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악산이다. 작년에 갔다 왔는데 시간이 없어서 많이 둘러보지도 못하고 왔다. 그래서 모악산을 다시 간다. 저번에는 혼자서 산행을 했는데 이번에는 지인 2명이 같이 참석한다. 이런저런 이야기도 할 수 있고 산행 중 궁금한 것도 이야기할 수 있어서 좋다. 산행을 하면서 혼자서 하면 혼산이라고 한다. 혼산은 너무 빨리 걷는다. 생각보다 빨리 걸었다고 볼 수 있다. 혼자서 구경하여도 재미가 없고 혼자서 걷다 보니 아무 생각 없이 걷기만 해서 그런 것 같다. 인생을 살면서 혼자서 사는 것이 좋다고 하는 사람도 있지만 나는 둘이서 같이 살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혼자서 살면 조용하게 사색을 할 수 있으나 의논할 사람도 없고
혼자서 살면 혼자서 모든 것을 결정할 수 있으나 그 결정에 대한 책임을 혼자서 부담하여야 하고
혼자서 살면 혼자서 식비 부담이 적게 나오나 혼밥의 쓰라림을 맛보아야 한다.
혼자서 살면 건강할 때는 문제가 없으나 아플 때는 같이 아플 사람이 없어서 싫다.
오송역에서 모두가 모였다. 산으로 가는 버스는 아니고 산으로 가는 자동차를 타고 이동한다. 경부고속도로, 호남지선 고속도로를 거쳐 호남고속도로를 달린다. 산과들이 있던 풍경이 이제는 들만 보인다. 산골에서 태어난 내가 이를 들판을 보면서 생각하는 것은 우리 아버지도 이런 들판에서 농사를 지었으면 그렇게 고생하지 않았을 것인데 산골에서 얼마 되지 않은 논밭에서 식구들을 위하여 그렇게 힘들게 일하셨다는 것을 생각하니 아련할 뿐이다.
호남고속도로에서 금산사 IC를 나오면 만나는 도로에서 바로 좌회전하여야 한다. 금산사 IC는 사람들이 사용하는 것이 그렇게 힘들게 만들어 놓았다. 고속도로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방향을 전환해야 하는데 그것이 쉽지 않다. 또 IC를 들어가는 것도 쉽지는 않다. 너무 짧다. 도로에서 IC 진입로를 들어서자마자 하이패스 구간으로 차선 변경을 하여야 한다. 금산사 방향으로 길을 잡고 가는데 1번 국도와 만나는 지점에서 또 약간 복잡하게 지나간다. 내비게이션 없이 이정표만 보면 지나갈 수 있어야 하나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아쉽다.
예전 국토종단을 할 때 이곳을 지난 기억이 있다. 도로를 지나자마자 있던 3.1 운동 기념탑이 있었는데 어디쯤 있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지만 그 도로를 지나서 금산사 방향으로 방향을 잡는다. 금산교회가 있고 도립공원 주차장이 있다. 금산교회는 우리 시대에 오래된 교회 모습을 가지고 있는 교회인 만큼 하산 후 복귀 시에 보기로 하고 주차장에 주차를 시키고 산으로 간다. 산은 마음의 고향이다.
오늘은 유스호스텔 옆으로 난 길을 걷다가 화율봉으로 올라간 후 배재, 장근재를 거쳐서 남봉, 정상, 북봉, 북강 3층석탑, 금산사 이렇게 등산을 할 것이다. 이렇게 걷는 길이 가장 길다고는 할 수 없지만 산을 즐길 수 있고 금산사도 마음껏 확인할 수 있는 길이다. 누군가가 금산사의 문화재 관람료를 내지 않고 걷는 길이라고 하였다. 사람들이 이 길을 그렇게 많이 찾지는 않는다. 모악산을 오르는 사람들은 인구가 많은 전주, 완주 쪽에서 오르고 김제 방향에서는 금산사를 가는 것이 주목적이라서 그런 것 같다.
금산사 문화재 관람료가 3,000원이다. 오늘 3명이서 이렇게 등산을 하니 9,000원을 내지 않았다. 그것으로 주차장 주변에 있는 음식점에서 식사를 하기로 했다. 화율봉을 오른다. 등산로는 너무 좋다. 전형적인 흙산이다. 화율봉이 600m가 정도 거리가 약 3km 정도 되어 1시간에서 2시간 정도 걸린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면서 걷다 보니 1시간 30분이 걸렸다. 화율봉을 오르면서 만난 사람은 1명이다. 그렇게 많은 사람이 걷지 않는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것도 우리를 앞선 사람을 만난 것이다. 어르신이다.
어르신이라고 이야기하니 생각이 난다. 우리가 나이가 들면서 어르신이라고 이야기를 들으면 언제쯤 그것을 실감할 것인지 그리고 내가 어르신이 된 것인지 모르게 어르신이 된다. 그 어르신이 되면 내가 벌써 그렇게 되었나 하는 자괴감이 들기도 하고 나르 인정하지 않는다. 오늘 지인이 그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서울에서 길을 물어보는 사람이 어르신 이렇게 불렀다고 한다. 본인은 그것을 인젛하지 않았지만 그렇게 된 것에 쑥스러운 것 같다. 어떻게 그것을 판단하는지 모르겠다. 아들과 딸이 결혼을 하고 손자 또는 손녀를 보았을 때 어르신이 된 것이 아니라 외양에서 어르신의 모습이 되었을 때 그렇게 되지 않나 싶다.
