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월은 전국이 바람이 분다. 그리고 강풍이다. 전국에 강풍주의보가 내려져 있고 산은 산불로 인하여 울고 있다. 오늘도 울진과 삼척을 비롯하여 곳곳에 산불이 일어나고 있다. 산불진화를 위하여 산림청과 자자체는 고생을 하고 있다. 바람은 거세고 산불은 포공격 하듯이 이곳에서 저곳으로 날아간다. 금년 겨울 가뭄이 극심하여 더욱 산불이 거세다. 그리고 선거에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산불을 감시하는 사람들은 더 어려움이 있다. 제발 산근처에서 쓰레기를 태우지 말아야 하는데 할머니, 할아버지들은 옛날부터 이어지는 습관을 버리지 못하고 논이나 밭에서 집의 쓰레기를 태운다. 그렇다고 하여 가정경제에 별 도움이 안 되는데 그리고 농사를 지으면서 사용하였던 비닐류를 또 태운다. 그러다 산에 불이 붙으면 어떻게 하지 못하는 것이 현실이다. 어릴 적 생각이 난다. 동네 뒷산에 불이 났다. 그래서 애 어른 할 것 없이 모두들 산으로 달려가서 불을 진화했다. 하지만, 요즈음은 농촌에 사람이 없다. 동네에 할아버지 할머니들만 있어서 신속하게 산에 불이 붙어도 해결하지 못한다. 우리 어릴적에는 젊은 사람들이 많아서 그래도 빠르게 움직여서 해결할 수 있었고 집집마다 산에서 나무를 구해서 난방을 하고 조리를 하였다. 그래서 낙엽이 남아 있지 않았는데 지금은 아니다. 산에 다니다 보면 낙엽이 그대로고 나무가 우거져 있다. 산림이 녹화되어 이제는 산을 마음대로 다닐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산 주변의 농가에서는 제발 불을 조심하였으면 한다. 그리고 담배를 피우고 제발 함부로 버리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예전에 산림청에서 홍보하는 영상물을 본 기억이 있다. 낙엽이 싸여진 곳에 제대로 불을 끄지 않은 꽁초를 버리고 2-3분 있으니 불이 났다. 이것이 현실이다. 나는 담배를 피우지 않으니 산을 갈 때에는 화기가 내 몸에는 없다. 산이 울고 있다. 강풍에 우는 것이 아니라 불에 울고 있다. 이것이 우리에게 부메랑으로 돌아올 것이다. 조심하자. 등산객들도 산불조심기간에는 허용된 등산로만 다녀야 한다.
오늘도 전국으로 안내산악회가 운영하는 버스는 이동한다. 다만, 이 버스는 산불조심기간 허용되는 등산로만 간다. 나도 전국의 등산로 중 산불조심기간 중에 개방되어 있는 등산로를 찾기에 어려움이 있기에 이 산악회 버스를 이용한다. 사실, http://hiking.kworks.co.kr/sub_map/map_user01.aspx를 가면 쉽게 확인이 가능하다. 혹 산을 가고 싶으면 이 사이트를 확인하다.
청량산으로 간다. 청량산(淸凉山)은 경상북도에서 가장 오지로 알려져 있는 봉화에 있는 산으로 경북 봉화군 명호면과 재산면, 안동시 도산면과 예안면에 위치하고 있으며 자연경관이 수려하고 기암괴석이 장관을 이루어 예로부터 소금강으로 불려진 명산이다. 기록에 의하면, 청량산은 고대에는 수산(水山)으로 불려지다가 조선시대에 이르러 청량산으로 바뀌게 되었으며, 조선시대 풍기군수 주세붕이 청량산을 유람하며 명명한 12 봉우리(일명 6.6봉)가 주축을 이루고 있다. 청량산에는 지난날 연대사(蓮臺寺)를 비롯한 20여 개의 암자가 있었으며 지금은 청량사 유리보전(琉璃寶殿)과 응진전(應眞殿)이 남아있다. 또한 퇴계 이황이 공부한 장소에 후학들이 세운 청량정사(淸凉精舍)와 통일신라시대 서예가 서성(書聖) 김생(金生)이 글씨공부를 한 곳으로 알려져 있는 김생굴(金生窟), 대문장가 최치원이 수도한 풍혈대(風穴臺), 고려 공민왕이 홍건적의 난을 피해와서 쌓았다는 산성 등이 있다. 주세붕이 유람을 하면서 불교 유적지 이름을 성리학적 이름을 붙여 놓았고 그것이 지금의 이름이 되었다고 한다.
