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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단화 Oct 17. 2024

열여덟 유럽일기 021

박물관의 도시

2016.09.27

Berlin, Deutschland


 일어나자마자 창문을 열었다. 밤사이 갇혀있던 공기가 나가고 조금은 서늘한 아침공기가 찾아왔다. 남자랑만 방을 쓴다는 게 예상치 못한 곳에서 불편함을 가져왔다. 이들의 데오드란트와 향수냄새가 내 코를 마비시킨 것이다.

 외출준비를 하며 뿌려대는 향수들의 냄새에 질식할 것만 같았다. 표정관리를 못할듯해 사람들이 나갈 때까지 기다렸다가 방이 비자마자 벌떡 일어나 창문을 열었다. 다행히 9시 이전에 나가고 10시 이후에 들어오는 바른생활(?) 어른이라 그런지 고통은 견딜만했다.


 몰아치는 향들에 떨어진 식욕을 달래고 길을 나섰다. 날이 좋아 원피스를 꺼내 입었다. 한국에서는 못 입을듯하지만 유럽이라면 충분히 가능할듯한 디자인이었다. 겨우 소매가 없는 원피스일 뿐인데 괜히 기분이 좋았다.


  사람마음이 참 간사하다. 자전거를 탈 때는 걸어 다니는 사람들이 편해 보였는데 걷다 보니 다시 자전거가 부러워진다. 그래도 자전거를 탈 때보다 느긋하게 구경할 수 있었고 풍경 사진도 찍을 수 있었다. 자전거와 도보의 각자의 장점이 뚜렷한 것이라 생각했다.


 박물관섬으로 이동해 앞으로 3일간 내 보물이 되어줄 박물관 패스를 구매했다.

 처음 <박물관 섬>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는 비유라 생각했다. 박물관들이 모여있는 구역을 말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진짜 '섬'이었다. 우리나라의 여의도 같은 강옆에 붙어있는 섬이었던 것이다.

 섬의 박물관들은 프로이센 왕가에서 시작되어 2차 세계대전을 거치고 1999년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많은 박물관이 있는 만큼 전시되어 있는 품목도, 종류도 다양했다. 그리고 그 다양한 문화재를 관리해야 하는 만큼 입장료 역시 부담스러웠다. 좀 더 저렴한 학생요금이 있기는 했지만 학생이 아닌지라 그림의 떡이었다.

 그런 나에게 '통합권'이란 이름만큼 사랑스러운 이름은 없었다. 어쩌다 알게 된 이 통합권은 무려 3일 동안이나 박물관 섬을 포함한 베를린 내 제휴 박물관들을 관람할 수 있었고 가격 역시 3곳을 가면 '본전'인 표였다. 안 살 이유가 없었다.


 안내센터에서 표를 받고선 신나게 발을 옮겼다. 첫 번째 목적지는 페르가몬 박물관이었다.

 입구까지 열심히 걸어가니 기다란 줄이 날 맞이했다. 그럼 그렇지. 당연하다시피 늘어진 줄을 기다리며 뛰는 가슴을 진정시켰다.


 누구나 풋사랑 하나쯤은 경험해 보았을 것이다. 보기만 해도 좋고, 잘 모르는 말을 해도 그냥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어쩌다 손이라도 닿으면 그냥 웃어버리고 계속해서 그 손을 쥐고 싶어 눈치를 보게 되는. 나에게도 그런 풋사랑이 있었다.

 어릴 적 책에서 보았던 고고학 유적들은 마치 과거의 유적보다는 별세계의 마법 같았다. 만화로 보든, 다큐멘터리로 보든. 어떠한 매체로 접해도 두근거리는 심장은 변하지 않았다.

 어떠한 역사를 가지고 있는지 잘 몰라도 좋았다. 8살 꼬맹이는 페르시아와 그리스를 구분하지 못한다. 다만 둘 다 너무도 예쁘고 좋아서 손을 곰질거릴 뿐이었다.


 "언젠가 저것들을 직접 보고 싶다."

 깊게 소망했던 소원이 이루어지는 날이었다. 독일에 와서 소소한 버킷리스트를 하나씩 지워나가고 그때마다 작은 행복을 느꼈지만 오늘만큼은 아니었다.


