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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기작가 동하 Dec 10. 2020

서울서 맛보는 포항 회에 얽힌 사연

코로나로 알게 된 소중한 것들에 대하여

집콕 겨울 휴가를 보내다가 어느 날 찾은 만화방. 평일 오후라 한적하니 좋았다. 

겨울 휴가 막바지에 쓰는 이번 휴가에 관한 이야기다. 어디 여행 가지 않고 서울에서만 머물며 휴가를 보낸 것도 처음인 듯하다. 사실 처음부터 서울서만 머물 계획은 아니었다. 


'어디라도 떠나 볼까' 


분위기 봐서 어디라도 하루 이틀 다녀올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러는 와중에 뉴스에선 하루 코로나 확진자가 600명을 넘나들고 있었다. 어딜 가도 마스크 쓰고 돌아다니려니 기분이 내키지 않았다. 게다가 아이들이 그나마 일주일에 2~3일 정도 학교와 유치원에 가는데, 그것마저 빼먹고 가려니 여의치 않았다. 


아내와 상의하던 중

"혼자 고향에라도 다녀와. 그래도 당신 휴가인데 가서 좋아하는 회도 맘껏 먹고 오고"

아내의 배려에 나는 '옳거니!'


어머니께 연락했더니 흔쾌히 "그래, 와서 회나 실컷 먹고 가라"고 하셨다. 



그런데 고향에 내려가려던 날 아침, 자고 일어나니 어머니의 카톡이 와 있었다. 

'아버지가 오지 마라는데. 집에서 쉬라는데'


곧바로 답장을 보냈다.

'그런가요. 저는 상관없어요. 어떻게 할까요'

'아버지 일하시는데 아버지로 인해 걸리면 안 된다고 조심하자고 그러네'

'네, 그런 이유면 다음에 갈게요'


요즘 같은 상황에서 이해가 되면서도 한편으론 '부모님한테도 까이다니' '아들도 바이러스 취급을 당하는구나'라는 생각이 드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예약해 놨던 KTX를 취소했는데, 어머니가 전화가 와서는 "생각하니까 화가 나네. 니 집인데 왜 니가 못 오노. 아버지 저래 말해도 그냥 내려와라" 하셨다. 

물론 가려면야 갈 수 있었겠지만, 아버지가 저렇게까지 말씀하시는데 좀 아니지 않나. 가족 간에도 조심하는 게 좋다. 아니, 조심해야 한다. 게다가 이미 내 맘은 서울에서 뒹굴뒹굴하며 보내는 휴가에 대한 기대로 다시 가득 차 있었다.  


그러나 하나 아쉬운 게 있었다. 포항에서 맛보려던 회였다. 싱싱한 회에 대한 기대감이 컸던지라, 그 미련만큼은 쉽게 가시지 않았다. 이리저리 머리를 굴렸다. 검색을 해보니 '터미널 택배'라는 게 있었다. 고속버스를 이용해 회를 보내면 그날 바로 서울 고속버스터미널에서 픽업하는 택배였다. '이거구나' 포항 회를 당일 날 서울에서 맛볼 수 있었다. 블로그에 후기가 남아있는 몇몇 횟집 전화번호를 누르려다 다시 생각해 보니 '내가 포항 놈인데, 프리미엄을 좀 활용해야지' 싶었다. 


어머니에게 다시 전화했다. 

"포항 회 좀 사서 보내주세요. 터미널 택배로 보내면 그날 바로 받아볼 수 있대요. 요즘 오징어도 나올 텐데 오징어도 같이요" 

저녁에 바로 맛보고 싶은 마음이 컸지만, 어머니는 내일 보내준다고 했다. '왜 오늘은 안 될까' 싶었지만, 하루 정도 참는 거야 대수는 아니었다. 


