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의 사기, 2500년 전 춘추전국시대 이야기다. 중국 역사상 가장 오랜 분열기였다. 사마천은 요즘 식으로 하면 극성 아버지 밑에서 치밀하게 계획된 프로그램대로 자란 사람이다. 그의 아버지 사마담은 극성 어머니 맹모를 능가할지언정 교육열만은 부족하지는 않은 사람이었다. 열혈 부성애를 발휘하여 사마천을 사관으로 키웠다. 태사령은 지금으로 치면 국립중앙도서관 관장이나 국가기록원 원장 비슷할 것이다.
사기는 호환성이 좋은 책이라 할 수 있다. 자기 계발, 경제경영, 처세, 리더십에 응용 가능하다. 구성이 복잡하다. 다섯 체제다. 제왕의 기록 <본기>, 제후의 기록 <세가>, 보통사람 이야기 <열전>, 각 시대의 연표 <표>, 정치, 사회, 문화, 과학, 천문학 등을 기록하여 문화사나 제도사의 성격을 가진 <서>, 모두 130편이다. 52650자로 쓰인 압축파일이며, 중국을 알기 위한 백과사전이라 할 수 있다.
사기는 본기의 '기', 열전의 '전'을 합쳐 기전체라 한다. 시대순으로 제왕의 언행과 행적을 중심으로 당시의 정치, 경제, 군사, 문화, 외교 등 중대한 사건을 서술하고, 제왕이나 제후를 보좌한 개인들의 이야기를 서술한다. 130권 중 <표>, <서>를 제외한 112권이 인물 이야기다. 그중에 하이라이트는 열전이라 말하고 싶다. 사료 해석에 충실하고 역사의 발전적 흐름과 사물의 본질을 통찰하는 날카로운 안목을 보여 주어 오늘날까지 지혜로운 삶의 지침서가 된다는 학자들의 평가는 잘 모르겠다.
나는 다만 옛날 하고도 아주 오랜 옛날, 그 옛날 옛날에도 우리와 같은 사람이 살았다는 것, 그들도 우리처럼 어떤 방식으로 살아가야 할까 고민하며 살았다는 것, 도덕과 본능, 탐욕과 베풂 사이에서 갈등하는 인간이었다는 것에 끌린다. 사기 열전은 격동과 파란의 시대를 치열하게 살다 간 사람들의 이야기라는 점이 책의 두께에 눌리지 않고 끝까지 읽게 한다.
머리를 막 감은 사람은 반드시 모자를 털어서 쓰고, 새로 목욕을 한 사람은 반드시 옷의 먼지를 털어서 입는다 한다. 속세의 더러운 티끌을 뒤집어쓰느니 차라리 강물에 몸을 던져 물고기 배 속에서 장사를 지내는 게 낫다고 하는 이야기를 들어봤으리라.
초나라 사람으로 세상 이치에 밝고 글을 쓰는 능력이 탁월한 굴원 이야기다. 초나라를 부강하게 만들어 줄 새로운 법령을 만든 사람이다. 왕의 신임을 받을수록 시기하는 사람은 많은 법. 세 치 혀로 세상을 현혹한다 말하며 굴원을 내치기 위해 호시탐탐 기회를 엿보는 사람이 있었다. 그들로 인해 도성에서 쫓겨난 굴원은 머리를 풀어헤친 채 방황하다 커다란 돌을 끌어안고 강물에 몸을 던졌다. 사람들은 굴원이 죽은 5월 5일을 기려 '단오절'을 만들었고, 그때부터 단오절에 대나무 통에 쌀을 담아 뿌리는 풍습이 생겼다.
사마천은 굴원의 생을 몹시 안타까워했다. 굴원은 충성스러운 신하였으나 참소를 당했고 그로 인해 청백리의 표본이 되었다. 높은 식견과 나라를 위한 충성도 억압 앞에서는 도리가 없었나 보다.
굴원은 나무를 닮은 짙은 향을 내던 사람이
었을 것이다. 세상을 촘촘하게 인과관계를 명확하게 따졌을 것이다. 박식하고 두루두루 밝은 사람, 호기심이나 무모한 면이 없는 사람이었을 것이다. 지혜롭고 똑똑하지만 너무 맑아서 완벽해서 곁에 머무는 사람이 없었을 수도 있다. 상당히 까칠해서 무난함은 없었을 것이다. 굴원을 안타깝게 여기는 사마천에게 기름지거나 무거운 맛없이 칼칼한 뒷맛을 남기는 커피를 주자. 산미가 사라진 맛에서 원두의 태생지를 느낄 수 있는 커피가 좋겠다. 조각이나 무늬 없이 단순한 잔에 마시면 향이 더 좋을 커피를 찾아보자.
오늘의 커피는 인도네시아 술라웨시 토라자. 술라웨시섬 산악지대에서 재배된 원두다. 고소함과 쌉쌀함으론 최고다. 은은한 초콜릿 향과 흙내음이 좋다. 대지의 향기다. 격식을 차린 듯한 쌉쌀한 맛에 마음이 차분해진다. 긴 세월을 함께 한 친구처럼 자연스럽고 마음 편한 맛이다. 허브티 향과 갈색빛이 근사한 커피다. 흙바닥에 앉아 커피를 마시는 굴원을 상상한다. 인간에 대한 성찰이 보이는 삶을 선택한 그에게 애틋함을 담아서 준다. 완벽함이라는 치장을 버리고 못하고 끝까지 집중했던 그의 삶에 건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