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칸막이 문화가 우리의 갈등을 지속시킨다.

by 김기만


갈등조정이란 명제 속에서 갈등이 지속적으로 발생할 수밖에 없는 구조를 안고 있는 우리 사회는 갈등 조정은 참으로 어려운 난제라 할 수 있다. 한국사회에서 입장과 감성에 호소로 갈등을 지속적으로 확장시키는 것이 현실이라고 할 수 있다.

공무원은 관료로서 한국에서는 정치적 중립을 지켜야 하는 의무를 법률에 명시되어 있고 이를 지켜야 한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매 5년 대통령은 교체되고 영혼이 없는 공무원은 그에 부응할 뿐이다. 이것이 현실이다. 공무원 자신은 어떠한 욕심도 없다. 그런데, 그가 속해 있는 조직이 문제다. 조직의 칸막이 안에서 공무원은 움직인다. 아니 모든 사람들이 칸막이 안에서 움직인다.

공무원은 어떤가 중립적인 입장으로서 관료는 굉장히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조금만 옆으로 돌아보면 그렇지 않다. 공무원, 공공기관 종사자들은 순환근무가 원칙이다. 순환근무에 따라 해당 부서에 속한 기간은 길어야 2년 이내이다. 하지만, 모두들 그 조직에 영원히 근무할 것처럼 해당부서를 위하여 타 부서와 업무조정, 이해관계 다툼에서 이기려고 목숨을 건다. 해당 기관의 전체적인 이득이 목적이 아니다.

이것이 모두 조직에 적용된다. 국가의 이익보다는 자기 조직의 이익에 몰두한다. 국가보다는 자기 조직이 이익을 얻기 위하여 매국행위도 서슴지 않는다고 볼 수 있다. 이 결과 일본의 식민지 시대를 겪었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는 노동자의 입장, 기업가는 기업가의 입장, 사회운동가는 사회운동가의 입장이라는 칸막이 안에 매여 있다고 할 수 있다. 노동자는 기업이 망하여도 좋다. 기업이 폐업신고를 하면 노동조합은 해당 기업이 위장 폐업하였다고 하면서 기업가에게 기업을 계속하면서 자기들을 고용하면서 지속적으로 사업을 하라고 한다. 사실 최근에 고공농성을 하는 것도 그렇다.

주식회사는 유한회사다. 자기의 주식이 들어가 있는 만큼 해당 기업체에 대한 책임을 지는 것이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무한책임이다. 기업가는 무한책임을 지고 기업을 운영하여야 한다. 우리나라 국민들이 생각하는 도덕성을 갖고서 기업가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그러한 기업가는 그렇게 많지 않다. 사실 우리는 21세기에 살면서 미국의 문화를 무척이나 좋아한다. 미국의 기업가들이 20세기 초까지 미국의 노동자들에게 어떻게 했는지 알면 너무 실망하지만 현재의 기업가들에게 환호한다. 우리는 20세기 초(1910-1945)에 식민지를 지배를 받았으며, 중반에는 미군정(1945-1948)과 동족 상전(1950-1953)을 겪었으며 본격적인 산업화는 1960년대 이후에 시작하여 약 50년의 역사를 갖고 있지만 우리네 칸막이 역사에서는 200년 이상된 서구의 자본주의와 같은 역사를 원한다. 아울러, 자본가들은 그들의 칸막이 안에서 그들에게 유리한 일본의 자본가적인 입장만 피력을 한다. 일본은 자본주의라고 보기보다는 국가자본주의에 가깝운 것이 사실인데 말이다. 일본 도요타자동차 노동자들의 임금이 현대자동차 노동자들의 임금보다 낮다고 설명하면서 그들의 생산성이 우리들보다 높다고 하는데 그 이면을 들여다보지 않는다. 그들의 사회복지 등은 우리들보다 잘되어 있기 때문에 가능함에도 말이다. 영국의 노동자들의 평균 급여가 우리보다 적다. 하지만 그들의 생활비는 우리들보다 적게 들어가는 사회복지망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북유럽의 다양한 사회복지정책의 좋은 면만 이야기한다. 그 이면에 높은 조세부담률과 국민 제세 주의는 언급하지 않는다.

최근 이념의 칸막이 안에서 우리들은 갇혀있다고 할 수 있다. 모든 것을 이념의 잣대를 들어 된다. 그것이 지니는 가치는 생각하지도 않는다. 사람이 살고 죽는 문제도 이념의 잣대를 들어되고 있으니 참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언론인은 어떤가 중립적으로 보도를 하는 것이 중요하고 사실 그대로 보도하여야 함에도 언론인은 진실보도를 벗어나서 색안경을 끼고 보도를 하고 있고 그들의 조직 칸막이 안에서 보도를 한다.

자기의 동굴 속에서 벗어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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