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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비 May 14. 2016

아직은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만 담아두세요- 개성방문기

북측 세관을 통과하면서 비가 내리기 시작한다.

나무심기에는 안성마춤이지만 북녘의 산하를 제대로 내다볼 수 없어 안타깝기만 하다. 나도 모르게 자꾸만 유리창을 손으로 비벼댄다. 그런데 주변을 돌아보니 나만 그런게 아니다. 여러 사람들이 유리창을 계속 문지르고 있다. 차창에 서리는 뿌연 김이 분단의 장벽만큼 야속하기만 하다.

“다시한번 부탁드립니다. 사진촬영은 허용되는 구역에서만 가능하고요. 차안에서 바깥풍경 촬영은 금지사항이니 꼭 유념해 주세요.” 이경재 간사가 자꾸만 염려가 되는지 거듭 당부사항을 환기시킨다.

“아쉽지만 눈으로 보고 마음으로만 담아두세요”라는 말을 끝머리에 덧붙인다.

“그냥 북녘의 비를 맞고 싶어서요.” “그러다 머리 벗겨지면 어쩔려구?”


드디어 송악산의 한 자락이라는 진봉산 기슭에 도착하였다. 차에서 내릴 때 저마다 지급된 우비를 입고 내리는데 그냥 내리는 나에게 주변 분들이 염려를 한다. 무심코 던진 답변에 한 분이 산성비를 염려하신다. 

 하지만 난생 처음으로 북녘에서 마주치는 것은 풀한포기 흙 한줌이라도 감동의 대상이다. 하물며 하늘에서 내리는 비가 산성비라 한들, 그래서  머리가 벗겨진다 한들 그게 뭐 대수랴 싶었다. 그런데 이러한 감상도 잠시 뿐, 더욱 거세지는 빗발은 기어이 우비를 착용하게 강요한다.


조승현씨와 짝을 이루어 잣나무 묘종을 들고 산위에 올랐다. 광명시와 수도권 매립지 공사에서 온 분들이 함께 무리를 지어 여기저기서 나무를 심는다. 곳곳에 북측 안내원들이 배치되어 안내와 감시를 병행하는 모습이 눈에 띤다. 곳곳에 심은 지 얼마 안되는 나무들이 빠알갛게 말라붙어 있다. 식재 후 사후관리가 안된 듯 하다. 나무가 별로 없는 민둥산임에도 산불흔적이 있다. 그냥 벌거벗은 산이 가엾기만 하다.

여기저기서 나무심기를 마친 사람들이 기념촬영을 한다. 비는 여전히 거세지만 ‘나무심기에는 제 격인 날씨’라며 덕담을 서로 건넨다. 몇몇 사람은 버스 안에서 미리 지급받았던 기념메모판을 나무에 걸어놓는다. 차안에서 기념문구를 미리 새겨놓은 분들도 있다. 간단한 문구라도 ‘현장감’의 중요성을 내세운 나처럼, 즉석에서 글을 새겨넣을 생각을 갖고 있었던 사람들은 세찬 비 때문에 낭패감을 맛보아야만 했다.


‘통일의 꿈!’이란 말 다음에 가족과 지역모임 이름을 새겨 넣었다. 그래도 나무에 매달아 놓으니 감동이 밀려온다. 볼펜으로 여러번 힘주어가며 써내려간 글 위에 맺혀있는 물방울이 영롱한 이슬처럼 반짝인다.

 괜시리 ‘문익환’ 목사님의 이름이 떠오르며 코끝이 찡하다. ‘임수경’의 이름도 떠오른다. ‘조성만 열사’의 이름이 눈시울을 적신다. ‘우리시대에 통일을 대신할 어떠한 가치도 존재하지도 않는다’라고 역설하다 유신의 폭압에 스러져간 ‘장준하’ 선생의 이름도 스쳐간다. ‘삼팔선을 베고 쓰러질지언정 분단된 조국의 하늘아래 살고싶지 않다’며 북행을 감행한 ‘백범 김구’의 모습이 시야에 잡힐듯 하다. 눈물인지 빗물인지 자꾸만 흘러내리는 눈가의 물기를 닦아내면서 다시 차에 올랐다.


개성공단에 들어섰다. 한국토지공사 직원이 안내방송을 한다.    

“이곳에는 현재 북한측 노동자 1만 1천 3백명과, 남측 직원 840여명이 함께 일하고 있습니다. 북한측 노동자들은 월임금 57불 정도이며 도시락을 싸서 출퇴근 하고 있고 남측에서는 점심시간에 국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북측 노동자들의 임금을 남측 돈으로 환산해 보니 월 6만원 정도다. 현지 물가수준에 맞추어 북한돈으로 계산해보면 월 150만원 정도의 규모라고 한다. FTA 협상시 한국측에서 개성공단에서 출하되는  물품에 ‘MADE IN KOREA'라는 문구를 넣어 한국산으로 인정받으려고 강하게 고집하다시피 한 이유가 짐작이 되었다. 한미 FTA 타결로 개성공단내의 분위기는 상당히 들 떠 있다는 설명이 뒤따른다.


“개성공단내에서는 남과 북의 구별이 없습니다. 이 안에서는 이미 통일이 된거나 마찬가지에요. ‘김근태씨 춤판 사건’요? 제가 그 현장에 있었는데 그거 진짜 웃기는 코메디 기사입니다. 여기서 멀지 않으니 직접 그 현장에 가보시면 제 말을 이해할 겁니다.”

공단내의 현장 설명을 맡은  SJ 테크 간부직원의 이야기가 마음속에 여운을 남긴다.

“아 , 웃지만 말고 뭐라고 말좀 해봐요. 왜 이렇게 꿀먹은 벙어리야?”

연탄나눔운동 여성간사 한 분이 북한측 젊은 남자안내원의 옆구리를 쿡 찌르며 말을 건네는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그래도 그 북한 안내원총각은 수줍은 듯 빨개진 얼굴에 미소만 머금은 채 아무말이 없다. 판문점 너머 개성 공단은 이미 남과 북이 따로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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