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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깨비 May 16. 2016

아! 선죽교 -개성방문기(4)

* 개성공단 부활을 염원하며 2007년 4월 김포시 민주평화통일 자문회의에서 진행한 개성나무심기 참가기를 다시 올려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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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선죽교


          

“맞아, 저곳이 내가 다닌 학교야.”

통일각에서 점심식사를 마치고 선죽교로 가는 도중에 앞에서 소리치는 목소리가 들린다.

소리나는 곳을 보니 민주평통 부회장님이시다. 개성에서 초등학교를 다니셨다고 한다. 시내를 지나면서 혹시나 했는데 당신께서 어릴 적 다녔던 초등학교를 차창 밖으로 확인하고 갑자기 소리를 치신 것이다. 한곳에서 태어나 계속 생활하고 있는 분들에게도 초등학교는 고향이란 말과 동의어나 마찬가지다. 하물며 타향살이하다가 맘만 먹으면 언제든 다시 찾아올 수 있는 곳도 아닌 북녘땅 한가운데다.  이곳에서 지나가는 차창 밖으로 확인하는 초등학교 교정의 모습에 대한 감회는 당사자 말고는 다른 사람은 못 느끼리라.


아! 저곳이 선죽교?

차창 밖으로 돌다리가 내다보인다. 생각보다는 작아 보였다. 여전히 그치지 않는 빗속에서도 사람들은 앞다투어 차에서 내린다. ‘송도삼절’이라 하면 황진이, 화담 서경덕, 박연폭포를 일컫는다. 하지만 황진이나 서경덕은 조선시대 인물이다. 개성의 옛 이름인 ‘송도’는 아무래도 고려왕조의 도읍지였다는 역사적 상징성을 빼놓고 이야기할 수 없을 것이다.


이 고려왕조를 마지막까지 떠받치며 어떻게든지 지켜내고자 했던 인물이 포은 정몽주다.

같은 신진사대부 출신이면서도 역성혁명의 길을 걸어갔던 삼봉 정도전의 시각에서는 정몽주의 모습은 답답하기 짝이 없었을 것이다. 과거의 껍데기를 부여잡고 울부짖는, 시대의 흐름을 읽지 못하는 답답한 지식인의 모습으로 비춰질 수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시류에 편승하지 않고 죽음까지 불사하며 유교적 대의명분을 지키고자 하였던 정몽주의 삶은 성리학이 대세를 이룬 조선왕조를 관통하여 선비정신의 표상으로 오늘에까지 빛을 발하고 있다.


그가 이방원이 보낸 자객에 의해 최후의 삶을 마감한 곳이 선죽교다. 사실관계야 확인해봐야 겠지만 그가 죽을 때 뿌린 핏자국이 아직도 남아있다는 국사선생님의 수업설명이 기억난다. ‘이몸이 죽고죽어 일백번 고쳐죽어’로 시작되는 단심가야 지금도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많이 애송되는 시조이지만 선죽교는 남녘 사람들에게는 사진속에서만 다가갈 수 있는 존재였다. 그러한 선죽교를 직접 접하는 기분은 뭉클함 그 자체였다.

많은 사람들이 쏟아지는 빗발속에서도 여기저기서 카메라를 눌러댄다. 갑자기 한쪽으로 사람들의 시선이 쏠린다. 선죽교 설명을 하러 한복차림의 북측 여성안내원이 등장한 것이다. 핸드마이크를 들고 설명을 이어나가는 데 남측 분들이 앞다투어 우산을 받쳐준다.


“어? 정말 핏자국이 있네?”        

여성안내원의 설명을 듣다가 그녀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 아래를 내려다보니 선죽교바닥에 검붉은 흔적이 남아있다. 날씨가 맑으면 더욱 진하게 보인다는 설명이 잇따른다. 이것이 진짜 정몽주의 핏자국인지 아니면 후세사람들이 가공한 인위적 흔적인지는 과학적 접근이 필요할 터이다. 하지만 사실관계 규명이 무슨 큰 의미가 있을까?  정몽주, 선죽교, 단심가로 상징되는 ‘충절’의 표상은 사람들의 마음속에 영원할 터이니 말이다.

비록 성리학적 대의명분에 갇혀있는 ‘충절’이었지만 조그만 이익에도 너도나도 앞다투어 시류를 쫒는 오늘의 세태에 경종을 울리고도 남음이 있다. 순간을 내던져서 영원히 사는 법을 보여준 사례라 할 수 있을까?


조선왕조를 거부한 그였지만 정작 조선시대 선비들의 추앙의 대상이 되었던 그다. 혁명적 동지의식이 강조되는 북한사회에서도 포은 정몽주의 삶은 북한식 사회주의와 맥이 닿을 수 있는 면이 있어 보이는 듯 하다. 안내문에 김일성과 김정일이 여러차례 이곳을 다녀갔다고 적혀있다.


‘용인에 정몽주의 묘소가 있다는 것을 아는 사람은 몇사람이나 될까?’

개성사람들과 함께 훗날 용인의 정몽주 묘소에 들러 술잔을 기울일 날을 그려보았다. 하늘엔 여전히 궂은 비가 내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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