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월부터 주말에 가고픈 산이 있었다. 하지만, 주말마다 비가오고 다른 일정이 겹쳐서 가지 못한 산이 소요산이다.
그 산이 서울근교 산이다. 근교라 하기에는 어려움이 있지만 동두천시에 있는 소요산이 있다. 근교라 하기에 어려움이 있다는 것은 전철로 서울역에서 1시간 30분 정도 소요되기에 더욱 그렇다. 서울역에서 전철을 타고 1시간 이상을 이동하다 보면 지치지만 그대로 전철역에서 내리자마자 올라설 수 있는 산이 소요산이다.
소요산이 그렇게 멀다고 느껴지는 것은 수도권 전철 1호선의 출발지로 나타나기 때문이다. 그리고 전철을 탑승해보면 서울역에서 1시간 30분 소요된다. 반대로 소요산에서 등산을 하고 전철을 탑승하였을 때 자리를 잡고 눈을 감았는데 어느쯤 지났을 까 눈을 떠보니 회기역이었다. 그만큼 많이 휴식을 취하였는데도 절반밖에 이동을 못하였던 것이다. 결과론적으로 주중에는 급행전철을 운영하고 있다.
소요산은 아들 조선태종 이방원에게 버림받은 조선태조가 한때 말년을 보냈던 곳으로, 과거 태조가 머물던 행궁 위치에 기념비가 있다. 그런데 마음에 들지 않는다. 이곳에 식민사관이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 조선태조 행궁지가 정확한데 그것을 낮게 표현하였다. 식민사관에 조선을 이조라 격하 했는데 그것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소요(逍遙)는 '유유자적하다', '한가롭게 걸어 다니다', '여기저기 방황하다'라는 뜻이다. 화담 서경덕, 봉래 양사언, 매월당 김시습 등이 이 산에서 '소요'했다 하여 소요산이란 이름이 붙었다는 말이 있으나 이것은 야사라고 한다. 산 정상인 의상대(587m)와 하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 나한대, 공주봉이라 불리 우는 여섯 개의 봉우리가 원형을 이루고 있어 산행의 들머리와 날머리 같은 매력을 지니고 있다. 소요산에 가보면 또 있다.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이야기가 있다.
1호선 전철을 타고 이동하면 등산이 가능한 산은 서울역을 중심으로 북쪽으로 대부분 있는데 소요산, 도봉산, 수락산이 있고 남쪽으로는 삼성산, 수리산이 있다. 북쪽 끝에 있는 산이 소요산이고 중간지역에 있는 산이 삼성산과 도봉산이라고 하여야 할 것이다. 오늘은 북쪽 끝에 있는 산으로 가 보는 것이다.
아침부터 일어나 움직인다. 소요산까지는 장시간 소요되는 만큼 30분에 1대씩 움직이는 전철을 보내버리면 30분을 기다려야 하는 만큼 최대한 서두르는 것이다. 왼쪽의 도봉산이 유혹을 하지만 지나간다. 오른쪽에 있는 수락산도 지나친다. 그리고 양주역을 지나면서 불곡산이 눈앞에 있지만 시내버스를 탑승하여 이동하여야 하는 만큼 지나친다. 역간 거리는 멀다. 그리고 전철은 달린다. 동두천중앙역을 지나고 동두천을 지나고 소요산역에 도착하였다. 소요산역은 현재 경원선 동두천에서 연천 간의 복선화 공사를 시행하고 있어 임시가건물을 사용하고 있고 들어온 차가 10분 정도 있다가 다시 회송하여서 인천으로 간다. 동두천에서 탑승하고 온 자하철 미화원들이 지하철을 정리하고 있다.
소요산역을 나온 등산객과 탑승객들은 도로 앞에서 도로를 건너기 위하여 기다리고 있다. 등산객들은 배낭을 메고 있다. 내가 소요산을 찾은 것은 10년 전이고 지금은 많은 변화가 있다. 그래서 조심조심 등산로 초입을 찾는다. 소요산을 오르는 등산일기도 찾아보고 유튜브도 찾아보았다. 그리고 현장에서 직접 다가선 것이다. 오른쪽으로 올라갈 것인지 왼쪽으로 올라갈 것인지 결정을 하여야 한다. 등산일기 등을 보고 동두천시에서 알려주는 등산로상에서 왼쪽으로 올라가라고 권고하고 있어서 그것을 따른다. 하지만, 그 등산로 권고는 자재암을 거치는 것이라서 소요산 입구에서 출발하는 등산로를 찾아본다. 소요산역을 나와서 소요산 입구에서 등산로 입구를 찾았다. 오른다.