다음날 오전, 

"택배 보냈다. 실컷 먹으라고 10만원어치 보냈다"

"헉, 10만원이요? 엄청 많잖아요. 4~5만원만 보내도 충분할 텐데"

"많으면 누구랑 나눠 먹든지. 2~3일은 겨울에 괜찮다. 두고 먹어도 되고. 한번 먹을 때 제대로 먹어야지" 


묵직한 아이스박스가 터미널 택배로 도착했다.


택배를 찾으러 갔더니 역시나 상자가 묵직했다. '허걱. 이 많은 회를 언제 다' 집에 와서 개봉해 보니 그 무게가 이해가 됐다. 회 5팩에 초장 2통, 배추 한 포기, 생미역 등등. 손주들 나중에 조리해서 먹이라고 고등어까지 들어 있었다. 


거기서 끝이 아니었다. 때마침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 


"포항 죽도시장 횟집인데요. 회 시키셨지요?"

"네, 택배 잘 받았어요. 감사합니다"

"근데, 아이고. 우짜노. 어머니가 쪽파를 줬는데, 택배 싸다가 몽뚱해서 잠깐 빼놨다가 나중에 넣는다는 걸 깜빡했어요"

"쪽파요? 괜찮아요. 어쩔 수 없죠"


그런데 이어지는 말을 들으니 택배를 안 받을 수가 없었다. 

"근데 이게 엄마가 아들 먹으라고 깨~끗하게 따듬어 놓은 거라. 아까 터미널 택배 안 갔으면 같이 보내려고 했는데, 버스가 떠났다고 하더라고요. 아이고 미안해라. 주소 남겨 주면 택배로 보낼게요. 택배 내일이면 도착하니까 같이 먹으면..."

"아, 네. 그러면 보내주세요"


택배를 개봉했더니...


그냥 시장에서 산 쪽파가 아니었다. 자식은 그저 죽도시장에 가서 회만 사서 보낼 줄로만 생각했는데, 어머니 생각은 달랐다. 왜 어머니가 당일 보내지 않고 하루 있다가 보내려 했는지도 이해가 됐다. 자식 고향집에도 못 오게 했던 게 미안했던지 어머니는 상자가 터질 정도로 택배를 싼 것이었다. 거기에 미처 넣지 못한 쪽파까지. 




평소 같으면 이 사람 저 사람 불러서 집에서 회 한상 거하게 먹었겠지만, 코로나 시국에 그럴 수 없었다. 처남에게 퇴근길에 들르라 해서 회 2팩을 나눴다. 그러고도 우리 식구는 다음날까지 푸짐하게 회를 먹을 수 있었다. 둘째 날엔 마침 도착한 쪽파까지 곁들여 먹었다.


회를 다 먹을 무렵 이번엔 아버지한테 전화가 왔다. 일하는 분 중에 확진자와 접촉자가 있었단다. 직장 동료의 검사 결과가 그날 나왔는데 다행히 음성이라고 했다. 그런 이유가 있었으면 미리 말해주셨으면 자식이 좀 덜 서운했을 텐데, 아버진 늘 그렇듯 구구절절 말하지 않았던 것이다. 사나이들의 대화도 그리 길지 않았다. 


"회 더 먹고 싶으면 말해라. 코로나 잠잠해지면 그때 보자"

"네, 아버지"


소중하지만 깨닫지 못한 것들이 하나씩 생각났다. 


코로나가 아니었다면...

고향 집에는 아무 때나 갈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부모님을 언제든 볼 수 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머니의 자식 사랑 그득 담긴 회를 맛볼 수 없었을 것이다. 

마스크를 안 끼고 사는 생활이 소중한 줄 몰랐을 것이다. 

사람들과 얼굴을 마주 보고 침 튀어 가며 대화하는 게 소중하다는 걸 몰랐을 것이다. 


삼일째 먹은 고등어조림


그렇게 올해 겨울 휴가는 서울에서 맛보는 포항 회와 함께였다. 회를 먹고 또 먹고 다 먹은 다음날, 우린 고등어조림을 해 먹었다. 미역과 쪽파는 여전히 맛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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