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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만델링 Jan 20. 2022

122 해보고 싶은 걸 해보려고

코스타리카 엘 베나도 라 로마

 고 싶을 때, 말하기 싫을 때, 참는 게 나을 때, 하기 싫은 일을 무한 반복할 때, 이는 먹었는데 아직도 뭘 원하는지 몰라 버벅거릴 때, 가 나를 몰라 한심할 때, 이 깨질 때, 자존심이 깨질 때, 가 될 만하다 안 될  때, 이지는 않고 속임을 당했을 때, 소설 읽다. 읽기에 빠진 혼자만의 시간이 좋다. 소설을 읽는 동안에 마음과 머리는 아주 만족스럽다. 졸려서 눈이 따끔거릴 때까지 잠들지 않고 깨어 있던 젊은 시절이 있었고 지금은 하품하 간신히 읽는 시간이 있다. 오도카니 앉아 있는 그 시간이 좋아서 을 닫고 읽는다. 열심히 해보려고 했는데 잘 안 되는 시간에 소설을 읽는다. 이 또한 지나가리라, 내가 열정적으로 살았다, 그리 생각하며 읽는다.


 원래는 낯선 공간을 탐색하는 걸 즐기는 사람이었는데 지금은 식탁에 앉아 거의 모든 일을 하는 사람이 되었다. 수동 기어를 넣는 자동차를 운전하며 내비게이션 도움 없이 목적지에 갈 수 있는 걸 자랑하던 사람이었다가 내비게이션이 필요 없는 거리만 반복 운전하는 사람으로 지낸다. 코로나 때문이기도 하지만 사는 동안 환경이 바뀌어 그 생활을 계속하고 있고 앞으로 수년간은 그 생활이 계속될 것이다. 일찍 일어나고 늦게 자는 생활을 하는데도 이것도 해야 하고 저것도 해야 하는 일이 줄어들지 않는 생활이 이제 슬슬 지겹고 그만 했으면 하는 마음이 불쑥불쑥 들어 피곤하기 짝이 없다. 권태기와 갱년기가 듀엣 연주를 하는 마음과 몸이 되었다.


 남의 삶이 더 윤기가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마음을 어쩌지 못해 안달하던 시간은 지났다. 태연한 척할 수 있는 요령이 생겼고 그것보다 소중한 것에 집중해야 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끝도 없이 간질간질 들썩들썩하던 마음은 가지런히 정리되어 빳빳하게 마른 수건 마냥 각 잡혀 개어졌다. 피가 도움이 되었다. 새로운 커피를 마시고 기록할 때마다 편안해졌다. 같이 읽을 글도 아닌 글을 자꾸자꾸 쓰면서 튼튼해졌다. 시답잖은 글이야말로 내게는 계속되는 생활의 균형을 잡을 수 있게 한다. 그래서 미루다 오늘은 쓴다.


 오늘의 커피는 코스타리카 엘 베나도 라 로마. 뽀글뽀글 커피 빵이 올라오는 모습에 입꼬리가 눈꼬리에 닿는다. 원하고 향긋한 맛이 가을이 시작되는 느낌을 준다. 직한 베리의 단맛과 신맛이 균형을 이룬다. 눈이 반짝반짝해지며 기운이 난다. 호화로운 향기는 아니지만 자유롭게 즐거운 경쾌한 향이 좋은 커피다. 오래도록 이 한 때를 기억하고 싶은 달콤한 향이다. 박력 있고 부드러운 커피다. 거기다 고소함은 덤이다. 단맛이 풍부하고 진한 커피, 깊이 있고 마음이 넉넉한 친구 같다. 탐스러움이 무엇인지 말한다. 나이 들면서 더 가까이 배우고 친하게 지내고 싶은 사람의 모습이다. 이제 해보고 싶은 걸 해보는 용기를 내라고 응원한다. 우리 함께 마시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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