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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작가 동하 Jan 04. 2021

새해 결심이 강제로 이루어지는 순간

야식과의 결별

작년부터 입으로 달고 살았던 말이 있다.


"치킨(야식)을 끊겠다"


하지만 말뿐이었다. 의지는 전혀 따라주지 않았다. 특히 휴일을 앞둔 마지막 근무일, 퇴근 후 집에 오면 뭔가 허전함을 느꼈다. 휴무일을 시작하는데 의식을 치르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 그 세리머니의 중심엔 늘 치킨이 있었다. 그렇게 1~2주에 한 번 정도 치킨과 벗했다. 몸을 생각하자는 마음에 작정하고 절제하면 3주 정도를 버텨냈던 것 같다. 치킨을 주문하면서 입버릇처럼 아내에게 "이게 마지막이야"라고 말했다.


새해에도 야식을 끊어야겠다는 결심은 마음으로만 가득했다. 그러나. 이상과 현실은 늘 괴리가 있는 법. 1월 1일 저녁, 나에게는 앞으로 이틀간의 휴무일이 더 있는 날이었다.


'31일을 뜻깊게 보냈잖아. 1일 정도는 그냥 풀어줘도 돼'


저변에서 맴돌던 또 다른 자아의 목소리가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게다가 아이들을 재워놓고 전날 못 본 미스*롯2 재방송을 보려고 했는데, 그냥 시청하기엔 밋밋함이 있지 않은가. 모든 명분이 완벽했다.


그렇게 변함없이 치킨이 도착했다. 그날따라 치킨은 또 왜 이렇게 바삭하니 입에 착착 달라붙는지. 평소 같으면 몇 점 남기던 그 브랜드의 치킨을 아내의 몇 조각 협찬만 얻은 채, 나는 뼈다귀만 남기고 싹 다 해치워 버렸다. 그때까진 참 좋았다.


예상대로 다음날, 더부룩한 속에도 늘 그렇듯 아침을 정성껏 비워냈다. 그러다 결국 탈이 났다. 생전 안 해본 급체란 것을 했고, 속은 울렁울렁, 열은 갑자기 수직상승. 토하고 난리를 치고, 약을 지어 먹었더니 땀은 뻘뻘. 열이 삭 가라앉았다. 열만 내리면 끝나는 줄 알고 또 밥을 골고루 냠냠 먹었더니 다시 속은 부글거렸다. 결국 연휴 이틀 내내 흰죽만 먹었다. 연휴 때 먹으려고 장만해 놨던 맛 좋은 음식들을 구경만 해야 했다. 아이들에게 소고기를 맛있게 구워주면서도 바라만 봐야 하는 자의 처절함이란.


결국 1일 밤의 세리머니는 야식과의 결별을 결단하기에 앞서 치러진 중대한 의식이 됐던 셈이다.


이제 확실히 깨닫는다. '야식을 마음껏 먹을 나이가 아니구나' 나의 허전한 자리는 이제 먹거리보다 다른 것으로 채워볼까 한다. 그래도 치킨과의 작별이 마냥 아쉬워, 이렇게 새해  첫 글로 남겨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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