 내 눈으로 이슈타르의 문을 보았다. 이 한 문장을 쓰고 있는 지금 이 순간도 심장이 두근거린다. 내가 보았다. 그 푸르고 찬란한 벽을 내가 직접 보았다. 밑에서 올려다보면 한눈에 담기지도 않는 그 커다란 벽을 직접 바라보기를 얼마나 소망했었나.

사람들에 치여도 행복했다


 비록 보수공사로 어수선했지만 그렇다고 감동이 사라지지는 않았다. 내부수리 중이라 몇몇 전시물들은 관람이 제한되었었는데 가장 기대했던 이슈타르문은 볼 수 있어 다행이었다.

 박물관 이름의 주인인 페르가몬 제단은 보지 못했지만 이슈타르 문과 밀레투스 시장문을 보았으니 꽤 성공한 관람이었다 (현재 페르가몬 박물관은 보수공사로 휴관 중이다. 예정 오픈일은 2027년이다.)

 

 뛰는 심장을 부여잡고 박물관을 돌았다. 눈을 돌리기만 하면 유적들이 가득했다. 그러다가 내가 지금 독일에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설레던 가슴이 가라앉고 까끌거리는 뒷맛이 올라왔다.


 이슈타르문은 바빌론 왕국의 유물이다. 바빌론의 땅은 현재 이라크가 있는 땅이다. 어딜 봐도 독일과 관련이 있지 않다. 하다못해 옆나라도 아니다. 그러나 바빌론의 유물들이, 그리스의 유적들이 독일 땅에서 전시되고 있다. 거대한 건축물들의 벽돌 하나까지 떼와서 '복원'이란 이름으로 박제해 두었다. 


 기뻐하던 스스로가 부끄러워졌다. 애써 외면하던 진실이 떠올랐다. 나는 이 것들을 보기 위해 이라크로 갔어야 했다. 그리스로 갔어야 했다. 그러나 나는 독일에 있다. 서구문명들은 유물들을 가져와 놓고는 '보호'를 위해 어쩔 수 없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렇다고 그들이 그 유물들을 잘 '보호'했냐 묻는다면 글쎄올시다, 독일은 2차 세계대전에서 패망하며 많은 유물들을 잃어버렸다. 

 이곳만 해도 종전 이후 반파되었던 섬을 다시 재건한 것이며 그 과정에서 러시아에게 많은 유물을 빼앗겼다. 이걸 '보호'라 말할 수 있을까? 프랑스에서 '보호'하고 있는 '직지심체요절'만 해도 창고에서 굴러다니던걸 한국출신의 역사학자가 발견해 낸 것이다.


 불편한 마음을 한편에 두고 열심히 눈에 담았다. 이곳에 있어서는 안 되지만 이곳에 있기에 볼 수 있었다. 그 아이러니가 조금 슬펐다. 간질거리던 풋사랑이 끝나는 순간이었다.


 3시간이 순식간에 지나갔다. 문을 나서자마자 다음 목표를 향해 걸었다. 바로 옆이었기에 서두를 필요는 없었다. 두 번째로 들어간 곳은 '신新 박물관'이라는 직관적인 이름의  박물관이다. 옆에 있는 '구 박물관'까지가 오늘의 목표였다.


 신 박물관은 주로 이집트 관련 유물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관과 미라만 모아놓은 전시관도 있었는데 어두운 조명사이 빼곡히 누워있는 관들과 미라는 꽤 오묘한 감상을 전해주었다.

 역시나 이곳에 있는 게 어색한 전시품들이었다. 서양에 장물 없는 박물관이 없다지만 눈으로 보게 되니 다시 한번 입맛이 썼다.

 전시품에 맞춰 약간은 서늘한 온도가 느껴졌다. 깊어지는 고민을 휘휘 떨치고 그냥 눈앞에 있는 것만 생각하기로 했다. 이곳에서 가장 유명한 전시품이자 내 목적인 네페르티티의 흉상을 보러 이동했다.


