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4 1인 1닭, 안주 추가

브라질 세라도 디카페인

by 만델링

기상학적으로 가을은 일평균 기온이 20도 미만으로 9일 동안 떨어진 후 올라가지 않는 날을 가을의 시작으로 본단다. 자, 그럼 지금은 여름인가 가을인가?

벚나무 이파리를 관통하는 뙤약볕이 좋다. 늘은 더 좋다. 브런치에서 밑줄 긋고 싶은 문장을 만났다. 내 것이었으면 더 좋았을 그 문장 아래 하늘을 닮은 색으로 줄을 긋는다. '어떤 사람과의 관계에서 마냥 편안한 느낌이 들 때는 번쯤 그 사람이 나를 위해 몰래 견뎌주고 있는 게 아닌지 살펴보아야 한다'. 어리석고 아둔한 나는 정신이 번쩍 든다. 내 곁에 있는 그늘 같은 사람들의 존재를 소환하는 고마운 문장이다. 나만 그늘을 만드는 존재라 착각하며 힘들다 여겼다. 분별없고 모자라는 생각이었다. 내게도 잎이 무성한 활엽수의 그늘처럼 위안과 휴식이 되는 사람이 있다. 익숙해서 편해서 늘 그대로 있어서 느끼지 못했을 뿐이다. 내 어깨를 토닥토닥 살랑살랑 위로하던 이가 곁에 있는데 그만 잊었지 싶다. 마음과 행동을 안다고 생각하며 세심히 살피지 않았다. 눈에 보이는 것에만 매달리다 보이지 않는 것들을 소홀히 했다.


오늘은 요리에 진심을 담는다. 각자의 임무로 바쁘게 보낸 일주일을 보상받는 날이다. 덤으로 허해진 몸을 보하는 날이다. 몸을 튼튼히 하기 위해 닭요리를 다. 고기로 밥상을 채운다. 퇴화된 날개 달린 새 고기부터 네 발 달린 동물 고기까지 종류도 다양하지만 오늘은 미리 찜해둔 닭이 있다. 간장과 설탕으로 양념한 스키야키식 전기 통닭 구이다. 매일 오후 4~9시, 진흥상가 앞 1톤 포터를 개조한 트럭에서 판다. '1인 1닭 하자'는 메시지가 인상적인 길거리 음식이다. 길을 가다 우연히 봤다. 꼭 먹어보리라 했는데 마침 오늘이다.

일반 치킨보다 현저히 작다. 기름기 빠진 통구이는 어른 주먹보다 조금 더 크거나 비슷하다. 겉은 바삭거리고 속은 촉촉하다. 포크 두 개를 쥐고 해체를 시작하면 고소한 냄새가 퍼지고 보드라운 가슴살에서 김이 쏙 빠진다. 뜨거운 증기가 토해진다. 크기가 작아 질기지도 않고 퍽퍽하지도 않다. 여기에 음주가무에 능했던 조상의 피를 받아 음주한다. 우리 집에서는 미성년자도 음주를 한다. 1인 1캔의 맥주를 곁들이면 이보다 좋은 식사는 없다. 사온 닭으로만 밥상을 차리면 주부로서 업무 능력 부족하다는 말을 들을까 사뭇 걱정되어 간단한 요리를 더한다. 한잔 술에 어울리는 안주 요리다. 생강 간장으로 간한 깔끔하고 기름기를 머금은 가지 볶음과 냉동 고기완자에 연근을 얹어 구운 연근 고기완자다. 쫄깃하고 사각사각하다. 매콤달콤함은 서비스다. 모두가 기쁜 표정이다. 배가 부르고 흥이 오르는 밤이 된다. 굿 다운로더인 아이가 내려놓은 멜로 영화를 보며 별이 숨어버린 어둠을 보낸다. 이 어찌 즐겁지 아니한가, 밥상에 초대된 맥주도 덩달아 춤을 춘다.


오늘의 커피는 어떻게 놀면 재밌을까 하는 행복한 고민을 한다. 술기운에 굳은 마음이 풀어진 가족은 둘러앉아 그동안 혼자 앓았던 불안을 말한다. 권커니잣커니 한잔 술에 고단한 하루의 시름을 날리고 야무진 아이들의 당찬 포부를 들으며 마신다. 디카페인 커피라 늦은 밤에도 부담 없다(물론 아직도 카페인의 순기능과 역기능에 대한 논란은 있다). 양날의 칼과 같은 각성 효과에 대한 부분은 빼고 숙면에 대해서만 비전문적으로 는 말이다. 우리나라에 수입되는 디카페인 생두는 거의 대부분 스위스워터공정과 이산화탄소공정으로 카페인을 제거한 것이다. 화학물질을 넣지 않고 용해도와 삼투현상으로만 카페인을 제거했기에 유해한 잔류 화학물질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살짝 흔들거리며 엄마 아빠를 똑같이 사랑한다는 말을 진지하게 하는 아이들이 사랑스럽다.


오늘의 커피는 꽃그늘 아래 돗자리를 펼치고 편히 앉아 마시면 좋을 것이다. 소풍 가서 마시면 더 좋겠다. 풍부한 향과 부드러운 쓴맛이 가볍고 순하다. 몸도 마음도 쉬게 하는 쉼표 같다. 고소하고 무겁지 않다. 디카페인이지만 향과 맛은 살아있다. 전형적인 브라질 커피의 풍미를 드러낸다. 잘 마른 밀, 보리, 귀리가 화력 좋은 불에서 익어가는 냄새가 스민 커피다. 자신만의 색을 가지고 자신에게 너그럽게 대하는 삶을 살아도 된다고 말한다. 자신이 누군가의 그늘이 되든, 그늘이 되는 누군가가 곁에 있든 결국은 같은 마음임을 알면 되겠지 싶다. 서로에게 온기가 된다면 것으로 좋다. 가을 섞인 바람이 분다. 식어버린 커피, 마저 마시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