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서 3대 바위산 중 하나인 주왕산을 둘러보다.

by 김기만

주왕산을 지난여름 갔다 왔는데 이번에는 여름이 아닌 늦봄이자 초여름이 시작되는 시기에 간다. 주왕산을 가메봉까지 가보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어렵다. 지난번에는 시간의 제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못 갔는데 이번에는 산불조심기간이라 등산로가 통제되어 있어 어쩔 수 없이 제한된 등산로만 돌아보고 주왕산의 비경을 둘러볼 것이다.

주왕산은 설악산, 월출산과 함께 바위가 아름다움을 표현하는 산이라고 한다.


주왕산을 가기 위하여 지인 2과 함께 승용차를 이용하여 이동을 한다. 새벽을 깨우는 날씨가 좋다. 비는 안 오고 구름도 없다. 다만, 미세먼지가 있다. 미세먼지가 있어도 산으로 간다. 언제 적 본 뉴스에서 미세먼지가 있어도 산에서 즐기는 것에 어려움이 없다고 하였다. 자동차 속에서 코로나 19로 인하여 어려움을 겪었던 얘기와 그것을 회피한 얘기를 꽃을 피우다가 최근에 지인이 구매를 결정한 수소자동차로 방향을 전환하였다.


우리나라에 수소자동차가 도입된 이후 구매를 결정하고 거의 1년 가까이 기다려 곧 인도를 받는다고 한다. 인도를 받으면서 자동차 선팅을 어떻게 하여야 하는지, 하이패스를 어떻게 설치할 것인지 서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새 차를 구매하면서 보험료가 관심으로 등장하였다. 새 차를 구매하면 자차보험료가 상당히 높게 책정이 되는데 관련 안전기능이 추가되어 예전에 우리가 알고 있던 자동차 보험에 비하여 무척이나 낮게 책정이 되어 부러움을 불러일으켰다.


주왕산은 예전에 대구에서 청송까지 4시간이 소요되던 시기에는 접근하기 어려운 산이었다. 우리에게는 너무나 먼 오지에 있던 산이었다. 청송은 그런 만큼 우리에게 유명한 것이 청송의 교도소가 있다. 오지에 건설한 교도소가 지금은 청송군민들과 청송 출신 인사들이 이미지 실추를 우려하여 이름이 바뀌었지만, 지역에 많은 수의 교도관들이 거주하게 되면서 지역경제 활성화에 도움이 된다는 인식도 생겨났다고 한다. 그래도 청송은 지역 소멸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교도소가 효자 노릇을 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주왕산 주변에 있는 주요 관광지와 먹을거리는 달기약수터가 있다. 달기약수터에서 먹는 백숙이 일품이라고 한다. 오늘 산행을 하고 달기약수에 가서 백숙을 먹자고 지인이 이야기한다. 다른 사람들은 뒤풀이를 반대한다. 산행의 즐거움을 산행 뒤의 뒷풀이라고 이야기하는 사람이 많이 있지만, 이상하게 나는 뒤풀이를 싫어한다. 산행이 주가 되어야 하는데 뒤풀이가 주가 되는 사람도 있다. 그렇게 뒤풀이를 하다 보면 산행시간보다 뒤풀이 시간이 많이 소요되고 그것이 주가 되어 건강에 역신호가 올 것이다.