이것이 최선인지 궁금할 뿐이다. 하산할 때 가파른 길이 싫다면 소요산 입구에서 공주봉으로 바로 오르는 길을 찾아야 한다는 것을 확인하였다. 왼쪽에서 시계방향으로 걷는 것은 하산코스로 적절하다고 소요산을 오르고 내린 후 내린 결정이다. 항상 모르는 길을 걸으면서도 최종결정을 할 때 고민을 하였지만 오늘은 약간은 아쉬운 결정을 하였지만 마지막에 자재암을 들려야 하기에 결정에 후회는 하지 않았다.
왼쪽에서 출발하여 오른 후 이 등산로가 제대로 되었는지 여부는 정자를 확인하면 된다. 정자까지 오르면서 등산로는 이곳저곳으로 나 있다. 야자매트가 곳곳에 설치돼 있다고 보면 될 것이다. 야자매트를 따라가면 아래로 내려갈 수도 있고 옆으로도 갈 수 있다. 정자에서부터 등산로는 편안하다고 할 수 있다. 이곳에도 백운대가 있어 이름하여 하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이다. 하백운대까지 걸어가면 그다음부터는 400m 정도의 거리를 두고 중백운대가 있고, 그리고 조금 더 가면 상백운대이다. 소요산은 상백운대까지 가는 능선과 나한대, 의상대, 공주봉의 능선으로 구분되며 칼바위 능선이 중간지역을 형성하고 있다. 하백운대를 바로 앞에 두고 정상을 거쳐서 가는 데 밧줄을 잡고 내려가는 바위가 있다. 바위가 있는 지역을 회피하고자 하는 경우에는 우회로를 이용하면 된다. 백운대라는 것이 하얀 차돌바위가 많은 능선이라고 보면 될 것이다. 대부분 하얀 차돌바위가 능선 곳곳에 있다.
하백운대에서 중백운대까지 거리는 300m 남짓이다. 그렇게 먼 거리는 아니지만 봉우리가 있고 그것을 오르는 것이다. 이능선은 하백운대, 중배운대, 상백운대라는 봉우리가 이어지는 것이다.
하백운대를 지나고 중백운대를 지나는 데 중백운대라는 표지판 근처에 나무들이 아름답게 바위틈에 자리 잡고 있다. 흰 바위 위에 그렇게 푸른 나무가 자리를 잡는 것이 안쓰럽지만 경이롭다. 상백운대에서 바라보는 경치가 좀 있다고 하는데 현재는 소나무가 무성해져서 경치가 보이지 않는다. 상백운대에서 예전에는 소요산 정상을 바라볼 수 있고 경치가 멋있다고 하지만, 지금은 아니라는 것이다.
상백운대에서 칼바위봉이 있는 곳으로 내려가는 길이 가파르게 내려간다. 그리고 칼바위봉이 위험하여 우회하는 길을 만들어졌다고 안내되어 있다. 위험한 길이지만 High Risk High Return이다. High Risk High View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리고 소요지맥으로 가는 길이 있다. 10여 년 전 왕방산에서 출발하여 소요지맥을 걸어서 이곳으로 온 기억이 있다.
왕방산에서 시작하여 국사봉 그리고 소요산 칼바위봉이다. 3명이서 걸으면서 더위에 지친 기억이 있다. 그때 당시 생수 준비를 많이 하지 않아 어려움을 겪은 기억이 있다. 그때는 5월이었는데 지금은 6월이다. 오늘은 내 짝꿍이 이것을 미리 알았는지 생수병을 2병이나 챙겨주어 아무 걱정이 없었다. 나한대, 의상대로 오르기 전 마지막으로 내려간다. 선녀탕으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있다.
소요산이 2개의 봉우리가 있다고 보면 첫 번째 봉우리는 상백운대이고 두 번째 봉우리는 소요산 정상인 나한대, 의상대이다. 나한대를 오르는 길이 가파르다. 그 가파름을 데크로 커버하고 있다. 예전에 데크가 없을 때에는 가파른 산길이었는데 이제는 계단을 오른다. 그 계단 숫자가 만만치 않다.
나한대를 오르고 다시 살짝 내려갔다가 의상대를 오른다. 그 의상대가 나한대를 지나고 내려가고 올라가는 것인데 오르는 것이라고 느끼지 못하고 오른다. 정상이다. 그 정상석이 예전의 정상석도 있고 현재의 정상석도 있다. 멀리 감악산 정상도 보이고 그 앞에 있는 마차산도 보인다. 그리고 내가 돌아온 하백운대, 중백운대, 상백운대도 보인다. 그리고 내려가야 할 공주봉이 보인다. 예전에는 공주봉을 거치지 않고 샘터하산로로 하산하였는데 이번에는 공주봉을 거쳐서 하사하기로 한다. 공주봉은 원효대사와 요석공주의 전설을 그대로 표현한 것이다.
