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1 함께 지나온 밤은

콜롬비아 퍼플 카투라 내추럴

by 만델링

마음이다. 좋아하는 사람의 가족들이니까 잘해주고 싶은 마음, 좋아하는 사람을 기쁘게 편하게 해주고 싶은 마음, 모든 결정에는 상대방에 대한 마음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이 따뜻하고 편안하기를 바라는 순수한 마음 말이다. 숱한 이야기와 굴곡진 세월로 빚어진 유형무형의 것들을 그늘에 묻기로 작정한 친구가 있다. 묻는 데까지 걸리는 시간은 표현할 수 없 것이다. 묻었다 여겨도 묻히지 않을 것들이 더 많을 것이니 말이다. 마음을 갈라놓은 채 그 모든 걸 버리게 하는 그 결정적 한방은 무엇일까?

30년을 무너지지 않고 지켰는데 이제는 함께 살아갈 수 없는 이유는 뭘까? 부부로 산다는 건 너무 많은 사람의 마음이 얽혀있는 일이다. 각각은 좋은 마음들인데 사는 동안 얽히고설켜 그 좋음이 어떤 좋음이었는지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버린 것이다. 그래서 좋은 것이 좋은 것이었는지 조차 알 수 없게 되었다. 그 좋은 마음을 이제는 그만 받았으면 하는 마음이 되어버렸다. 좋은 마음 때문에 그 좋은 마음을 더 이상 받지 않고 싶어서 독립하는 중이다.


부부로 사는 삶은 사랑이 있음에도 상처가 생기는 일이 다반사다. 얘기한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고, 라고 얘기해도 상처가 되는 경우가 숱하다. 치고 질척하게 산다. 을 때까지 이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참 어렵다. 을 버는 도구로만 생각했기 때문도 아니고, 빚더미에 앉아서도 아니다. 뻔뻔한 마음, 염치없는 마음, 그것이 부부의 인생길을 갈라놓는 것이다. 있는 힘껏 휘두른 프라이팬에 맞아서 절했으면 좋겠다. 새우등을 하고 모로 자는 모습은 측은하여 등을 쓸어주고 이불을 덮어준다. 두 마음 사이를 오가며 같 산다. 겉으로 무난히 30년을 산 친구는 늘 자신을 위한답시고 사실을 제대로 말하지 않고 크게 해 될 잘못이 아니라며 선의를 빙자한 거짓말에 마음이 체였다 한다. 더는 덮고 담아둘 수 없어 독립하기로 한단다.


나를 돌아본다. 살면서 내 마음은 어떤지, 나는 어디까지 담을 수 있는지 생각하며 고민한다. 서로를 존중하며 신의를 저버리지 않는 한 부부의 삶은 계속될 것이다. 말은 입 밖으로 내야 마음에 닿는다. 표현하지 않고 침묵하고 담아두기만 하다 생기는 오해도 숱하다. 당장 불편하더라도 표현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서로가 서로의 마음을 다 가진다는 걸 전제로 공식화한 제도가 결혼이고 그 결혼이란 걸 통해 부부가 되어 산다. 비록 살면서 마음이 변하더라도 그 제도 때문에 떠나기 어렵다. 부부라고 해서 서로의 마음을 다 가져야 되는 건 아니라는 논리를 펼치며 묶인 채 산다. 하지만 친구는 그 논리는 당연하지 않다고 말하며 독립하는 중이다. 찌질하고 구린 모습, 눈물 콧물 범벅으로 내가 아닌 남에게 기대하는 구질구질한 모습 보여주지 않기로 했다. 부부가 함께 지나온 밤을 지우기로 했다.


오늘의 커피는 콜롬비아 퍼플 카투라 내추럴. 몬테블랑코 농장의 희귀한 보라색 커피 열매다. 부드럽고 산뜻하고 향긋하고 달다. 두드러진 쌉쌀함이 좋다. 과 후 교정에서 놀던 친구들의 카랑카랑한 목소리가 들리는 커피다. 톡 튀는 오렌지 향과 시원한 웃음소리가 섞인 향이다. 검은 과일을 씹는 듯한 느낌도 난다. 달콤한 바닐라 향기는 덤이다. 무척 맛있다. 시간 가는 건 잊고 옛날 이야기를 하다 해 저무는 풍경에 사뭇 심각해지는 쓸쓸한 쓴맛이 좋다. 앞일은 진지하게 생각하지 않고 자유롭게 즐겁게 내일은 더 활기차게 살아가자 말한다. 독립하는 친구에게 건넨다. 날이 선 마음, 서운한 마음, 억울한 마음, 이 커피에 녹이길 바라는 내 마음. 은은한 황갈색의 따뜻한 커피가 새침한 마음에게 건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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