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연산 그리고 겸재도 반한 환상의 계곡

by 김기만

오늘도 사당역 화장실은 새벽부터 줄이 길다. 새벽에 열리는 산객 시장에 사람들이 인산인해다. 이때다 싶어 김밥장사도 있고 어묵을 파는 아저씨도 노점상을 잠시 차린다.


이번에도 멀리 간다. 미세먼지가 기승을 부리는 시기다. 중국이 싫다. 서풍만 불면 우리는 중국이 난방을 시작하는 시기가 되고 우리는 미세먼지를 경험하지 않을 수 없다. 이 시기만 되면 서쪽에 있는 산은 미세먼지가 있어서 멀리 동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이 시기에 산악회 버스는 국립공원으로 그리고 도립공원으로 군립공원으로 지정된 곳으로 간다. 산불조심기간에는 다른 산은 입산통제다. 그래도 이러한 산이 그래도 우리에게 좋은 경치를 보여준다.


멀리 포항의 내연산을 간다. 몇 번이나 가려고 하였는데 그것이 안되었는데 이번에는 산행 버스가 여유롭게 일정을 잡고 산행을 할 수 있도록 움직인다. 만석에서 4석이 남아 있다. 서둘러서 예약을 한다. 산행 버스가 취소될 가능성도 없다. 예약하고 버스를 타기만 하면 된다. 사당역 1번 출구에 도착하니 버스가 마지막 차로를 1km 정도 줄지어 서 있다. 내가 가야 할 버스를 버스 앞에 붙어 있는 노선과 운영하는 산악회를 확인하면서 찾을 뿐이다. 운이 좋을 때는 출구 근처에 있는데 오늘은 500m를 걸어도 없다. 거의 10분을 걸어서 찾았다. 새벽에 서둘러와서 그렇게 여유가 있었다. 그래도 출발지에서 10분의 여유를 더 갖는다.


이번 버스는 양재역과 죽전 버스정류장만 경유지다. 죽전 버스정류에서 절반이 탄다. 백대 명산 트레킹을 오늘 완료하시는 분이 있다고 산행대장이 이벤트를 한다. 나는 산 이러한 이벤트보다는 조용한데 골프를 하시는 분들이 홀인원을 한 것처럼 자축을 한다. 기념사진도 같이 찍기로 하였다. 오늘의 산행안내를 한다. 처음 문수암으로 방향을 틀고 문수암을 거쳐서 문수봉을 오르면 오늘의 산행은 어려움이 없다고 한다. 삼지봉을 갔다가 다시 삼거리로 돌아와야만 하고 은폭포에서부터 계곡을 내려오면서 절경을 감상하면 된다고 한다. 거리는 15km 정도이지만 6시간이면 넉넉하다고 설명을 한다. 산행대장은 책임성이 있다. 오늘 새벽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한 상태에서 휴식이 필요하였으나 산행 버스에서 이벤트도 하기로 약속을 하였기에 탑승을 한 것이다. 백대 명산을 오늘 완등 하시는 분이 완등을 자축하면서 떡을 돌리신다. 휴식을 위하여 휴게소에서 이른 새벽에 출발하면서 부족한 영양분을 떡으로 보충한다. 산행을 시작하는 시간도 11시가 넘을 것인데 아점 대용도 된다.


버스는 당진 영덕 고속도로 끝 지점을 지난 7번 국도를 이용하여 영덕 강구를 지난다. 영덕 강구의 간판은 대게 그림이 대세를 이루고 있어 이곳이 대게가 이곳에서 팔리고 있으며 명물이라는 것을 그대로 보여준다. 산행을 하면서 동해를 보고 산행을 하게 되는 색다른 체험을 하게 된 것이다. 오늘의 미세먼지가 이곳에도 영향을 주고 있다. 미세먼지가 무서워 동쪽으로 왔는데 헛수고다. 그래도 산이 잘 보여 주기를 기도하면서 바다를 바라본다.

이제 내연산이 바로 앞이다.

내연산은 높이는 711.3 m이다. 원래 종남산(終南山)이라 불리다가, 신라 진성여왕(眞聖女王)이 이 산에서 견훤(甄萱)의 난을 피한 뒤에 내연산이라 개칭하였다고 설명되어 있다.