청송 IC를 나와서 이정표를 따라 주왕산 주차장으로 이동한다. 주변에는 청송사과에 대한 안내 간판이 즐비하다. 최근에 가짜 청송사과 얘기도 나왔는데 그만큼 청송은 사과가 많이 재배되고 있고 수확량이 많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정표는 주왕산 국립공원과 대전사를 동시에 가리키고 있다. 4차선 국도에서 2차선 국도로 이어지는데 2차선 국도도 4차선 국도와 동일하게 안전을 위한 시설들이 설치되어 있어 이채롭다. 4차선에 2차선으로 바뀌면 도로환경이 완전히 바뀌는데 이곳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 특색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주왕산 주차장에 들어선 후 처음으로 보는 것이 주왕산의 기암이다. 대전사에서 보면 더 선명하겠지만 주차장에서 보면 그 기암이 우리들을 부른다. 기암은 마치 부처님의 손바닥과 같은 모습으로 주왕산 입구를 바라다보고 있다. 이것을 주왕산의 대표라고 할 수 있다. 주왕산에 오면 맨 처음 감탄하는 모습이다. 들어가면서 상가들이 즐비하다. 처음에는 호객행위를 하지 않는다고 하였는데 중간중간에 호객행위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을 즐기는 사람도 있다. 상가를 지나가면서 기암이 보이는 곳에서 사진으로 먼저 담는다. 다음으로 대전사라로 간다. 대전사 입구에서 주왕산을 들어가기 위하여 사찰 입장료를 내어야 한다. 다른 곳보다 좀 더 많다. 4,500원이다. 이곳을 우회하는 곳은 보이지 않으니 어쩔 수 없이 입장료를 내고 들어간다. 주왕산 대부분이 사찰 땅이라고 하니 어쩔 수 없다. 주왕굴에서 만난 처사는 이렇게 이야기했다. 이곳에는 송이가 많이 나는 곳이고 이곳에서 송이를 채취하려고 동네 주민들이 가을날 10만 원씩 내고 들어온다고 하였다. 그런 만큼 대전사의 영향력이 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주왕굴은 주왕암자에 있는 산신각으로 관리되고 있고 이것을 개방하는 만큼 입장료가 다른 곳보다 많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대전사는 신라 문무왕(文武王) 12년(672) 곳곳에 사찰을 창건하기로 유명한 의상대사(義湘大師)가 창건하였다고 한다. 사실 전국의 많은 사찰이 의상대상가 창건한 사찰이 많다. 그분은 이곳에 사찰을 세워야지 하면 신도들이 사찰을 세웠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기독교에 있어서 바울이 전도여행을 하면서 지금의 터키지역 곳곳에 교회를 세운 것이 비슷한 것 같다. 보광전은 1976년 중수 시 발견된 상량문에 의하여 그 건축 년대(1672년, 강희 11년 임자 5월초 119일, 현종 13년)가 밝혀져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조선 헌종 시대에 중창하였다고 한다. 대전사의 보광전은 건축 연대가 명확하게 되어 있고 조선 중기의 목조건물로서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어 문화재로 관리되고 있다고 한다. 특징점으로는 평지에 사찰이 건축되어 있다는 것이다. 우리나라의 대부분의 사찰이 계단식으로 건축되어 있지만 대전사는 그렇지 않다. 평지에 가람들이 배치되어 있다.

석가탄신일이 얼마 남지 않아서 그런지 절마당에는 연등이 많이 걸려 있다. 그래서 기암을 담기 위하여 머리 위로 카메라를 들고 담고 있는 사람이 많다. 그것이 그것인데 연등이 살짝 눈에 거슬리는 것 같다. 이곳에서 기암을 배경으로 본인의 인증샷을 남기고 떠나는 사람도 많다. 그리고 절과 기암을 같이 담기도 한다. 기암의 기자가 사실은 깃발을 그곳에 설치하였다는 것인데 어떤 사람은 기묘한 바위라고 생각을 하기도 한다. 어떤 이는 주왕의 깃발이 설치되어 있다고도 하고, 어떤 이는 주왕을 잡았다고 표시하는 깃발이 설치되어 있었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깃발이 정상에 국기봉처럼 있어서 기암이 된 것이다.