화율봉까지 오르는 길은 아무것도 볼 수 없다. 사실 모악산 정상까지 가면서 주변을 볼 수 있는 것은 거의 없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화율봉 정상에서 인증샷을 남기고 바로 옆 무덤이 있는 곳에서 모악산 정상을 바라볼 뿐이다. 이제는 또 볼 수 없다. 정상까지 갈 동안 모악산 정상은 나무 사이로 볼뿐이다. 화율봉을 내려오자마자 있는 안내지도와 이정표의 거리가 다르다. 이것을 두고 왈가왈부하였지만 안내지도가 틀리고 이정표의 거리가 정확했다. 안내지도를 수정할 필요가 있을 것 같다.
우리와 우리가 만난 어르신이 계속 만난다. 우리가 앞서다가 쉬고 있으면 어르신이 앞서고 어르신이 쉬고 있으면 우리가 앞선다. 배재에서 같이 쉬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한다. 이 등산로가 힘든데 잘 걷는다고 하신다. 어르신이 남봉을 바로 앞에 두고 식사를 하여서 우리와 혜어졌다. 배재에서 내려가면 청룡사라는 사찰이 있고 그곳이 위험구간이라 한다. 배재는 옛적에 배가 넘어 다녔다는 전설 때문에 배재라는 이름이 붙여졌다. 장근재까지는 오르고 내리고가 연속이다. 그렇게 힘들이지 않으면서 나무로 된 터널 속을 걷는다. 그렇다고 바람이 없는 것도 아니어서 시원하게 걷는다고 할 것이다. 모악산 등산로는 그냥 흙길을 사뿐사뿐 걷는 길이고 어느쯤에서 오르고 내리고 하는 것이다. 장근재에서 남봉까지는 계속 오른다. 장근재는 소나 말이 짐을 싣는 길마형국이라서 길마재라고도 하며, 미치(美峙)라고도 한다.
길 주변에 김제시에서 예쁘게 휴식할 수 있는 의자를 만들어 놓았다. 어떤 곳은 네모지게 어떤 곳은 동그랗게 어떤 곳은 하트 모양이다. 이곳에 앉아서 휴식을 취한다. 남봉을 가까이 두고 동그란 똥이 등산로를 메우고 있다. 곳곳에 동물의 똥이 있다. 처음에는 토끼똥이다 하였는데 그것보다는 크다. 이곳에 자주 오르시는 분을 남봉 근처의 전망대에서 만났다. 이곳에 염소농장을 탈출한 2마리의 염소가 있으며 염소가 있다고 한다. 염소똥이 정상 부근에 끝이 없게 있다. 여름철이 지나면 큰비에 쓸려내 가거나 큰 눈에 의하여 그것이 정리가 될 것인데 아직이다. 전망대에서 금산사를 내려다보고 멀리 김제평야를 둘러본다.
남봉을 지난다. 남봉은 헬기장이다. 헬기장을 지나서 중계탑이 있는 정상까지는 우회하여 접근을 한다. 데크가 비스듬하게 놓여졌있다. 계단이 비스듬하다. 방송국 안테나가 있는 곳이 개방이 되어 있다. 9시에서 16시까지 개방을 하는 것이다. 그 개방된 곳에 정상석이 있다. 그렇지 않으면 완주 쪽에 있는 송신소 울타리 밖에 있는 정상석을 활용하여 인증샷을 남겨야 한다. 정상에 오른다. 멀리 완주 땅을 바라보고 송신소 옥상에 올라 사방을 둘러본다. 전주를 찾아본다. 망원경이 설치되어 있어 둘러보지만 그렇게 전주를 잘 알지도 못하면서 전주의 이곳저곳을 찾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래도 토론을 하면서 찾아본다. 어렵다. 내가 사는 곳이 이곳이라면 쉽게 확인이 가능하겠지만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그곳에 어디쯤 무엇이 있다고 안내판을 설치하면 더욱 좋을 것 같다.
송신소를 우회하여 송신소를 개방하지 않으면 이용하여야 하는 정상석을 찾아본다. 함박꽃이 피어 있다. 이제 하산을 한다. 데크가 잘 놓여 있다. 데크가 없다면 이 등산로는 황폐화되었을 것이다. 북봉에서 금산산 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시간이 여유가 있으면 매봉까지 가서 더 크게 돌겠지만 오늘은 아니다. 심원암을 지나는 길을 간다. 이제는 하산이다. 쪽동백이 흐드러지게 피어 있다. 모악산에만 있는 꽃이 아니지만 아름답다. 쪽 동백이 떨어져 있는 냇가에서 꽃 잎이 하나둘 날리는 것을 보았다.
