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인의《기자의 글쓰기: 실전편- 싸움의 기술》(2025, 와이즈맵)
현직 기자의 글이어서 그런지 단단한 느낌이다. 군더더기도 없다. 그러면서도 담백하다. 서울대학교에서 사회학을 전공한 박종인 작가는 1992년 이래 조선일보 기자다. 그가 쓴 기사, 에세이, 칼럼, 15권이 넘는 베스트셀러는 글쟁이와 지식인들 사이에서 훔치고 싶은 모델로 통한다. 역사 분야를 중심으로 집필과 강연은 물론 〈박종인의 땅의 역사〉유튜브 활동도 하고 있다. 최근 EBS클래스E에서 〈박종인의 내가 쓴 내 인생: 자서전 쓰기〉시리즈 특강도 했다.
《기자의 글쓰기: 원칙편- 싸움의 정석》이 저자가 직접 첨삭 지도한 글들을 예시로 원칙과 팩트에 충실한 글이 가진 힘을 명료하게 설명했다면, 《기자의 글쓰기: 실전편 - 싸움의 기술》에서는 수필, 기행, 역사, 칼럼, 인물, 인터뷰, 자기소개서까지 7개 장르를 꿰뚫는 실전 글쓰기 기술과 필승 전략을 전수한다. 한마디로 팩트를 쉽고 짧게 입말로 쓰라는 얘기다. 표지부터 선혈이 낭자한 이 책은 도전적이다. 펜을 불끈 쥔 주먹 속에서 기자의 영업 비밀인 작문 기법을 술술 풀어놓는다. 그것도 일목요연하게 말이다.
박종인 작가가 전투적인 표지와 표제를 넣어 만든 것은 글쓰기는 어찌 보면 독자와의 기싸움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훈련소에서 신병훈련을 받으면서 사격훈련과 함께 총기 분해조립 기술도 배운다. 원칙 편이 분해 조립 기술이라면 실전 편은 사격 훈련이다. 조준-격발-확인처럼 이 책은 사전 핵심정리 - 예시문 - 장르별 전술 - 예시문 분석 - 실습 - 요점정리까지 오와 열이 딱 들어맞는 제식 훈련과도 같다. 버릴 게 하나도 없다. 그중에서도 눈에 들어온 문단은 세 곳이다.
첫째 문단은 글쓰기의 긴장감에 관한 이야기다. 작가는 글은 결국 싸움이라고 했다. 독자를 설득하고 감동시키고 생각을 바꾸기 위한 전투다. 키보드는 칼이다. 문장은 총알이다. 전선을 장악하려면 여기에 더해서 전략이 필요하다. 독자라는 상대를 정확히 파악하고 장르별 정확한 무기를 장착해 독자의 가슴속 취약지점을 타격해야 한다고 강조한다. 이처럼 글쓰기는 만만한 작업이 아니다. 읽고 쓰고 생각하고 고치고 다시 쓰는 반복 훈련이 필요하다. 시간도 필요하다. 체력도 중요하다. 무엇보다도 꾸준히 끌고 가는 의지도 요구된다.
글쓰기에 관한 책을 쓰려고 글쓰기에 관한 책을 읽으면 읽을수록 수렁에 빠지는 느낌이다. 어느 책은 일단 한 문장이라도 당장 쓰기 시작하라고 하고, 어떤 책은 예비 작가의 예를 들어가며 당신도 당장 한 권을 써 보라고 부추긴다. 20대 초중반에 세상 물정 모를 때 결혼해서 애를 낳는 부부가 있는가 하면, 이것저것 재 보고 따지다가 마흔이 다 되어가는 노총각 노처녀의 심정이랄까?
둘째 문단은 글쓰기의 유연함에 관한 언급이다. 박 작가는 리듬을 강조하며 이렇게 이야기한다. 어릴 적 배운 시조에는 리듬이 있다. 3434 3434 3543 이렇게. 그게 한국어가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리듬이다. 또 잘 생각해 보면 한국어 단어들은 대개 세 글자 아니면 네 글자다. 다섯 글자 넘어가는 단어는 별로 없다. 이걸 어떻게 조합할 것인가. 한 단어를 앞에 놓고 뒤에 놓고에 따라서 리듬도 달라지고 읽는 맛도 달라진다고.
나는 인생 육 학년이 되면서부터 사람과 사물의 생각을 들여다보고 그 느낌을 네 음절로 표현하는 정형시를 쓰고 있다. 리듬을 염두에 둔 시다. 쓰면서 단어들을 바꿔보고 위치를 달리하고 다듬어간다. 그러다 보면 운율이 잡힌다. 그가 말한 것처럼 글은 리듬 있는 문장으로 팩트를 전달하는 수단이다. 리듬 있는 문장으로 팩트를 전달하는 가장 기초적인 것이 입말이다.
마지막으로 글의 신뢰도에 관한 이야기도 인상 깊다. 작가가 누누이 강조하는 기본은 '글을 팩트여야 한다'다. 전문가에 의해 '반복되고' '오래된' 거짓말은 거짓말이라고 입증하기가 불가능에 가깝다. 진실이 된다. 그래서 가짜 뉴스나 선전·선동이 가지는 힘을 이야기할 때는 괴벨스가 빠지지 않는다.
그러면서 신뢰의 역설, 즉 역 신뢰(Reverse Credibility)의 위험성을 강조 설명한다. 역 신뢰란 어떤 뉴스 주인공이 가지고 있는 '부정적인 이미지'가 오히려 그 뉴스 주인공에게 신뢰를 주게 되는 역설을 말한다. 이처럼 역 신뢰의 역설에 빠진 대중은 너무도 강력하다. 양심적인 많은 학자들은 입을 다문다. 몰 양심적이고 게으른 많은 학자들은 더 많은 사료를 뒤지는 대신 '추정' 혹은 '틀림없다'까지 가는 단정적 선언으로 많은 근대사 상처 책임을 일본에 돌린다. 폐부를 찌르는 말이다. 마치 요즈음 폭주하는 국내 정치 상황과도 너무나 비슷하지 않은가?
아무튼 기자적 시각과 몸짓이 곳곳에 묻어 있는 이 책은 쓰기에 꼭 필요한 칼날 같은 문장을 고루 갖춘 종합 무기고다. 글쓰기를 위한 사전 준비운동에서부터 글쓰기의 자세, 글쓰기의 흐름의 중요성을 강하고 부드러우면서 상세하게 알려준다. 그러면서 처음부터 끝까지 팩트에 기반한 글을 강조한다. 역시 기자다. 기자는 팩트를 객관적으로 보도한다. 글쓰기도 그렇다. 팩트가 아니면 팥소 없는 찐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