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95 쓴다는 건 늘 고민

예멘 퀴마 바이트 알랄

by 만델링

글을 쓴다. 어제도 오늘도 쓴다. 쓰고 나니 쓸모없는 글이다. 누구도 읽지 않을 글이 되었다. 내용을 읽을 수는 있으나 의미 없는 글이다. 지웠다. 연필로 썼다면 남을 글이었지만 del키 한 번에 스르륵 사라졌다. 늘 그렇다. 쓰고 싶은 욕구는 넘치나 문장이 되지 않는 글이다. 조급해지는 마음이 된다. 웃음이 피는 다정한 글을 쓱쓱 쓰는 이야기꾼이 되고 싶은데 마음은 간절한데 글은 늘 써지지 않는다. 그럼에도 매일같이 쓴다. 쓰다 보면 잘 쓰는 날도 있을 것 같아 성실하게 쓴다. 내가 보고 느끼는 것을 절절하게 표현할 수 있도록 노력한다. 기적처럼 쓰는 능력이 샘솟길 바라면서 식탁에서 쓰다가 아이 방에서 쓰다가 글쓰기의 공간도 바꿔본다. 창의적인 글이 될지 의문이지만 열악한 환경이 다른 아이디어를 줄지도 모른다는 기대를 해본다. 해리포터의 작가 조앤 롤링이 미혼모로서 매우 힘들었던 시절 편하게 집필할 수 있었던 카페가 있었듯 내게도 그런 공간이 생기길 바란다. 영감을 얻을 수 있는 카페 찾기에 열심이다. 재능과 노력의 부족을 탓하면서 그래도 글의 소재가 될 만한 것은 괴발개발 메모한다. 조금씩이라도 나아지는 기분이 된다. 계속 글을 쓰는 사람이 될지 모르지만 그냥 쓰고 싶은 마음이 있는 편안한 상태가 된다.


오늘의 커피는 예멘 퀴마 바이트 알랄. 맛으로 따지면 어디에도 지지 않는다. 별생각 없이 호로록 마시면 모카 초콜릿 향과 코를 뚫고 가는 상쾌한 향에 헤헤헤 웃음이 난다. 청포도와 살구, 베리의 산미, 카카오와 볶은 아몬드의 아로마, 풍부하고 부드러운 바디가 좋다. 찻잔 속에서 향이 휘감긴다. 과실의 향기가 비강에 담긴다. 근사한 복잡함이 좋다. 자잘한 꽃무늬, 과장된 어깨 디자인, 분홍 초록 노랑 보라 등 촌스러운 컬러 조합으로 된 옷을 입고 한껏 멋을 부린 엄마랑 마시고 싶은 커피다. 질녘 들판에서 마음을 포개며 지나온 시간을 회상하는 모녀가 그려진다. 그리운 마음과 저물어 가는 빛의 따스함이 손끝에 닿는 커피다. 엄마의 어릴 적 이야기를 들으며 즐거워하는 딸이 있는 풍경이다. 복잡하고 조용한 성격의 엄마와 덜렁대고 밝은 면이 많은 딸이 솔직하게 자신들의 내면을 드러내 이야기하도록 이끄는 커피다. 모녀의 특별한 시간을 만드는 심오한 커피다. 엄마에게도 귀엽고 즐거운 구석이 있음을 알려준다. 어쨌거나 커피를 마시면서 두 사람이 더 친해졌다. 앞으로 뭘 어떻게 해야 좋을지 모르겠지만 당장은 명랑하고 행복한 마음으로 합이 맞는 모녀다.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시작한 2021년이 끝에 닿았다. 올해도 후회만 남고 저문다. 그럼에도 남은 시간은 상큼한 신맛과 경쾌한 풍미를 자아내는 커피처럼 보내기로 다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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