특히, 청량산은 공민왕이 안동으로 몽진을 온 후 청량산에 산성을 쌓았다. 그리고 산성에 소금과 식량을 비축하고 군사훈련을 했다. 군졸이나 백성들이 말을 듣지 않으면 바위에서 밀어서 처형을 했다고 하는데, 이 곳을 밀성대라고 한다.이렇게 공민왕과 관련된 산이다.
2020년 여름날 이곳을 갔었는데 경칩인 초봄이다. 산은 푸르름은 하나도 없을 것이고 바람과 앙상한 나뭇가지만 있을 것이다. 상해에 가 있는 친구와 같이 갔는데 오늘은 다른 친구와 같이 간다. 그 친구는 이곳을 그렇게 가보고 싶었는데 갈 기회가 없어서 산을 그렇게 다녔으면서도 이곳을 가 보지 못하였다고 한다. 도립공원과 국립공원의 등산로는 산불조심기간 중에도 일부분은 개방되어 있다. 청량산의 주요 등산로 중 산불위험이 있는 경일봉 코스는 폐쇄되어 있고 청량사를 거쳐서 자소봉, 장인봉을 거치는 구간은 개방되어 있다. 오늘은 이곳으로 간다.
버스는 풍기 IC를 나와 5번 국도를 거쳐 36번 국도를 거치고 다시 35번 국도를 거쳐서 청량사 입국에 우리를 내려준다. 저번에 왔을 때는 입석까지 버스가 올라갔는데 이제는 청량사 입구까지만 버스가 올라가고 소형차만 입석까지 갈 수 있다고 한다. 버스에서 내려 웅진전과 웅진전을 지나 총명샘에서 바라보는 청량사와 청량산의 모습을 보고 싶어 입석으로 15분 정도를 걸어서 올라간다. 일부 같이 온 등산객들은 청량사로 바로 올라가지만 나는 웅진전과 청량산과 청량사의 전경을 보고 싶고 친구에게도 그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걸어서 올라갔다. 입석은 도로가에 있는 바위로 그렇고 그렇지만 입석이라고 표시되어 있어서 그것을 담을 뿐이다.
입석에서 등산로를 오르는데 시가 있다 이를 옮기면 다음과 같다.
聞說金剛勝(문설금강승) 금강산 좋단 말 듣기는 해도
此生遊未嘗(차생유미상) 여태것 살면서도 가지 못했네
淸凉卽其亞(청량즉기아) 청량산은 금강산에 버금가니
呼作少金剛(호작소금강) 자그마한 금강이라 이를 만하지
입석에서 웅진전으로 간다. 입석에서 웅진전을 갈 때 갈림길에서 청량사 방향과 웅진전 방향이 있다. 여기에서 우리는 웅진전으로 방향을 잡는다. 가파르게 오른다. 지그재그로 오르는데 사람들이 웅진전을 가는 사람도 있고 청량사로 직접 가는 사람도 있다. 우리는 웅진전을 가면서 힘들다고 느낄 때쯤 바로 옆으로 편안하게 나 있는 길을 만난다.
웅진전은 현재 청량사(淸凉寺)의 부속 건물로 금탑봉 중간 절벽에 위치해 있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주심포계(柱心包系) 맞배기와집으로 내부에는 16 나한이 봉안되어 있다. 앞뒤가 모두 천 길 절벽으로 형성되어 있는데 뒤쪽 절벽 위에는 동풍석(動風石)이 요사체 옆의 절벽 사이로는 감로수(甘露水)가 흘러나온다고 하는데 물이 없다. 겨울이고 가뭄이 극심하여 물이 나오지 않는 것 같다. 물이 나오는 곳에 물을 먹을 수 있는 자루 물 바가치가 걸려 있다. 따뜻한 양지바른 곳에 설치되어 있다. 이곳에 집을 한채 지어 놓고 살면서 세상을 보는 것도 좋겠다. 물도 있고 올라올 때 약간 힘들겠지만 경치 하나는 끝내 준다. 경치를 볼 수 있는 곳을 주세붕은 자신의 자를 따서 경유대(景遊臺)라 이름하였다.
