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여행을 간다면 먼저 이탈리아 폼페이로 가고 싶다. 폼페이는 베수비오산 남동쪽의 항구도시다. 고대 로마시대 귀족들이 자주 찾던 휴양지였다고 한다. 도시의 번성기였던 서기 79년 베수비오산이 폭발하면서 도시 전체는 잿더미가 되었고, 그 후 2천 년 동안 폼페이는 역사 속에서 사라졌다. 물론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도 말끔히 지워졌다. 여기까지는 박물관이 살아있다 2에서 본 내용이다. 하루 만에 읽는 세계사에는 그 이후의 이야기가 나온다. 1549년 수로 공사를 하던 중 우연히 유적이 발견되어 폼페이의 역사가 알려지게 되었고, 지금까지 발굴을 계속하고 있다고 한다. 폼페이 유적은 화산재가 덮이면서 그대로 보존되어 있어 그 옛날 로마시대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알 수 있는 중요한 사료라 한다. 당시의 천재지변 앞에서 사람들이 얼마나 속수무책으로 당해야 했는지 고통스러운 표정 속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사진 속의 폼페이는 부유한 도시로 보인다. 집안 곳곳에 걸려있는 화려한 프레스코화가 그 사실을 증명한다. 만약 거기로 여행을 간다면 무엇을 볼 수 있을까? 과거의 영화나 화려하고 부유했던 도시의 양식에 반할 것 같지는 않다. 오히려 사라져 버리고 난 뒤의 처절함에서 결핍의 미학을 볼 것 같다. 달리 말하면 폐허의 아름다움, 움켜쥐고 꼭 쟁여둔 것들을 비우고 난 후의 내려놓음이 아닐까 싶다.
이탈리아는 정말 매력적인 나라다. 이름을 날리는 멋진 곳이 많지만 유독 폼페이에 가고 싶은 이유는 단순하다. 베수비오 화산의 폭발로 살아남은 것들은 없어도 화산재 속에 천 년이 넘게 잠자던 유물들을 볼 수 있다는 단지 그 사실 때문이다. 여행의 이유가 빈약하다. 그래도 마음은 그렇다. 폼페이는 세월을 거치고 시련을 넘어 남아있는 것들이 보여주는 처연히 아름다운 유물이 아닌가 싶다. 사라지고 난 뒤에 비로소 보이게 하는 것이다. 비어있고 결핍되어 있는 것들의 진실을 체득할 수 있게 할 것이다.
오늘의 커피는 파나마 루이즈 셀렉션 게이샤 워시드. 아름다운 커피다. 향기가 화려하다. 얼그레이 차 빛이다. 장미꽃 향이 핀다. 미디엄 바디의 복잡함이 가득한 커피다. 범상치 않다. 달콤하고 단정하다. 근사한 커피지만 마실 때마다 잠시 주춤한다. 내 형편으론 데일리 원두는 아니다. 가끔 누리는 호사, 약간의 사치에 속한다. 내일에 대한 기대감으로 설레는 커피라고 부르자. 차분함과 옅은 갈색의 조화로움이 반짝거리는 꽃 커피. 오래오래 여운에 취한다. 근사한 향기를 즐기며 마시는 커피다.
표고 1500미터 고지에서 나온 시트러스 향이 좋은 커피를 눈을 감고 마시지 말고 잔 속을 빤히 들여다보며 마시자. 내일을 살아갈 용기 그런 거창한 다짐 말고 지금 조금 편안히 즐겁게 지내자. 미뤄뒀던 취미 활동을 시작하자. 만나지 말아야 할 백 가지 이유를 대며 피했던 친구한테 전화를 걸자. 그때는 기분 상했더라도 이제는 잊자. 오해가 있었다고 여기자. 다독다독 등을 쓰다듬는 바람이 지나간다. 오늘의 커피는 다시 조잘조잘 수다를 떠는 친구로 지내기로 마음을 여는 커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