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적에 여름이면 가장 흔하게 먹었던 반찬이 가지나물과 늙은 오이를 썰어 만든 오이무침이었다. 오이무침은 사각사각 씹는 식감이라도 있지만, 가지나물은 거무스름한 색깔에다 물컹물컹한 식감이 영 비호감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맛은 있어 둘 다 잘 먹었었다.
농촌에서 여름철 흔하디 흔한 것이 오이와 가지인지라 단골 메뉴일 수밖에. 특히 가지는 어릴 적 생각하기에 요리하기도 간단해 보였다. 요즘처럼 흔한 보온밥통이 없는지라 삼시 세끼 솥에 불을 때서 밥을 해야 했던 때.
어머니는 밥 할 때 밥과 함께 쪄낸 가지를 손으로 후후 불어 가며 '쭉쭉' 찢어 갖은양념에 무쳐냈다. 따뜻한 가지나물은 더위에 땀을 흘리며 먹어도 내게는 맛있는 반찬이었고 지금도 그 식성은 변함없다.
그랑라루스 식재료도감
인도가 원산지인 가지는 우리나라와 같은 온대에서는 한해살이지만, 열대에서는 여러해살이다. 토마토, 호박, 오이와 함께 열매채소다. 지구상에 재배되는 가지 품종은 700여 종이다.
가장 흔한 색이 보라색이지만, 흰색, 빨간색, 노란색, 초록색 등 60여 종이나 된다. 크기도 가지가지다. 태국산 초록 가지는 엄지손톱 크기지만, 미국이나 이탈리아에서 재배되는 큰 글로브 종은 1kg까지 나가는 것도 있다.
재배 역사도 길다. 중국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농업기술서인 '제민요술(6세기 전반)에 재배 파종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1000년 이상으로 보고 있으며, 우리나라에 들어온 것은 '해동역사(단군조선에서 고려시대까지 역사 기술)'와 '동의보감(1610년에 허준이 저술한 의서)에 재배와 성상에 대한 기록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삼국시대로 보고 있다.
서울농수산식품공사가 밝힌 2019년 통계에 의하면, 재배지역은 경기(64%), 강원(16%), 경남(12%) 순이고, 경기도 여주와 광주, 강원도 춘천이 전체의 61%가 생산된다. 우리나라에서 재배되는 가지는 길쭉한 모양이지만, 서양은 달걀처럼 동그란 것이 많아 영어로는 ‘eggplant’라 불린다.
세계의 가지 /saynature tistory
우리 몸에도 가지가지 이롭다. 미국언론에서 보라색 슈퍼푸드로 조명받은 가지는 영양과 효능도 여러 가지다.
먼저 항암효과다. 자색 껍질에는 안토시아닌이라는 성분이 함유되어 있는데, 100g을 기준으로 750mg으로 블루베리 (530mg) 보다 높다. 항산화 작용을 통해 암세포 증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그뿐만 아니라 폴리페놀은 암세포의 증식을 억제한다. 각종 성인병 예방에도 그만이다. 안토시아닌은 중성지방 수치는 낮춰주며, HDL 콜레스테롤 수치를 상승시키는 역할을 한다.
이와 함께 인슐린 수치를 증가시키는 효능도 있다. 히아신과 나이신은 혈관 속의 노폐물을 제거하여 고혈압과 동맥경화 등 각종 심혈관 질환에도 도움이 된다.
눈 건강에도 좋다. 베타카로틴은 체내 흡수 시 비타민A로 변해 시력을 보호해 주며, 빛의 자극을 뇌에 전달하는 로돕신(Rhodopsin, 눈의 망막에 있는 단백질)의 합성을 활성화해 시력 저하와 망막 질환을 예방한다.
피부 미용에도 그만이다. 루테올 성분은 여드름 원인인 피지 생성을 막아주고 염증 감소와 피부 열독 제거에도 효과가 있다.
가지는 세계적으로 귀한 음식 대접을 받았다. 중국에서는 가지를 ‘곤륜과(崑崙瓜)’라고 부르는데, 중국 신선들이 산다는 전설 속의 산 ‘곤륜산’에서 먹었던 과일이라는 뜻이다. 청나라 소설 ‘홍루몽’에서는 가지의 별칭을 ‘초별갑(草鼈甲, 풀로 만든 자라)’이라 했는데, 이는 예나 지금이나 중국에서는 자라가 최고의 보양식인지라 자라에 버금갈 정도로 최고의 보양식으로 여긴다.
‘이맘바일디’는 가지와 토마토를 주재료로 사용한 튀르키예(터키)의 유명한 요리 중의 하나다. ‘이맘’이 결혼 후 신부가 만들어준 가지요리가 기절할 정도로 맛있어 생겨난 이름이란다.
일본에서는 며느리에게 가지요리를 먹이지 말라고 했다. 두 가지 의미로 해석된다. 몸에 좋고 맛이 좋으니 며느리한테까지 돌아갈 몫이 없다는 설과, 손주를 보려면 찬 성질의 가지를 먹으면 좋지 않다는 설이다.
가지요리는 '맛남의 광장'에서 인기를 얻은 요리연구가이자 모교(예산고) 이사장인 백종원의 ‘가지 밥’을 비롯하여 전통의 가지나물, 가지 튀김, 가지 카레, 가지 그라탕 등 수십 가지다.
음식평론가 이용재/ yes24
이용재 음식 평론가는 모든 식재료와 양념에 어울리는 ‘채소계의 스펀지’라며, 지난해 한국일보를 통해 가지를 다음과 같이 예찬한다.
“속 사이사이에 공기가 들어차 칼이 사뿐히 들어가는 가지는 다른 맛을 굉장히 잘 흡수하는 식재료다. 눈치가 꽤 빨라서 이런저런 식재료와 두루두루 잘 어울린다. 잠재력이 엄청난 채소인데, 교육과 훈련이 필요하다. 잠깐 학습만으로도 잠재력이 확 피어나지만, 배려해 주지 않으면 거의 모든 음식을 완벽하게 망칠 수 있다”라고.
직접 요리가 싫다면, 근사한 가지 요리하는 식당이 서울 마포와 강남 등에도 있다. 가지 튀김, 가지 시금치 파스타, 가지가 도우인 피자, 파불라 등을 맛있게 먹을 수 있다.
서울 갈 기회가 별로 없는 나는 유튜브에서라도 배워 가지가지 요리해 먹을 참이다. 이미 가지튀김과 가지무침은 해 먹었으니 아직도 해 먹을 요리들이 여러 가지 남았다. 앞으로 맛있는 가지로 가지가지 요리를 해보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