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전적 에세이 같은 유홍준 교수의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나의 인생만사 답사기》, 부록으로 나의 글쓰기가 있다길래 서둘러 읽은 올해 세 번째 책이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는 읽지 않았지만, 답사기가 30년 이상 롱런할 수 있었던 필력을 확인하는 데는 충분했다.
읽고 나니 유홍준 교수가 라디오 시대는 백기완, 흑백 TV시대 황석영과 함께 컬러 TV시대를 주름잡는 '조선의 3대 구라'라는 데도, 이어령, 김용옥과 함께 '3대 교육방송'이라 세간의 지칭도 토를 달고 싶지는 않아 졌다.
얼마 전 모친과 사별한 유교수의 생애 이야기를 두루 살펴볼 수 있는 자전적 에세이 같은 산문집이다.
서울대 재학 시《창작과 비평》의 광팬인 그가 문재인정부 문화재청장을 역임한 터라 막연히 왼쪽으로 기울었겠지 했는데 생각보다 더 무게중심이 큰 것 같다. 제1장 인생만사와 제2장 문화의 창까지는 균형을 잡는 듯하였으나, 제3장부터 제5장까지는 당신이 왜 왼쪽을 향하는 사람인지를 보여준다. 오페라의 유도 동기와 비슷한 기법으로 말이다.
1987년 겨울 남도답사 때 황석영의 마이크를 이어받아 장장 8시간을 달린 그의 입담이 이야기꾼을 만들었다는데, 그의 언변은 타고난 것일까? '황홀한 말발'을 '환상적인 글발'로 옮겼기에 그의 히트작이 밀리언셀러이자 스테디 설레가 될 수밖에.
답사기가 30년 장수하는 이유를 '고무줄처럼 늘어 뜰이지 않고 그때그때마다 마감하고 다시 시작했기 때문'이라는 한다. 역시 기다림의 고수답다.
부록 나의 글쓰기는 생각보다 짧다. 원칙과 이론에 가까운 15가지 조언이다. 솔잎혹파리 피해로 황망한 만덕산의 봄을 그리면서 마치 외할머니 돌아가신 외갓집을 찾는 듯한 허전함으로 표현한 이미지 차용 기법과 고향에서 휴휴당을 마련하고 이장에게 마을 회비를 건네니 그에 얼굴을 쳐다보며 한 말을 옮긴 것을 보면 그가 왜 필력의 고수인지를 말해준다. 글쓰기의 금과옥조로 필사해 두었다.
"술은 자기가 변해가는 모습을 남에게 보여주고 싶어 하지 않아요"하며 가양주 9단이 과실주를 왜 어두운 곳에 놓아야 하는 지를 설명한 대목을 놓치지 않고 차용한 재치도 빌려오고 싶다.
그가 말하는 황홀하고 환상적인 말글발을 기르는 첩경은 은사 유공희선생의 독해력을 키우는 비법으로 추천한 것처럼 신문의 사설이나 칼럼을 자주 접하는 것이다. 나도 조선일보의 '만물상', 중앙일보의 '분수대', 동아일보의 '횡설수설', 한겨레의 '말글살이' 등 주요 신문의 고정칼럼을 자주 읽는다.
깊고 넓으면서 자연스러운 디테일이 살아있는 유 교수의 인생 만사가 담긴 답사기. 옆동네 출신이어서인지, 말발과 글발에 가스라이팅된 기시감 때문인지는 몰라도 이념을 떠나 친근감을 느끼는 유교수의 멋진 작품이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그의 언력과 필력이 특정 이념에 지나치게 치우치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구라'보다는 '교육방송인'이 더 어울리지 않는가?
이 책은 인생 초등학교 5학년 무렵에서 자신의 인생만사를 음미하고 정리하고자 하는 사람들이 함께하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