공주봉으로 가는 길은 오르기 전까지는 평탄하고 길이 좋다. 공주봉을 오르면서 데크를 오르고 그 마지막에서 뒤를 돌아본다. 의상대가 그대로 보인다. 그리고 다시 오른다. 공주봉 정상석을 배경으로 하늘을 쳐다보니 너무 이쁘다. 다시 동두천을 보니 그대로 보여준다. 우리나라 어디에서도 산 위에서는 보는 도시는 그 모양이 좋다.
이제는 하산이다. 오늘은 그대로 소요산역으로 가고 쉽지만 그래도 소요산에 왔는데 자재암을 지나칠 수 없다. 그래서 하산코스를 자재암을 경유할 수 있는 코스를 선택한다. 다만, 소요산역으로 내려가는 코스가 가파른 만큼 겨울에는 주의하라는 안내표지가 붙어 있다. 그래도 일주문 방향으로 하산하는 코스도 가파른 것은 어쪌수가 없다. 이 코스를 올라오는 등산객이 말하기를 이코스가 감악산 등산하는 것에 비하여 짧지만 쉴틈이 없이 올라야 하는 구간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사실이다. 끊임없이 가파르게 내려간다.
가파름의 끝이 나는 지점은 돌탑이 있는 곳이다. 그전에 주변을 돌아볼 수 있는 바위가 있다. 그곳에 위험이 있다고 안내표시가 되어 있다. 그리고 돌탑이 있는 곳에서 가파름이 사라지고 계곡의 물이 보인다. 그 계곡에서 이제 세수를 하고 내려간다. 머리도 감고 내려간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자재암과 소요산역 그리고 정상 방향 삼거리가 나타난다. 삼거리 바로 전의 계곡이 아닌 자재암이 있는 계곡으로 올라간다. 거리는 350m 남짓이라고 한다. 그래서 자재암 쪽으로 올라가 본다.
자재암은 소개되어 있는 글을 보면 "신라 선덕여왕 14년(645) 원효대사(元曉大師)가 창건한 유서 깊은 사찰로서 고려 광종 25년 (974) 왕명으로 각규대사(覺圭大師)가 중창했으며, 의종 7년(1153) 화재를 당해 이듬해 각령선사 (覺玲禪師)가 대웅전과 요사 일부를 중건(重建)했다. 조선 고종 9년(1872) 원공선사와 제암화상이 퇴락된 이 사찰을 44간의 건물로 복원하고 영원사(靈源寺)라 개칭했다. 1907년(순종 원년) 정미의병 때는 이곳이 의병 활동의 근거지였던 탓으로 일본군의 공격을 받아 불태워졌다. 이후 제암화상과 그의 제자 성파(性波) 스님이 복원하여 원래 이름인 자재암으로 고쳤다. 그러나 한국전쟁으로 또다시 폐허가 되어 1961년 대웅전, 1971년에 요사, 1974년에 포교당과 원효대, 1977년에는 삼성각을 각각 건립하였다."라고 되어 있다.
자재암을 올라가는데 금강문이 있고 원효대가 있다. 금강문에 대한 설명문을 보면 매월당 김시습이 이곳의 아름다움 때문에 그렇게 찾았다고 한다. 원효대에서 원효대사가 이곳에서 수행을 하였다고 한다. 그리고 또 올라간다. 백팔번뇌 계단을 지나서 자재암으로 들어간다. 자재암 옆에 폭포가 멋진 풍경을 자아내고 있다. 최근에 비가 온 결과일 것이다. 여름철에는 수량이 풍부하여 시원한 맛을 더 낼 것이다. 겨울에는 겨울답게 그 폭포에서 얼음 폭포를 만들 것이다. 바위 옆에 시원하게 물줄기를 품어내지는 못하지만 물을 품어내고 있는 절집 약수터가 있다.
자재암을 본 것은 문화재를 관람한 것이다. 이제는 하산을 한다. 그리고 이곳으로 하산하는 사람들과 어울려서 내려간다. 일주문을 지나고 계속 내려간다. 계곡 이곳저곳에 여름철을 맞은 사람들이 계곡물 옆에서 시원함을 느끼고 있다. 그리고 이곳에 그렇게 많은 어르신들이 자리를 잡고 앉아 있다. 동두천에서 오신 분들로 보이지 않고 서울에서부터 이곳까지 온 것으로 보인다. 그 결과 소요산역에 탑승하는 대부분 사람들이 어르신들이다. 전철요금이 무료인 관계로 이곳까지 소일 삼아 온 것으로 보인다. 그렇게 자재암입구까지 걸어서 올라가고 내려가면서 건강을 챙기니 사회적 비용은 줄어들 것이다.
노인들이 집안에서 할 일이 없으면 사회적 비용이 증가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것이 안되니 문제다.
김기만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