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열여덟 유럽일기 041

한낮의 잠과 한여름의 눈

by 강단화

2016.10.21

Ronda, Spain


알람진동에 맞춰 눈을 뜨고 부지런히 아침을 준비했다. 오늘의 가이드이자 내 스페인여행의 길잡이 노릇을 톡톡히 해주고 있는 E언니를 기다리게 하지 않기 위해 부지런히 준비를 했다.

게으른 몸도 한번 탄성을 받으니 아침 기상이 그렇게까지 힘들지는 않았다. 다행히 나는 시간 맞춰 언니와 함께 론다(Ronda)로 떠나는 버스를 탈 수 있었다.


2시간가량 구불거리는 길을 지나 도착한 곳은 태양이 뜨거운 마을이었다. 버스정류장에 내리자마자 아침보다는 한낮에 가까워진 열기가 얼굴을 덮쳤다. 더 더워지기 전에 우리는 목적이자 언니가 론다에서 거의 유일하게 기대하던 '누에보다리'를 보기 위해 바로 이동했다.

누에보 다리를 처음 볼 때는 큰 감흥이 없었다. 날은 더웠고 오래된 돌다리는 이제껏 여행을 하며 본 수많은 다리들과 큰 차이가 없어 보였다. 주변에 펼쳐진 풍경이 시원한 맛을 주기는 했지만 때마침 들이찬 단체 관광객덕에 오래 서있기도 힘들었다. 약간은 실망 아닌 실망이 차오르려 할 때 언니가 나를 이끌었다.


언니의 말에 따라 옆으로 빠지자 다리 밑으로 이어지는 길이 보였다. 그리고 그곳부터 시작된 풍경이 '진짜'였다.


길을 따라 내려가자 언뜻 보이던 커다란 협곡이 더 잘 보였다. 줄어든 사람만큼이나 넓어진 시야 속으로 거대한 암석층과 그곳을 비집고 나온 초목이 눈에 띄었다.

절로 감탄이 나오는 웅장함이었다. 그렇게 앞을 보며 걸어가다 뒤를 도는 순간 내려온 만큼 올려다봐야 하는 거대한 다리가 서있었다. 마치 돌에서 뻗어 나온 듯한 기둥이 아래를 단단하게 받치고 있었고 부드럽게 이어진 다리의 진입 부분은 마치 날개 같았다. 언니도 나도 탄성을 내뱉으며 사진을 찍었다.


오로지 이곳에서의 사진을 위해 오늘 원피스를 입었다는 언니의 말이 이해가 갔다. 다리를 배경으로 환하게 웃는 언니가 너무 예뻐 보였다. 그 모습을 더 예쁘게 찍어주고 싶었는데 잘 따라주지 않는 손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서로를 찍어주고 사진을 확인하며 이동하자 뒤에서 아주머니 한분이 잽싸게 포토존을 차지했다. 쭉 우리를 지켜보던 그분은 우리에게 손짓을 했는데 처음에는 얼른 비키라는 의미인 줄 알았지만 알고 보니 좀 더 절벽 쪽으로 다가가라는 의미였다. 내가 무섭다며 웃자 고개를 저으시며 포기하시더니 결국 본인이 원하는 자리에 본인이 자리를 잡으셨다.

절벽 앞에 나아가 허리에 손을 챡! 올린 아주머니는 위풍당당했다. 정말 멋있는 샷이 나올 것 같았지만 솔직히 말하자면 무서웠다. 돌출된 지형 안쪽의 돌에 기대어 찍은 우리와 달리 그분은 돌출 지형 맨 끝에 서서 사진을 찍었다. 말 그대로 '절벽 끝'이었다.


'저것이 바로 대륙의 기상이구나!' 따위의 생각을 하며 우리는 걸음을 옮겼다. 우리 여행자 보험이 사진을 찍다 당한 사고에도 적용이 될지에 대한 토론은 덤이었다.


20161021_123617.jpg 아래에서 바라본 누에보 다리


우리는 다리 밑으로 내려가 길 끝에 있는 작은 폭포까지 찍고 올라왔다. 길이 썩 좋은 편은 아니라 중간부터는 '여기가 맞나?' 싶었지만 풍경 하나만큼은 후회 없었다.

부지런히 구경한 덕에 다리가 당겨오고 배도 고파왔다. 잠시 쉴만한 식당을 찾기 위해 구글맵을 켜보니 뜻하지 않은 글자가 우리를 반기고 있었다. 시에스타(Siesta: 낮잠을 자는 스페인의 문화). 더위에 지친 스페인 사람들은 관광객에게 밥을 팔아주는 대신 달콤한 낮잠을 선택한 것이다.


미리 봐두었던 모든 식당과 카페가 문을 닫았다. 어쩜 이럴 수 있을까 싶게 닫혀버린 매장들 사이에서 우리는 허망하게 서로를 바라보았다.

