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시간인데, 왜 내 시간이 아니지?

꼭 체크해야 할 5가지 자산 - 시간 1

by 큰손잡이

어푸 또 허우적거리던 시절 나라면

워~~~~ 언 이 사람아 언제 적 얘길 꺼내나

보란 듯이 헤엄지기 첨벙

-아이유 '어푸' 가사 중-



그냥 주말에 여자친구랑 데이트하고 싶어요


지금 회사를 다닌 지 얼마 안 됐을 때 내 입에서 진짜로 나왔던 이야기였다. 그 당시에 월급을 생각보다 많이 받았는데, 생전 처음 받아보는 큰 액수인 월급보다 여자친구와의 시간을 확보하고 싶다는 욕심이 더욱 컸다.


조직생활을 하면서 가장 놀랐던 건, "이렇게까지 내 시간이 없을 줄은 몰랐다."

물론 예전세대처럼 야근이 당연한 시대는 아니다. 회사는 '퇴근 후 개인 시간'을 존중하는 문화를 강조하고, 덕분에 겉으로는 훨씬 좋아진 듯 보인다.


하지만 현실은 다르다.

예상치 못한 야근은 여전히 많고, 주말이나 퇴근 이후에 일정이 바뀌는 일도 빈번하다.

억울하다고 말하긴 어렵다. 나 역시 운동을 가려다 친구의 술 한 잔에 넘어갈 때가 있다. 다만 그때의 선택은 '내가 선택한 시간, 내가 원한 시간'이었다면, 회사에서의 시간은 '내가 선택하지 않은 시간'이었다.


하루는 담배 피우는 선배를 따라서 옥상을 따라나섰다. 자녀가 둘이나 있는 선배였는데, 지금 본인의 급여로는 참 빡빡하다는 이야기를 해주었다. 순간 '읭?' 싶었다. 선배 월급을 어렴풋하게나마 가늠하고 있는 입장에서는 선배가 돈이 부족해서 추가수당을 더 많이 벌 수 있는 현장직으로 옮기고 싶다는 이야기는 별나라 이야기처럼 들렸다.

담배를 다 피워갈 때쯤, 선배가 나한테 '넌 어떠냐?'랴고 의견을 물어봐주었다. 그때 여자친구와 기념일 알람이 울렸고, 주말당직도 같은 날이라는 사실이 떠올랐다. 선배한테 "전... 돈도 좋지만, 아직은 여자친구랑 같이 시간을 더 보내고 싶어요.. 하하 월 400 안 받아도 좋아요"라면서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야근을 밥먹듯이 하는 게 불편했고, 퇴근 이후에 갑작스럽게 약속이 잡히는 것도 싫었다. 내 시간을 내가 컨트롤하지 못한다는 생각에 참 불만이었다.



연날리기 감각이랑 시간관리는 비슷하다.


내 시간을 내 맘대로 못한다는 불만은, 결국 사람에게서 터졌다.

지금은 다른 곳으로 가셨지만, 이전 팀장님과의 관계는 매일이 전쟁이었다.

하루가 멀다 하고 티격태격했고, 감정이 상하지 않은 날이 드물었다.


그래도 버텼다. 이름 있는 회사에서의 연차는 커리어에 도움이 된다고 믿었으니까.


그런데 갈등이 깊어질수록 스스로를 설득하기가 어려워졌다. ' 이 시간은 낭비야.' '저 사람 밑에서는 배울 게 없어.'라고 몇 번이고 곱씹었다. 결국 회사에 있어야 하는 이유보다 회사를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에 잠식되었고, 도망치듯 이력서를 썼다.

자격증 공부, 어학시험 준비... 하지만 결과는 최악이었다. 회사에서는 업무를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니, 야근이 쏟아졌고, 이직 제안들은 대부분이 지금 다니는 회사보다 규모도 작은 회사였다. 연봉은 조금 오르는 구조기는 했지만, 월급이 오른다고 해서 답답함이 사라지진 않을 것 같았다.


마치 늪지대에서 헤매는 느낌이었고, 가라앉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답답한 마음에 공원에 가서 앉아 있었다. 그때 내 눈에 연을 날리는 할아버지가 눈에 띄었다. 연을 날리는 포즈나 날고 있는 연이 눈으로 찾기 쉽지 않은 걸로 봐서는 고수 중에 고수였다. 그런데 재밌는 건 그 할아버지의 손놀림이었다. 갑자기 파르르르륵 하고 감거나, 쥐고 있던 실타래를 팍 놓으면서 연을 계속 올리는 것 아닌가. 계속 지켜보고 있다가 너무 재밌어 보여서 인근 슈퍼에 가서 연을 샀고 직접 한번 날려봤다.


'내 연은 무슨.. 50g짜리 추라도 달았나.' 내가 실타래를 들고 조금 뛸 때만 날다가 멈추면 뚝 떨어졌다. 혹시 뛰는 게 문제였나? 하는 마음에 할아버지처럼 아예 뛰지도 않고, 멀뚱멀뚱 서서 연을 높이 던져보았지만 헛수고였다. 결국 할아버지한테 어떻게 연을 날리냐고 물어봤고, 할아버지는 "연 처음 날리지?"라고 웃으며 얘기하시고는 몸소 시범을 보여주셨다.


방패연을 들고 있을 때는 5걸음 이상 안 걸으셨던 할아버지가 내 연을 들더니 자그마치 20m는 전력질주를 하셨다. 그 뒤에는 바람 방향에 맞춰서 실타래를 팍 놓았다가 다시 감았다가를 반복했다. 그렇게 두어 번 한 뒤에는 나한테 실타래를 주시면서 "일정 궤도에 오를 때까지는 뛰어야 돼. 그 뒤에는 바람이 불면 실타래를 풀고, 실타래 풀리는 속도가 조금 약해지면 바로 감아 버릇해.. 그게 익숙해지면, 아마 연은 충분히 높이 날고 있을 거고, 그때부터는 크게 감거나 크게 풀 일은 없을 거야"


그 이야기가 이상하게 연날리기 얘기로 들리지 않았다. 오히려 시간은 가는데 자꾸 일은 꼬이고, 조급해하는 나 자신한테 꼭 필요한 얘기처럼 들렸다.




시간의 값은 다르다.


그리고 그 시간은 기술로만 다룰 수 있는 게 아니다.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말을 수도 없이 들었다. 머리로는 이해했지만, 가슴으로는 와닿지 않았다. 그때까지만 해도 시간은 관리의 대상이지, 관찰의 대상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 생각이 틀렸다. 관리의 대상, 이겨야 되는 대상이 아니었다.


시간이란 건 연날리기와 닮아 있었다. 내게 주어진 바람이 어떤 흐름인지, 그걸 먼저 느끼고 나서야 비로소 조율이 가능했다.


역풍이 불 때는 힘주어 맞서기보다 줄을 넉넉히 풀고, 조급함을 내려놓아야 했다. 반대로 순풍이 불 때는 실을 단단히 감아 연의 고도를 유지해야 했다. 그렇게 감고, 풀고, 다시 감으며 시간은 내 편이 되었다.

결국 시간은 싸워 이길 대상이 아니었다. 흐름을 함께 타야 하는 동반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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