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는 것도 나쁘지 않다. 젊어 부끄럽다 여겼던 간지러운 짓도 할 수 있다. 당신은 지금도 매력적이야, 시간과 함께 더 좋아졌어, 이런 말을 특별한 날이 아닌 날에도 할 수 있다. 닭살스런 말을 아무렇지 않게 할 수 있게 되었다. 물론 엄청 노력한 결과지만 젊은 시절 감성이 풍부하고 활력 넘쳤을 때는 하지 않았던 말이다. 아주 인간적이고 멋지게 나이를 먹었고 순간을 즐길 줄 아는 여유를 가지게 되었다는 뜻이라 여긴다. 늘 남의 시선에 집중했는데 이제는 그렇지 않다. 전혀 의식하지 않는 건 아니지만 소용없는 일이란 걸 알게 되었다. 다른 사람이 사는 모습을 곁눈질하고 그것에 나를 맞추고 의미 없이 바쁘게 살았다. 내일을 걱정하고 과거를 후회하며 시간을 보내느라 정작 현재는 불안하고 불만이었다. 이 순간을 사는 법을 잊었다가 본인 이름으로 날아온 친구의 부고장을 받았던 그날 불현듯 알았다. 참 삶이 무엇인지 어찌 사는 것이 사는 것인지 깨달았다. 묵묵히 해야 할 일을 하고 지루할 정도로 규칙적으로 지내며 대가 없이 존재하는 것들의 고마움을 아는 것만으로 충분하다는 걸 알았다. 마음을 가다듬고 바쁘게 돌아가는 세상 속에서 주춤거리더라도 단단히 서 있으면 되는 것이라는 걸 알았다. 현실의 고단함은 아무래도 좋다. 가만가만 쉬엄쉬엄 내 방식대로 견디는 것이 잘 사는 것이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면 그냥 하고 간절히 원하는 일이 있으면 어떻게든 이루려 노력하면 될 것이다.
오늘의 커피는 브라질 다테하 피베리 부르봉. 프랑스령 부르봉 섬에서 태어났다. 영어식으로 버번이다. 튼튼하고 생산성이 높은 품종이다. 세계 각지에서 재배된다. 브라질, 과테말라, 르완다에서 더욱 유명하다.
오늘의 커피는 정직하고 성실하다. 집 안 곳곳을 쓸고 닦는 가사 노동의 주인공을 닮았다. 단단히 닫힌 향이었다가 잠시 김이 빠져 지나치게 뜨겁지 않은 커피가 되니 이루 말할 수 없이 달달한 향이 핀다. 코끝으로 살랑 꽃이 지나간다. 입 안에서 굴리면 이리저리 넘실거리는 한라봉 향이 머문다. 말로 하기 힘든 서러움이 상큼한 향에 녹는다. 얄팍한 인간관계에 실망한 마음이 사라진다. 싸늘한 늦가을 바람 맛이 나는 커피다. 삐걱거리는 삶의 소리도 그윽한 쓴맛에 묻힌다. 입맛도 없고 움직이기도 싫은 날 한 잔 마시자. 별거 아니네 하는 마음이 들며 기운이 난다. 몸 구석구석이 향긋해지는 커피다. 언젠가 쓸쓸해지는 마음이 드는 날 꼭 다시 마셔보길 권한다. 시간과 함께 마음이 단단히 익어갈 것이다.나는울림이 좋은 글을 쓰고 싶을 때 마신다. 간결하고 인간적이며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유머러스한 글을 쓰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마음이 이뤄지길 바라며 마신다. 젊을 때보다 지금이 훨씬 좋다는 마음이 들게 하는 커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