변명을 하자면 바르셀로나에서는 이 시간에 식당을 갈 일도 거의 없었고 내가 머물던 람블라스 거리는 극도로 많은 관광객의 수요에 맞춰 시에스타가 짧거나 없는 경우도 있었다. 그런고로 우리는 시에스타를 새카맣게 잊고 있었다.


잠시뒤면 맛난 걸 먹으며 쉴 수 있다 생각한 몸이 현실을 거부했다. 이제 그만 당분과 휴식을 내놓으라며 빽빽 소리를 질러대는 몸을 무시하고 언니와 나는 내렸던 버스정류장으로 길을 거슬러 올라갔다. 아직 버스시간까지는 1시간이 넘게 남아있었다.

결국 우리가 들어간 곳은 론다에 도착해서 핫초코를 사마신 카페였다. 참고로 맛은 없었다.


바르셀로나에서 마지막날 언니를 끌고 내가 갔던 츄러스맛집을 다시 갔었다. 다만 시에스타인지 휴일인지 가게문은 셔터가 내려져있었다. 언니는 아쉬움을, 나는 미안함을 가지고 닫힌 문 앞에서 돌아 나와야 했다.

못내 츄러스와 핫초코에 아쉬움이 남은 언니는 론다에 도착해서 그 아쉬움을 풀어보자 했다. 다만 바르셀로나보다 훨씬 더운 론다에서 핫초코에 찍어먹는 츄러스는 그리 인기 있는 메뉴가 아니었고 겨우 찾아 들어간 카페의 츄러스와 초콜릿은 그저 그랬다. 심지어 관광지라 가격도 사악해 실망감은 두 배였다.


다리를 구경하면서도 핫초코의 아쉬움을 말했던 언니는 결국 울며 겨자 먹기로 다시 그 카페에 들어가야만 했다. 정말 놀랍도록 그 카페를 제외한 모든 식당과 카페가 문을 걸어 잠그고 있었기 때문이다. 왜 이 카페가 망하지 않는지 알 수 있는 풍경이었다.

한번 실패한 메뉴는 쳐다도 안 보고 나는 그냥 오렌지 주스를 골랐다. 뭘 골라도 맛이 없을 거 같아 그저 바로 짜주는 주스는 평타라도 치겠지 싶은 속셈이었다.

주스는 미지근했고 생각보다 덜 달았다. 그래도 앉을 수 있는 의자를 얻었으니 그것에 만족하기로 했다.


30분 정도 의자에 앉아 휴식을 가지고 다시 버스에 올랐다. 굽이굽이 멀어지는 론다를 바라보다 부족한 잠을 보충했다. 눈을 감기까지 시야에 담기는 풍경이 아름다웠다.

여행을 하면서 그간 내가 봐오던 자연과는 많이 다른 풍경을 마주하게 된다. 그때마다 내가 얼마나 좁은 세계에 살았었는지, 얼마나 넓은 세계와 많은 풍경이 존재하는지 실감하게 된다.



(분량조절 실패로 아래로 하루치 더 이어집니다.)


2016.10.22

Sevilla, Spain


오늘도 역시나 E언니와 함께였다. 어제 론다에서 돌아와서 같이 공연을 예약하고 저녁을 먹었다. 그러면서 짜둔 루트에 맞추어 늦은 일정을 시작했다.


요 며칠 스페인 답지 않게 빡세게(?) 돌아다닌 보상으로 오늘은 여유롭게 아침을 맞이했다. 늦잠과 늦은 아침 겸 점심을 먹고 숙소를 나섰다. 어제저녁부터 불안하던 먹구름은 오늘 기어코 비가 되어 내렸다. 에리카의 우산을 펼쳐 들고 살바도르 성당으로 향했다. 살바도르 성당에서 대성당까지 관람하는 표를 사는 게 대성당에서 표를 사는 줄보다 짧다기에 선택한 루트였다.


독일에서 지겹게 봤던 양식과는 다른 성당이 눈앞에 보였다. 붉은 벽돌을 배경으로 궂은 날씨에도 사람들이 줄을 서있었다. 오래 기다릴까 걱정이 되었지만 의외로 줄은 금방금방 줄어들었다.

메인을 대성당으로 집어놓고 들어온 성당이라 큰 기대는 없었다. 그러나 그 기대를 크게 상회하는 내부에 감탄이 새어 나왔다.


바로 눈을 사로잡는 반짝임이 있었다. 우중충한 날씨덕에 스테인글라스로 들어오는 빛은 없었지만 그게 화려함을 반감시키지는 못했다. 크고 반짝이는 부조는 세밀했고 사치스러웠다. 건물전체에서 습기를 먹은 돌이 뿜어내는 한기와 차가운 금속의 색깔이 섞이니 오히려 새로운 감상을 전해주었다. 슬쩍 보고 돌아나가려던 마음이 줄어들었다. 생각보다 더 꼼꼼히 둘러보고 대성당으로 향했다.


