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현의 《정신과 의사의 서재》(인플루엔셜, 2021)
《아무튼 명언》을 읽고 온라인 교보문고에 찜해 놓았다가 아무튼 구입한 세 번째 책이《정신과 의사의 서재》다. 하지현 작가는 도대체 어떤 책을 읽었길래 이렇게 글이 옥구슬 구르듯 또르르 읽힐까? 궁금해서다.
그는 서울대학교 의과대학과 동 대학원을 나온 의학박사다. 책 쓰는 의사다. 위키백과에 의하면 영화감독 하길종이 부친이며, 숙부는 배우 겸 감독인 하명중이다. 아하! 그러고 보니 이미지가 닮았다. 하 작가는 1년에 100여 권을 넘게 읽는 독서가다. 5년 동안 서평 칼럼〈마음을 읽는 서가〉를 연재했던 성실한 서평가 이기도 하다. 자존감을 지키면서 거센 외부의 파도에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마음 근육을 만들어 주는 것이 책 읽기의 힘이라는 작가는 무엇보다도 책 속의 지식과 정보를 스스로의 경험과 엮어내어 온전한 '내 것'으로 만드는 생산적인 읽기가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그러면서 책의 곳곳에 '하지현식' 독서법을 설파한다.
그의 손끝에서 나온 책은 《도시 심리학》《심야 치유 식당》《그렇다면 정상입니다》《고민이 고민입니다》등 다수다. 오은 시인의 추천사처럼 책과 사랑에 빠지는 일은 운명 같지만, 이 사랑이 유지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진드근한 태도가 필요한데 이 책에는 책을 제대로 사랑할 줄 아는 하 작가의 귀한 성실이, 페이지마다 가득하다.
의사 작가 하지현은 이 책에서 어떻게 책을 고르고, 읽고, 쓰는지를 차근차근 알려준다. 어떻게 보면 책에 의한 책을 위한 책 이야기다. 좋은 재료를 골라 어떻게 요리해서 맛있게 먹을 수 있는지를 알려주는 친절한 셰프, 책 셰프 같다고나 할까?
첫째, 그는 책 고르기의 정수를 알려준다. 예전부터 짧건 길건 여행을 갈 때 최고의 고민은 책이었다고 한다. 여행 가방에 어떤 책을 넣고, 몇 권 정도가 적당할지 결정해서 넣는 것, 출발하는 당일까지도 제일 중요하게 고심하는 일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그는 가장 먼저 소설책을 집어넣고, 그다음엔 그동안 시간과 여유가 없어서 보지 못했던 책을, 그러고는 가볍게 읽을 산문집이나 쉬운 사회비평서를 넣고, 마지막으로 여행 가는 곳과 관련된 책을 넣는다고 했다. 일주일 일정이라면 네 권 정도를 준비한다고 한다.
때와 장소에 맞는 옷 입기처럼 책의 TPO(시간, 장소, 상황)라고나 할까? 나도 요즈음에는 국내든 해외든 1박 이상의 여행을 할 때는 한두 권의 책을 가지고 간다. 여행 중에 시간이 될 때 부담 없이 읽을 수 있는 책으로 말이다. 이 책도 3박 4일 홍콩 여행 중에 완독을 해 볼까 하고 가져갔었는데 패키지여행 일정이 밤 8~9시까지 진행되는 통에 100페이지 정도 읽었다. 이처럼 책은 저녁이든 새벽이든 여유 있는 시간에 함께 할 친구다. 그 친구를 고르는 팁이다.
둘째, 책을 어떻게 읽은 것인가를 알려준다. 능동적인 독서의 기술이다. 하 작가는 책을 읽다가 좋은 내용을 찾으면, 원래 소스를 찾아내어 확인하고 추려서 언제든지 꺼내기 좋게 잘 저장해 놓아야만 한다며 독서의 수납 요령도 알려준다. 책을 읽다가 실험이나 연구 결과는 반드시 저장한다. 재미있는 사례, 사건, 일화, 역사적 삽화도 놓치지 않는다. 통계 수치와 역사, 어원같이 알아두면 좋은 팩트들도 챙겨놓는다. 이렇게 책을 읽으니 바쁘지 않을 수 없다.
이들을 모아두는 그의 요령은 이렇다. 글을 저장을 할 때 마구잡이로 때려 넣으면 안 된다. 잘 수납된 커다란 식재료 창고를 갖고 있는 요리사처럼 구분해서 차곡차곡 넣어 놓는다. 그러고서 만들 요리 주제를 정하고 나면, 창고의 문을 열고 들어가 쟁여놓은 재료를 쓱쓱 골라 담아 재주껏 머릿속에 그린 레시피대로 음식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글쓰기를 위해 필요한 정보와 지식을 정확한 내용, 출처와 함께 저장해 놓는 것이 바로 능동적 독서의 기술이라고 말이다.
신문을 볼 때 나도 그렇다. 구독하는 매일경제와 조선일보를 읽으면서 생소한 시사용어나 이론이 있으면 나는 어김없이 네이버 메모장으로 옮겨 놓는다. 예전에는 종이 스크랩을 해서 부분별로 따로 모아 놓았는데 활용이 불편하여 요즈음은 주로 온라인으로 스크랩을 한다. 소중한 글감이다.
셋째, 읽었으면 써야 하는데 어떻게 쓰는 지도 알려준다. 그는 책을 읽을 때에도 스케치를 하듯 감을 잡는 것에 집중을 한다고 했다. 그러면서 이 책의 핵심은 무엇인지, 저자가 무엇을 얘기하려고 하는지, 미래의 독자들에게 내가 그린 이 책의 인상을 한두 마디의 말로 설명하듯 200~300자 이내의 두세 문장으로 만들어 본다. 일시적으로 분석하는 눈보다는 큰 윤곽을 보여주고, 감성적으로 뭐가 느껴지는지에 초점을 맞춰 헤드카피를 뽑는 카피라이터에 빙의한다. 그러면서 《오직 토끼하고만 나눈 나의 열네 살 이야기》라는 짧은 그림 동화책의 추천사를 예시로 보여준다.
똑 떨어지는 추천사다. 그러면서 그는 추천사를 쓰기 위한 그만의 생산적인 독서법을 알려준다. 깊이 들어가기보다 빠른 속도로 읽으면서 책의 지향점, 윤곽을 그려보는 이미지 그리기의 독서다. 거기서 내가 보기에 핵심이 되는 포인트를 찾는 것이 추천사를 위한 독서의 요체다.
지난해 9월부터 새벽 독서를 하고 있다. 가급적 5시에 일어나 읽으려 하는데 쉽지 않다. 알람에 의존하다가 이제는 그 시간 즈음에서 눈이 떠진다. 어느 정도 체화된 느낌이다. 그때부터 책을 읽고 나서 리뷰를 쓰고 있다. 강원국 작가처럼 쓰기 위해서 읽지는 않지만 읽었으면 몇 마디라도 써야 한다는 데는 동감이다.
하지현 작가는 이 책을 통해서 독자에게 자기 자신의 서재를 그리도록 안내하고 있다. 마음의 근육을 만드는 든든한 지식 창고처럼 그는 책을 어떻게 동행할지, 동행하면서 어떻게 대화할지, 그리고 어떤 여운을 남기고 헤어질지를 친절하게 알려준다. 모으고 숙성해서 꺼내 쓰는 하지현 교수의 책 읽기 비법이다. 덕분에 교보문고 장바구니가 두둑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