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85 그때는 모르는 게 많았지

브라질 다테하 피베리 부르봉

by 만델링

나이를 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젊어 부끄럽다 여겼던 간지러운 짓도 할 수 있다. 당신은 지금도 매력적이야, 시간과 함께 더 좋아졌어, 이런 말을 특별한 날이 아닌 날에도 할 수 있다. 닭살스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엄청 노력한 결과지만 젊은 시절 감성이 풍부하고 활력 넘쳤을 때는 하지 않았던 말이다. 아주 인간적이고 멋지게 나이를 먹었고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는 뜻이라 여긴다. 남의 시선에 집중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전혀 의식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소용없는 일이란 걸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 사는 모습을 곁눈질하고 그것에 나를 맞추고 의미 없이 바쁘게 살았다. 내일을 걱정하고 과거를 후회하며 시간을 보내느라 정작 현재는 불안하고 불만이었다. 이 순간을 사는 법을 잊었다가 본인 이름으로 날아온 친구의 부고장을 받았던 그날 불현듯 알았다. 참 삶이 무엇인지 어찌 사는 것이 사는 것인지 깨달았다.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지루할 정도로 규칙적으로 지내며 대가 없이 존재하는 것들의 고마움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알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주춤거리더라도 단단히 서 있으면 되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현실의 고단함은 아무래도 좋다. 가만가만 쉬엄쉬엄 내 방식대로 견디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그냥 하고 간절히 원하는 일이 있으면 어떻게든 이루려 노력하면 될 것이다.


오늘의 커피는 브라질 다테하 피베리 부르봉. 프랑스령 부르봉 섬에서 태어났다. 영어식으로 버번이다. 튼튼하고 생산성이 높은 품종이다. 세계 각지에서 재배된다. 브라질, 과테말라, 르완다에서 더욱 유명하다.


오늘의 커피는 정직하고 성실하다. 집 안 곳곳을 쓸고 닦는 가사 노동의 주인공을 닮았다. 단단히 닫힌 향이었다가 잠시 김이 빠져 지나치게 뜨겁지 않은 커피가 되니 루 말할 수 없이 달달한 향이 핀다. 코끝으로 살랑 꽃이 지나간다. 입 안에서 굴리면 이리저리 넘실거리는 한라봉 향이 머문다. 로 하기 힘든 서러움이 상큼한 향에 녹는다. 얄팍한 인간관계에 실망한 마음이 사라진다. 싸늘한 늦가을 바람 맛이 나는 커피다. 삐걱거리는 삶의 소리도 그윽한 쓴맛에 묻힌다. 입맛도 없고 움직이기도 싫은 날 한 잔 마시자. 별거 아니네 하는 마음이 들며 기운이 난다. 몸 구석구석이 향긋해지는 커피다. 언젠가 쓸쓸해지는 마음이 드는 날 꼭 다시 마셔보길 권한다. 시간과 함께 마음이 단단히 익어갈 것이다. 나는 울림이 좋은 글을 쓰고 싶을 때 마신다. 간결하고 인간적이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유머러스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이뤄지길 바라며 마신다. 젊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좋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커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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