이곳에는 고찰로 보경사가 있고 아쉽게도 내연산은 군립공원이다. 포항시가 관리를 하고 있지만 자연관광지인데 좀 더 체계적이었으면 한다. 사찰에서 입장료로 3500원을 받는다. 다른 곳으로 들어갈 수 있을 것 같은데 오늘은 그냥 들어간다.

1983년 10월 1일 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보경사는 신라의 수도였던 경주 인근이라 빠른 시기에 창건된 사찰이다. 602년 진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신라 지명법사가 진평왕에게 '동해안 명산에서 명당을 찾아 자신이 진나라의 도인에게 받은 팔명보경을 묻고 그 위에 불당을 세우면 왜구의 침입을 막고, 이웃 나라의 침입도 받지 않으며 삼국을 통일할 것'이라고 하였으며, 진평왕이 지명법사와 함께 내연산 아래에 있는 큰 못에 팔면보경을 묻고 못을 메워 금당을 건립하고 보경사라고 했다고 한다.


내연사는 큰 못을 메워 사찰을 지어서 그런지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사찰이 계단식으로 가람이 배치되는 것에 비하여 이곳은 넓은 평지에 가람이 배치되어 있다.


내연사로 들어가는 도로에 들어서는데 이곳은 아직 초겨울이 아닌 늦가을이다. 낙엽이 다 떨어진 나무가 아닌 단풍이 남아있는 나무다. 산은 아직 울긋불긋 하다. 이곳은 계절이 아직은 늦게 가는 것 같다. 동해안이고 남쪽이라서 그런 것 같다.

보경사 부근 일대는 경북 3경(慶北三景)의 하나로 꼽히는 경승지를 이루어 좋은 관광지가 되고 있는데, 그 주된 경관은 내연산 남록을 동해로 흐르는 갑천 계곡에 집중되어 있다. 갑천 계곡에는 상생폭(相生瀑)·관음폭(觀音瀑)·연산폭(燕山瀑) 등 높이 7∼30m의 12개의 폭포, 선일대 등 높이 50에서 100m의 암벽 등이 있어 등산객보다 관광객이 많다. 11시 넘어 등산을 시작해서 경치를 구경하고 내려오는 사람들이 가족단위다. 문수봉을 가는 갈림길까지는 그렇게 볼거리도 없다. 다만 이웃한 계곡의 바위들을 볼뿐이다.


문수봉을 올라가는 갈림길에서 경승지는 직진 문수봉은 오른쪽이다. 이곳을 놓치면 안 된다. 그냥 경승지를 보고 삼지봉을 갔다가 하산을 문수봉 쪽으로 해야 한다. 문수봉을 오르면서 지금까지 편안한 길이 그리울 정도로 가파르게 오른다. 한차례 숨을 고를 수 있도록 계곡 주변에 멋진 풍광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산을 무작정 오르면 힘들다는 것은 모두가 안다. 그런데 그냥 쉬기는 그렇고 할 때에는 야생화가 있으면 좋고 멋진 풍광이 있으면 더욱 좋다. 이런 곳에서 휴식을 한다고 남들에게 저질 체력이라고 이야기를 듣지 않아도 좋고 몸에 휴식을 취할 수도 있어서 좋다. 히말라야나 에베레스트를 등반하는 등반가들은 이렇게 즐기면서 산행을 하지 않고 오로지 오르는 것에 목적이 있기에 체력이 더욱 중요하다고 본다. 사실, 우리가 지리산을 종주하거나 설악산 공룡능선을 종주할 때에도 즐기면서 등산을 하여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누군가가 나를 뒤 따라와서 잡기라도 할까 봐 냅다 걷는다. 산세도 보고 주변 경치도 보면서 걸을 수 있으면 좋겠다. 산악회 번스를 타면 여유가 없어서 그럴 수도 있겠다. 시간적 여유를 갖고 산행을 하면 주면을 볼 수 있다. 요즈음은 코로나 19로 국립공원의 모든 대피소가 문을 2년 가까이 닫고 있어서 여유 있는 산행이 안된다. 대피소에 머무르면서 밤의 별빛도 감상하면서 여유를 찾고 싶다.