이제 주왕산의 주봉으로 간다. 대전사를 지나 용추계곡으로 가는 길과 주봉 가는 길 갈림에서 우리는 주봉 가는 길로 접어든다. 용추계곡으로 가는 길은 평탄하다 주봉 가는 길도 평탄하다. 하지만, 주봉 가는 길은 100m도 되기 전에 봉우리를 가파르게 오른다. 처음부터 계단이다. 계단의 연속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가파르게 2km를 오르는 것이다. 혼자 오르면 1시간이면 될 것 같은데 지인들이 그렇게 등산에 경험이 없어서 2시간 정도 갈 것이라고 예상을 하고 오른다. 주왕산 주봉을 오르면서 좋은 점은 이렇다. 오르면서 힘든 구간을 지나고 전망대가 있다. 그 전망대에서 사진을 찍고 휴식을 취할 수 있다. 그렇게 오르면 주봉은 어렵사리 오를 수 있다는 것이다. 오늘은 젊은 친구들도 많다. 단체로 많이도 왔다. 초등학생들도 있다. 초등학생들이 떠들썩하게 오르고 있다. 그들이 지나가기를 바라면서 여유롭게 등산을 할 뿐이다.

철쭉이 분홍색 꽃을 예쁘게 피었다. 수줍은 아가씨처럼 꽃을 피웠다고 지인이 이야기한다. 그 분홍색 꽃이 다른 지역에 있는 철쭉과 차이가 있다. 이번 주에 황매산의 철쭉을 보려 가려다가 아직 만개하지 않은 것 같아 이곳으로 방향을 잡았는데 황매산 철쭉이 이제는 만개할 것 같다. 다음 주쯤에는 황매산이 만개할 것인데 누구와 함께 황매산을 갈 것인지 고민을 해보아야겠다. 시적인 감각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주봉을 오르면서 한 번씩 쉴 때마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맞은편의 주왕산의 다양한 모습은 색다른 맛이다. 맛집이 따로 없다. 연화봉과 병풍바위 등이 있고 그 아래에 탐방로가 어떻게 보면 예쁘다고 할 수 있다. 주봉을 바로 앞에 두고 능선에 좌측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면 그 경치가 장관이다. 주왕산의 맛을 그대로 볼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오른쪽에서는 깊은 산골을 그대로 볼 수 있다.

능선에서 이제 계단을 오른다. 정상까지는 지속적으로 계단이다. 계단이 힘들면 왼쪽으로 경치를 감상을 하면 되는데 그것을 보지 못하고 숨을 고를 뿐이다. 주봉이다. 주왕산에서 주봉보다 높은 곳이 가메봉이다. 사실상 정상이 정상이 가메봉(해발 880m)이다. 이곳으로 가야 하지만 대부분 가지 않는다. 시간이 많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주봉에 도착하니 앞서있던 초등학생들과 단체산 행객들이 인증샷을 남기고 있다. 이들이 인증샷을 남기려면 시간이 소요되는데 그들이 단체로 사진을 남긴다. 그리고 개별적인 인증샷은 잠깐이다. 초등학생들인 토요 트래킹 팀이라고 한다. 초등학생들이 이러한 건강을 위한 트래킹을 한다는 것에 이를 운영하는 단체에 감사를 드린다.

주봉을 지나서 이제는 후리매기 삼거리로 간다. 가메봉으로 가기 전 중간중간에 사람들이 앉아서 점심을 해결한다. 우리도 자리를 하나 잡아서 점심을 해결한다. 주봉을 지나면서 후리메기 삼거리까지 가는 곳곳에 멋진 식당들이 많이 있다. 장소만 제공되고 음식은 각자가 해결되어야 하지만 최고의 식당이 많다. 자기가 주방장이 되고 요리사가 되고 주문을 받고 그대로 먹을 수 있다. 흔적을 남기지 않고 지나가지만 그래도 최고의 식당을 찾아서 너도나도 앉아서 같이 온 사람들과 담소를 나누면서 점심을 먹고 간식을 먹는다.


