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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자한 코끼리병원장 같은 글쓰기 수업

진은진 작가의 『나의 첫 글쓰기 수업』

by 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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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13회 한국실용글쓰기 검정시험에 처음 응시하고 영풍문고 대전고속터미널 점에서 집어든 책이다. '어린이 책 작가'가 되고 싶었는데 글쓰기가 너무 어려워 선생 노릇이라도 잘해보자고 결심한 뒤 학생들을 잘 가르치고 노력하는 작가 진은진이 쓴 여덟 번째 책이다. 『나의 첫 글쓰기 수업』은 사람in이 2025년 1월 발행한 초판 본이다.


어린이를 위한 작가가 되고자 하는 소망처럼 작가는 동네 이비인후과 의원, 코끼리병원 이야기로 책을 시작한다. 재채기, 콧물, 인후염, 두통, 고열에 몸살까지 증상이 한두 개가 아닌데 처치는 긴 대롱으로 콧물을 빼주고 목에 약을 칙칙 뿌려주고, 처방은 달랑 소화제를 포함한 달랑 세 알이 전부다. 그것도 3일 치가 고작이다. 그러고는 해준 말씀이 두 마디다. "걱정 안 해도 돼요, 약 먹으면 금세 나을 거야." 이 책은 초보작가를 다독이는 코끼리 원장 같은 책이다.






'글쓰기가 두렵고 막막하면 일단 한 번 써보자고 합니다. 글다운 글을 써보고 싶다면 그렇게 내 글을 완성해 갑니다'하고 차례대로 알려준다. 초등 대상 따라 쓰기 전과처럼 무엇이 어떻게 왜 필요한지까지를 조목모족 알려주고 초록 글씨로 예시까지 친절하게 들어준다. 글다운 글을 써보기 위해 첫 문장을 쓰는 방법을 소개하며 강원국 선생님은 '한 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로 시작해 보라고 조언하며 예시문을 가져왔다.


몇 년 전 신문에 반가운 소식이 실렸었다. 경희대학교 학생들이 《표준국어대사전》에 실린 사랑·연인·애인·연애 등 네 단어의 정의에 문제 제기를 했고, 국립국어원은 이 문제 제기를 받아들여 표제어의 풀이를 바꿌다는 것이다. '상대에게 성적으로 끌려 열렬히 좋아하는 마음. 또는 그 마음의 상태'라고 풀이되어 있던 '사랑'의 정의는 이제 '어떤 상대의 매력에 끌려 그리워하거나 좋아하는 마음'이라고 바뀌었고, 이에 따라 '연인', '애인', '연애'의 정의도 '남녀'에서 '사람'으로 바뀌었다.


남녀를 중심으로 서술되는 이성애 중심적 언어가 차별을 만든다는 청년들의 건강하고 도전적인 문제의식은 사전을 바꾸는 쾌거를 이루어낸 것이다. 그러나 정권이 바뀌자 이 정의는 슬그머니 이전으로 다시 되돌아갔다. 청소년들에게 가치관의 혼란을 줄 수 있다는 것이 이유 중 하나였다. 이 해프닝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도록 만든다. 정권이 바뀌면 사전의 정의도 바뀐다. 청년은 비판적으로 사고해도 되지만 청소년은 비 판적으로 사고하면 안 된다.








글을 완성해 가는 방법에 대하서도 차분하게 알려준다.〈자기 경험에서 출발하세요〉편에서 작가는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아서 시작했는데 실제로 얼마 못 가 막히는 경우가 많다며 이럴 때는 문장력이 없어서, 필력이 달려서 그렇다고 한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필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자기 경험에서 출발한 이야기가 아니어서 그렇다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경험을 통해 체득한 것이 자기 생각이고, 내 경험에서 우러난 '내 이야기'를 써야 한다고 했다.


