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을 처마 밑에서 보내고 썩어가는 호박을 치우며
"잠깐만요, 엄마한테 물어보고 치우게 한쪽으로 모아두세요" 담벼락에 기대어 있던 파란 플라스틱 삽을 가져다 썩어가는 늙은호박을 치우려는 찰나 아내가 소리친다. 늙은 호박은 지난해 늦가을에 장모님께서 호박죽이라도 써드실 요량으로 밭 가장자리에 있던 것을 아랫채 슬라브 처마밑에 따다 놓았다. 아내의 지시는 썩기는 했어도 혹여 씨라도 받으시려나 하는 헤아림이다.
장인어른 9주기 기일을 앞두고 처갓집 주변을 정리하고자 허드레 신발장 옆에 추위와 비바람에 시달려 폭삭 주저앉아있는 쭈그렁 호박이 눈에 거슬렸다. 태어나 제 몫을 다하지 못하고 축 쳐 저 시큼한 냄새를 풍기는 썩은 호박을 치우면서 문득 호박에게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에게 보탬이 되려나 했더니 대우는커녕 제 몫도 못하고 생을 마감한 가련한 늙은호박이다. "이럴 거면 아예 심지나 말던지"하는 푸념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호박은 이처럼 시골에서 의붓자식 취급을 받는다. 호박은 땅에다 심어만 놓으면 아무 데서나 잘 자란다. 주인이나 객도 딱히 관심을 주지 않는다. 스스로 알아서 크고,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고 익어간다. 옆에 잡초가 있으면 잡초와 더불어, 나무가 있으면 나뭇가지를 타고 자란다. 그리고 늦가을까지 목이 빠지도록, 줄기가 말라비틀어지도록 주인의 손길을 기다린다. 호박꽃도 꽃이라고 봄철에는 반짝 벌과 나비의 관심을 받는다. 그도 잠시, 이후로 다른 동물들은 관심밖이다. 주인도 그렇다. 애호박과 호박잎에 대한 관심도 잠깐, 농산물 중 가장 늦게 거둬드리는 것이 늙은호박이다.
수박은 애수박이나 늙은 수박이 없다. 호박은 애호박에다 호박잎, 그리고 늙은 호박까지 쓰임새가 많다. 애호박은 부침이나 찌개를 해 먹기 위해 어릴 때 먹는다 쳐도 다 큰 호박을 왜 늙은호박이라고 칭할까? 호박 같은 인생이다. 호박은 참으로 못 생겼다. 울퉁불퉁한 굴곡에다 날것으로 먹을 수 없고, 익혀먹어야 하니 아삭한 식감이 없는 호박은 생식채소로는 애초부터 자격미달이다.
맛고 그렇다. 단호박이 '나는 안 그렇다'라고 우겨도 다른 호박들은 과일의 단맛에는 비교불가다. 눈물 쏙 빠지게 맵거나 차라리 시원하기라도 했으면 대우라도 받을 텐데 이도저도 아닌 맛이 하대말만 따라붙는다. '호박에 줄 긋는다고 수박 되냐'는 비아냥에다, 맘이 심란하면 '호박 같은 세상'이라 푸념하며 '둥글둥글' 살잔다. 못생김의 대명사가 된 호박은 이렇듯 기댈 곳도 마땅치 않다. 요즘 정치를 바라보는 걱정 많은 가련한 국민들처럼
사람도 나이 들면 추위를 많이 탄다는데, 호박은 더 그렇다. 못생겼어도 자존심은 높아 겨울에는 안방마님과 동거해야 살 수 있다. 그도 아니면 거실 한구석에라도 자리를 만들어주어야 한다. 추운데 오래 있어 감기라도 들으면 속아리를 하다가 썩어 문드러진다. 덩치값 못하고 속이 매우 여린것이 호박이다.
모든 생물을 호흡을 해야만 생명을 유지할 수 있다. 식물도 생명활동을 하려면 에너지가 필요하고 그 에너지를 얻기 위해서는 호흡을 한다. 호흡은 싹이 틀 때, 꽃이 필 때, 생장할 때 많이 필요하다. 지난해 봄 꿈에 부풀어 싹을 틔우고, 모진 더위를 이겨내며 성숙한 늙은 호박이 주인을 잘못 만나 제 구실을 하지 못하고 썩어났으니 호박 입장에서도 후회막급일게다.
다시 봄이 돌아왔다. 다음 달이면 또 호박 종자를 심을 때다. 노모와 장모님은 다시 호박씨를 심을 것이다. 몇 포기만 심으라 말려도 어느틈엔가 가장자리 공터에 빼곡히 심을게다. 그리고 애호박 몇 개 따고, 호박잎 몇 순 따서 드시고는, 늦가을이 되서야 뉘엿뉘엿 늙은 호박을 다시 거둬드릴 것이다. 매해 늙은 호박에 대한 몸 쓸 짓이 반복되는데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