2022년 3월 2020년5월
웅진전을 지나 이제 청량사를 내려갔다가 청량사를 구경하고 자소봉으로 올라갈 것이다. 금탑봉의 암릉 사이에 난 길이며 어풍대의 중간을 지나면서 청량산과 청량사를 본다. 경치가 끝내 준다. 청량산 품속에 청량사가 들어 있다. 기암괴석의 청량산이 자리 잡고 있으며 그 가운데 청량사가 자리 잡은 것이다. 내가 2020년에 이곳에 왔을 때는 여름이고 비가 온 후에 도착하여서 구름 속에 청량산과 청량사가 있었는데 오늘은 아니다. 푸르름은 없지만 기암괴석이 있고 그곳은 청량사가 자리 잡고 있다. 총명샘이 있는데 이곳도 가뭄이 있어서 물이 없다. 어풍대라고 한다. 하지만 이곳에서 어풍대의 풍경을 볼 수 없어서 청량사에서 이곳을 바라보기로 하였다. 이곳에서는 청령사를 보고 청량사에서는 어풍대를 보는 것이다. 풍혈대를 올라가는 계단이 있는데 그냥 지나간다. 청량사로 가기 위하여 갈림길에서 아래로 내려간다. 바로 가면 김생굴이고 하산을 하면 청량사로 간다. 찻집이 있다. 찻집을 지나 청량정사를 지나서 다시 청량사 경내로 들어가면서 청량사를 보니 경치가 일품이다. 청량사 전면에서 어풍대를 본다.
청량사를 바라보면 연화봉이 보인다. 유리보전(琉璃寶殿)의 서쪽에 자리 잡고 있으며 봉우리의 모습이 처음 피어나는 연꽃과 비슷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원래 봉우리의 이름은 의상봉(義湘峰)이었으나 주세붕(周世鵬)이 연화봉으로 명명하면서 현재에 이르고 있다. 연화봉 바로 아래는 향로의 모양과 흡사한 향로봉(香爐峰)이다. 이것도 주세봉이 붙인 이름이다.
유리보전(琉璃寶殿)이라 불리는 청량사는 원효대사가 신라 문무왕 3년(663)에 처음 건립했다고 전해지며, 유리보전 현판은 공민왕이 직접 쓴 것이라고 한다. 종이로 만들어 금칠을 한 지불이 유명하며, 유리보전 앞의 웅장한 소나무는 청량사를 건립할 때 재목과 물건을 운반하고 생을 마감한 뿔 셋 달린 소를 원효대사가 유리보전 앞에 묻었는데, 후에 그 소가 묻힌 곳에서 가지가 셋 달린 소나무가 자랐다하여 ‘삼각우소’라 불린다.
청량사에서 다시 자소봉으로 갈림길로 다시 간다. 내려올 때는 몰랐는데 갈림길까지 만만치가 않다. 청량정사를 지나면 등산로라는 이정표가 있지만 그 길보다는 우리가 온 길을 다시 되돌아간다. 갈림길에 도착하는 시간은 10분 정도밖에 걸리지 않지만 쉽지는 않은 길이다. 데크도 있다. 갈림길에서 김생굴로 간다. 경일봉 가는 길은 폐쇄되어 있다. 김생굴에 도착하니 절벽에 붙어 있던 얼음이 떨어져서 이곳저곳에 있다. 김생폭포가 있던 곳에서 얼음이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2020년 여름에 왔을 때에는 폭포처럼 물이 떨어졌으나 겨울이 끝나가는 시점이 3월 초에는 얼음이 떨어지고 있다. 김생굴은 신라시대 명필이었던 김생이 이곳에 김생암이라 부르는 암자를 짓고 10여 년간 글씨 공부를 하였다고 한다. 붓을 씻었다는 우물의 흔적이 현재까지 남아 있다고 한다. 이렇게 이곳저곳을 둘러보고 있다 보니 우리와 같이 산을 온 사람들이 모두 앞서가고 우리가 마지막이다. 바쁜 걸음을 걸어야 할 것 같다. 마지막이 되면 등산을 하면서 문제가 없지만 그래도 마음이 바빠진다. 자소봉을 오르면서 두 사람을 따라잡았다. 우리가 끝에서 이제는 마지막을 탈출한 것이다.
자소봉을 오르는 구간이 가장 힘들게 오르는 것이다. 자소봉을 올랐다가 내려와서 장인봉을 가기 위하여 다시 원위치하였다가 탁필봉, 연적봉을 지난다. 자소봉은 원래 보살봉(菩薩峯)으로 불리었는데 주세붕(周世鵬)이 현재의 이름으로 고쳤다. 9개 봉우리로 이루어진 내산(內山) 가운데 가장 높으며 청량산에서 세 번째 높은 봉우리이다. 자소봉은 9층의 층암을 이루고 있는데 여기에 11개의 암자가 각 층마다 나열되어 있었다고 전해지며 청량산 불교 유적지의 중심지였던 곳이기도 하다. 자소봉을 오르고 내려오는 계단이 가파르다. 올라가서 멀리 바라보면 멋있다. 우리가 뒤로 보낸 아저씨가 우리에게 장인봉까지 같이 가자고 한다. 우리는 금강대를 거쳐서 내려가야 하는데 그 아저씨랑 같이 가면 도저히 우리가 산행대장이 이야기 한 시간까지 도착할 수가 없을 것 같아서 연적봉까지 같이 가고 그다음부터는 우리가 앞서 간다. 연적봉을 올라가서 탁필봉과 자소봉을 돌아본다. 탁필봉은 자소봉에서 서쪽으로 30m 정도에 위치하고 있는 봉우리이다. 생긴 모습이 마치 붓끝을 모아 놓은 것과 같다 하여 필봉(筆峯)이라 하였는데 주세붕(周世鵬)이 중국 여산(廬山)의 탁필봉과 비교하여 붙인 이름이다.
