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대만은 왜 반일감정이 거의 없을까

by 김기만

대만은 우리보다 대일 감정이 미약한 것은 무엇 때문일까? 폭스콘의 회장의 경우 ‘일본은 한국과 다르게 뒤통수를 치지 않는다’고 발언을 할 정도로 일본에 대하여는 우호적이다. 그는 한국에 대하여 ‘일본과 손잡고 5년 안에 삼성전자를 꺾겠다’고 2012년 발언하기도 했다. 대만은 청일전쟁의 패전에 따라 일본이 지배하기 시작하여 1945년 일본이 패망한 후 독립하였으며, 중국의 국공전쟁에서 패한 국민당 정부가 타이완섬으로 이동하면서 설립된 국가이다. 그 결과 일본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거부감이 한국보다 미약한 것이 사실이다.
대만은 우리보다 더 일제강점기(50년)을 보냈음에도 우리나라처럼 일본을 적이나 라이벌로 생각한다기보다 항상 동경의 대상으로 생각한다. 일본의 대만 점령 초기에는 무장봉기도 많이 일어났고 일본이 군을 동원하여 진압을 하였다. 일본의 대만 점령은 중국 본토를 공격하기 위한 전초기지적 성격이 강하였고 한국 점령은 그들의 지속인 정한론에 기초를 하였고 고려, 조선을 거치면서 조선보다 열악하였던 문명이 서구 문명의 조기 도입으로 이를 극복하면서 우쭐함도 자리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대만의 경우 중국 대륙에서 이주해온 인구 대비 대만 섬에 살던 인구 비중이 높았으나 국공내전 이후 중국 대륙에서 이주한 인력이 급성장하여 실제로 일본의 지배를 받은 사람들이 주류가 아닌 비주류에 있었고, 일본의 지배를 받든 시기에도 우리나라의 제주와 같이 남쪽에 떨어진 섬에 대한 본토 정부는 철저하게 도외시하여 대만 주민들은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낙후된 상태가 유지되었으나 일본 강점하에서는 한국과 마찬가지로 수탈 등을 위해 철도건설 등이 있었지만 그들에게는 중국 본토 정부보다 혜택이 있어 일본에 대한 호의적인 감정을 가지게 되었다고 본다. 그래서 현재에도 80대 이상에서는 일본강점기 시절에는 호황기를 유지하였다고 그때를 향수한다고 한다.
일본의 패망 후 국공내전에서 패전한 후 대만으로 이주한 중국 본토의 국민당 정부는 대만 원주민에 대한 탄압을 실시하여 정부에 대한 거부감이 일본에 대한 호의적인 시각을 가졌다고 본다. 중국 본토에서 이주한 이주민의 경우에도 지배계층으로 있어 일본의 수탈 등을 경험하지 못한 주민의 결과로 본다.
나의 견해를 추가한다면 대만이 국공내전에서 패전한 후 대만으로 이주한 중국 본토 이주민을 중심으로 중국 본토의 공산당에 대항하기 위하여 일본 등을 우호세력으로 유지하기 위하여 대일 감정을 최소화시킨 결과로 볼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자기들의 생존을 위하여 지금까지 식민지 지배에 대한 부채를 뒤로 미루고 강압적인 정책을 50년 가까이 유지한 결과 일본의 아픈 상처를 안고 있는 부분이 희석된 결과라고 본다. 아울러 일본에 협력하였든 협력자가 정부 요직에 있었든 한국과 달리 본토에서 이주한 국민당 정부 관계자가 정부 요직에 있어 한국과 같이 일본이 만들어 놓은 행정, 사법 등이 유지되지 않은 결과도 있지 않을까 본다. 한국전쟁 등에 있어서도 일본 사관학교 출신들이 주로 한국군의 요직이었지만 대만의 경우에는 본토 출신의 주요 인사가 주요 요직을 담당하였다.
특히, 대만으로 중국 본토의 한족이 이주한 후 한국의 4.3과 같은 사건이 발생하였으나 중국 국민당 정부는 폭동으로 간주하여 강제진압을 하여 현 정부에 대한 반감이 있어 더욱더 대일 감정은 긍정적으로 변하였다고 한다. 제주에서 4.3 사건은 아픈 상처이며 아직 치유되지 못하고 있다. 대만도 그러한 상황이 지속하고 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나는 대만의 식민지 지배 현황을 보았지만, 그들이 일본에 친화적인 것에 대하여 아직도 이해하지 못한다.

keyword
김기만 여행 분야 크리에이터 프로필
작가의 이전글부작용만 보고 놀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