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책을 낼 때 출판계약을 10월 마지막 날에 했다. 그때만 해도 계약만 하면 곧 있으면 책이 나온다고 생각했다. 주변 사람들에게 "계약했다. 야호! 빠르면 11월 말, 늦어도 12월엔 책이 나올 거야"라고 호기롭게 이야기했다. 처음이었으니 출판 생태계를 알 리 없었다. 결국 첫 책은 계약 후 7개월 뒤에 나왔다.
그렇다. 계약은 시작에 불과한 것이었다. 오히려 원고 초안을 작성하는 것보다 계약 후 출판사와 진행되는 과정이 더 어렵게 느껴졌다.
대략 계약 후 과정은 다음과 같다. 저자가 최종원고를 보내야 한다. 이 원고를 토대로 출판사에서 수정 의견을 저자에게 보내준다. 이 작업이 적으면 두세 차례, 많으면 대중없이 이어진다. 어느 정도 완료가 되면 출판사에서 교정교열 작업을 거쳐 교정본을 토대로 한 디자인 작업 등에 들어간다. 책이라는 게 A4용지를 그대로 옮겨놓는 게 아니라서 본문 편집 작업이 필요한 것이다. 이 즈음 제목에 대한 논의가 이어진다. 출판사에서 내부 검토를 거쳐 저자와 상의한 후 최종 결정된다. 이게 정해져야 표지 디자인을 할 수 있다. 표지 디자인을 할 때에야 비로소 '책이 3주 내로는 나올 수 있구나' 생각할 수 있다. 출판사에서 최종 검수 후 인쇄 등 제작 기간만 1~2주 소요되기 때문이다.
사실 초고는 막말로 내가 하고 싶은 대로, 쓰고 싶은 대로 휘갈기면 된다. 책 한 권 분량을 채워야 한다는 압박감도 만만찮기 때문에 온갖 군더더기들이 다 포함된다. 그러나 완성본을 작성하는 단계는 다르다. 책을 낸다는 생각으로 초고를 다시 보다 보면 버려야 할 것들이 너무나 많이 보인다. 어떤 챕터는 새로 써야 하는 글들도 있다. 그렇게 완성본을 보낸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출판사에서 수정 의견을 보내온다. 1차 수정본에 대한 검토 의견은 분량만 해도 만만찮다. 저자가 그걸 수용하느냐 하지 않느냐는 자체 판단이지만, 대략 이 글을 접한 첫 독자에게 지적을 당했다는 점에서 수정하는 게 좋다고 본다. 물론 수정 의견 그대로 고칠 필요는 없다.
몇 차례 수정 작업을 하면서 깨달은 바가 있다. 일간지 기자인 나는 늘 마감 시간에 쫓겨서 그런지 '빠름빠름'을 추구한다. 반면 출판사는 내가 느끼기엔 '만만디'다. 출판사에서 수정 의견을 보내오면 나는 즉각적으로 수정해서 하루 이틀 만에 보내버린다. 그런데 그 의견을 받아든 출판사는 며칠이 지나도, 어떨 땐 열흘이 지나도 아무런 소식이 없을 때가 있다.
첫 책을 낼 때 편집자와 나눴던 대화가 기억난다.
"기자님, 출판사랑 일하니까 답답하시죠. 저희는 반대로 기자님들이랑 일할 때 정말 편해요. 피드백을 바로바로 해주시거든요" "네, 답답한 건 아니고 제가 빨리빨리 주의라. 하하" "그런데, 시간이 알려주는 것들도 꽤 있답니다."
처음엔 '시간이 알려준다'라는 의미를 이해하지 못했다. '빠른 게 제일이지 시간이 뭘 알려준다는 거지?' 첫 책을 내고 이번에 두 번째 책을 내니까 비로소 시간이 뭘 알려주는지를 깨닫게 됐다. 한 단어로 표현하면 '숙성'이라고 할까. 뭔 말인고 하니 수정본을 고치다 보면 '이제 더 이상 고칠 게 없겠다'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러다가 출판사에 보내놓고 피드백을 기다리는 며칠 간의 '답답한' 시간이 있다. 그 기간에 생각이라는 걸 하게 된다. '아 맞아, 그 부분' 시간의 여백에서 드러나는 것들이 보인다. 그걸 수정 안 했으면 큰일 날 뻔했다 싶은 것들도 보인다. 시간을 두고 생각하지 않았다면 보이지 않았을 부분이다.
두 번째 책 '질문은 그를 귀찮게 해'를 낼 때, 출판사의 피드백을 기다리면서 이 시간의 묘미를 활용했다. 다만 수정 검토 의견이 출판사로부터 도착했을 땐 나는 다시 빨리빨리 주의를 활용했다. 내가 최대한 빨리 보내 놓고 출판사의 피드백이 오기 전, 여백의 시간에 생각을 하면 되니 말이다. 그래서인지 출판사에선 당초 2021년 1월로 출간 예정 시점을 잡았는데, 한 달이 당겨졌다. 출판사에서 검토 의견이 오면 하루를 넘기지 않고 피드백을 했던 것 같다.
첫 책은 7개월 만에 나온 반면 두 번째 책은 3개월 반 만에 나왔다. 출판사마다 스타일이 있으니 속도도 다소 다른 것 같다. 여하튼 짧은 기사만 쓰는 내가 호흡이 긴 책 두 권을 내면서 시간의 묘미를 알게 됐다는 건 저자로서의 큰 수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