가메봉을 가는 길은 폐쇄되어 있다. 산불조심기간에는 주봉에서 가메봉, 가메봉에서 후리매기삼거리까지 등산로가 폐쇄되어 있다. 길을 내려간다. 가파르게 내려가는 곳은 계단이다. 올라오는 사람은 거의 없고 내려가는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계곡에 도착하면 이제는 평지길의 연속이다. 등산은 끝이 났고 이제는 관광 모드이다. 주왕산 국립공원을 찾는 많은 이들이 이 관광코스를 찾는다. 다만 주왕굴, 무장굴, 연화굴은 그렇게 많이 찾지 않지만 오늘 다 찾아보았다. 주왕산의 절경을 이제는 관광 모드로 걸어본다.


처음 찾은 관광코스는 용연폭포다. 후리매기 삼거리에서 나와서 대전사로 내려가지 않고 상류로 2-300m 가면 용연폭포이다. 용연폭포는 이단폭포이다. 일단폭포 옆에는 3개의 하식동굴이 있다. 주왕산은 오래전 화산이 폭발하여 이제는 바위가 응회암이 주로 자리 잡고 있다. 응회암에 발달한 세로 방향의 틈에 의해 생긴 폭포이다. 지나가는 사람들이 제주도의 용연폭포와 유사하다고 이야기한다. 제주도에도 용연폭포가 있다는 사실을 나도 모르겠다. 다만, 천제연폭포가 있는데 어떻게 저런 이야기를 옆에 있는 사람에게 자신 있게 이야기할까 생각해본다. 제주도에는 용연계곡이 있을 뿐이다. 용연폭포 아래에 형성된 폭호(瀑壺)에 용이 산다고 하여 붙여진 명칭이라고 한다. 자료에 따르면 1단 폭포가 흐르면서 급애의 지형면에 부딪쳐 마식작용에 의해 동굴이 형성된 것으로, 두부침식에 의해 폭포는 점차 후퇴하므로 폭포에서 가장 먼 쪽의 하식동이 가장 먼저 형성된 하식동으로 하식동의 위치로 보아 용연폭포의 1단 폭포는 최초 폭포가 형성된 후 최소 20m 이상 후퇴가 일어났다고 한다.

용추폭포 관람은 일방통행이다. 위에서 아래로 내려간 후 지나간다. 대전사로 가면서 절구폭포로 가는 계곡으로 들어간다. 협곡을 지나면서 국립공원공단에서 낙석에 유의하라는 안내를 받는다. 폭포 아래에 형성된 폭호가 절구 모양처럼 생겼다고 하여 절구폭포라 불린다. 절구폭포 일대의 기반암은 응회암이며, 기반암상에 부석질 피아메(fiamme)[응회암 노두에서 나타나는 렌즈 모양의 흑요석 결정체]가 풍화에 의해 제거되면서 빈 곳만이 남아 피아메가 있었던 흔적이 나타난다. 협곡 내부에 자리하고 있어 평균습도가 높다. 주변의 계속에는 이끼가 가득하다. 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담는 사람도 있고 흐르는 물에 땀을 씻는 사람도 있다. 절구협곡을 지나서 절구폭포를 가기 때문에 이러한 곳에 숨겨진 폭포는 자연 그대로의 모습을 가지고 있다.

용추협곡에 가는 길은 평탄하다. 예전에 이곳에 마을이 형성되어 있었으나 이제는 이주를 하였다고 한다. 용추(龍湫)는 ‘용이 폭포에 살다가 하늘로 승천한 웅덩이’란 뜻이다. 용추협곡은 곡벽 경사가 거의 수직을 이루고 곡벽 높이가 거의 100m 이상이다. 바닥 폭이 학소대에서 대전사 일대까지는 10~20m이지만, 용추폭포 일대에서는 3~5m 내외로 급격히 좁아진다. 그러나 횡단면은 여전히 거의 수직에 가까운 V자형을 보인다. 용추협곡에는 용추폭포가 형성되어 있다. 용추폭포는 총 3단으로, 1단 폭포와 2단 폭포는 낙수 폭이 2m, 낙차가 1~2m로 소규모이지만, 폭포 아래에는 유수의 흐름에 의한 마식작용으로 포트홀(pothole)이 각각 폭 3m, 깊이 2m 그리고 폭 8m, 길이 5m, 깊이 1m 정도로 발달되어 있다. 하부의 3단 폭포는 용추폭포의 주 폭포로, 폭 2m, 낙차 5m 규모로 나타나며, 아래에 큰 규모의 폭호를 형성하고 있다. 용추협곡에서 바라다보는 학소대가 어떻게 보면 더 멋있다. 용추폭포를 배경으로 사진을 담는 장소에 우리도 사진을 담는다.