북강3층석탑이 있는 지점까지 능선을 타고 내려가다가 왼쪽으로 방향을 잡는다. 북강3층 석탑이 있다. 절은 없고 석탑만 있으며 자동으로 안내하는 소리를 들을 뿐이다. 석탑을 돌면서 소원을 빌고 내려간다. 절터가 보이는데 그곳에 있던 암자가 오랜 세월이 지나면서 유실되고 아래에 암자가 들어서 있다. 심원암에서 얼마 되지 않은 부조를 보고 아래로 내려간다.
심원암을 지나면서 여유가 있다. 이제는 포장도로로 내려간다. 사람들이 드문드문 걸어 다닌다. 모악산 마실길이 있다. 이 길을 걷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갈림길에서 연리지가 있는 곳으로 갈 수 있으나 생략하고 그대로 금산사로 간다. 금산사 가는 길 주변에 박쥐나무가 있다. 아직 꽃이 피어 있지 않다. 식물학자가 옆에 있으니 식물에 대하여 이것저것 이야기한다.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모르겠는데 이분들은 식물에 대하여 해박하다.
금산사가 있다. 금산사는 후백제의 견훤이 유폐되었던 곳으로 알려져 있다. 금산사에 유명한 것이 미륵전이 있다. 3층으로 된 누각이 있다. 우리나라에 목재로 된 건축물 중 2층 이상의 오래된 건물은 거의 없는데 이곳에는 있다. 한 여름이 아직 아니지만 그늘을 찾는다. 보리수나무 아래에서 금산사의 이야기를 듣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금산사는 설악의 백담사, 속리산의 법주사 등과 같이 넓은 평지에 가람이 배치되어 있다. 금산사를 알리는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금산사는 삼국시대 백제 법왕 원년(599)에 창건되었으며, 766년 진표율사는 미륵장육존상을 세우고 미륵전을 지어 점찰법과 미륵십선계로 민중을 교화하였고, 1079년(고려 문종 33) 혜덕왕사 소현 화상이 대사구와 봉천원구, 광교원구 등 총 88당 711칸의 대가람으로 중창한 후 35부 353권의 불교전적을 판각하여 유통시킴으로써 유가종찰과 미륵성지의 위상을 한층 격상시켰다고 한다. 1592년(조선 선조25)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당시 뇌묵 처영대사는 천여명의 의승군과 함께 왜군을 격퇴한 혁혁한 전공을 세웠고, 1635년(조선 인조13)수문대사가 지훈, 덕행, 천성, 응원, 학련, 대전, 운근 등 15명의 화상과 함께 35년간에 걸쳐 대적광전과 미륵전, 대장전 등 대사구역을 복원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고 전하고 있다.
사실 김제는 종교와 관련된 시설이 많다. 불교문화재로 금산사가 있고, 기독교 문화재로 금산교회가 있으며, 천주교 문화재는 수류성당이 있으며, 동학과 관련하여 원평 집강소가 있다.
모악산 아래에는 불교, 개신교, 천주교, 증산교, 천도교 등 종교의 성지가 오롯이 남아 있다. 불교를 대표하는 금산사와 귀신사, 개신교의 금산교회, 천주교의 수류성당, 증산교의 동곡약방, 천도교의 원강집강소가 그것. 종교도 다른 만큼 둘러보는 느낌이나 풍광도 사뭇 다르다. 종교의 편견을 걷어내고 둘러보면 더없이 아름다운 여정이 될 수 있다.
사찰을 무료 관람하였다. 6시간을 걸어서 무료 관람한 것이다. 그리고 불교신자는 신발을 벗고 들어가서 인사를 한다. 나는 그냥 문화재를 보고 지나칠 뿐이다. 절마당을 들어오면서 합장을 하는 신자도 있다. 종교시설이면서 문화재인 것이다. 금산사 일주문을 나오면서 오른쪽에 나무 그늘에 휴식을 취하고 있는 사람들이 여유롭다. 생뚱맞을지 모르지만 인공폭포도 있다. 인공폭포가 자연 암석지대를 이용하여 시원하게 물을 아래로 내리치고 있다. 주차장 인근에 있는 음식점에서 오늘 저축한 돈으로 음식을 사 먹는다. 주차장에는 흥을 돋우기 위한 노래 무대가 있고 끊임없이 노래를 부르고 있다.
주차장에서 금산교 회로 이동하고 금산교회 앞에 자동차를 주차시키고 금산교회 안을 들여다 본다. 몇 년 전에 이곳에 왔을 때나 지금이나 비슷하다. 금산교회는 우리의 시대상을 그대로 담고 있다. 우리의 과거에는 남녀칠세 부동석이었다. 그래서 ㄱ자 모양의 교회가 설치되어 있다. 목사님을 중심으로 안쪽은 남자 한쪽은 여자 성도들이 예배를 드리는 교회였다. 목사님은 꼭지점에 서서 예배를 인도하고 남녀 성도들은 서로를 볼 수 없는 구조다. 오래된 교회다. 이런 교회의 모습을 갖고 있는 곳이 몇 남아 있지 않아서 이곳 김제의 문화재로 관리하고 있다.
김기만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