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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비 May 14. 2016

‘통일 참게’를 아시나요?-개성나무심기 참가기(3)

* 개성공단 부활을 염원하며 2007년 4월 김포시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에서 진행한 개성나무심기 참가기를 다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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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 참게’를 아시나요?

공단에서 나와 개성시내로 출발하려는데 북한 안내원 두사람이 버스에 탑승했다.
사람들이 박수로 반갑게 맞이한다. 나중에 대화를 해보니 각각 35세, 45세의 나이로 모두 두 아이의 아빠란다. 그중 젊은 안내원은 탑승과 동시에 계속 쉬지않고 대화를 진행한다. 옆자리에 앉았다면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어 보고 싶었지만 그냥 뒤편에서 나누는 이야기를 대강 듣고 흘려보냈다.

“저곳에 사람이 지금 살고 있나요?”


개성 시내로 들어가는 길에 목격한 허름한 연립주택들을 보며 누가 질문을 던진다. ‘사람이 살고 있다’는 대답이 앞자리에서 나온다. 차창 밖으로 내다보이는 길거리 풍경이 회색빛 일색이다. 짙푸른 초록색을 뿜어내는 보리밭의 채색과 묘한 대조를 이룬다. 남한에서는 이젠 구경하기조차 힘들어진 보리밭을 바라보며 가곡 ‘보리밭’의 노랫말이 스쳐지나갔다.

드디어 개성시내로 들어섰다. 곳곳에 빨간색 글씨로 쓰여져 있는 선동적 구호들이 눈에 들어왔다. 그 사이로 개성주민들이 우산을 쓰고 혹은 비를 그냥 맞으며 어디론가 오고간다. 회색빛 건물, 검은색 계통의 옷차림들, 빨간색 구호들이 내리는 빗물과 한데 뒤엉켜 바라보는 마음을 우울하게 만든다. 지금은 남한사회에서 다소간 생소한 용어들이 되어버린 ‘상점’ ‘리발소’란 간판들이 눈에 들어온다. 마치 드라마 ‘야인시대’의 세트장에 들어 온 기분이다.


어느새 차는 개성에서 제일가는 음식점으로 자랑하는 ‘통일각’에 들어섰다.


“우리는 음식점에도 ‘통일각’ , 다리에도 ‘통일의 다리’, 거리에도 ‘통일의 거리’등 ‘통일’이라는 이름을 즐겨 붙입니다. 그만큼 ‘통일’에 대한 열망이 얼마나 강한지 보여주는 것이죠”


북측 안내원의 설명을 들으면서 ‘통일각’ 음식점에 들어서니 입구에 도열해 있던 직원들이 반갑게 맞이해 준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북측 여성들이 음식을 내오는 데 반찬 가짓수가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다. 한꺼번에 남측에서 많은 사람들이 들이닥친 탓일까? 손님접대에 나선 북측 여성들의 손길이 바쁘기만 하다. 그런 와중에 음식을 나르던 여성직원의 실수로 된장국이 내 카메라 가방에 엎질러져 버렸다.            

“괜찮습네다. 염려 마시라요.”


미안해 어쩔줄 모르는 북측 여성에게 나도 모르게 북한 억양을 섞은 위로의 말이 터져나온다. 북한의 구수한 된장냄새를 김포에까지 가져가고 싶어서일까? 카메라를 닦아내는 나의 손길이 한참이나 게으르다.            

식사후 차에 탑승하니 아까보다는 자유로운 분위기에서 북한 안내원들과 먼저 탑승한 분들 사이에 대화가 이어지고 있다. 
“아까 지나온 거리가 임수경이 판문점으로 행진해간 거리입니다.”
“어? 그랬어요? 저는 그때 남쪽 임진각 너머에서 최루탄 마시며 ‘가자 북으로 오라 남으로’를 외치고 있었는데....”

격세지감이라 했던가? 벌써 이십여년이 다 되어가는 88년 89년 당시, 거리를 뜨겁게 달구었던  통일투쟁이 연상된다. 그때는 생전에 철책을 넘어 이렇게 평화로운 분위기에서 개성나들이를 하리라 생각조차 못했는데......


“개성은 이성계가 권력을 찬탈하면서 조선왕조 내내 핍박을 받은 곳입니다. 그래서 대부분 사람들이 관직 진출을 포기하고 상업에 몰두하게 된 것이 ‘개성상인’이 나오게 된 배경이 되었구요. 비만 오지 않았다면 송악산 전경을 한눈에 볼수 있었을텐데 아쉽기만 하군요.”


북측 안내원의 설명이 우리 민족의 장점, 우수성으로 이어지는가 싶더니 ‘미국만 물러가고 통일이 된다면.....’의 대목에서 갑자기 톤이 높아진다. “민감한 이야기는 우리 안하기로 했잖아요.” 최연식 시인이 약간 비틀자 다소 진정이 되는가 싶더니 개풍군과 김포시 사이를 흐르는 한강하구 이야기로 화제가 옮겨졌다.

“제가 개풍군 한강변에 가끔 나가보는데 한동안 잡히지 않던 참게가 얼마 전부터 잡히기 시작하더라고요” “어? 그 참게들, 김포에서 방류한거 아세요? 그 사업 담당주무과장이 바로 접니다.”    김준태 농정과장이 들뜬 목소리로 대화에 가세한다.


북한에서 참게가 다시 잡히기 시작한 시점과 김포에서 방류사업이 시작된 시점을 대조해보니 거의 맞아 떨어진다. 참게들에게는 휴전선이 없었나보다. 그저 한강하구 물길이 그들 삶의 터전이었던 것이다.

“거 좋은 일 많이 하시는구만요.”  
비교적 점잖아 보이는 나이든 안내원의 덕담에 남측 분들이 이구동성으로 “많이 잡아 드시라요” 라는 말로 화답을 한다. ‘통일 참게’란 신조어가 생길 날도 멀지 않은 듯 싶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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