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것들 속의 친숙함
아침에 일어나 어제 정리해 둔 짐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바리바리 챙겨 온 물건들을 확인하고 베를린에서 마지막이 될 환기를 시작했다.
나갈 준비를 마치고 방을 나왔다. 베를린이라는 도시는 너무 마음에 들고 이 작은 호스텔도 조금 정이 들었지만 냄새나는 남자들과 사용한 4인실은 그립지 않을 듯했다. 숙소를 예약할 때 인원수 말고 방 면적을 봐야 한다는 큰 깨달음을 준 곳이었다.
숙소를 나와 버스를 타고 중앙역으로 향했다. 거대한 유리건물이 햇살에 반짝였다. 플랫폼을 찾고 기다리자 기차가 도착했다. 몇 번이고 목적지를 확인하고 기차에 올라탔다. 뉘른베르크를 지나 뮌헨으로 가는 ICE. 타는 그 순간까지 열차옆에 반짝이는 주홍글씨를 읽었다. '너 뉘른베르크 가는 거 맞지? 나 제대로 타고 있는 거지?' 불안에 달달 떨면서도 두 눈은 착실하게 내 자리를 찾았고 두 손은 캐리어까지 짐칸에 잘 묶어두었다.
짐이 몸과 떨어져 몇 시간이고 흐른다는 게 조금 불안했지만 그렇다고 손도 잘 안 닿는 머리 위 짐칸으로 캐리어를 올려놓을 근육은 없었다.
여행을 하면서 수십 번도 더 다짐한 '근력운동 해야지'를 중얼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자리에 앉고 얼마 되지 않아 5시간의 긴 기차여행이 시작되었다. 내 앞자리에 앉은 모녀는 조용했고 짧은 눈인사 후 각기 본인의 할 일을 시작했다. 간간히 책장 넘기는 소리와 함께 변해가는 풍경을 구경하며 찾아오는 잠을 맞이했다.
눈을 감았다 뜨니 도착이었으면 좋았겠지만 아쉽게도 한참을 더 달려야 했다. 맞은편에 모녀는 중간에 내렸는지 이번에는 조용한 꼬마와 아빠가 앉아있었다.
꼬마는 얇은 만화책을 굉장히 열심히 탐독하고 있었는데 들고 있는 책이 묘하게 익숙해 바라보게 되었다. 그러다 그 책이 한동안 내가 빠졌던 미국 코믹스의 독일어판이란 걸 깨달았다.
저 내용을 애가 읽어도 되나..? 나 역시도 미성년자라지만 저 친구는 진짜 '애'인데..?
비교적 평화롭고 잔인하지 않은 청소년용이기는 하지만 꼬마는 '청소년'도 안되어 보였다. 짧은 혼란이 지나갔지만 내가 관여할 일은 아니었다. 옆에 보호자가 있으니 괜찮은 거라 생각하기로 했다.
한국에서도 어린아이들이 성인들의 오락거리를 즐기는 모습을 보았었다.
잠깐 아이들을 많이 만나는 일을 했었을 때 초등학생들 사이에서 최고의 유행은 잔인해서 청소년관람불가 판정을 받은 일본 애니메이션이었다. 어떻게 보았냐는 질문에는 가지각색의 답이 들려왔다.
'TV에서'
'형이 보여줘서'
'유튜브에서'
그때의 나는 그저 아이들에게 부모님이나 나이 많은 형제와 같이 보라고 말을 하는 것밖에는 방법을 몰랐다. 내가 봐도 흠칫거릴 정도로 잔인한 것을 아무런 제재 없이 스펀지처럼 받아들이는 아이들이 조금 무섭기도 하고 그런 환경에 쉽게 노출되는 사회가 징그럽기도 했다.
나 역시도 나이에 맞지 않는 미디어를 쉽게, 그리고 많이 접하며 살아온 사람이기에 더 걱정되었다. 독일까지 와서 하게 될 줄은 몰랐던 걱정이기도 했다.
눈을 감고 다시 잠을 청해보았다. 설핏 잠들었는가 싶었는데 배에서 올라오는 공복감에 눈을 떴다. 아침을 건너뛰어서인지, 점심때가 되어서인지 배가 고파왔다.
주변을 둘러보니 사람들이 저마다 자리에서 식사를 해결 중이었다. 가방에서 간식을 꺼내든 매점칸을 다녀오든 손에는 요기가 될만한 것들을 들고 있었다.
나 역시도 가방을 뒤적여 사과 한 알을 꺼냈다. 뽀득뽀득 씻어서 보관해 둔 사과를 베어 먹으면서 창밖을 구경했다. 나름 로망이라면 로망인 '도시락 먹으며 기차여행하기'를 얼렁뚱땅 해치운 기분이었다.
암묵적인 점심시간이 지나고 2시간이 더 흘러야 나의 목적지에 도착했다. 뻐근한 허리를 펴고 사람들이 빠질 때까지 조금 기다렸다. 작은 역이라면 정차 전에 미리 준비하고 후다닥 내려야겠지만 나름 큰 역이라고 정차시간이 (비교적) 여유 있었다.
짐을 챙기고 문 앞으로 가니 날씨에 맞지 않은 옷을 입은 아저씨가 올라탔다. 아저씨와 부딪치기 싫어 얼결에 자리를 비켜주니 안쪽으로 들어가 좌석을 하나하나 살펴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희한해서 잠시 시선을 두었다.
내가 쳐다보거나 말거나 열심히 좌석을 뒤지던 아저씨를 또 다른 승객이 불러 세웠다. 긴말은 안 하고 들고 있던 맥주캔을 건네는 승객에게 아저씨는 당케를 외치며 인사했다. 기차에서 내리면서 그 아저씨가 노숙자라는 걸 알아챘다.
