를 지난 곳인데 많은 사람들이 오고 가서 그런지 주유소가 영업 중이다. 우리가 잘못 길을 들었다는 것은 소리길이라는 것이 나타나서 알았다. 잘못 왔다. 그래도 시간적 여유가 너무 많으니 돌아서 위로 올라간다. 우리가 유혹되기 쉬운 길이 어느 곳에서 우리가 내려가야 한다는 생각이 있으면 무조건 내려간다. 하지만, 그 길이 다시 올라가는 길이 될 수 있고 올라가는 길이라고 생각했는데 그곳이 우회하는 길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삶을 살면서 어려움이 있다고 그것을 회피하면 그 어려움이 나에게 보탬이 되고 새로운 길로 갈 수 있지만 순탄한 길로 가면 순탄하던 길이 갑자기 어려움이 오면 피폐해지는 것이 당연지사다.
우리는 다시 올라간다. 그런데, 갑자기 이정표가 우리를 혼란하게 만든다. 주차장 가는 길과 남산제일봉 가는 길이 잘못되어 있는 것이다. 주차장 가는 길이 산으로 가고 남산제일봉 가는 길이 주차장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 아무 생각 없이 다리를 건넜는데 산으로 가고 있어 다시 돌아와서 이정표가 잘못되었다고 투덜거린다. 산을 돌아가니 상가도 나오고 주차장도 나온다.
시간도 남았고 어떻게 시간을 보내나 하고 있는데 버스기사 아저씨도 무료하게 시간을 보내고 있다. 우리가 시간적인 여유가 있다고 하니 이분이 말하기를 그렇게 생각을 하지만 시간을 꼭 어기는 사람 한두 명이 있을 수밖에 없고 버스전용차로 시간이 끝나기 전에 서울로 들어가는 것이 최대한 목표라고 한다. 소박한 소망이다. 산객들을 싣고 이동하는 버스들도 애환이 있기는 마찬가지인 것 같다. 아침에 출발하는 장소에서 다른 사람들에게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한다. 사당역에서 몇 번 출구를 사용할 것인지도 중요하다고 한다. 참 다양한 곳에서 다양하게 의견이 개진된다.
서울로 가는 버스가 5분 늦게 출발한다. 늦은 사람이 나타났다. 해인사에서 내려가는데 지그재그로 한참을 내려간다. 버스에 탄 모든 사람들이 산행의 피로를 풀려고 잠을 청하고 있다. 버스기사 아저씨는 조용하게 버스를 몰뿐이다. 약간 늦게 출발하였지만 산객들이 어려움이 없도록 지원을 하는 것이다. 버스가 주차한 곳에서 너무 시끄럽게 호객행위를 하는 것도 지양했으면 한다. 버스에서 쉬고 있는 사람도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