오늘은 그래도 여유가 있는 산행이라고 생각한다. 15km이지만 산세가 높지 않고 문수봉만 오르면 평탄 한길이다. 문수봉을 오르면서 고즈넉한 모습을 볼 수는 없고 지그재그로 산길을 오를 뿐이다. 문수암이 자립 잡고 있는 곳에서 한차례 휴식을 취한다. 문수암에 들르는 사람도 있고 문수암을 지나치는 사람도 있다. 나는 후자이다. 하지만, 문수암의 일주문이 이채롭다. 절의 대부분의 일주문이 높은 대문으로 되어 있으나 이곳은 그렇지 않다. 사실 이것보다 더 이채로운 일주문이 마이산의 고금당의 일주문이 더 이채로웠다. 왼쪽이 문수암의 일주문이고 왼쪽이 고금당의 일주문이다.

다시 산을 오른다. 지그제그 길의 연속이다. 앞서가는 사람이 길을 열어주기도 하고 뒤따라 오는 사람이 잘 걸으면 길을 열어주기도 하면서 산을 오른다. 산을 오르면서 이곳의 정취를 맛볼 수도 없고 그저 고지가 저기인데 멈출 수가 없을 뿐이다. 문수암에서 봉우리를 오르고 나면 오늘의 산행에서 어려운 구간은 대부분 끝이 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소나무 군락지가 있다. 아름드리 소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있고 그 나무 아래에 쉼터가 조성되어 있어 휴식을 취하는 사람들이 있다. 정겨울 뿐이다.


문수봉을 앞에 두고 노익장을 과시 하면서 오르신 어르신들이 이곳에 자주 왔는지 문수봉을 지나치고 우리는 문수봉으로 간다. 문수암이 있어서 문수봉인지 문수봉이 있어서 문수암인지 모르겠으나 문수봉에 도착하니 산행을 시작한 지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앞으로 갈길이 안내되어 있고 온길도 설명이 되어 있는 이정표가 있다. 맞는 것인지 모르겠지만 그래도 신뢰를 해보면서 삼지봉으로 길을 잡는다.


문수봉에서 삼지봉까지 가는 길은 그저 산책길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면 너무 좋은 길의 연속이다. 임도의 연속이고 아주 오래된 임도이다. 임도의 가운데에 50년은 족히 된 소나무가 자리를 잡고 있는 모습이 이채롭다. 그래도 삼지봉까지 가는 길은 넓고 가파른 길도 없다. 문수봉에서 1시간 이상 걸릴 것이라고 했는데 그냥 걸으니 40분 만에 도착하였다.

삼지봉 정상에는 정상석이 두 개 있다. 하나는 해발이 710m, 하나는 711m이다. 네이버 지도 등에는 711m라고 표기되어 있고, 소방서에서 설치한 지도에는 710m이다. 어느 것이 정답인지 모르겠다. 측량을 하면서 710m에서 약간 더 높은 것으로 볼 수 있는데 이를 사사오입하여 711m가 되지 않았을까 추측해본다. 그리고 내연산의 정상이 이곳이라고 했는데 이웃한 향로봉, 우측봉은 이곳보다 더 높다.


정상에서 향로봉을 가는 길에서 하산을 하면 모르겠지만 우리는 시간적으로 제약도 있고 산불조심기간에는 탄방로가 제약되어 있어 계곡으로 가기 위하여 거무나리 삼거리로 다시 돌아간다. 600m를 갔다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다. 그것이 그것 같은데 왜 이렇게 코스를 설계하였을까 생각해본다. 향로봉을 가다가 내려가는 지점에서 하산을 하면 더 많은 것을 볼 수도 있는데, 안내 산악회 특성에 따라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설계를 하였다고 본다. 혹, 다시 간다면 향로봉을 갔다가 계곡으로 하산하고 싶다. 시간적으로 2-3시간이 추가적으로 소요될 것 같다.


이제는 하산이다. 하산하면서 내연산을 온 이유를 확인할 것이다. 내연산에는 12 폭포가 있고 바위 절벽 절경이 있다고 한다. 조가비등이라는 능선을 따라 내려가면 된다. 전망은 없다. 폭포가 있는 산에서 알 수 있는 것은 가파름이 있는데 이곳은 계곡 바로 직전에만 가파름이 있고 내려가는 내내 둥글게 둥글게 내려간다. 이 길이 맞나 싶을 정도로 내려가면서 왼쪽으로 왼쪽으로 간다. 어느 선에서 왼쪽으로 방향을 잡기 전에 나타나는 깎아지른 절벽에 서 있는 소나무와 바위가 아름다움을 장식하고 있지만 밑에서 보거나 반대편에서 보지 않는 상태에서 무의미하다.


