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북필육남

고시 출신 늘공의 탄탄한 글쓰기 품격

정소운의 《글, 공무원답게 쓰기》(황소자리, 2024)

by 샤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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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복 사이 세련된 정장… 남측 홍일점 대표 눈길"(국민일보, 2011.2.8), "회담장 '홍일점' 통일부 정소운 과장"(동아일보, 2011.2.9)"


노무현 정부 시절 2007년 10월 2일부터 10월 4일까지 제2차 남북정상회담이 성사된 후 2011년 2월 8일 남북 군사 실무회담에서 양측 대표단 6명 중 유일한 여성인 정소운(40, 행시 39회) 통일부 회담 1 과장이 참석하자 언론에서 관심 있게 다뤘던 헤드라인이다. 당시 회담은 천안함 폭침 문제를 논의하기 위한 두 번째 실무회담이었다. 남북 군사실무회담에서 여성 대표로 처음 참가한지라 언론의 관심이 뜨거웠다.


책날개에 저자의 사진이 있었으면 안 찾아봤을 텐데 궁금해서 여기저기 찾다 보니 기사까지 읽게 되었다. 그가 서울대학교 행정대학원 시절인 1995년 제39회 행정고등고시에 합격해서 공직을 시작했으니 올해로 만 30년이 된 묵은 공무원이다.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할 때마다 눈시울이 뜨거워지는 고시 출신 늘공인 그는 공직을 천직으로 알고 일을 시작한다. 각종 보고서, 국회 자료, 연설문, 민원 회신, 보도자료, 공문 등을 줄기차게 쓰다 손가락 관절염과 손목터널 증후군이 생겼다. 임계점에 다다를 무렵 해외연수 기회를 얻었고, 미국 케네디스쿨에서 석사 학위를 받았다. 그 후 최근에 모처럼 주어진 일 년의 연수 기간 동안 이 책을 썼다.


357쪽의 다소 두꺼운 책. '당신의 보고서 하나가 국가의 품격을 좌우한다'는 책 표지의 강조처럼 유능한 공직자가 되기 위한, 글쓰기의 모든 것이 담겨 있다. 보고서 쓰기, 말씀자료 쓰기, 미디어 자료 쓰기, 보고서 아닌 보고 쓰기, 자신을 위한 글쓰기에다가 마지막으로 인공지능(AI)에게 글 시키기까지 망라했다.


이 책은 공무원으로 근무하면서 꼭 필요한 보고서나 말씀자료 등 국가가 국민에게 의사를 표현하고 전달하는 수단인 글에 대에 명확하게 짚어 준다. 구체적이고도 귀한 사례도 가져왔다. 1968년 2월에 경부고속도로 관련하여 작성된 〈 Wilber s. Smith의 활동상황 종합보고〉와 1991년 1월 15일 주 소말리아 대사가 모가디슈에서 남·북한 사람들이 함께 탈출했던 긴박한 상황을 보고한 전문(3급 비밀 해제 문건) 등은 이 책을 통해 처음 접했다. 정부의 의사결정 과정과 보고서 활용 중요성에 대해서도 실제 예를 가져와 알기 쉽게 보여준다.


공무원의 내적 갈등에도 일침을 가해 준다. 글을 쓰고 나를 표현해야 하는 이유를 이렇게 설득한다. "공무원이 되면 큰 조직의 작은 부품으로 사는 데 익숙해지기 마련이다. 자신에 대해 쓰고 말하는 것이 점점 어려워진다. 그래서 자신에 대해 설명하는 연습을 평소에 해 둘 필요가 있다. 그런 연습은 공적인 자아와 사적인 자아 간 건강한 거리감을 만들어 내는 데 도움을 줄 것이다" 그렇다 대부분 공직자들은 주어진 일을 주어진 여건에서 주어진 시간에 해내면 그만이라는 인식을 가지고 마치 기계적으로 움직인다. 공직에서 공무를 수행하면서 나를 찾기란 쉽지 않다. 시간도 마음의 여유도 없다. 하지만 그렇게 한 달이 가고 일 년이 가고 그렇게 몇 년 몇십 년이 흐르다 보면 퇴직이라는 시간이 다가온다. 그때 가서 허무함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라도 공직에 있을 때 사적인 자아를 찾는 게 중요하다.


공직에서 말의 무게도 강조한다. 자신을 위한 글쓰기 편에서 소명서의 중요성을 설명하며 " 오히려 쉽게 잘못을 인정해 버리면, 이후 법적 절차에서 몹시 불리해진다. 협의가 막연하고 증거가 불충분한 경우라면, 당사자의 인정(이라고 쓰고 '자백'이라고 읽는다)이 결정적으로 작용하기 때문이다."라고 주의를 환기시킨다. 그렇다. 그래서 그런지 정치인들은 만인이 봐도 잘못된 언행인데도 그렇게 사과에 인색하다. 우리 실생활에서도 그렇다. 신호가 없는 교차로에서 접촉 사고가 났을 때 먼저 나와 큰소리로 '삿대질' 하는 운전자가 기선을 잡는 것처럼 말이다.


아름다운 마무리도 중요하다고 한다. 정성이 담긴 고별사여야 한다는 거다. 한평생을 공직에서 봉사하고 떠나는 마당에 의미 없는 보통의 말로 하는 퇴임사는 하지 말자는 이야기다. 지난날이 주마등처럼 스쳐갔다는 둥, 큰 잘못 없이(대과 없이) 마치게 되어 다행이라는 둥, 조직을 떠나도 잊지 않겠다는 둥, 심지어는 '~정신'을 갖고 살아가겠다는 다짐까지 한다. 부질없는 넋두리다. 필자는 공직 경험을 통한 교훈과 깨달음, 공감을 주는 실수나 실패에 대한 이야기, 평소 간직해 온 문구나 모토, 꼭 필요한 당부사항을 담아 정성이 담긴 고별사를 하라는 이야기다.


모습만큼이나 똑 부러지게 쓴 책이다. 형식과 내용 그리고 마음가짐까지 공직자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들이 이 책에 오롯이 담겨있다. 이제 정 작가도 어림잡아 5년 내 외면 공직을 떠나게 될 것이다. 그의 퇴임 변이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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