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루키를 좋아한다. 그의 데뷔작부터 최근작까지 거의 다 읽었기에 성장 과정을 지켜봤다고 말하고 싶다. 개인적 생각이지만 그의 책은 잘 읽힌다. 글이 쉽다는 뜻은 아니다(매년 노벨문학상 후보 1순위의 환갑을 훌쭉 넘은 작가의 글이 만만할 수 있겠는가). 나와 맞지 않는 글, 이해하기 어려운 글도 있지만 꾸준히 그의 책을 샀다. 충분히 만족스럽지 않아도 읽으면 뭔가 뿌듯해지는 느낌은 있다. 하루키의 인물들은 혼자인 경우가 허다하다. 고독하고, 형편이 좋지 않으며, 약간의 좌절만 겪는다. 그리고 때때로 소박한 선행을 베풀기도 한다. 웬만하면 싸우지 않고 쉽게 감정을 드러내지도 않는다. 그저 슬쩍 회피한다. 낮은 슬픔과 우울이 양념치킨의 소스처럼 끈적하게 묻어난다. 지금 읽는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은 하루키가 이런저런 목적으로 쓴 글 중 단행본으로 발표하지 않은 글을 모았다. 실로 잡다한 내용이 들었다. 내 마음에는 374~407쪽 <눈으로 본 것, 마음으로 생각한 것> 부분이 제일 재미있다. 다양하게 감탄하게 되는 내용이라고 주장하고 싶다. 매일매일 문득문득 생각하게 되는 내용이라고 하자.
내가 책을 고르는 방법 중 하나는 표지다. 딱히 어떠하다고 설명할 수 없는 멋진 얼굴을 가진 작가가 썼다면 이미 좋은 책이다. 민망하게도 그렇게 산 책이 꽤 있다. 거기다 띠지가 있는 책이라면 별 하나 추가다. 띠지에서 그 책의 정보를 읽는다. 집중해서 오래 읽을 책인지, 휘리릭 읽고 던질 책인지, 실실금실 침 바르며 시시때때로 읽을 책인지 마음으로 정한다. 추천사가 있으면 그 추천인이 어떤 사람인지도 파악한다. 글만 쓰는 사람인지, 덤으로 글도 쓰는 사람인지, 자신의 다른 장점을 찾는 일을 하다가 글을 쓰는 사람이 되었는지, 아님 글은 쓰지 않음에도 추천사를 썼는지 본다. 그렇다 하더라도 추천인은 그저 추천인이다. 전적으로 작가의 역량이 책을 사게 한다. 하루키는 글만 쓰는 사람이지만 예전에는 다양하게 하는 일이 많은 사람이었다. 전에 했던 일이 작가가 되는데 밑천이 되었다고 여러 번 얘기한 글도 있다. 그의 글이 잘 읽히는 이유는 다양한 경험을 이야기하기 때문이라 여긴다. '무라카미 하루키 잡문집'은 좌절하되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살아질 거라 믿으며 한 발 더 내디디던 과거의 집필기라 할 수 있다. 물론 주관적 해석이다. 맷집과 열정이 부족한 나는 그리 믿으며 오늘도 기신기신 사그라드는 불씨를 모으며 읽는다. 아주 저릿저릿 슬프고 애틋하며 매혹적인 이야기가 좋지만 오늘은 이런저런 잡다한 이이야에 끌린다.
오늘의 커피는 케냐 바리초. 청량한 바람과 거친 노동에서 만들어진 쓴맛이 기분 좋게 울린다. 단정함과 산뜻한 신맛이 있다. 다양한 과일이 바람과 함께 지날 때 나는 향기가 있다. 물밀듯이 쏟아지는 달콤한 향기에 취한다. 쓴맛과 새콤함이 사이좋게 잔물결을 일으킨다. 묵직하면서도 무겁지 않은 바디감이 좋다. 열정을 누르고 고요함을 보여주는 개성 있는 커피라고 하자. 손바닥만 한 겨울 햇빛이 마음을 데우듯 바리초는 고소함과 따뜻함을 품었다. 은은한 성장통을 겪으며 잔잔한 듯 치열하게 살아온 사람을 닮은 커피다. 일상을 사랑하는 성실한 우리에게 필요한 커피, 일단 어떻게든 잘 견디는 삶의 태도가 최선이라 말하며 같이 마시자고 권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