계곡에 도착하였다. 12 폭포가 있는데 위에서부터 보면 내려간다. 12 폭포 중 8개만 보고 간다고 할 수 있다. 위에 4개 폭포가 더 있는데 오늘은 생략하고 8폭 포인 은폭포를 보기 위하여 내려온 곳에서 계곡을 따라 위로 올라간다. 은폭포는 여성의 음부를 닮았다 하여 음폭(陰瀑)이라 하다가 상스럽다 하여 은폭(隱瀑)으로 고쳐 불렀다고도 하고 용이 숨어 산다 하여 흔히 '숨은 용치'라고도 하는데 하는데 이에 근거하여 은폭(隱瀑)으로불렀다고도 한다고 안내되어 있다. 은폭으로 가는 길은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약간 어려움이 있다. 등산로와 같은 길에 계곡옆으로 길이 나있을 뿐이다.

이제는 내려오면서 하나하나 살펴볼 것이다. 전망대가 있다고 하는데 그것은 내려오면서 왼쪽에 있고 오른쪽에 있는 선일대가 있어 우리는 선일대를 목표로 오른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일반인들 즉, 관광객들은 왼쪽으로 올라와서 오른쪽으로 내려간다고 한다. 삼지봉을 올라가는 길 이곳까지 왔다가 돌아갈 수 있게 관광코스를 설계해 놓았다. 은폭포를 갈 사람을 갔다 와도 되고 안 가도 되고 그만인 것이다.


먼저 선일대를 올라간다. 선일대는 신선이 학을 타고 비하대에 내려와 삼용추를 완성한 후 이곳 선일대에 올라와 오랜 세월을 보냈다고 한다. 겸재 정선이 이곳 청하 현감을 지내면서 이곳 일대를 그림으로 남겨 진경산수 화룡을 완성시켰다고 한다. 선일대를 위에 전망대를 세워놓았다. 전망대에서 아래를 내려보면 관음폭포와 무풍폭포가 있다. 사실 정선이 그림을 그렸다는 삼용추는 내연산의 열두 폭포 가운데 잠룡폭포와 관음폭포, 연산폭포인데, 관음폭포와 잠룡폭포는 한 눈에 볼 수 있지만 연산폭포는 구름다리를 지나야 볼 수 있다.

겸재 정선의 내연산폭포(문화재청)

선일대의 정자 위에서 반대편을 보면 선일대 등을 볼 수 있도록 전망대를 만들어 놓아서 감상을 할 수 있도록 해 놓았다. 나는 이곳을 가지 않았지만 누가 멋진 사진을 공유해주어서 이곳에 같이 담아 본다. 내연산 계곡은 신생대 화산지형이 빚어낸 협곡이다. 화산재가 수직에 가까운 암벽을 형성했고. 절벽은 '깎아지르다'라는 표현이 성에 차지 않을 정도로 직벽의 거대한 바위였다. 말 그대로 직벽의 주상절리가 형성된 것이다.

늦가을에 보는 것보다. 여름에 보는 것이 더 멋있을 것 같다. 그리고 단풍이 한창일 때는 절벽 사이에 있는 나무들이 더욱더 붉은색을 보여줄 것 같다. 초겨울에 들어선 바위 절벽보다는 초가을에 보는 절벽이 멋있을 것 같다는 예감이 더욱더 든다

왼쪽 가지고 온 사진 오른쪽 내가 찍은 사진

선일대를 내려와서 관음폭포를 보고 연산폭포로 가는 길에서 반대편 선일대를 바라볼 뿐이다. 절벽이 그 자체가 아름답다. 선일대에서 관음폭포로 내려오는 길은 예전에는 힘들게 다녔지만 지금은 데크로 정리가 잘 정돈되어 있다. 연산폭포는 구름다리를 지나 연산폭포 계곡으로 들어간다. 그렇게 많지 않은 폭포수가 아쉽지만 늦가을이고 초겨울에 이 정도의 수량에 감지덕지한다. 여름날 시원한 폭포수가 계곡을 휘감고 나갔을 경우에는 그 주변에 서는 것만으로 시원하였을 것이고 폭포수의 위용에 놀랐을 것이다. 연산폭포는 가장 큰 폭포라고 한다.

