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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작가 동하 Jan 27. 2021

책 쓰기를 주저케 하는 괜한 걱정들

우리집 글쓰기 작업장. 아이들이 잠들면 나와 아내는 종종 저곳을 찾아 글을 읽거나 쓴다.


"일하면서 어떻게 2년 사이 책을 두 권이나 냈어요?"


두 번째 저서 '질문은 그를 귀찮게 해'(이담북스)를 내고 나서 많이 듣는 이야기 중 하나다. 출판에 관심이 있는 분들은 "책을 내고 싶은데 엄두가 안 나요" "이렇게 쓰는 데 얼마나 걸렸어요?"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어요"라는 말을 종종 한다.


책 쓰기를 시작도 안 했는데, 걱정부터 가득한 분들이 있다. "주변에서 내용이 이상하다고 할까 봐 책을 쓸 자신이 없어요" "비난을 받으면 어떡하죠?"


오늘도 누군가를 만나 이런 이야길 들으면서 '책 쓰기를 주저하게 하는 괜한 걱정들'을 정리해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1. 서너 장은 쓰겠는데, 한 권 분량은 도저히 쓸 자신이 없어요.

250~300페이지를 한 번에 다 쓸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런데도 그렇게 써야 할 것처럼 착각하다 보니 결국 시작도 못 하게 된다.

해답은 목차 작성에 있다. 사실 책은 목차가 반이다. 일단 목차부터 짜 보면 두려움이 반으로 줄어들 것이다. 대분류(part 1, 2, 3, 4 등)를 먼저 하고 각 파트에 세부적으로 들어갈 제목들을 쭉 나열해 보자. 책 한 권은 250~300페이지겠지만, 30~40개의 소제목이 만들어졌다면 소제목마다 대략 3~5페이지 정도만 작성하면 된다. 서너 장을 쓸 수 있는 분이라면 그 서너 장을 30~40번 정도 쓰면 책 한 권 분량이 되는 것이다.


*참고

40개 x 5페이지=200페이지? 계산이 안 맞는다고? 아니다. '여백의 미'라는 게 있다. 요즘 책들은 빽빽하지 않다. 여백과 편집을 고려하면 250페이지 넘게 나온다.


2. 책을 쓸 시간이 없어요.

두 번째 책은 초고를 쓰는데 기간으로만 보자면 2~3달 정도 걸렸다. 본업이 있는 입장에서 매일 쓸 수 없다. 주로 주말이나 휴일에 집중한다. 사람마다 스타일이 다르겠지만, 나는 한 번에 2시간 이상은 못 쓰겠더라. 적으면 30분, 정말 많이 붙들고 있으면 2시간 정도. 일주일로 보자면 원고를 쓰는 시간은 서너 시간에 불과하다. 생각보다 많지 않다. 초고를 썼던 기간을 최대 석 달로 잡는다고 해도 '15주 x 3시간=45시간' 정도다. 하지만 바쁠 땐 건너뛰기도 하고 초반엔 목차에 집중하느라 원고를 제대로 못 썼으니 대략 한 권 전체 분량의 초고를 쓰는데 35~40시간 정도 걸린 것 같다.

이 시간은 그렇게 비교해 보면 된다. 20부작 드라마 한 편을 보는 데 20시간이 걸린다고 치면 2편을 보는 시간 정도다. 드라마 2편 보는 대신 초고 쓰기에 투자하면 된다.


*참고1

나는 글을 빨리, 대강대강 쓰고 나중에 수정을 많이 하는 편이다. 출간 계약 후 다듬을 부분이 많겠지만, 일단 출판사 문턱을 넘도록 기본적인 분량(대략 전체의 70%) 채우는 게 중요하다. 계약하고 나면 엔진이 장착돼 훨씬 더 잘 써진다.


*참고 2

구상하고 아이디어를 짜는 시간은 별개다. 그런 건 출퇴근 길이나 밥 먹는 시간을 활용하면 되니 굳이 따로 시간을 들일 필요가 없다.


3. 뭘 써야 할지 모르겠어요.

쉽지 않은 부분이긴 하다. 주제를 정하는 만큼 어려운 게 없다. 쓸 법한 주제는 이미 다 시중에 나와 있다. 그렇다고 너무 동떨어지거나 지엽적인 주제는 대중성이 부족하고, 또 집필도 만만찮다.

주변을 찬찬히 돌아보자. 자신이 조금이라도 강점을 가지거나 이색적인 부분, 특화된 부분이 보인다면 그것에 의미를 부여해 보자. 두 번째 책 '질문은 그를 귀찮게 해'는 물론 나의 기자라는 직업과 밀접한 관련이 있는 내용이다. 하지만 나의 첫 책 '나의 주거 투쟁'(궁리, 2018)은 내 직업과는 전혀 관련이 없다. 남들보다 손톱만큼 더 이사를 많이 했던 경험을 10대, 20대, 30대 등으로 나눴고, 이사했던 장소와 시기에 의미를 부여해 봤다. 그렇게 매듭을 엮다 보니 '나의 주거 투쟁'이라는 제목이 완성됐다. 그 뒤로 무턱대고 쓰기 시작했다.