용추협곡의 시작점은 학소대와 시루봉이라고 할 수 있다. 옛날 학소대(鶴巢臺)의 절벽 위에 한 쌍의 청학과 백학이 둥지를 짓고 살았다고 하여 학소대라 불린다. 또 이 일대는 청학과 백학이 살았다 하여 청학동으로 불리기도 했으며, 옛날 선비들이 자연을 벗 삼아 풍류를 즐기던 장소로도 애용되어 왔다고 전해진다. 바로 옆에 시루봉이 자리 잡고 있다. 떡을 찌는 시루처럼 생겼다고 하여 시루봉이라 불린다. 시루봉은 일명 얼굴바위라고 한다. 옆에 계신 지나가는 아주머니가 20살 때 왔을 때에도 저 모습이었는데 오늘도 같다고 한다. 바위는 그 모습 그대로인데 사람은 변화고 있다.

이제는 주왕굴로 간다. 탐방로는 두 방향이다. 첫 번째는 넓은 길로 되어 있어 누구나 다닐 수 있는 길이다. 대부분 이 길을 따라서 대전사로 내려간다. 두 번째는 자연탐방로이다. 주왕굴로 가는 길이다. 절벽 바로 밑에 나 있는 길이다. 예전에는 절벽 바로 밑에 있었으나 낙석의 위험 때문에 좀 더 아래로 내려 탐방로를 만들어 두었다. 중간지점에 있는 바위에 전망대를 만들어 놓았다. 이곳에 올라가 보면 병풍바위, 연화봉과 이웃한 급수대와 신선대를 그대로 볼 수 있다. 이곳에 올라 이 경치를 그대로 보고 그대로 담아본다. 급수대는 신라 37대 선덕왕이 후손 없이 죽자 무열왕의 6세 손인 김주원(金周元)이 차기 왕으로 추대된다. 왕으로 추대된 김주원이 궁으로 향하던 중 홍수를 만나 입궐이 지체되자 상대등 김경신(金敬信)이 먼저 입궐해 왕좌를 차지하게 된다. 이에 따라 김주원을 지지하던 귀족들이 김주원에게서 등을 돌리게 되고 위협을 느낀 김주원은 주왕산으로 피신해 왔다는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이때 김주원이 절벽 위에 대궐을 짓고 식수를 얻기 위해 두레박으로 계곡의 물을 퍼 올렸던 곳이 급수대이다. 주왕산의 많은 응회암질 급애 중 주상절리가 가장 뚜렷하게 발달한 곳 중 하나이다. 또한, 화산재의 압착에 의해 응회암 노두에서 나타나는 렌즈 모양의 흑요석 결정체인 피아메(fiamme)와 잠열에 의한 변질 광물도 관찰할 수 있다

