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2 머뭇대지 말고 서성거리지 말고

과테말라 엘탐보

by 만델링

온갖 영수증과 카드 명세표 사이로 반쪽짜리 인삼껌 하나가 초라하게 묻혀 있는 게 보인다. 그녀가 조심스럽게 껌 조각을 집어 든다. 그리고 포장지를 벗겨, 눅눅하게 들러붙은 은박지를 뜯어낸다. 인삼껌은 살점처럼 피로하게 늘어져 있다. 그녀는 껌을 코에 갖다 대본다. 사라질 듯 말 듯한 향신료의 흔적이 한 자락 후각 세포 안에 걸려든다. 인삼 향은 먼지 냄새처럼 그윽하고 아련하다. 그녀는 망설임 없이 껌을 입 안에 털어 넣는다. "세상에." 그녀가 놀란 듯 중얼거린다. "아직 달다." 그녀는 천천히 껌 조각을 씹으며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 눕는다. 입 안 가득 달콤 쌉싸름한 인삼껌의 맛이 침과 함께 괴었다 사라지고 사라졌다 괸다.


《침이 고인다》 김애란. 80쪽 4~15행. 이 책은 8편의 단편이 든 소설집이다. 인용문은 그중 표제작의 한 부분이다. 주인공 그녀는 혼자 사는 학원 강사다. 이야기는 도서관에서 껌 한 통을 쥐어준 뒤 사라진 엄마에게 버림받은 기억을 가진 후배가 찾아오고 그녀와 한동안 같이 살다가 그 후배가 떠나간 뒤 혼자 껌을 씹으며 하는 말이다. 그녀는 지금 후배의 부재를 홀가분해하면서 언변과 살가움을 그리워하는지도 모르겠다. 주인공은 원래 뭘 마음에 담아두는 성격이 아닐 것 같고, 놀고먹으며 살 수 있으면 좋겠다고 바라는 성격이 아닐까 싶기도 하다. 고독함이 싫었던 주인공은 후배와 동거 후 되려 고독에 대한 욕망이 솟는다. 이중적이다. 쓸하게 웃으며 주인공 그녀에게 커피 한 잔 같이 마시자 청하고 싶다. 푹신푹신한 고독감에 건조한 신맛이 침을 괴게 하는 커피를 주자. 캐리멜의 씁쓰름한 향이 인삼껌보다 감미롭고 황홀하며 구수한 커피다. 가슴께가 뻐근하고 마음이 저릿한 그녀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싶다.


오늘의 커피는 과테말라 엘탐보. 쾌적함과 한가로움을 한 잔에 담은 커피다. 감미롭고 은근한 단맛에 끌린다. 스무 살 청춘이 아니어도 스무 살의 아른한 기억에 배시시 웃음이 나는 커피다. 뾰족한 감정들이 부드럽게 섞인다. 은근하게 산뜻한 신맛이 난다. 과하게 무겁지 않고 복잡한 과일맛이 좋다. 우아함과 발랄함이 같이 있는 근사함이다. 과테말라 커피 고유의 저무는 태양빛, 황금빛, 온화한 빛이 담겼다. 긴 하루의 끝에 수고로움에 대한 상으로 받는 커피다. 남은 날들도 머뭇대지 말고 할까 말까 망설이지 말고 홀짝홀짝 마시며 끈질기게 살자고 말한다. 관계 맺고 있는 사람 사이에서 진정한 친밀감과 웃음을 나누며 지내자고 한다. 작고 보잘것없는 삶, 무심하게 흘러가는 일상을 강단지게 붙잡고 슬프면서도 의연한 마음으로 단단히 살아가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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