그렇다. 다른 데서는 들을 수 없는 나만의 이야기라야 독자들은 내 말에 귀를 기울인다. 뻔한 이야기가 아니 자기만의 글로 쓰고 싶다면 , 자기 생각을 쓰고 싶다면, 여러분의 경험에서 출발하라고 한다. 여가에서 작가는 자기만의 눈을 가지라고 다시 강조한다. 우리가 어떤 대상이나 현상을 온전하게 이해하려면 다양한 시각을 자질수 있어야 한다. 다양한 시각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은 일면만 보지 않는다는 것, 단편적이거나 편협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을 뜻한다고 이야기한다. 그러면서 글쓰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매끈한 구조나 유려한 문장보다는 그 속에 담긴 사유라고 일침 한다.


경험에 기반하지 않고는 피상적인 글일 수밖에 없다. 연설문이야 그렇게 피상적인 이야기로 구성할 수 있지만, 자전적 에세이를 써본 나도 내 경험 속의 내 이야기, 즉 내가 느끼고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어야 글이 수월하게 써졌다.








글이 안 늘어서 속상하냐고 물어보며 작가는 물리학에서 나오는 임계점을 이야기한다. 물은 100도가 되어야 끓기 시작하고 액체가 기화되기 시작하지만 그전에는 아무 변화가 없어 보인다. 10도나 20도나 30도나 똑같아 보이는 거다. 심지어 99도도 마찬가지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그렇게 '보인다'는 것이다. 사실 손을 넣어보면 10도는 차갑고 40도는 뜨끈할 거고, 99도는 손을 데어 화상을 입을 것이다.


눈에 보이지 않지만 분명히 다르다는 거라면서 글쓰기도 마찬가지라고 말하다. 글쓰기든 무엇이든 어떤 실력이든 사선으로 상승하지 않는다. 크게 보면 사선으로 상승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미세하게 들여다보면 계단식으로 상승한다. 임계점처럼 어느 지점에 도달하기 전까지는 겉으로 전혀 변화가 없어 보이는 구간이 있다고 강조하며 분명 변하고 있다는 믿음을 가지고 꾸준히 노력하라고 한다.





독서도 그런 것 같다. 지난해 큰 수술 전후로 본격적인 책 읽기를 시작했다. 정기구독하는 신문의 사설과 칼럼이야 40여 년간 꾸준히 읽어온 터라 별 부담이 없었지만 책 읽기는 만만하지 않았다. 서문을 넘기고 차례를 지나 30여 페이지를 읽을 무렵이면 뒤로 남은 페이지가 까마득해 미리 질려버린다. 내용이 호감이 가는 책은 스토리에 끌려 읽어간다고 하지만, 자기 계발서는 약간의 인내심도 필요했다.




글쓰기도 마찬가지다. 자전적 에세이를 자가출판 하고자 내 이야기를 쓰기 시작했을 때는 쉽게 진도가 나가지지 않았다. 술의 힘을 빌려 쉽게 써내려 갔던 목차와는 달리 꼭지마다 내용을 채우기는 쉽지 않았다. 키워드를 잡고 하고 싶은 이야기 한 문장을 쓰고 나면 나머지 여백을 채우기는 여간 어려운 게 아니었다.


미리 찾아놓은 글감을 인절미에 고물 묻히듯 이리 굴리고 저리 굴려도 도대체 제대로 된 모양이 나오지 않는 것처럼. 하지만 작가의 말처럼 분명히 나의 글쓰기 실력도 신문 읽기와 책 읽기를 통해 자양분이 쌓이고 그 자양분이 서평으로 서사 에세이로 블로그와 브런치스토리를 통해 하나씩 공유될 때마다 윤활제가 되어 쓰기의 고속도로에 진입할 때가 올 것이라는 것을 나는 믿는다.






『나의 첫 글쓰기 수업』은 코끼리병원의 포근한 원장님의 몸짓과 말짓처럼 초보 작가에게 마음의 위로로 다가온다. 체육시간에 오래 달리기를 앞두고 출발선에서 떨고 있는 어린 학생에게 "괜찮아 숨을 고르게 쉬면서 꾸준히 달리면 되는 거야" 하고 격려하는 자상한 체육 선생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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