독일의 역사는 개찰구가 따로 있지 않았기 때문에 기차가 출발하고 검표가 있을 때까지 표를 보여줄 필요가 없었다. 차가 출발하기 전에 내리기만 한다면 표가 없는 사람도 몇 번이고 차량내부를 들어갔다 나와도 모를 일이었다.
아저씨는 그 점을 이용해 승객이 버리고 간 음료캔을 찾고 아마 그 캔의 판트비로 하루를 살았을 것이다.
0.25유로. 승객이 건넨 맥주캔은 쓰레기가 아니라 돈이었다.
독일 시내를 돌아다니다 보면 종종 병이나 캔 따위가 쓰레기통 위에 곱게 올려져 있는 것을 발견하곤 했다. 아마도 같은 맥락에서 이루어진 행위였을 것이다.
여행을 다닐 때 독일에서 장을 보다 보면 0.2, 0.25유로짜리 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작고 싸지만 내 기준 맛은 좋았다. 그리고 이 빵은 공병 한 개를 주우면 살 수 있다는 점이 더더욱 좋았다.
한국에서 가장 저렴한 비누가 천 원을 넘지 않는 것처럼 독일에서 가장 저렴한 빵은 판트비용을 넘지 않았다. (적어도 2016년에는 그랬다.) 그게 마치 사회가 정해준 마지막 마지노선 같아서 기묘한 안정감이 들었다.
얼마 전 덴마크에 설치되었다는 쓰레기통에 관한 기사를 읽은 적 있다. 평범한 쓰레기통 옆에는 작은 바가 있고 그곳에 물병이나 음료캔 따위를 놓을 수 있게 되어있는 모양이었다. 작지만 커다란 아이디어다.
관심 있는 분들을 위해 기사를 첨부한다. 관련기사
뉘른베르크 중앙역을 나와 호스텔로 걸어갔다. 이번 숙소는 베를린과 달리 중앙역에서 10분 정도만 걸으면 바로 나오는 곳이었다. 돌길이긴 하지만 성벽이 이어져 걷는 맛이 있었다.
체크인을 하고 방을 배정받아 올라가자 널따란 8인실이 나를 맞이했다. 그래 이거지. 숨통이 트이는 넓은 방에 만족감이 차올랐다. 2층침대에 가방을 올려놓고 룸메이트들과 인사를 나눴다. 놀랍게도 같은 방에 한국인이 3명이나 들어와 있었다. 가벼운 인사를 나누고 오랜만에 한국어를 사용하니 입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안 그렇다 생각했지만 모국어가 조금 그리웠던 것 같다.
짧은 휴식을 마치고 밖으로 나왔다. 오늘의 하이라이트자 주요 일정을 위해서였다.
그동안 여행을 하면서 만난 사람들과 계속 SNS로 대화를 이어왔었다. 개중 몇몇은 각자의 스케줄로 답이 뜸해지고 벌써 희미해졌지만 의외로 가장 먼저 생긴 인연은 뚜렷하게 남아있었다.
베트남에서 만나 프랑크푸르트에서 헤어진 에니카를 뉘른베르크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다.
약속장소인 중앙역으로 6시에 딱 맞게 나온 에니카는 친구와 함께였다. 에니카와 비슷한 분위기의 친구 A는 유쾌했고 친절했다. 바로 저녁을 먹으러 이동하며 가벼운 대화를 나눴다.
A가 추천하는 식당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나에게 못 먹는 음식이나 좋아하는 음식 몇 가지를 물어본 둘은 약간의 토론을 거치고 메뉴를 추천해 주었다. 이름이 너무 생소해 기억은 나지 않지만 본인의 어깨를 가리키며 돼지의 어깨라 말하던 에니카의 웃음은 기억한다.
기다림 끝에 나온 요리는 굉장히 맛있었다. 메뉴이름을 받아 적지 않은 게 아쉬울 정도였다. 아주 부드럽게 썰린 고기는 누린내 없이 담백했고 살코기 위에 올려진 튀긴 껍질은 바삭했다. 곁들어 마신 하우스 맥주 역시 너무나 잘 어울렸다. 독일음식에서 가니쉬로 흔하게 나오는 쫀득한 감자마저 완벽했다.
자신 없는 언어는 술이 들어가면 더 잘 나온다. 맥주 한잔과 여행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내일 약속을 잡았다. 나를 위해 내일 하루 일일 가이드를 자처한 에니카는 본인만 믿으라며 웃었다.
고맙게도 에니카와 친구에게 저녁까지 얻어먹게 되었다. 즐겁긴 하지만 사람의 호의를 받는 게 아직도 어색한지라 계속 민망한 웃음이 나왔다. 그런 나를 배려한 것인지 A는 이게 아주 당연한 거란걸 강조했다.
'너는 우리의 손님이야. 손님에게 저녁을 대접하는 건 상식(Common Sense)이야.'
식당을 나와서 둘은 다음 약속을 가기 위해 헤어졌다. 에니카와 내일 같이 다니기로 약속한지라 짧은 저녁시간이 아쉽다는 느낌보단 고맙고 기쁜 마음이 더 컸다.
둘을 배웅하고 숙소로 걸어 들어오는 발걸음이 가벼웠다. 그 사이 영어가 늘었다며 좀 더 자신감을 가지라는 에니카의 말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처음으로 누군가에게 내가 더 '발전했다'는 소리를 듣는 게 꽤 고무적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