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과 70
매번 이동하지만 매번 아쉬움을 느낀다. 익숙했던 침대를 정리하고 놓고 가는 것이 없는지 꼼꼼히 짐을 챙겼다.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짐을 점검하지만 뒤돌면 빼먹은 것이나 잊어버린 것이 하나둘 고개를 든다.
늦게라도 발견한 것이 어디냐 싶어 짐을 쑤셔 넣고 다시 한번 점검한다. 이렇게 해도 놓고 가는 것이 생긴다. 베를린에서는 결국 잘 쓰던 건식수건을 하나 놓고 왔다. 세수를 하고 잠깐 말린다는 것을 곱게 침대에 걸어놓고 그대로 잊어버렸다. 열차에 앉아서야 그 사실을 기억해 낸 나였기에 조금 바보 같은 짐 점검을 몇 번이고 반복했다.
다음도시는 뉘른베르크에서 멀지 않은 도시인 뮌헨이었다. 9월 말에서 10월 초면 전 세계 사람들이 몰려드는 도시기도했다.
그쯤에서 뮌헨에는 옥토버페스트라는 거대한 축제가 열린다. 독일어로 10월과 축제라는 단어를 합친 옥토버페스트는 맥주를 좋아하지 않는 사람도 한 번쯤은 들어봤을 만한 유명한 축제다.
술을 좋아하기는 하지만 말도 안 통하는 수많은 군중들이 모이는 곳에서 혼자 술을 마실만큼은 아니었다. 게다가 이즈음 해서 숙박비의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았기에 부러 피하면 피했지 찾아갈 이유는 없었다.
처음 뉘른베르크와 뮌헨의 여행계획을 짜며 숙소를 알아볼 때, 예상했던 가격에 공이 하나 더 붙어있는 것을 보고 빠른 수정을 거쳤다. 그렇게 당일치기나 1박만 계획했던 뉘른베르크에서 4박을 묵었다. 덕분에 나는 에니카와 시내를 구경했고 맛있는 라들러를 마셨으며 좋은 사람과 불편한 사람을 알게 되었다. 처음 계획을 세울 때는 전혀 예상치 못한 경험들이었다.
축제기간이 끝나고 숙박비가 합리적인 가격으로 돌아온 뮌헨으로 향했다. 동행으로 어제 만난 한국인 D가 함께했다.
바로 어제 동행으로 피를 봐놓고 또 동행인가 싶지만 같은 숙소에 묵는다는 걸 공유한 순간 반쯤 결정된 이야기였다. 그리고 무엇보다 뮌헨에는 슈바인학센이 있었다! 간단히 말하면 독일식 족발로 튀긴 껍질은 바삭하고 속살은 촉촉한 돼지고기요리였다. 한 번쯤은 먹어보고 싶었는데 혼자서는 양이 많아 동행을 구하는 게 정석인 요리였다.
마침 혼자온 D가 같은 날 뮌헨으로 이동하고 같은 숙소를 잡았다. 그리고 D 역시 학센동행(!)을 찾고 있었기에 체결된 동행이었다.
동행의 결론부터 말하자면 만족스러웠다. 어제의 불편함은 내가 '타인'을 불편해해서가 아니라 '불편한' 타인과 함께 해서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참 이상한 일이었다.
나는 D보다는 B와 더 많은 공통점이 있었고 더 많은 시간을 보냈다. 그러나 B보다 D가 훨씬 더 대화하기 편하고 더 많은 말을 나눴다. 그렇다고 D가 엄청나게 편했다거나 잘 맞았다는 게 아니다. 그냥 적당히 즐거웠고 적당히 웃었으며 각자의 여행을 공유하고 들어줬을 뿐이다.
사람을 대하는 건 결국 능력과 노력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인간관계가 서툴고 사회생활이 뭔지도 잘 모르겠지만 적어도 타인에 대한 '배려'와 '무례'의 경계는 느끼게 되었다.
자연스레 자기반성이 뒤따라왔다. 나 역시 누군가에게 B 같은 사람이었을까? 악의는 없지만 무례한 사람. 아차 하면 그리될까 봐 걱정되었다.
D와 약속한 시간에 뉘른베르크 숙소 로비에서 만났다. 중앙역으로 캐리어를 끌고 가 열차표를 끊었다. 열차가 도착하기 전 D에게 양해를 구하고 캐리어를 맡겼다. 역 내부에 마트로 뛰어들어가 잔뜩 쌓아둔 판트를 해치웠다. 무료 1유로를 벌었다! 물론 내가 다 열심히 마신 흔적이지만 쓰레기를 가져다주고 받은 동전은 괜히 공짜돈을 얻은 기분을 주었다.
후다닥 뛰어온 나에게 D는 얼마를 벌었냐며 고개를 갸웃거렸다. 1유로를 벌었다 보여주자 이제껏 버려온 물병이 아쉬운 듯 입맛을 다셨다. 다만 본인은 귀찮아서 안 했을 거 같긴 하다며 D는 내 캐리어를 넘겨주었다.
일행이 없었다면 마트에 캐리어와 가방을 바리바리 끌고 가야 했겠지만 믿을 수 있는 동행덕에 가벼운 몸으로 금방 다녀올 수 있었다.
