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순박하면서 알싸한 향기로 온다. 시원한 바람 속에 금목서 향기를 숨길 수 없다. 늦더위가 따글따글하다. 시원한 바람이 목덜미를 간지럽게 한다. 가을 소국은 숨어서 작은 꽃송이를 한가득 매달고 있다. 시름시름 흔들리는 키 큰 풀들 사이로 노란 얼굴을 내밀고 가을 소식을 전한다.
마트 사장님은 저울에 달아 그램 단위로 가을을 판다. 고구마, 고구마 줄기. 말린 고사리, 알밤, 연뿌리, 토란, 토란대, 피땅콩. 손에 잡힌 가을은 고구마 줄기다. 저녁 반찬으로 고구마 줄기 볶음을 해야지. 실렁이는 바람을 느끼며 고구마 줄기를 깐다. 휘청거리는 줄기가 쉬이 벗겨지지 않아 애를 먹는다. 벗긴 걸 살 걸 그랬다는 후회가 밀려온다. 순간 이천 원이 그리 컸었나 보다. 까짓것 쉽게 처리할 수 있으리라 여겼는데 여간 수고로운 게 아니다. 체질에 맞지 않는 선택을 했더니 그 결과가 참담할 지경이다. 간신히 벗긴 고구마 줄기를 삶는다. 찬물에 헹궈서 먹기 좋은 크기로 썬다. 다진 마늘, 대파, 진간장, 국간장, 들기름, 고춧가루를 적당히 섞어 양념을 만든다. 고구마 줄기에 양념을 부어 조물조물 무친다. 프라이팬에 들기름을 두르고 볶다가 다시마 육수를 자작하게 부어 푹 익힌다. 맛난 반찬 하나 뚝딱 완성한다. 먹이기 위해 몸을 움직이는 일이 쉽지는 않다. 문득 봄볕에 쪼그려 앉아 손놀림 몇 번으로 대바구니 가득 쑥을 캐던 엄마가 떠오른다. 그때 엄마는 봄놀이라 했다. 들판에서 쑥 캐는 일이 뭐 그리 즐거웠을까 싶다. 반찬값이라도 아낄 요량으로 몸을 움직여 푸성귀를 심고 봄나물도 캤으리라. 넷이나 되는 자식들 입에 따뜻한 음식을 넣어주는 일이 수고롭고 고단했을 텐데 나는 철이 없어서 잘 몰랐다. 늙어 이제야 안다. 그에 비하면 마트에서 전자저울에 달아 파는 가을은 엄청 비싸다. 히들거리며 싱싱한 기운도 부족한 뿌리채소들이 뭉텅 해진 손끝에서 나온 봄 것들보다 더 가치가 있으려나 모르겠다.
창으로 들어오는 서향빛을 블라인드로 가린다. 주홍빛이 타일에 번진다. 커피를 내린다. 카페인을 혈관에 꽂았다. 석 잔. 다행히 한 잔은 디카페인이다. 여전히 햇볕이 뜨거운 초가을이다. 충분히 쌀쌀하고 외로울 가을이 곧 올 것이다. 지금 유쾌한 시간을 보내자. 겨울을 든든히 견디기 위해서, 가질 수 없는 것을 가지려고 안달하려는 마음을 내려놓기 위해서라도.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인지 모르겠으나 엄마는 우리 넷을 먹이고 입히고 재울 때 행복했다고 말씀하신다. 피, 항상 동동거리고 고단하고 해결되지 않고 이어지는 문제들로 아프고 힘들었으면서 행복은 무슨... 복잡하고 절박했을 뿐이라 생각하는데 엄마는 그때의 기억을 지워버렸나 보다. 엄마의 삶의 내력을 읽을 때 편안함과 휴식은 없었건만 행복하다 하시니 그냥 그리 알아 들어야겠다.
오늘의 커피는 엄마의 대바구니에 자잘하고 파릇한 것들이 봄봄거리며 담겼던 풍경과 어울린다. 자신만만하고 도도한 표정을 지으며 단호하게 말하는 버릇이 있었던 과거의 엄마에게 보내고 싶은 커피다. 그때는 엄마가 아니고 연이였을 것이다. 바뀌는 계절을 생각하면 마음이 설레는 젊은 여인이었을 것이다. 젊었던 엄마는 말씀하셨다. 세상에 그저 얻는 것은 없다. 치를 만큼 치러야 얻는 것이다. 몸이 낡아진 엄마는 아직도 세상을 사랑한다. 호기심도 많고 적극적이다. 풍요로운 세상에 현명함으로 동화되어 담담히 산다. 우리 엄마 연이는 아직도 당차다. 바쁘고 우물쭈물하지 않고 열심이다. 내게 스스로 자랑스러워하는 인생을 살라는 말씀을 잊지 않고 한다. 오늘 그녀가 참 보고 싶다.
오늘의 커피는 에티오피아 아리차. 자잘자잘 하얗게 핀 꽃과 붕붕거리는 벌이 보이는 커피다. 홍차처럼 맑고 밤의 보늬처럼 쓴맛이 있다. 슬픔에 위로, 희망, 기쁨 같은 MSG를 솔솔 뿌려 만든 커피다. 산다는 게 기쁨과 슬픔의 버무림이라면 커피는 바로 인생 메뉴다. 향긋하고 부드러운 맛과 쌉쌀함으로 마음을 감싸는 봄을 닮은 커피다. 등려군의 첨밀밀 노래가 흐른다고 상상하자. 홍콩의 켄톤로드를 자전거 타고 지나는 장만옥과 여명이 보인다고 생각하면 기분이 좋을 것이다. 칼칼하고 가벼운 커피가 제법 쓰다. 연이의 봄날은 언제였는지 생각한다. 우리 넷을 만나기 전이었는지, 넷과 한 집에 살던 때였는지, 지금인지. 한 치 앞도 모르는 인생에서 다치지 않고 이만큼 살아낸 우리 엄마 연이에게 사랑의 커피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