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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맞게 하는 어른의 느슨함

와다 히데키(박여원 옮김)의 《어른의 느슨함》(월마, 2025)

by 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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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와 동갑의 일본 의사다. 1960년 오사카 출생으로 1985년 도쿄대학교 의학부를 졸업했다. 일본에서 최고 권위를 자랑하는 노인정신의학 및 임상심리학 전문의로 30여 년 동안 노인정신의학 분야에 종사하며 연구 활동을 계속해오고 있다.


그의 첫 책 '수험은 요령'은 1987년 일본에서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그는 노인정신건강 문제 이외도 심리학,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TV와 라디오에 출연하고 단행본 집필도 왕성하게 하고 있다.


주요 저서로는 《80세의 벽》,《치매의 벽》,《70세의 정답》,《노년의 품격》,《늙지 않는 뇌의 비밀》등이 있다.


《어른의 느슨함》, 동년배여서 그런지 책의 곳곳에 와닿는 부분이 많다. '돈, 일, 관계에 얽매이지 않는 품위 있는 삶의 태도'라는 부제처럼 차분하면서도 부드럽게 읽힌다.


'대충 철저히'라는 말이 있다 말이 쉽지 무엇을 대충대충 하고 무엇을 철저히 하라는지 헷갈린다. '중요한 것은 철저히 하되 나머지는 대충대충 하라'는 말이다. 나이가 들면 생각과 움직이도 둔해진다. 자연스러운 현상이다. 이 책은 나이가 들면 역할과 결과 그리고 속도에 느슨하게 하라고 주문한다. 알맞게 대충 느슨하게 말이다.








첫째, 역할을 느슨게 하라는 이야기다. 저자는 "간병은 절대 혼자 감당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 자신도 앞으로 얼마다 더 건강하게 살 수 있을지 모르는 상황인데, 그런 시기를 간병에 몰두하다 여행도 못 가고, 잠깐 쉴 여유도 없이 보내다 보면 우울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다 같이 무너지면 모두 불행해질 뿐입니다"라고 강조한다.


구순의 노모와 그에 가까운 장모님을 지척에 두고 산다. 20분 내에 오거나 갈 수 있는 거리다. 각기 생활하시기에 자주 들르는 편이다. 장남에다 큰사위인 나는 두 분이 늘 생각과 행동의 고려 요소이다. 가장 가까이 살기에 어찌할 수 없는 도리이기도 하다. 모시고 살면 더할 나위 없겠지만, 이 책에서 말하는 것처럼 그것이 최선의 방법은 아닐 것이다.


나 역시 아직 건강하고 해야 할 일이 있는 만큼 다가올 노후를 준비하기 위해서라도 모시는 일에 전념할 수는 없다. 노모나 장모님의 입장에서도 자식이 간병으로 피폐해지는 것보다 건강하게 곁에 있는 게 더 좋을 것이다.


둘째, 결과에 너무 얽매이지 말라고 한다. 와다 히데키는 정치인이 대단하다고 느낀 점을 "무슨 말을 하든 유권자는 결국 잊어버린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며 "어떤 거짓말을 하든 어떻게 둘러대든 언젠가 유권자는 잊어버린다, 그렇게 생각하니 누구도 진정한 의미의 책임을 지지 않습니다."라며 "아무리 나쁜 짓을 하고 평판이 나빠도 선거에서 이기면 씻기는 것이 정치계"라고 일갈한다.


인간이기 때문에 과오를 저지를 수 있다. 문제는 그러한 행동이 있은 후다. 잘못된 것을 알아차리는 즉시 그를 시정하는 말과 행동이 필요하다. 모르는 척 어물쩍 넘어가기보다는 제대로 사과하는 어른이 지혜로운 어른이다. 그리고 그런 잘못된 행동을 내가 왜 했지 하는 자책보다는 다음부터는 챙겨야지 하는 느슨한 마음도 필요하다.


셋째, 속도 조절이다. 저자는 "모든 일을 고만고만한 에너지로 해내기보다 완급 조절을 통해 중요하다고 판단되는 포인트만 열심히 하는 것이 제대로 대충대충 하는 비결"이라고 했다. 필요할 때만 정신을 바짝 차리자는 이야기다.


예를 들어 이렇다. 가스불에 주전자를 올려놓았을 때는 바짝 신경을 쓰고, 전기불이 켜 있는 것은 무심히 넘기면 된다. 전기불은 보는 사람이 끄면 된다. 운전할 때도 그렇다. 내가 운전대를 잡고 있으면 전방과 좌우를 잘 살피면서 교통 흐름에 맞춰 안전하게 목적지에 도착하면 된다. 조수석에 앉으면 운전학원 강사처럼 속도가 어쩌니 깜빡이가 어쩌니 하는 잔소리는 하지 않는 편이 좋다. 조수석에서는 그저 느긋하게 졸면서 가면 그만이다(아내가 운전할 때는 쉽지 않은 일이지만).






이처럼 나이가 들면 허리춤처럼 너무 타이트하게 할 필요가 없다. 목도리처럼 역할도 느슨하게, 어떠한 일의 결과도 너무 얽매이지 말고, 행동도 완급을 조절하는 요령이 필요하다. 내 마음이 급하지 세상이 급한 것은 아니다. 내가 아등바등하지 않아도 세상은 있는 대로 주어진 여건에 맞춰 잘 돌아간다. 자전과 공전처럼 말이다.


이 책은 노부모가 계시는 육십 대 가장과 남편의 행동이 영 못 미더운 중년 여성들이 많이 접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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