뮌헨으로 가는 길은 비교적 금방이었다. 길다면 긴 2시간 반의 열차여행이었지만 베를린에서 뉘른베르크로 올 때를 생각하면 꽤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
중앙역의 코앞인 숙소로 체크인을 했다. 짐을 던져두고 D와 함께 시내를 구경하러 나왔다.
축제는 끝났지만 항상 사람들이 찾아오는 관광지라 그런지 관광객들이 가득했다. 인파를 뚫으며 D와 함께 구시가지를 구경했다. 광장을 구경하고 교회도 둘러보니 배가 약간 출출해져 왔다.
저녁치고는 조금 이른 시간이었지만 다행히 가고자 하는 학센식당의 문이 열려있었다. 바깥부터 보이는 구워지고 있는 고기들을 보니 예전에 길거리 트럭에서 팔던 통닭구이가 생각났다.
본래 나는 고기를 엄청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비계 가득한 족발을 돈 주고 사 먹는 게 아까운 사람이었다. 고기가 구워지는 냄새는 식욕을 자극했지만 동시에 역한 불쾌함도 주었다. 그럼에도 여기까지 와서 안 먹고 돌아가기는 아쉬웠다. 한국에서는 절대 내 돈 주고 안 먹을 음식이기에 본고장이라는 핑계를 삼아 도전해 보기로 했다.
식당에 들어가서 주문을 하자 웨이터 아저씨가 큼지막한 고기 네 덩어리를 가져와 보여주었다. 이 중에서 하나를 고르라기에 D와 상의 후 적당해 보이는 녀석을 골랐다. 잠시 후 우리가 고른 고기는 반으로 잘려 각자 접시에 놓여나왔다.
막상 잘린 걸 보니 조금 작은가? 싶었지만 먹다 보니 결코 적은 양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눈에 보이는 것처럼 느끼해서 맥주 없이는 다 먹을 수 없을 거 같았다.
시원한 맥주를 마시고 바삭한 껍질을 입에 넣었다. 콰삭. 하는 소리와 함께 짭짤한 튀김이 입안을 채웠다. 다시 맥주를 한 모금 마시고 이번에는 살코기 부분을 잘라먹었다. 약간은 퍽퍽하게 느껴지는 맛이 점차 감칠맛을 내며 으깨졌다. 다시 맥주를 마시고 또 고기를 입에 넣었다. 몇 번 반복하자 배가 빵빵해졌다.
식사를 마치고 식당을 나왔다. 바깥에 돌아가는 고기들을 보니 이제는 저게 몇 인분인가 싶어 아연해졌다. 한동안은 고기 생각이 안 날 거 같았다. D 역시도 고기에 물렸다 말하며 후식으로 아이스크림 하나를 사 먹었다.
개인적으로 독일에서 먹었던 요리 중에는 에니카가 사주었던 돼지 어깨요리가 제일 맛있었지만 슈바인학센의 비주얼만큼은 강렬했다. 통으로 나온 거대한 고깃덩어리는 사진을 잘 안 찍는 나도 절로 카메라를 들게 만들었다. 다만 한번 먹었으니 이제는 또 안 먹을 거 같다.
자취를 시작하면서 고기를 좋아하게 되었다. 다시 일기를 쓰는 지금도 예전이라면 쳐다도 안 봤을 달고 기름진 요리가 당긴다. 엄마의 단탄지 가득한 건강 밥상에서 야메요리로 식단이 바뀌다 보니 몸이 지방을 요구하는 건가 싶은 생각도 든다. 한동안 우리 집에서 고기 좋아하는 게 나뿐인가 싶었는데 동생이 같이 살기 시작하며 동생 역시 고기를 찾게 되었다. 진짜 식단에 영양소가 부족해지면 고기가 끌리는 것일까?
숙소로 돌아와 뻗자 긴장이 풀렸는지 몸이 으슬으슬 떨려왔다. 고기로 영양보충도 했는데 감기가 또다시 찾아왔다. 내일은 실내 관광위주로 루트를 짰다.
자리에 앉아 이것저것 하다가 스페인행 비행기 예약도 다시 잡았다. 여전히 허투루 날린 70유로가 속상했다. 항공사에 메일도 남겨보았지만 변화는 없었다. 도대체 유럽인들은 어떻게 이렇게 답답한 일처리를 견디고 사는 것일까 싶다가 그냥 내가 외국인에 언어가 안되어서 더 힘든가 보다 생각하기로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가계부 한구석에 바보짓이란 이름으로 올라간 -70유로가 눈에 밟힌다. 전화를 해보라는 J의 말에 내일쯤 다시 전화를 해보기로 했다. 한국어로 하는 컴플레인도 어려운데 영어로 하는 건 그의 곱절쯤 더 어렵다.
뭐든지 잘하고 수월하게 해내고 싶은데 실수투성이에 시행착오만 한가득 쌓인다. 아까 먹은 슈바인학센이 너무 느끼했던 탓일까. 괜히 울적해지는 기분에 괜히 울렁이는 속을 핑계 삼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