 흉상은 진짜 '살아있는 여인'의 모습이었다. 선명한 윤곽과 매끄러운 피부, 당당한 눈빛에 우아한 표정은 설명 없이도 이 얼굴의 주인이 권력자였다고 말하는듯했다. 정형화된 미인보다는 진짜 이집트에 가면 있을 것 같은 아름다운 얼굴이었다. 한 바퀴 돌고 다시 한번 흉상을 찾아갔다. 여전히 아름다웠고 여전히 우아했다.


 그러다 문득 엄마와 닮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객관적으로 생각한다면 이목구비가 짙다는 것을 제외한 공통점은 없다. 그러나 자꾸 엄마가 생각났다. 왜 그럴까 싶어 가만히 바라보다 나 나름대로의 답을 내렸다.

 내가 봤을 때 예쁘고 좋은 것, 다정하고 따뜻한 것들은 다 엄마를 생각나게 한다. 그래서 나는 아름답고 보기 좋은 것들을 볼 때마다 엄마를 떠올린다. 엄마는 내가 태어나서 처음으로 인식한 '좋은 것'이니까.


 '구 박물관'은 생각보다 인상적이지는 않았다. 유적과 유물보다는 미술과 예술품이 메인인 장소라 더 그랬던 듯하다. 그러나 그게 싫었다는 말은 아니다. 이곳에는 이름만 들어도 알만한 작가들의 그림들이 가득했다.

 그러나 이미 2천 년 전 유물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던 나는 2백 년 전 그림은 영 흥미가 생기지 않았다. 더불어 마지막날 미술관 2개를 몰아쳐 볼 생각에 그림들은 그때 보자 싶어 흥미 버튼을 꺼둔 채로 돌아다닌 탓도 있다. 그림 하나하나에 열광하기에 나의 기력은 이미 빨려 너덜거리고 있었다.


 그럼에도 모네와 르누아르의 그림 앞에서는 발걸음을 멈췄다. 문외한인 나에게도 화풍이 지문인 작가들의 작품이 보였다. 한 번만 보고 가라며 내 눈길을 잡는 그림들에게 붙잡히며 커다란 전시관을 설렁설렁 보았다.

 부럽고 질투가 나서 한숨이 나왔다. 빼앗아온 것, 사 온 것, 그들이 만들어낸 것. 수많은 명작들이 그들의 후손을 배 불리고 있었다. 


 독일로서는 조금 억울할 수도 있겠다. 지상최대 장물박물관이라는 영국박물관과 거기에 한술 더 떠서 비싼 표까지 팔아먹는 루브르에 비하면 독일은 그나마(?) 양호했다.(독일은 몇몇 유적들을 선물 받았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내 첫 유럽여행이 독일이었는걸!

 독일에게 심심한 위로를 전하자면 난 몇 년 뒤 영국박물관과 루브르 모두 방문했다. 굉장히 즐겼고, 엄청나게 욕했으며, 가루가 되도록 서양 것들의 악독함을 깠다. 증인으로는 귀에 피가 날 정도로 내 감상을 (강제로) 들어야 했던 동생을 내세우겠다.


 박물관을 나와 그 앞 계단에 앉았다. 초록잔디가 깔린 작은 광장 옆으로 베를린돔이 보였다. 정면에는 공사가 한창이었는데 가림막 위로 그려진 삼성광고가 어색했다.

 가만히 오래된 박물관 계단에 앉아있다 보니 석양이 지기 시작했다. 푸르게 빛나던 청록빛 돔이 붉은빛을 받으며 옷을 갈아입었다.


 해가 지기 전에 숙소에 들어가려 했지만 석양을 보는 순간 모든 계획을 수정했다. 비록 30분 뒤에 두려움에 달달 떨며 숙소 근처 공원을 가로지를 내가 보였지만 이 석양을 놓친다면 두고두고 후회할 것 또한 보였다.

 단 10분의 여유를 가지지 못할 것이라면 내가 왜 이곳에 왔을까. 엉덩이를 눌러 붙이고 다리를 폈다. 쌀쌀한 저녁바람을 감수하며 나는 석양의 여유를 맛보았다.

시간이 지나도 잊을 수 없는 풍경이다



 먹고 살아가기 바빠 잠시 여유 있게 갑니다. 앞으로 열여덟 유럽일기는 매주 월요일에만 찾아뵙겠습니다.

 항상 읽어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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