제8폭이 은폭포, 제7폭이 연산폭포, 제6폭이 관음폭포, 제5폭이 무풍폭포, 제4폭이 잠룡폭포다. 선일대 위에서 내려다보면 연산폭포를 제외하고 관음폭, 무풍폭, 잠룡폭을 그대로 볼 수 있다.

잠룡폭을 보기 위하여 살짝 내려가본다.

연산폭포를 가기 전에 보는 관음폭포는 구름다리가 위에 있어서 그런지 더 멋들어지다고 할 수 있다. 관음폭 옆의 높은 절벽을 비하대라고 한다. 관음폭은 주변의 경치가 너무나 빼어나 관세음보살이 금방이라도 나타나 중생들의 간절한 소원을 들어줄 것만 같은 느낌을 갖고 있다고 한다. 정시한의 산중일기에서는 중폭이라고 하였다고 한다. 산중일기에서 폭포는 세 개의 폭포가 있는데 상생폭포, 관음폭포, 연산폭포를 가리키면 상생폭포를 하폭, 연산폭포를 상폭으로 불렀다고 보면 된다고 한다. 관음폭 바로 위에 있는 구름다리에서 선일대까지 경치는 절경이다. 전망대까지 올라가지 못한 아쉬움을 여기에서 달랜다.

관음폭 바로 아래에 무풍폭과 잠룡폭이 있다. 무풍폭은 바람을 맞지 않는 폭포란 뜻이며 폭포 아래 30여 미터에 걸쳐 암반 위를 뚫고 형성된 아주 좁은 바위틈으로 물이 흐르다 보니 이런 명칭이 붙었다고 한다. 바로 위에 있는 관음폭이나 바로 아래에 있는 잠룡폭에 비하여 규모가 작아 폭포라는 명칭을 붙이지 않고 무퓽계라는 이름을 쓰기도 한다고 한다. 잠룡폭은 4개의 폭포가 연속으로 있는데 마지막 폭포로 아직 승천하지 못하고 물속에 숨어 있는 용이란 뜻이 있는 폭포로 폭포 아래에는 거대한 선일대를 낀 협곡인데 이곳에 용이 숨어 살다가 선일대를 휘감으면서 승천했다는 전설이 있다.

전망대를 올라가는 갈림길이 있지만, 함께한 일행이 힘들어한다. 오늘은 일행을 함께한 친구가 없어서 죽전에서 산행을 시작한 비슷한 나이의 아저씨랑 아침부터 저녁까지 함께한다. 이분은 어제 장염으로 고생을 하였으나 내연산의 아름다움을 보기 위하여 장염으로 쓰라린 하루를 보내고도 왔다고 한다. 여기까지는 같이 잘 왔는데 또 전망대를 오르는 것은 무리라고 하여서 오늘은 다음에 이곳에 왔을 때 볼거리를 위하여 남겨두고 그냥 다음 폭포로 발걸음을 옮긴다.


삼보폭포와 보현폭포가 있고 마지막에 상생폭포가 있다. 보현폭포는 암벽 사이에 살짝 숨어 있다. 상생폭포는 쌍폭인데 통상적으로 생각하면 쌍폭은 상폭포와 하폭포로 생각하는데 이 폭포는 두 갈래의 폭포다. 이제는 폭포도 끝나고 보경사로 내려간다. 상생폭포까지 올라왔던 어린이를 포함한 가족들이 이곳에서 내려간다. 힘겹게 왔다가 힘겹게 내려가면서 4-5살 먹은 아이들이 잘 걷는다. 엄마 아빠 손잡고 오는 것이 좋아서 왔겠지만 이곳에 왔다 갔다는 추억은 없을 것이다.

내려가면서 발도 담그고 세수도 하면서 내연산의 추억을 물에 담가 둔다. 발을 담그면서 이곳의 물은 그래도 아직 담그고 10분 이상 있을 수 있을 정도로 차지 않다는 것에 감사를 한다. 내연산에서 아름다움을 보았다. 계곡의 경치는 폭포를 필두로 주변의 바위 절벽이 뇌리에 남는다.


6시간 산행을 위하여 4시간에 걸쳐서 왔고 밤을 타고 4시간을 다시 복귀한다. 버스는 고요하게 달린다. 차륜 소리만 요란하고 버스 속은 침묵만 흐를 뿐이다. 새벽잠을 설치고 온 것은 내려올 때 해결하였는데 산행의 피로를 버스 속에서 조용하게 해소하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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