처음엔 맛이 좀... 하다가 자주 먹고 익숙해지면 정말 맛있다 하는 음식처럼 사람도 그런 부류가 있다. 첫인상 별로라 여겼는데 만날수록 어머, 이런 면이 있었네! 그래, 그런 것도 할 수 있어? 정말 못하는 건 뭐야? 아이참, 그런 사람이었구나!! 하는 사람이 있다. 요즘 그런 사람을 만나는 중이다. 남자였다면 연애하고 싶은 좋은 사람이다.
그녀는 즐겁고 유쾌하며 예쁘다. 거센 바람에도 꺾이지 않는 단단한 마음도 있다. 그래서 지금 활짝 핀 커다란 꽃송이 마냥 빛난다. 형광등도 갈 줄 알고 세면대도 스스로 교체할 줄 안다. 개수대 수도꼭지 교체는 일도 아니다. 집 안에 필요한 모든 설비는 직접 고치고 바꿀 수 있는 능력자다. 은빛으로 빛나는 수도꼭지를 바라보며 흐뭇한 웃음을 흘리는 완벽한 여자다. 가정 경제의 풍요로움, 가정의 평화로운 분위기는 오직 그녀의 노력과 손끝에서 나왔음을 우리는 안다.그런 그녀가 요즘 시들하다. 몸 구석구석 안 아픈 데가 없고 심지어 잠도 안 온다 하니 참 걱정이다. 도울 수 있는 일이 있는지 고민한다.부모의 유산이 풍족하여 평생 노력하지 않아도 살 수 있는 삶을 꿈꾸는 우리들, 이번 생은 실망이다. 그저 많이 아프지 말고 지금처럼 티키타카(스페인어로 탁구공이 왔다 갔다 하는 모습, 쿵짝이 잘 맞는 관계, 죽이 척척 맞고 합이 잘 맞는 관계)하며 지내는 걸로 만족하자.
오늘의 커피는 엘살바도르 엘바바로 SHG. 빈 사이즈가 큼지막하다. 열매가 크니 과육이 많다. 과육이 많아 풍부한 향미를 느끼게 한다. 삶을 본질을 제대로 아는 반듯한 사람을 생각나게 한다. 부족한 면이 없다는 뜻이다. 크랜베리의 새콤한 맛, 복숭아나 배 같은 과일의 달고 시원한 맛, 고소한 에이스 비스킷, 청사과의 스윗함, 부드러운 바디감까지 가진 완벽한 커피다. 마른 나뭇잎 사이로 햇빛이 새어들고, 멋을 낸 사람들이 왁자하게 웃는 소리가 경쾌하게 들리는 분위가 보이는 커피다. 맘 편한 사람끼리 모여 떠드는 수다를 연상하게 하는 맛이다. 편안하고 한가로운 저녁, 해야 할 일이 남아있지 않은 늦은 밤의 휴식이다. 하루치의 할 일이 끝났고 신선한 바람을 맞으며 커피를 마시는 것, 건강한 삶을 지향하는 주부에게 주어지는 상이다.
갱년기가 시작된 중년의 우린 뭘 이렇게 죄다 껴안고 살았을까, 버리지 못하고 다 쌓아두기만 했던 걸까, 다시 오지 않는 것은 뭘까, 그럼 지금 할 수 있는 건? 하며 커피를 마신다. 앞으로 우리는 사교적이며 적극적으로 지내기로 하자. 못 다한 것이 남았다면 지금이라도 서둘러하고 때를 놓친 일은 그냥 지워버리고 머뭇거리지 않고 달콤하고 편안하게 지내도 인생을 전체적으로 바라볼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 어때? 너무 오만한가? 물론 우리를 에워싼 세상은 복잡하고 하루하루의 고단한 삶은 여전해서 정신없이 흘러가는 시간에 떠밀려 살겠지만 그래도 서로 믿고 포기하지 않고 이 어렵고 짝이 없는 세상에서 늠름하고 우아하게 우리 방식대로 살아가자는 말을 커피잔을 들고 경건하게 한다. 음, 딱 마시기 좋은 타임이군. 향이 굉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