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애란의《두근두근 내 인생》(창비, 2025)
《달려라 아비》를 읽고 나서 김애란의 문체가 좋아 읽은 소설이다. 책쓰기에 관한 책을 시리즈로 읽는 중에 새참으로 읽었다. 김애란의 장편소설《두근두근 내 인생》(창비, 2025) 79쇄 판.
처제 부부와 중국 여행 중 하루 일정을 마치고 호텔에서 짬 나는 시간에 읽다가 귀국길 비행기 안에서 마저 완독 했다.
소곤소곤 내 마음의 이야기를 들려주는 서사적이고 서정적인 문체가 적절하게 버무려진 건강한 비빔밥 같은 소설이다.
소설가 황석영은 "첫 장편인데도 어색하지 않게 이야기 속으로 말려들어가게 만드는 은근한 매력을 갖고 있다"라며 "능청스러움이라든가 시치미를 떼는 말짱함으로 보더라도 그녀는 운명적인 이야기꾼이다."라고 했다.
성석제 소설가는 이 소설에서 그녀의 "비극에서 낙천의 보석을 골라내는 타고난 재능, 희극에서 통찰에 이르는 길을 순식간에 만들어내는 절묘한 내비게이터의 면모를 본다"라며 필력을 높이 평가하고 있다.
읽고 나서 영화로 만들어진 것을 확인하고 넷플릭스에서 영화도 봤다. 책을 읽고 나서 본 영화는 책과는 다른 톤이다. 부분 부분 각색이 있다. 제대로 복습한 셈이다.
이 소설은 감수성이 뛰어난 문체에다 심리묘사가 예리하고, 절망적이지만 희망적 메시지가 있다.
첫째, 감수성이 뛰어난 문체가 많다. 본 나이는 16인데 몸 나이는 80세인 선천성 조로증인 아름이 부모님을 위한 글쓰기를 준비하며 글 쓰는 마음을 이렇게 표현한다.
"이야기를 짓는 일은 생각보다 힘들었다. 사람과 장소와 시간을 고루 살피며 문장까지 신경 써야 하는 게 만만치 않아서다. 처음에는 그저 소박하게 '과거에 일어난 일을 그대로 기록해 보자'는 취지로 시작한 건데, 막상 쓰다 보니 더 재밌게, 또 맛깔나게 쓰고 싶은 욕심이 앞섰다.
글쓰기는 매 순간이 결정과 선택의 연속이었다. 그런 게 그걸 내가 잘하고 있는지 확신이 서지 않았다. 이야기는 중간중간 자주 멈췄다. 그럴 때면 홀로 북극에 버려진 펭귄이 된 기분이 들었다. 참으로 막막하고 무시무시한 순간이었다.
그때마다 나는 부모님을 붙잡았다. 그러고는 주 사람의 젊았을 적 이야기를 묻고 또 묻고, 한 번 더 해달라 졸라댔다"
글을 쓰고자 하는 마음을 이토록 절절하게 표현한 아름의 마음이 느껴지지 않는가?
작가는 아픈 사람의 시간의 의미를 '주관적인 시간'이라고 표현한다. 자신을 취재하는 작가 누나에게 이렇게 표현한다.
"너무 아플 때는요, 우리 엄만 그걸 '지랄발광'이라 하는데, 그럴 때면 하루가 정말 길게 느껴져요. 일분이 한 시간 같고, 어느 때는 영원 같고, 그런 하루를 계속 살아왔잖아요, 저, 그러니까 주관적인 시간으로만 따지면 내가 아저씨나 누나보다 더 산 거예요"
1년 365일 8760시간은 객관적인 시간이다. 누구에게는 똑같이 주어지는 시간이다. 문제는 시간의 느낌이다.
어떤 것에 집중을 하거나 즐거우면 시간이 빠르게 가지만 할 일이 없어 빈둥대거나 하기 싫은 일을 하거나 고통의 시간은 아름이가 말한 것처럼 촘촘히 쌓인다
5천만 우리나라 아니 80억 지구인의 시간은 모두가 다르게 느끼는 주관적인 시간이다.
둘째, 심리 묘사도 일품이다. 촬영 준비를 하면서 아버지 한대수가 아름에게 한 말이 촌철살인이면서 여운을 남긴다.
"더 초라해 보여야 한다거나 없어 보여야 한다거나 하는 낡아빠진 생각은 버려. 사람들은 똑같이 안된 처지라도 곱상한 사람에게 더 끌리기 마련이거든, 접대 티브이에서 무슨 실험하는 거 보니까, 짐승들도 다 예쁜 아가씨한테 가더라"라고 태연스럽게 말한다.
이에 더해 아름은 부모에게 미안함을 에둘러 표현한다.
" 누가 그러는데 자식이 부모를 기쁘게 해 줄 수 있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다"라며 "건강한 것, 형제간에 의좋은 것, 공부 잘하는 것, 운동 잘하는 것, 친구들에게 인기 많은 것, 좋은 직장에 들어가는 것, 결혼해서 아기를 낳는 것, 부모보다 오래 사는 것······· 많잖아요? 그런데 가만 생각해 보니 그중에 제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더라고요"
셋째, 절망적이지만 희망적인 메시지가 많다. 가상의 서하(시나리오 작가를 꿈꾸는 남자가 만든 시나리오상의 인물)에게 빠져 오지 않는 답장을 기다리는 아름의 심리를 자연스럽게 긍정 모드로 끌고 간다.
"여자애들이 얼마나 피곤하고 성가시게 구는지 책에도 잘 나와 있잖아? 베르테르가 왜 자살했는데. 로미오는 왜 죽었는데. 메넬라오스(로마 신화에 나오는 트로이 전쟁의 장군 중 한 명)는 심지어 전쟁까지 일으켰잖아? 정념은 민폐야"라고 했다.
아름과 서하의 오가는 편지 속에도 둘의 처지를 비관하기보다는 현 상황을 받아들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부담이 되지 않도록 하는 노력이 곳곳에 배어 있다. 작가의 고운 마음결이 그대로 묻어있다고나 할까?
아무튼 처녀작이라 믿기지 않을 정도로 부드럽게 읽힌다. 슬픈 이야기지만 자연스럽게 편안한 마음으로 읽힌다. 엄마 무릎에 누어 소곤소곤 듣는 내 마음의 이야기다. 아픈 가족이 있는 젊은이들이 읽으면 환자의 마음을 추스르는데 도움이 될 법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