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5 굳이 무게를 단다면

인도 몬순 말라바 AA

by 만델링

부모의 관심과 야망, 끊임없는 정신적 지원과 응원에도 불구하고 1등이라는 원대한 업적을 이룬 적 없는 자식이 자식 구실에서 벗어나 부모가 된 이가 있다. 그리고 큰 꿈과 야무진 결의로 자신의 미래를 당차게 열어나가는 자식을 둔 가 부모 구실을 하느라 애쓰고 있다. 둘의 입장을 간간히 비교한다. 그 둘의 무게를 저울에 단다면 어느 쪽이 무거울까 하는 생각을 한다. 자식 구실과 부모 구실 중 일단은 부모 구실이 어렵다는 생각을 한다. 내 부모는 어떠했는지 모르지만 나는 부모 구실이 어렵다. 1등을 해 본 적 없던 자식이 부모가 되어 자발적 의지와 부단한 노력으로 1등을 하는 자식의 부모가 되니 늘 1등을 하던 자식이 2등을 하게 되었을 때 그 마음이 어떤지 모르겠다. 그늘진 얼굴을 보며 어떤 위로를 해야 하는지 도통 모르겠다고 변명을 한다. 내 마음은 그대로도 정말 대단하고 괜찮다. 아주 충분해서 "그냥 좀 쉬렴" 하는 말이 나온다. "다음에 더 잘하자, 힘을 내서 더 달려 볼까, 조금만 더 참고 결승점을 향해 가자, 이번에는 실수했으니 다음에는 정신 똑바로 차리고 1등 자리 꿰차야지". 내가 아는 다수의 부모들이 이런 말을 자식에게 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내가 하고 싶은 말을 해도 되는지 고민한다. 이런 고민을 하는 나를 같이 사는 동지도 이해할 수 없다 하기에 나는 선뜻 하고 싶은 말을 꺼내지 못한다.

내가 자식이었을 때 내 부모가 "그만큼도 정말 좋아, 충분해!"라고 말해주기를 소망했다. 나랑 생각이 같고 외모가 닮았으니 당연 그러리라 여겼다. 부모는 자식을 소중히 생각하기에 위로하고 격려할 줄 알았다. 하지만 모든 부모가 그런 건 아니더라. 내 부모가 나랑 생각이 같았다면 그랬더라면 지금의 나는 내 부모를 더 사랑을 것이다. 그리고 더욱 자주 그리워하고 많이 생각할 것이다. 지금도 사랑하고 그리워한다. 하지만 때때로 머뭇거린다. 마음을 내어줄 때 얼마나 주는 것이 적정한지 가늠한다. 이러는 게 나을까 저러는 게 나을까 고민하고 생각한다. 과한 지 덜한 지 나름의 자를 대고 선을 긋는다. 누구한테도 말한 적 없지만 자주 망설인다. 깊은 곳에 이런 마음이 있는 게 불편하다. 늘 더 잘하기를 바라며 채찍질하던 부모의 마음을 모르진 않지만 어릴 때는 그 훈육이 힘들었다. 른이 되어서도 그때 가졌던 마음이 기억나 몸이 거리를 둔다. 자랑스러운 자식이지 못했던 자식 구실에서 벗어났다. 자랑할 만한 자식을 둔 부모 구실을 하는 입장이 되었다. 더 잘하길 바라는 마음보다 지금도 충분하다고 여기는 마음이 저다.

마음 슬픈 자식을 달래는 일은 참 어렵다. 그래도 무게를 둔다면 창창하고 열렬한 미래에 대한 걱정보다는 조금 느긋하기를 바란다. 조급해지려는 마음을 누르고 지금도 충분히 잘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자식 구실에서 벗어나 부모 구실을 하는 사람이 되니 부모는 자식에게 자신이 이루지 못한 꿈을 자식이 이뤄주고 부족한 부분을 채워주길 바라는 것보다 결핍이나 제약을 힘들이지 않고 견디며 나갈 수 있는 건강한 마음을 키워주는 일을 먼저 하는 게 낫다는 생각을 한다. 인생은 너무나 길고 내 자식은 아직 능동적으로 살아야 할 시간이 제대로 시작되지 않았다. 그러니 밖으로 나서기 전 부모 그늘에서 마음을 지키고 자신의 뜻을 펼칠 수 있는 따뜻한 사랑을 가득 충전했으면 좋겠다.


오늘의 커피는 참 심심하다. 수업 시간에 그 어떤 선생님께 도 지목받지 않고 수업을 무사히 끝내던 학우를 생각나게 한다. 성격도 괜찮고 공부도 중상위급이지만 눈에 띄지 않던 덜 소란한 급우다. 그래도 한 가지 특기는 있어서 주목을 받을 때도 있던 그 친구다. 말리바는 깻묵 향이 특징이다. 검고 쓴 액체에서 참기름 냄새처럼 솔솔 퍼진다. 춥고 껌껌한 시절을 잘 견디고 다시 시작하려는 의지로 마음을 단단히 잡는 사람을 닮았다. 빨리 성취하고 싶은 마음이 솟아도 참으면서 천천히 가야 한다고 중얼거리는 사람이다. 다시 밑바닥을 보는 일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기도하듯 차근차근 자기의 길을 가는 사람을 생각하면 딱 인도 몬순 말라바의 맛이 된다.


커피 맛이 생두에서 결정된다고 가정하면 어떤 환경에서 자랐냐는 중요하다. 햇빛과 서늘한 바람이 중요한 요인이 된다. 앗을 심은 후 4년쯤 지나면 꽃이 피고 열매를 맺는다. 다섯 개의 흰색 잎을 가진다. 재스민이나 치자꽃 같은 달달한 향이 난다. 로부스타 종은 생육 조건이 원만하고 생산량이 많다. 쓴맛이 강하고 향이 좋지 않지만 대량으로 유통되어 방방곡곡에서 사람들의 마음을 즐겁게 한다. 잘 익은 열매가 진한 커피가 되어 사람들의 마음을 행복하게 한다. 오늘의 커피는 나에게 선의와 사랑을 베푸는 사람들의 마음을 느끼게 한다. 그들의 따뜻한 배려로 모나지 않게 산다. 누구나 자신만의 속도가 있다고 말하는 그들 덕분에 평안하다. 고 싶은 말을 다 하지 않고 욕하지 않고 탓하지 않고도 그냥 지낼 수 있는 건 나를 그대로 봐주는 그들 덕분이다. 밑이 흔들리고 도망가고 싶을 때 수평을 유지할 수 있게 도와주는 이들, 그들에게 늘 고맙고 사랑한다는 말을 전해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