주왕굴이다. 주왕굴은 예전에 주왕이 이곳에 숨어 지내던 곳이라고 한다. 폭포 옆에 자리한 자연동굴이다. 주왕굴의 진입로에는 쇠다리 등의 시설이 개설되어 주왕산 국립공원 관광객들이 방문할 수 있다. 깊이 2m 지점의 구석진 곳에 탱화가 안치되어 있다가 최근에 주왕암 산령각으로 옮겨지고 석상으로 대체되었다. 예전에는 자연동굴이었으나 시멘트 등으로 동굴 입구를 만들어 놓았다. 응회암처럼 만들어 놓았다. 자연 그대로가 좋았는데 변형되어 있어 아쉽다. 주왕굴은 중국 당나라 시대에 진나라 재건을 명분으로 반란을 일으킨 주도(周鍍)가 스스로 주왕(周王)이라 칭하고 당나라 내에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이에 실패한 뒤 신라로 들어와 천혜의 요새인 이곳에서 군사들을 훈련시키며 후주천왕(後周天王)을 꿈꾸며 재기를 노렸다. 그러나 당나라의 요청을 받은 신라의 마일성 장군에게 쫓기다가 마일성 장군의 화살을 맞고 죽었다는 전설에서 그 명칭이 비롯되었다고 한다.

주왕굴을 나와서 무장굴로 간다. 주왕이 이곳에서 제기를 노리면서 군사들을 훈련시키면서 그 군사들의 무기를 숨겨둔 곳이라 한다. 지금도 그 동굴안쪽 깊순한 곳이라 하여 10m 남짓이지만 이곳에 무기를 보관하기에는 적격이라고 해야 될 것이다. 여름에 왔을 때 이곳에 들어갔을 때 차가운 공기가 얼굴을 때렸는데 오늘은 봄철이라 그런지 아무 느낌이 없다.

마지막으로 연화굴로 간단. 저번에 왔을 때에는 연화굴을 가보지 않고 내려갔는데 오늘은 가볼 것이다. 주왕산의 지형을 설명하면서 연화굴을 설명한 것을 보았다. 주왕굴에서 내려가서 대전사로 내려가는 탐방로를 만나고 용추협곡으로 100m쯤 올라가면 연화굴로 가는 길이 나온다. 올라가다 보면 하천 건너를 본다. 급수대와 신선대를 다시 본다. 주왕굴이 있는 경치를 그대로 볼 수 있다. 이제 연화굴로 가는 이정표가 나온다. 200m라고 표시되어 있다. 올라가는 길이 가파르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거의 올라가지 않는다. 연화굴은 다른 굴하고 특이한 모양을 하고 있다. 주왕산의 응회암의 특징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주왕산은 7000만 년 전 백악기 공룡시대 화산이 10차례 정도 폭발하면서 생긴 기암절벽으로 유명하며, 비경도 좋지만 수천만 년 영험한 기운이 감도는 숨은 동굴이 있다. 연화봉의 연화굴은 지질 전문가들도 잘 모르던 곳"이라는 안내를 본 기억이 있다. 이것에 대한 설명을 보면 여러번의 화산 분출로 다양한 형태의 절리가 형성이 되었으며, 가운데에 있던 수직절리가 다른 절리보다 빠르게 침식되었으며 그 침식된 틈을 이용하여 물이 흘러 통로형 동굴이 형성되었다고 한다.

대전사로 내려가다 보면 이제는 필요 없는 바위가 있다. 아들바위라고 한다. 이곳 바위 위에 돌을 올려놓으면 아들은 낳는다고 한다. 남아선호 사상이 극에 이르렀을 때 이러한 것이 있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대전사로 가면서 기암이 그대로 모습을 보여준다. 2개의 봉이 보인다. 다섯 손가락에 2개만 보인다. 대전사에서 다시 뒤를 돌아보고 기암을 본다.

대전사를 지나서 주차장으로 가서 자동차를 회수하고 집으로 돌아간다. 올 때에도 햇빛을 보고 갈 때에도 햇빛을 본다. 선글라스를 계속 사용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어떻게 동쪽으로 왔다가 다시 서쪽으로 간다. 같은 고속도로인데 최고속도가 차이가 난다. 당진 영덕 간 고속도로는 대전까지 110km 청주에서 상주까지 110km 상중에서 영덕까지 100km다 어떻게 고속도로의 환경이 변화되지 않았는데도 다르게 나올까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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