대성당의 입구를 찾는데만 한참이 걸렸다. 길게 늘어선 매표줄을 지나치며 통합권을 구매한 언니의 선택에 자화자찬을 하며 성당으로 들어섰다. 내부는 성당이라기 보단 큰 요새를 벽 없이 뚫어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한마디로 '거대'했다.

비에 젖은 옷들이 스치는 소리가 공간을 울렸다. 관광객들의 감탄과 대화소리가 소란스럽게 전해졌고 발자국 소리는 계속 겹쳐 마치 드럼 같은 소리를 내었다. 한쪽 구석에 몰아진 학생 단체 사이에선 웃음소리가 터져 나왔다. 전체적으로 정신 사나운 첫인상이었다.


20161022_141646.jpg 화려했던 재단


소란스러움을 뚫고 들어가니 눈을 돌리는 곳마다 볼거리가 넘쳐났다. 유럽에서 3번째로 크다는 명성만큼이나 곳곳이 예술이었다. 가장 많이 사람들의 시선을 끌어들이는 건 황금빛의 재단이었다. 번쩍이는 금빛사이로 세심한 부조들이 빼곡히 들이차있었다. 누구나 저절로 시선이 갈만한 화려함이었다.


작은 방처럼 옆에 전시된 부조는 어느 하나 화려하지 않은 것이 없었고 가만히 들여다볼수록 그 정교함에 감탄이 나왔다. 공간은 거대하지만 그 속에 놓인 장식물은 투박하기는커녕 아주 세밀했다. 전체를 둘러보는 것에도 시간이 꽤 걸렸다. 벽면마다 가득한 볼거리에 가던 발을 멈추기 일쑤였다.


한참을 돌아다니다 이곳의 트레이드 마크를 발견했다. 바로 그 유명한 콜럼버스의 관이다. 네 명의 스페인 국왕이 들고 있는 관은 그의 유언에 따라 땅에 묻히지 않고 공중에 놓여있었다.

사실 개인적으로 좋아하는 인물은 아니었다. 그 사람의 모험심과 장사능력은 별개로 그가 팔려했던 품목 중 '사람'이 있는 이상 어떻게 그를 '위대하다'라고 칭할 수 있을까. 그럼에도 그가 많은 이들에게 영향을 주었던 인물임은 확실해 보였다. 먼 길을 돌아 이곳에 안치된 그의 관은 굉장히 호화스러웠다.

관을 들고 있는 네 명의 인물 중 앞쪽 두 명의 발이 유독 반질거렸는데 각 발마다 만지면 부자가 된다는 속설과 사랑하는 이와 세비야를 다시 찾는다는 속설이 있었다. 펜스 넘어 슬쩍 팔을 뻗는 외국인들이 보였다. 나 역시 시도해 보았지만 짧은 키와 팔 덕에 스치기만 했다. (그래서 아직 부자가 못됐나?)


내부를 돌다 세비야의 전경을 보러 성당에 붙어있는 탑을 올랐다. 특이하게도 계단이 없는 이 탑은 과거 이슬람교의 첨탑으로 지어졌다가 이후 사건을 겪으며 성당의 종탑으로 개조되었고 풍향계라는 의미의 히랄다(Giralda)라는 이름을 받게 되었다고 한다.

계단 없이 완만한 곡선으로 이루어진 탑은 생각만큼 힘들지는 않았다. 생각만큼이라는 거지 쉽다는 뜻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올라갈만한 강도였다. 과거 이슬람교도들은 말을 타고 탑을 올랐다는데 그래서인지 폭도 좁지 않아 꽤 쾌적한 등반을 해낼 수 있었다.


탑을 다 오르고 내려다본 전경 속 도심은 안개가 희뿌옇게 내려앉아있었다. 기대했던 풍경은 아니었다. 아쉬운 마음이 없다면 거짓이겠지만 어느 정도 예상한 광경이기도 했다. 언니와 바깥을 구경하다 문득 오늘이 겨울 같다는 감상이 들었다. 10월이면 한국에서는 가을이고 스페인에서는 아직 여름이었지만 바깥에 내려앉은 안개와 약간은 서늘하게 느껴지는 체온이 마치 눈이 내린 겨울의 초입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네 첫눈이 내린 거 같네'

내 감상에 돌아온 언니의 말을 듣는 순간 절로 웃음이 피어 나왔다. 그 말을 듣고 보니. 꼭 첫눈이 온 풍경 같았다. 젖은 지붕 위로 금방 녹아내릴 것 같은 작은 눈송이들이 쌓여있는 듯했다. 한여름에 맞이하는 첫눈이었다.