연적봉은 형상이 마치 연적(硯滴)과 같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금탑봉(金塔峯)과 함께 옛 이름 그대로 전해져 온 봉우리이다. 연적봉을 지나고 하늘다리가 있는 자란봉까지는 오르고 내린다. 청량사에서 올라오는 갈림길을 만날 때 가파른 계단을 내려간다. 자란봉에 도착하면 다른 것은 모든 것을 포기하고 모두들 하늘다리로 가서 하늘다리를 배경을 사진을 찍기에 바쁘다. 자란봉도 주세봉이 난(鸞) 새가 마치 춤을 추는 모습과 흡사하다 하여 자란봉이라 했다고 전해진다.
하늘다리는 해발 800m 지점에 위치한 자란봉과 선학봉을 잇는 길이 90m, 높이 70m의 다리다. 요즈음은 산마다 이러한 다리가 많다. 진안의 구봉산에도 있고 대둔산에도 있고 소금산에도 있다. 어디가 제일 먼저 설치한 것인지 모르겠다. 하늘다리가 청량산의 명물이다. 하늘다리를 지나서 장인봉을 간다. 장인봉을 오르기 전 청량폭포로 내려갈 수도 있다. 하지만, 장인봉 즉, 청량산의 정상을 그대로 두고 내려갈 수도 없으니 많은 사람들이 정상을 갔다가 다시 돌아와서 내려가는 사람이 절반 이상이다. 우리는 금강대를 거쳐서 하산을 할 것이다. 장인봉은 원래 이름은 대봉(大峯)이었는데 신재 주세붕(愼齋 周世鵬, 1495-1554)이 중국 태산(泰山) 장악(丈岳)의 장인봉에 비유하여 지은 이름이다. 정상에서 굽어보면 산 아래는 빼어난 기암절벽들 이병풍처럼 늘어서 있다. 장인봉의 정상석은 김생 글씨를 집자하여서 정상석을 만들었다고 한다.
금강대로 가는 길 가파른 계단을 내려가면서 옛사람들이 이 철계단이 없이 어떻게 올라왔을까 궁금하다. 전망대가 있는 곳에서 장인봉을 다시 보고 금강대로 간다. 금강대는 청량산 동구(洞口)인 낙동강변(현 탐방객 안내소 왼쪽)에 자리하고 있으며 학소대와 더불어 또 하나의 비경을 이루고 있다. 금강대 바로 뒤쪽에는 금강굴(金剛窟)과 금강암(金剛菴)으로 추정되는 암자터가 남아 있다. 금강대의 깎아지른 절벽 사이에 난 틈을 따라 등산로가 있다. 낙동강을 바로 앞에 두고 바위길을 따라 왼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가 철계단을 따라 하산을 한다. 옛사람들은 이틈을 따라 산행을 하고 약초를 캐러 다닌 것 같다. 지금은 안전을 위하여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옛날에는 이곳에 바윗길만 있었는데 잘 다닌 것 같다. 그 바위길 사이에 금강굴이 있다.
금강굴을 지나면서 이제는 깎아지른 절벽에 부처손이 우리를 유혹하지만 다가설 수 없다. 내 목숨이 중요한 것이다. 하산을 한다. 청량산 입구에 도착하여 퇴계선생 시비를 보고 청량산을 노래한 시 『퇴계전서』, ‘청량산가(淸凉山歌)의 내용이다.
청량산(淸凉山) 육육봉(六六峰)을 아나니
나와 백구(白鷗) 백구(白鷗)야 난 속이랴
못 미들 손 도화(桃花)로다 도화(桃花)야
물따라 가지 말라 어자(漁子) 알가 하노라
청량사(淸凉寺) 서편입구인 낙동강변(현 매표소 오른쪽)에 위치해 있으며 절벽이 솟아 푸른 강과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도산구곡(陶山九曲) 중 제 9곡인 청량곡(淸凉曲)을 일컫는다. 예로부터 학이 날아와 새끼를 치고 서식(棲息)하였다고 하여 학소대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