첫 책을 내고 나서 '나는 왜 이걸 주제로 책 쓸 생각을 못했을까'라는 리뷰가 여러 개 달렸다. '주거 이력서'라는 주제를 나보다 앞서 생각했다면 누구든 쓸 수 있었다는 얘기다.  


4. 책 내용 가지고 누가 비난하면 어떡하죠?

완벽한 원고라는 것도 없겠지만, 설사 그런 책을 낸다 해도 누군가의 비난을 피할 수 있을까. 없다고 본다. 사람은 저마다 다른 취향과 생각을 가지고 있다. 후하게 잡으면 어차피 7대 3이다. 호평 7, 악평 3. 어떤 베스트셀러라 해도 호평만 있는 건 아니다. 맷집만 장착하면 못할 게 없다.

또 악평이라고 무조건 나쁘다고 할 수 없다. 내 부족함을 일깨워주는 자양분이 된다. 첫 책 중 가장 가슴 아팠던 지적 중 하나가 인용한 부분이 주제와 겉돈다는 것이었다. 쓰렸지만, 수긍할 만했다. 인용하는 부분이 아까워서 날리지 못했던 게 상당했다. 그런 걸 다 끌어안고 서술했으니 흐름이 깨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두 번째 책을 낼 땐 그 부분을 좀 더 신경 썼다. 책의 흐름과 맞지 않는 부분이라면 과감히 쳐냈다. 흐름이 자연스러워졌다. 그 부분에서만큼은 적어도 첫 책보단 발전했다. 수용할 건 수용하고, 납득이 되지 않으면 넘어가면 그만.


5. 완벽주의 스타일이라, 책을 어설프게는 못 내겠어요.

편하게 생각하자. 거듭 말하지만 완벽한 책은 나올 수 없다. 완성도를 높이는 노력이 뒷받침되는 것은 당연하고 또 좋지만, 그래도 불완전하다. 설사 모든 걸 다 쏟아부은 책이라 해도 세월이 흐른 뒤에 보면 부끄러운 게 자연스럽다. 나도 첫 책을 낼 땐 나름 자신이 있었지만, 불과 2년 만에 다시 보니 얼굴을 화끈거리게 하는 부분이 너무나 많다. 과거 블로그에 올렸던 글을 봐도 마찬가지다. 어설프다. 그사이 나도 성장을 해서 그렇다. 오히려 과거의 내 글을 보고 별다른 문제의식을 못 느낀다면 정체됐던 건 아닌지 돌아봐야 한다. 당시의 부족한 부분은 그것대로 그때의 내 모습이다.

이런 질문을 던져보면 어떨까. 여러 번 출간하면서 시행착오를 많이 겪어본 사람이 나중에 낸 책과 내공만 쌓다가 뒤늦게 한 권을 낸 사람의 책 중 어느 게 완성도가 높을까.


*참고

물론 마거릿 미첼은 10대 때 쓴 단편과 연애소설을 제외하면 성인이 되고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는 단 하나의 작품만 썼다. 그런... 넘사벽 예외 사례 말고 일반적인 이야기를 했으면 한다.


6. 초고를 열심히 썼는데 출판사에서 채택이 안 되면 어떻게 하죠?

첫 책을 낼 때 나 역시 그런 불안감이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컸다. 고생은 고생대로 했는데 책을 내지 못하면 어떻게 하나.

두 가지를 이야기하고 싶다. 첫째는 주제와 목차를 정하고 나서 쓴소리를 해줄 만한 대여섯 명에게는 평가를 받아보라는 것이다. 그 평가를 통해 어느 정도 가능성이 보인다면 덤비는 게 원고 채택 확률을 높이는 길이다.

또 하나는, 설사 실패하더라도 250~300페이지의 글을 써 보는 것 자체로 의미가 있다는 것이다. 원고 채택이 되는 게 가장 좋은 시나리오겠지만, 설사 안 되더라도 그 정도 분량을 쓰고 나면 부쩍 성장한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첫 책 초고를 기약 없이 쓸 당시에도 '한 주제로 이렇게 깊이 있게 쓰다 보니 책을 어떻게 써야 할지 알겠구나'라는 걸 느꼈다. 그런데 그 정도의 끈기를 가지고 쓰다 보면 중간 지점에서 '이게 될 책이구나' '아니구나' 어느 정도 감이 오게 마련이다. '아니구나' 싶으면 방향을 수정해야 한다. 안 된다 싶은 책을 주구장창 붙들고 있으면 시간 낭비다.

내 경우엔 두 책 모두 절반 정도를 넘어서니 '이건 출판사에 투고하면 채택되겠다' 하는 자신감이 생겼다. '질문은 그를 귀찮게 해'는 초고를 쓰는 처음 한 달은 목차를 정말 하루마다 바꿨던 것 같다. 완성도를 높이기 위해서다. '정말 좋은 목차구나' 생각해서 쓰다 보면 막상 막히는 부분이 있었다. 머리로는 좋은 주제라 생각했는데 도무지 글로 쓸 것들이 없는 게 보였다. 그렇게 수정해 나갔다.




결론은 단순하다. 주제를 정하고, 목차를 짠다. 그리고 일단 쓴다.

책이 서점 매대에 놓이고 사람들이 내가 쓴 책을 읽는 걸 보면 그간의 모든 수고가 보상받는 느낌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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