20161022_150735.jpg 빗물에 반사된 지붕과 흰 벽이 마치 눈이 쌓인 것 같았다


탑을 내려와 도심을 걸었다. 서서히 물러간 먹구름 사이로 햇살이 빼꼼 모습을 드러냈다. 아까 햇살이 나와주지 싶었지만 금세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다. 짙은 안개덕에 쉽게 보기 힘든 세비야의 설경을 구경했다 생각하니 절로 기분이 좋아졌다. 돌아다니라 고파온 배는 피자로 채우고 호스텔로 들어갔다. 저녁에 예약해 둔 공연을 위해 젖은 옷과 운동화를 말려야 했다.


E언니는 내가 세비야에 도착했을 때부터 플라멩코 공연에 대해 얘기를 했다. 한국에서 보았던 공연에서 좋은 경험을 한 언니는 그 춤의 본고장에서 공연을 봐보고 싶어 했다. 나 역시 흥미가 있기는 했지만 언니가 설명해 주는 춤과 그 경험에 홀린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같이 관람을 예약하게 되었다.


언니는 우리가 보는 공연이 플라멩코와 비슷한 '파소'라는 춤이라고 설명해 주었지만 사실 두 가지가 뭐가 다른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혼란스러워하는 나를 보고 언니는 두 춤 모두 스페인 전통 춤이고 비슷하니까 그냥 플라멩코랑 같은 거라 생각하면 된다고 말해주었다.


시간에 맞추어 들어간 공연장은 크지 않았지만 관람객들로 가득했다. 우리는 부러 중간보다 살짝 앞쪽에 자리 잡았다. 너무 가까이 가면 댄서의 땀이 튀긴다는 언니의 정보력덕이었다.


잠깐의 안내 끝에 이어진 공연은 정말 좋았다. 좋았다는 말은 너무 정적일정도로 역동적이었고 격렬했고 정열이 가득했다. 신기한 것은 그러면서 동시에 굉장히 상업적인 느낌도 났다는 것이다.


연주자를 제외한 댄서는 단 두 명으로 여자와 남자 한쌍이 함께하는 춤이었다. 인사할 때부터 여자 댄서 쪽이 더 베테랑 같다는 느낌이 있었다. 남자 쪽이 비교적 젊어서기도 했지만 여자의 절제된 태도가 마치 '업무 중'이라는 팻말을 들고 있는 것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그에 반해 남자 쪽 댄서는 흥이 너무 넘치는 느낌이었다. 만약 그가 강아지처럼 꼬리를 가지고 있었다면 쉴 새 없이 돌리느라 탈골이 왔을게 분명했다. 인사하는 몸짓만으로도 소란스러움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자기애가 강한 것 같았다.


노래에 맞추어 시작된 춤은 정말 시선을 뗄 수 없었다. 보는 것만으로도 발을 구르고 손뼉을 치게 되었다. 심장이 쿵쿵 뛰는 게 노래 때문인지 춤 때문인지 구별이 안 갔다. 여자댄서의 빨간 옷이 흔들릴수록 관객들의 소리도 커져갔다. 마치 우리를 가지고 투우를 하는 듯한 모습이었다.

노래가 끝나고 잠깐의 꿈결처럼 순식간에 지나간 시간에 아쉬움을 느낄 때 관객석에서 앵콜이 튀어나왔다.

계속되는 환호에 내려갔던 댄서들이 올라오고 짧은 곡이 연주되었다. 이제는 완전히 땀에 젖은 남자 댄서가 고개를 돌릴 때마다 땀방울이 튀는 게 보일정도였다. 다시 한번 앞에 앉지 않아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두 번의 앵콜 끝에 여자 댄서는 강아지를 3시간쯤 산책시킨 견주 같은 표정으로 무대를 내려갔고 남자댄서는 진흙탕에서 실컷 구른 똥강아지꼴로 그 뒤를 따랐다.


언니와 공연장을 나오는 순간부터 감상을 나누기 시작했다. 이야기는 꼬리를 물고 주제를 옮겨갔고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 저녁을 먹는 내내 신나게 수다를 떨었다.

내일 E 언니가 떠나면 한동안 또 혼자가 된다. 앞으로 겹치는 동선이 있어 잘하면 또 만나겠지만 부러 일정을 맞추지는 않았다.


언니와의 이별이 아쉬웠다. 그러나 동시에 오랜만에 혼자가 되는 그 시간이 기대되었다.



연재가 30화를 넘어가며 브런치 정책에 따라 추가 게시글이 막혀 새로운 브런치북을 만들었습니다.

기존 <열여덟 유럽일기-하->편은 <열여덟 유럽일기-중->으로 이름이 변경됩니다. 새로 올라오는 글은 새로 만든 <열여덟 유럽일기-하->편에서 연재됩니다. 언제나 찾아와 주시는 모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keywor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